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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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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턱 관절이 아리도록 껌을 씹어댔다. 질겅질겅 씹어대던 껌을 더는 씹고 싶지 않아 버릴 종이를 찾아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호주머니 안 쪽에 있는 껌 종이가 손끝에 닿았다. 단물이 빠진 껌은 귀찮았고, 불편 했다. 단물이 빠진 껌이 사라지자 다시 껌을 사야하나 망설였다. 불필요한 거스러미처럼 호주머니 안에서 놀던 껌을 의식한 건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시끌벅적한 버스 정류장에 섰다. 동문시장을 가려고 고산동산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쓸데없이 최말숙의 말이 토막처럼 툭툭 떠올랐다. 고약한 기억을 떨치기 위해선 껌이 필요했다. 편의점으로 가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에 365번 버스의 LED 번호가 시야에 들어왔다. 버스에 오르기 위해 카드를 꺼냈다. 버스 안은 마스크를 한 승객들이 몇몇이 있었고 습관대로 앞쪽에 앉았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은 텁텁하고 끈적끈적했다. 여름이 지나 가을로 가는 계절이지만 한낮에는 더웠다.
나는 동문시장과 가까운 중앙로라는 안내의 말에 벨을 찾아 손을 뻗었다. 순간 누군가 누른 벨소리가 났다. 버스는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덜컹거려 몸이 휘청거렸다.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의 요동 때문에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버스는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정류장에 섰다. 버스에서 내려 눈으로 들어오는 늦여름과 초가을 어디쯤의 햇빛을 올려 보았다. 나는 따갑고 부드럽지 않는 햇살을 등지고 보도블록을 걸었다. 동문시장의 동쪽 입구에서 자동차가 빠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 멈춰 건너편 핸드폰 가게 앞에 출렁이는 바람인형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바람 때문에 인형의 팔은 몹시 흔들렸고, 도로 폭이 좁아서 인지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치곤 했다. 건너편 CU로 갈까하다 손끝에 닿은 흐물흐물한 느낌에 호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조금 전 씹고 버렸던 껌이 종이에서 삐죽이 나와 카드에 달라붙어 버렸다. 뜯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도 손바닥으로 자꾸만 달라붙었다. 나는 되는 일이 없다며 푸념했다. 카드를 땅바닥에 놓고 긁었다. 흠이 난 카드를 보자 최말숙의 말이 선명히 떠올랐다. 너는 의뭉한 사람이야.
동문시장 입구에서는 비릿한 생선냄새가 났다. 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생선 비린내를 맡자 인상이 찌푸려지고 떨쳐버리지 못하는 말이 떠 오르자 욕지기를 쏟아냈다. 혼자 중얼거리며 거리를 걸어가는 통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렸다. 뱉어낸 욕지기가 길바닥에 널려 있는 느낌을 받았다. 시끌벅적한 소음은, 비릿한 냄새는 그것들을 숨기기에 적 당했다. 생선가게를 지나자 길게 뻗은 좌판 위에 놓인 건어물이 놀림 받는 어린아이처럼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옥돔을 사서 시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말린 과메기도 골랐다.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사고 한라봉도 다섯 개나 샀다. 고기를 샀고, 전거리도 골랐다. 나는 가방이 무거워 팔을 번갈아가며 들었지만 힘이 빠져 더는 장을 볼 수 없었다. 최말숙이 원하는 곶감은 기어코 사지 않았다.
나는 장을 보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던 마음을 돌렸다. 차가 있어도 주차가 미숙해 버스를 타곤 했지만 오늘은 번거로운 장보기로 기분을 털어버리려 했다. 그러나 기분은 풀어지지 않았고 땀 이 흘러 자꾸만 브래지어 끈이 내려오는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싶지 않은데다 무겁게 장을 본 탓에 택시를 탔다. 택 시기사에게 독짓골로 행선지를 말하곤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투덜거리던 운전기사는 10분을 틀고 꺼버리더니 창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문을 펼쳤다. 최말숙에게 받은 멸치의 똥을 따기 위해 거실에 퍼질러 앉았다. 봉긋이 쌓인 멸치에서 비린내가 풍기자 구역질이 났다. 나는 멸치 상자를 다리 사이에 끼고 TV에 눈을 돌렸다. 주인공인 동이가 사건에 휘말려 곤경에 처하자 멸치를 내던지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역사에는 동이가 살아서 아들을 왕 노릇까지 하게 만들었고,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대로 갈 것이라는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안심한다는 것, 결과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질러진 상념은 흩어지고 공중으로 분해된 말은 더 이상 곁에 머물지 못했다. 자꾸만 최말숙을 떠올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멸치를 다듬는 중에도 드라마의 장면은 건너 뛰어 리모컨을 뒤로 돌려야 했다.
