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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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땀흘려 가꿔 온 모든 곡식에 대한 열매를 거둔다. 농부들은 이 알찬 열매를 추수하기 위한 바쁜 일정을 보낸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익은 곡식의 추수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추수의 시기가 다가오면 누구나가 설레는 마음이다. 추수의 결실에 대한 결과의 기대에 부풀 수 밖에 없고, 기쁨과 보람을 주기 때문이다. 이 결실을 위해 여름처럼 장맛비가 오거나 태풍이 몰아 쳐도 안된다. 알맞은 햇빛으로 영그는 열매를 기대하고, 추수해야 할 시기만을 기다린다.
오늘의 삶 속에서 추수의 결실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은 외형적인 것과 내면적인 결실이다. 외형적인 추수의 결실은 현상적으로 나타난다. 농경사회의 추수나 산업사회속에서의 직장생활을 비롯한 기업과 사업의 이익에 대한 결실이다. 그리고 내면적인 추수의 결실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의 성숙도를 의미할 수 있다. 그 추수의 시기는 가을로 한정할 수 없다. 대부분 1년 계획을 세우는 새해 첫날부터 시작해 12월의 결산 시기에 결실의 열매를 거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을이 추수 시기이기 때문에, 가을의 추수 시기와 함께 내면적인 추수의 결실도 생각할 수 있다.
오늘의 현대사회는 외형적인 추수의 결실에 치중하고 있다. 모든 결실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나야 한다. 농부들은 논과 밭에서 알찬 열매의 곡식을 추수해야 하고, 직장인들은 월급과 수당 등 수입으로 환산한다. 또한 기업인이나 사업가들은 이익을 얼마만큼이나 남겼느냐에 따라 결실의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리고 문학인들이나 예술인들은 작품창작과 예술활동의 결과에 따라 결실을 환산할 수 있다. 이러한 외형 적인 결실의 결과는 수치로 환산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화폐로 계산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적인 추수의 결실은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스럽게 성숙되어 가는 과정속에서의 열매이다. 그것은 사람과 연령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살아오면서 얼마만큼이나 성숙한 삶을 가꾸었느냐에 따라 결실의 열매를 추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진섭(金晉燮; 1903∼1950, 6·2 5 전쟁 중 납북 ) 은「인생 예찬」에서“인간의 성숙은 연령의 노쇠를 반드시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람과 연령에 따라 성숙한 삶의 결실이 다름을 판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면적인 추수의 결실을 추구한 시는 김현승(金顯承; 1913∼1975)의 「가을의 기도」이다. 가을에 추수하는 것처럼, 내면적인 추수의 시기도 가을로 설정해 놓고, 알찬 열매를 위한 소망과 그 열매를 추수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이다. 이 내면적인 결실은 삶의 성숙을 의미한다. 표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결실의 크기에 따라 성숙한 삶의 향기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가을의 기도」전문
이「기을의 기도」는 내면적인 성숙의 결실을 위해 드리는 기도이다. 알찬 결실을 위한 간절함을 기도의 형식에 의해 간구한다. 3연으로 구성된 각 연마다“하소서”라고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채우소서”라고 간구하기 때문이다. 소망하거나 채워달라는 것은, 추수의 보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기도조의 형식으로 간구하고 있다. 특히 이 시가 지닌 경건함을 기도조로 표현함으로써, 소망에 대한 간절함을 고조시켰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나 가을날의 쓸쓸함과 경건함의 분위기를 “가을에는…… 하소서”란 기도 형식으로 바램에 대한 간절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 첫연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고,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채워달라고 기도한다. 그것은‘겸허한 모국 어’가 상징하듯이 내면적인 충실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둘째 연은“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그것은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하고 소망한다. “오직 한 사람”은 신앙의 대상인‘하나님’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도록 간구한 것이다. 또한“가장 아름다운 열 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는 성숙한 삶을 위해 충실한 생활을 기도한다. 이“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내면적인‘신앙의 열매’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삶 속에서 계획한 목표의 열매일 수도 있다.
이 시에서 보여 주듯이 가을에는 외형적인 결실을 위한 추수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결실의 열매도 거두는 계절이다. 지금까지 누구나가 가을에는 외형적인 결실만을 추구해 왔다. 농경사회는 추수를 얼마만큼 했느냐가 중요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을 화폐로 환산한다. 그러나 이 「가을의 기도」는 내면적인 추수의 결실을 추구한 것이다. 이 결실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없다. 유형체(有形體)가 아닌 무형체(無形體)이다. 화폐로는 환산할 수가 없다. 지난날보다 성숙해진 삶, 그 자체가 내면적인 결실이며 보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