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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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비늘처럼 벗겨내고 싶어도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
담담하게 쌓인 기억들 사이
짙푸른 고요가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다
햇살도
몸을 숨기고픈 날들이 있었던 것일까
지독하게 부끄러운 날들이 스며들어
뚝, 뚝 눈물을 흘린다
떨어지는 빗소리에 고해하듯 중얼거리며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있다,
쓸쓸하게 빛을 잃어가며 쓰러져 누운 채
은은하게 퍼져오는 에스프레소 향에 취해
변질된 기억이라도
애써 붙잡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
차라리 저 양철 지붕 위로 뛰어들어
공간 속에 산화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