울려대는 전화는 집요했다.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엎어 놓은 핸드폰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최말숙의 거칠고 투박한 말투가 공간 안에서 머무는 느낌 이 싫어 손에 든 뭉개진 멸치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주방에 난 조그만 창을 열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창 앞에 서 있다가 해가 저물고 희미한 빛마저 사라져 암전이 되어서야 몸을 움직였다. 신문을 정리하고 다듬은 멸치를 거두어 그릇에 담았다. 그리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 여러 번 했다.”
“알아요.”
“알았다고? 그렇게 할 거니? ”
“네.”
“넌 분명 잘못 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잘못… 이건 아니야.”
나는 난감했다. 눈앞에 선 듯한 최말숙의 붉게 칠한 립스틱이 생각났다.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는 최말숙의 그늘진 얼굴과, 슬픔 같은 표정을 상상했다. 나는 이제 제사를 거두려고 한다. 며칠 전 그 문제로 최말숙과 언쟁을 했다.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최말숙의 목소리는 광야를 헤치고 가는, 탁 하고 거친 소음 같았다. 공명처럼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공기 중에 녹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딴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통쾌해 웃고 말았다.
“지금 웃어? 하다하다 별 짓을 다 하네. 뭐? 제사를 없애. 사람이 해 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어. 이제는 그것도 구분이 안 돼? 죽어 엎어질 때까지 네 할 일을 잊지 마. 그리고 내가 아무 힘도 없다고도 여기지 마. 지켜야 할 것은 지켜.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플지 알지 못해?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우리를 뭐로 보고. 거기다 의뭉하기까지 도대체….”
최말숙의 말은 공명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욕을 하고 싶었다. 누구 좋으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시발년이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지갑을 챙겨 집 앞 국숫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돌아온 거실에는 몇 개의 멸치와 똥이 보였다. 그것을 발로 차버리고는 바닥에 누워 시발년을 계속 내뱉었다.

시장을 가려고 지갑을 챙기고 나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버림받은 아이마냥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고 머리카락이 날 리는 것도 귀찮았다. 늘 가던 길이지만 오늘만은 쉽지 않았다. 거기다 껌은 없고, 돌아오자마자 벌컥벌컥 차가운 물을 들이마셨다. 나는 미련 없는 제사를 더 빨리 떨쳐 버리지 못한 것은 나의 성향 탓이라고 생각 했다. 이번 시아버지의 제사를 끝으로 집안의 제사는 사라지게 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아니, 시집을 오던 그 첫 해부터 그런 생각이 내 안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고 여겼다. 나는 봐 온 장거리를 냉장고에 넣고 는 다시 TV를 틀어 <동이>를 보았다. 이제 몇 화 남지 않은 드라마를 보며 딸이 보낸 문자에 답을 하며 저녁거리를 걱정했다.
냉장고에 들어찬 반찬을 딸에게 부치지도 못한 게 화가 났지만 시장을 보고 온 탓에 지쳐서 우체국에 가는 것은 다음 날로 미뤄야 했다. 나는 봐 온 장거리에서 옥돔을 하나 꺼내 따로 남겨두었다. 혼자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딸을 위해 한 마리 더 사둔 옥돔을 만지며 그제야 마 음이 화사해졌다. 장바구니를 접어 주방 싱크대 서랍에 넣어두고는 큰 대접을 꺼내 열무김치와 계란, 고추장을 넣고 비벼 된장국과 함께 우걱 우걱 씹어 댔다. 나는 밥을 먹으며 틀어 놓은 드라마에서 들려온 대사를 따라했다.
“그들이 불안으로 움직일 겁니다.”

2

시누이인 최말숙은 나보다 다섯 살 많았다. 처음 최말숙은 나를 보며 자신의 동생과 어떤 약속을 했냐고 물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할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약속이 결혼조건이라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나는 최말숙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묻는 말에 조금은 거북했다. 
