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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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사흘째 첫새벽
어슴푸레한 오솔길 따라 숲으로 간다.
꺾이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곳곳에 거뭇거뭇 널브러져
발부리에 차인다.
이른 가을 폭풍에 뜯겨 날리다가
세상의 작은 이들처럼
돌길 위에 함부로 내동댕이쳐진
가늘고 여린 지체(肢體)들.
허리 굽혀 조심스레 안아 들고
가슴을 에는 생이별 지켜만 봤을
주름 깊은 제 어미 곁에 누인다.
살 찢기는 아픔을 인내하는 몸부림은
옹이들과 굳은살투성이로 남아
차마 돌아설 수 없어 쓰다듬어 보는
투박한 육신 아래엔
제한몸인듯감싸고있는
빛바랜 비명(碑銘).
—무덤에 묻히시다
제14처 앞에 조아려 두 손 모은다.
높바람에 긁히며 지난한 세월 버텨 온
숲속 모퉁잇돌 어루만지며
햇살이 고요히 내려앉아 번져 가는
새 아침,
바람에 흔들리던 또 하나의 지체 뒤에서
누구인가,
비스듬한 어깨 위로
다스한 그 손길이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