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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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능통하신 할머니
쌀 등겨로 세수하시고
하얀 피부 헌칠하신 키의 은비녀
시집오실 때 무거운 쪽두리
지금도 정수리가 엉성하시다
손때 묻은 반짇고리, 아끼시던 돋보기, 예쁜 골무
궁중요리, 궁중 바느질 솜씨, 놀랍다
치마꼬리 잡고 옛날이야기 졸라대던 손주들
서로 사랑 독차지하려고 졸졸 따라 다닌다
뱃병 나면 약손으로 어루만져 고쳐주시고
젖 떨어진 동생 동지섣달 긴 밤
빈 젖꼭지 물고 소르르 잠들었는데
문득 바람줄기 따라 할머니의 책 읽는 소리 들려온다
어느덧 나도 할머니 되어 손주 사랑에 푹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