“왜 물어요? ”
“궁금해서….”
나는 남편에게 누나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하자 웃기만 했다. 결혼조건을 물어왔다고 하자 남편의 무시하라는 말이 돌아왔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최말숙에게 들을 수 없었고, 나도 더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결혼조건이 무엇이었는지. 한 번도 조건이라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지만, 죽을 때까지 자신을 누구의 엄마로 부르지 말라는 것과 시집의 재산 일부는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했다. 그것이 조건이라면 조건이겠지만 나는 시집에 첫인사를 하러 갔을 때 보인 식구들의 한결같은 눈빛을 보고 뜬금없이 말해버렸다.
나는 그때 거실 바닥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낯선 식구들의 눈동자와 마주치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지만 생각나는 사람은 없었다. 예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최말숙은 웃음이 없는 사람처럼 나를 힐끗 보고는 일어나 주방으로 가버렸다. 최말숙이 타온 커피는 썼고, 뜨거웠다. 몇 명의 친척들은 이제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들끼리 속닥이며 말을 주고받았다. 개중에는 자리를 뜬 사람도 있지만 나는 사람들이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같이 살 것을 말했다. 나는 남편이 금세 그러겠다고 말할 것 같아 조바심이 나 헛기침을 했다. 남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때 최말숙의 말이 끼어들었다.
“왜? 싫어? ”
남편은 굳은 표정이었고 침묵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난감한 기분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고, 남편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나의 어색한 미소, 하지만 목소리는 다정했다.
“봐둔 집이 있어서요.”
“네. 우리끼리 살아보고요.”
그제야 남편은 말을 했다. 최말숙과 예비 시부모는 서로 눈빛을 오고 갔고 남편을 향한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예비 부모는 그 집은 놔두고 들어와 살라는 말을 다시 건넸다. 나는 남편의 망설임을 이해할 수 없었고, 무슨 말이라도 하길 바랐다.
“이게 상의하고 말고 하는 게 아니야. 시집을 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네. 벌써부터 시집 식구들 갈라 놓고… 이름이 문희라고 했지? 이러 면안돼.”
나는 최말숙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장 부드럽고 내가 꺼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말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이름은 문희가 아니라 문영이고요. 시집가셔서 시부모 모시고 사시나 봐요? 저는 우리끼리 살려고요. 그렇게 할게요.”
예비 부모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고, 최말숙은 자신의 부모를 쳐다보고는 약간 높아진 목소리로 철이 없는 며느리를 가르치려면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건 누나가 결정할 일 아니야. 더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했다.
예민한 이야기를 들은 두 세 명의 친척들은 마치 재미난 구경을 한 것 마냥 흥미로운 얼굴로 돌아갔다. 마지막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거실로 나와 현관문을 열려는 그때 시아버지의 헛기침과 최말숙의 말은 나에게 수치심을 주었다.
“쟤 의뭉하네.”

나는 고추장 멸치볶음과 옥돔과 몇 개의 밑반찬을 밀봉한 뒤에 스티로폼에 담았다. 테이프로 상자의 입구를 막고 다음 날 우체국에 가기 위해 현관문 앞에 두었다. 딸이 맛나게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불렀다. 딸은 서울에서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 제주에 자주 내려올 수 없어 영상통화로 그리움을 달래지만 가끔 딸이 결혼하면 같이 살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내가 지금 사는 집을 팔아 더 넓은 아파트를 마련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지만, 재산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아파트를 사면 집들이를 해야 했지만 최말숙을 부르고 싶지 않아 계 획을 수정했다. 소문이 바람을 타고 건너가면 그 소문은 다른 얼굴로 변해 있기 마련이었다. 나는 최말숙이 아파트를 본다면 함께 살자며 동생의 지분을 들춰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최말숙은 늘 사 는 집이 좁고 어둡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최말숙은 친정 재산에 관심이 있었지만 얻지 못했다. 나의 남편은 물려받은 재산을 차곡차곡 모아 두었고, 자신이 건설회사에서 벌어들인 돈과 주말에 농사지어 마련한 돈을 은행에 넣었다.
