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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의 편지

한국문인협회 로고 남상숙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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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언약인 듯 태양은 날마다 환하게 떠오른다. 미래는 알 수 없어도 인간은 저마다 삶을 향유하고 인간사 희로애락은 여전히 이어진다. 오래전에 살다간 사람도 인생에 대해 궁구하고 피치 못할 현실에 괴로워하다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천명이라며 순응했을 것이다. 고전을 읽는 것은 앞서 산사람들의 사상과 지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내 삶의 길을 닦는 일이다.
퇴계 이황(1501∼1570)과 고봉 기대승(1527∼1572)이 주고 받은 『편지를 쓰다』(김영두 옮김)는 두께만큼 내용도 중량감 있다. 두 지성이 발하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삶에 대한 외경, 온축한 학문에 대한 진솔하고 겸손한 태도에 가슴 뭉클했 다. 퇴계가 고봉에게 곡진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언어는 다 정하고 시대를 위해 자신을 소중히 하라는 당부는 내게하는 말인 듯 정다웠다.
당시 퇴계는 국립대 총장격인 성균관 대사성으로 58세이고, 고봉은 32세로 문과 을과에 1등으로 합격하였으나 아직 벼슬하지 않았다. 사단칠정 이론을 공부했던 고봉은 한양에 머물게 되 자, 퇴계를 찾아가 견해를 밝혔다. 젊은 선비의 말을 귀담아들은 퇴계 는 고봉이 돌아가자 편지를 썼다.
“기 선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아울러 깊어져, 비할 데 없습니다.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 하여 학업을 추 구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나라 16세기 식자층의 글은 한문이었다. 유교가 바탕인 성리학 을 공부한 학자들은 세상 이치를 중국 성현의 글에서 찾으려 했다. 사단칠정론은 사단을 칠정과 대립하는 것으로 본 이황의 이기이원론(理 氣二元論)과 사단을 칠정에 포함되는 것으로 본 기대승의 이기일원론(理 氣一元論) 논쟁이다.
퇴계가 고봉의 논박을 듣고 나서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알고, “사단의 발현은 순수한 이(理)인 까닭에 언제나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 정의 발현은 기(氣)와 겸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 이렇게 하면 괜찮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한다. 퇴계와 고봉이 논증을 펼치면서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성리학의 기초이론조차 이해하지 못한 나는 논리를 설명할 학식이 없다. 논쟁을 촉발한 제도와 규칙,‘이’와 ‘기’가 어디에서 발현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머리만 어수선했다. 그러나 조선의 내로라하는 퇴계도 책을 읽다가 의혹이 일면 얕은 학문을 부끄러워하며 젊은 선비에게 물어 배우고, 자신이 아는 바를 성심을 다해 답변하는 고봉의 태도에 감화를 받았다. 편지를 보내고 답신을 기다리는 마음이 애틋하고, 인편이 없어 지체하다가 계절이 바뀌면 안타까웠다.
퇴계가 물었다. 
“주자가 남악(南岳)을 유람할 때 <밤에 방광(方廣)에 서 묵었는데 장로 수영(守榮)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지은 시>에서 ‘허공 에서 근두(筋斗)만 친다’했는데, 허공에서 근두를 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
고봉이 말했다.“선생님께서는 이미 높은 덕과 큰 도량을 이루시고도 매일 새롭게 더해 공부하시니,...근두(筋斗)는 광대가 거꾸로 서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일찍이 한 중을 만났더니, 그가 말하기를 ‘옛날에 한 중이 장로의 법회에 참여했는데, 깨달음이 있어 곧 거꾸로 서서 말했는데, 이 말은 『전등록(傳燈錄)』에 나온다’했습니다. 모르기는 하나, 그런 뜻이 아니겠는지요? ”
퇴계가 답했다.
“보내주신 별지는 저의 어리석음을 많이 깨우쳐주니, 천하의 서적을 다 읽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하의 서적을 다 읽어야...’함을 깨달은 퇴계는 나이 들어몸도 쇠약해져서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바라며 조정에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봉이 말했다.
“거취의 어려움은 한때이지만, 처세의 마땅함은 후세에 널리 전해지는 것이니 ...선생님의 도는 한 시대가 우러러보는 것이 될 뿐만 아니 라, 뒷날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고봉은 퇴계의 물음에 언제나 흠모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답했다. 잗 다란 일까지 말씀 올려 황공하다면서 예우가 너무 무거워 소생이 감당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겸유했다. 그러면서 성현의 지혜와 경륜을 배우려 애쓰고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진리 탐구에 열중하기를 소망했다.
두 학자의 품격있는 예의범절은 26년의 나이차이에도 토담아래봄 볕처럼 온화했다. 자연과 세상에 대한 이치는 가을 하늘처럼 광활하고 현실정치 문제에는 얼음장처럼 날카로웠어도 학문에 대한 이론은 술패랭이처럼 정밀했다. 서로 세상에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운명으로 여기며 학문과 진리 탐구, 자기완성에 전력투구했다. 편지가 남의 눈에 띄 어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경계하고, 잡히지 않는 진리에 안타까워했다. 수세기 전, 산넘고물건너 영호남을 오간 내밀한 서신을 읽은 것은 보람이었다. 인간을 귀히 여기는 자애와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극복하는 슬기, 학문에 몰두하는 집념과 겸양은 본보기가 됐다. 어려운 한문 과 복잡한 문장이 혼란스러워도 두 지성의 가멸찬 서사가 고마웠다. 글 의 맥락이 이해하기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첫새벽 눈길을 걷듯 뽀득뽀득 따라가자, 세상사 원리가 살구꽃처럼 해사하고, 솔직, 담박한 언어 들이 여름밤 달빛이 박을 쓰다듬듯 웅숭깊었다. 친절한 주석에 눈길 머 물면 미소가 번졌으니 고전을 읽는 묘미였다.
1570년 12월, 퇴계가 69세로 별세함으로써 13년 동안 이어진 서신 왕래도 끝났다. 책을 읽으면서 두 인격이 이룩한 도저한 학문과 심원한 영혼의 교류에 가을볕 석류알처럼 가슴 설褸다. 제풀에 터져 과육처럼 파열음에화들짝 놀란 나는 무딘 펜벼리게 할 젊은누구없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며 학문과 진리 탐구, 자기완성에 전력투구했다. 편지가 남의 눈에 띄 어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경계하고, 잡히지 않는 진리에 안타까워했다. 수세기전,산넘고물건너영호남을오간내밀한서신을읽은것은

보람이었다. 인간을 귀히 여기는 자애와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극복하는 슬기, 학문에 몰두하는 집념과 겸양은 본보기가 됐다. 어려운 한문 과 복잡한 문장이 혼란스러워도 두 지성의 가멸찬 서사가 고마웠다. 글 의 맥락이 이해하기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첫새벽 눈길을 걷듯 뽀득뽀득 따라가자, 세상사 원리가 살구꽃처럼 해사하고, 솔직, 담박한 언어 들이 여름밤 달빛이 박을 쓰다듬듯 웅숭깊었다. 친절한 주석에 눈길 머 물면 미소가 번졌으니 고전을 읽는 묘미였다.

1570년 12월, 퇴계가 69세로 별세함으로써 13년 동안 이어진 서신 왕 래도 끝났다. 책을 읽으면서 두 인격이 이룩한 도저한 학문과 심원한 영혼의 교류에 가을볕 석류알처럼 가슴 설렛다. 제풀에 터져 과육처럼 파열음에화들짝 놀란 나는 무딘 펜 벼리게 할 젊은 누구 없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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