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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갚아야 할 사랑의 빚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심은신

소설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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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작가 지망생에게 등단이란 각고 끝에 얻은 첫 결실 혹은 오래 품어 온 꿈의 서막일 테다. 근래 등단제도를 거부하고 독자들과 바로 소통하는 이들도 다수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등단은 문학 세계로 입문하는 작가의 첫 관문이다.
보통 등단은 저명한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여러 해 글을 배우면서 쓰디쓴 합평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자괴감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수없이 보내게 되지만, 혹독한 습작의 시간이 자양분이 되어 필력이라는 꽃으로 피어난다.
그런데 나의 경우 등단은 예기치 못한 하늘의 선물처럼 주어졌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은 노력 이상의 과분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등단을 통해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등단을 위해 오랜 시간 글공부에 매진해 온 분들께는 부끄러운 고백일 수도 있겠다. 나 역시 등단의 꿈은 대학 시절부터 품어 왔지만, 아쉽게도 혹독한 습작 과정이 없었다. 등단 직전까지도 소설을 쓰고 싶은 꿈은 그저 막연한 미래의 것으로 유예돼 있었다.
물론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현대소설에 관심이 컸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종일 문학작품만 탐독한 시간도 있었다. 홀로 습작 활동을 하다가 3, 4학년 겨울방학에는 신춘문예에 도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발령받으면서 글쓰기의 열망은 사회생활 적응보다 후순위가 됐다. 이어 결혼과 출산, 자녀 양육 과정을 교직생활과 병행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 시절 유일하게 위로로 삼은 건, 존경하는 박완서 선생님도 사십대에 등단하셨다는 사실이었다. 뻔한 자기 합리화였지만 글쓰기의 꿈을 놓기 싫어 나에게 걸어둔 주문과도 같았다. 나도 사십대쯤엔 등단하게 되리란 소망을 품고 틈틈이 독서에만 매진했다.
그런데 막상 사십대가 되어서도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지도하면서 상담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고 정확히 마흔 살에 상담대학원에 입학했다. 이후 심리학에 매료돼서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이런저런 연수를 찾아 배우며 십 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소설 창작은 퇴직 이후로 미뤄졌고 등단은 밤하늘의 닿을 수 없는 별처럼 아득해져 있었다.
2016년 봄이 막 시작된 3월 초 어느 날이었다. 교무실에서 기안문을 작성하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는데 업무지원시스템을 클릭하자마자 ‘공무원문예대전’ 홍보 배너가 떴다. 공무원들의 문학적 소양을 계발하기 위해 장르별 작품을 공모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단편소설’ 이라는 네 글자가 크게 확대되어 들어왔다. 응모 마감은 3월 31일, 겨우 3주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아버지가 암 투병 하시다 돌아가신 직후여서 그랬는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글로 쏟아놓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다. 등단 여부나 문학적 성취와는 전혀 상관없는 열망이었다. 평생 아버지에게 사랑받아 온 막둥이였지만 죽음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토로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돌아보면 수필로도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소설로 쓰고 싶었던 건 내면에 깊이 숨겨둔 갈망 때문이었지 싶다. 평범하지만 성실한 공무원이자 깨끗한 신앙인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을 소설이라는 따뜻한 등으로 비추고 싶었다. 대단한 명성과 업적을 남기지 못했어도 누구보다 신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삶은 신 앞에서 아름답게 빛나리라는 위로를 드리고 싶었다.
