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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넷 숨소리

한국문인협회 로고 배성근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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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축담에 사열하듯 나란히 놓인 흰 고무신 
아흔다섯으로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아직 추억이 속살거리고 있는
나지막한 계단 오르는 소리가 삐거덕삐거덕 
점점 왜소하게 보이지만
세월도 무색한 아버지의 목소리
동구 밖 행인을 보고 누군지 되씹으며
옛이야기로 깨를 볶고 계신다
이른 아침 햇살은 자욱한 안개에 묻힌 
달맞이꽃을 미소 짓게 하고
푸른 들에는 한나절 내내
황금 곡식을 만들기 위해
가을볕으로 다글다글 굽고 있다
매미 소리가 멎은 선산가는 길
추석맞이 벌초하는 소리가 이산 저산 
앵앵앵-앵 대신 울고 있는 지금이다 
언덕배기에 앉아 옛 기억을 되살리듯 
선산을 가리키는 아버지의 눈빛은
아직 초롱초롱한데
서산에 기운 햇살은
남새밭에 고추같이 붉고
아흔넷 아버지의 숨소리도
귀뚜라미 노래 같이 고르다
세월로 때 묻은 홑청 바지가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을 뉘고
어디쯤 머물고 계실까
하루 일상을 접고 잠시 쉬어 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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