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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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가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니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다 털이 검은
다가가도 가만히 있다
달아나는 법을 잊은 것처럼
어디가 불편한가 다쳤나
아예 고양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본다
구부러진 몸이 고양이 같다
고개만 돌려 나를 보는 눈동자에
눈 한 번 꿈뻑이면 부서질 것 같은
동글게 말린 슬픔이 비친다
구깃거리는 불청객에 놀라
미동도 없던 고양이가
웅크린 몸을 풀어 저만치 달아난다
순식간에 해체된 슬픔이
눈부신 곡선으로 흩어져
나른한 봄 햇살 속으로 숨어버린다
구불구불한 몸을 더디게 세워
고양이가 버리고 간 슬픔을 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