평소 클래식 음악 중에 바흐의 곡들을 사랑해서 항상 곁에 두고 들어 왔는데 바흐의 신실한 삶에 아버지의 삶을 허구로 연결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부터 무엇에 이끌리듯 일주일 만에 쓴 단편이 「마태수난곡」이다. 소설은, 기내에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독일 라이프치히로 향하는 수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암 투병 중인 늙은 아버지를 두고 바흐가 27년간 칸토르로 봉직한 토마스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평소 흠모해 온 바흐를 통해 고난으로 점철된 아버지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사후에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받은 바흐였지만, 그는 아홉 살에 부모를 잃고 형의 손에 자란 고난의 사람이었다. 아홉 명의 자녀를 낳아 키운 아버지이자 박봉에 시달리는 직장인이기도 했다. 고단했지만 성실한 삶을 살았던 바흐의 궤적을 수진은 토마스교회에서 확인한다. 성실한 일상을 통해 빚어낸 바흐의 음악이 영원히 울려 퍼지듯 아버지의 신실한 일상도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신 앞에 울려 퍼질 것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모든 인생이 겪는 고난과 일상의 성실, 그 열매에 관한 소설이다.
「마태수난곡」이 공무원문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문학적으로 부족한 글인데 마치 아버지를 향한 마음을 심사위원들께서 알아봐 주신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천국에 계신 아버지가 환하게 미소 짓는 것 같았다. 5월 중순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상식이 있었고 남편과 함께 참석해 감사한 마음으로 상을 받았다.
시상식 직후에 처음 뵙는 분이 다가오셔서 이번 문예대전의 심사위원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신 김호운 선생님이셨다. 「마태수난곡」이 참 좋았다며 혹시 글쓰기 공부 중이냐고 물으셨다. 상황상 제대로 된 글공부를 못하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꼭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 격려 말씀이 막연한 미래의 일로만 미뤄뒀던 등단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 시절의 문학 초심을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울산행 KTX 안에서 마음이 설렜다. 글쓰기를 더 미뤄둘 수 없다는 갈망에 다음날부터 시간을 쪼개 습작을 시작했다.
새 단편으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부터 써 보자는 판단이 섰고 새로운 정체성 앞에 선 중년여성들의 고뇌를 다뤄 보기로 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어느 시점이 되면 인간은 육체적 인간에서 정신적 인간으로 변모해서 삶의 에너지를 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인생의 전반기에 자신을 드러내는 삶을 지향했다면 후반기에는 타인을 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즈음 나도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외적인 매력과 젊음의 광휘는 사라졌지만, 인간을 넉넉하게 품는 내면적 성숙을 지녀야 할 때였다. 그 고민을 진솔하게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뒤 완성된 단편이「달맞이꽃」이다. 소재가 된 달맞이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만한 화려함은 갖지 못했지만 은은한 향기를 지닌 꽃이다. 실제로 낮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저녁이 되면 떠오르는 달을 따라 활짝 피어난다. 태양에 속한 전반기 여성이 아니라 달에 속한 후반기 여성을 상징하기에 적합한 소재다. 소설은, 중년여성인 명주가 친구와 함께 강릉 허난설헌의 생가로 향하면서 시작한다. 이십대 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려 했던 명주는 심한 갱년기 증세로 장거리 여행을 포기하고 오랜 친구와 함께 강릉으로 떠나 허난설헌의 삶을 추모한다. 고통으로 전반기의 삶을 살다 스스로 생을 끊어낸 허난설헌과 달리 고난 속에서도 꾸역꾸역 후반기를 살아가는 친구에게서 명주는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칼 융이 말한 ‘정신적 인간’이란 육체 쇠락 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패배의식이 아니라 인생의 산티아고(진정한 아름다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다.
봄에 쓴 「달맞이꽃」을 그해 여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 공모에 투고했고 9월에 등단하는 기쁨을 누렸다. 혹독한 습작 과정이 없었기에 등단은 하늘의 선물처럼 여겨졌고, 습작의 정도(正道)를 걸어온 문우들보다 몇 배의 감사를 느꼈다. 물론 습작 과정이 없었기에 이후 글을 써 온 지난 8년 동안 다섯 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필력의 한계를 뚜렷하게 느껴야 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 과정을 생각하면 언제나 감사뿐이다. 하늘의 과분한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랑을 갚으며 살 수밖에 없다. 겸손하게 정진하여 하늘의 사랑을 오롯이 독자들에게 좋은 소설로 되돌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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