최말숙은 남편에게 많은 지분이 가자 가장 먼저 나를 미워했다. 남편 은 부모가 돌아가시자 물려받은 집을 내 명의로 하려다 최말숙이 거부 하자 오천만 원을 지분으로 주었다. 그 집은 결국 나의 명의가 되었다. 최말숙은 집 명의가 처리 되었다는 말을 듣고 동생을 향해 무능하다며 비웃었다.
“싹퉁머리 없는 새끼야. 너는 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거야? 그 집을 왜 올케한테 주는 건데? 너는 남편이 올바르게 행동을 안 하면 바로 잡아야 될 거 야냐.”
“그게 왜 바르지 않은 거죠? 저도 이 집 식구예요.”
나의 말에 최말숙은 어이없어하며 옆에 있는 조카를 보고 말했다. “그럼 이 집은 나중에 어떡할 거야? 딸한테 안 주는 거라면 소라에게도 주면 안되겠네. 안 그래?” 그때 남편은 소라를 보고 말했다.
“아버지의 의견과 내 생각은 달라.”
최말숙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며 빈정댔다. 그렇게 한동안 최말숙은 동생과의 거리를 두었고, 연락도 드문드문했다. 나는 남편이 건설회사에 다니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했다. 작은 회사의 사무 원으로 있었고, 어린이집 보조 교사일도 했다. 딸이 태어나고 나서 한동안 일을 하지 않았지만 딸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다시 일을 했다. 학습지 교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공부방을 열어 보려던 일은 쉽게 되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못하자 농사일을 권하기도 했다. 시내에서 농장으로 가기 위해서 직접 차를 몰고 가야 하는 데다 한 번도 농사일을 해보지 않아 무리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농사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지인의 도움으로 학원에서 전화 받는 사무보조를 하게 되었다. 학원은 내가 사는 독짓골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원이었고, 남 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난 후에도 계속했다. 그러나 딸이 직장을 얻자마자 상담일이 벅차고 시들하다는 이유로 그만 두었다. 나는 한동안 남편이 남긴 통장의 돈과 시세가 오른 집이 구원이 되어 편안했다. 새 아파트로 이사 가면 딸이 주는 생활비와 남은 통장의 돈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최말숙에게 언제까지 생활비를 대어주어야 할지 아득했다.
최말숙은 결혼 이야기에 민감했다. 만남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교류에 번번이 실패했다. 최말숙이 만났던 남자들은 길게 육 개월, 짧게 는 몇 주 만에 교류를 끝냈다. 나는 실패의 원인이 최말숙에게 있다고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강단이 있어 보이는 얼굴을 거세게 보았고, 분명하고 또박또박한 말투는 다정하지 않다고 치부했다. 여자로서 부드러움이 없다는 것이 남자를 오래 사귀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말을 신혼 초에 최말숙에게 했다가 말싸움을 하고 난 후 확실히 편파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나는 집안일에 서툴렀다. 음식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었지만, 딸 교육에는 많은 노력을 했다. 아들을 원했던 시집과 남편의 요구에도 눈 깜짝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싫어하거나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둘째를 가지고 싶어 했지만 아이는 더 이상 들어서지 않았다. 집안 대소사를 치를 때마다 아들을 원하던 시아버지의 말에 상처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과 다툼이 일었다. 아무도 나의 편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생각은 오래 지속되었다.
“제사를 지내려면 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노력하지 그랬어? ” “제사 지내려고 아들 낳나요? 그럼 고모도 결혼하려고 노력하지 그랬어요? ”
나의 말에 최말숙은 의뭉하다는 말 이외에 어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계속된 말싸움은 지쳤고 버거웠다. 최말숙의 고집으로 제사를 지내왔지만 새로 이사할 곳에까지 가서 해야 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마지막 제사를 지내고 새 집에서는 그 기운을 가져가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제 시장 보는 일도 힘들고, 제사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이 한 몫을 했다. 어차피 딸이 맡을 수 없는 제사였기 때문이었다. 이번 제사를 하고 나면 이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나는 딸에게 보낼 음식을 챙긴 다음 제기를 꺼내 닦아 한쪽에 치워 놓았다. 냉동실에서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꺼내 해동시키고 콩나물을 꺼내 다듬었다. 나는 일을 하려고 TV 볼륨을 높였다. 드라마는 이제 거 의 마지막 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4회만 보면 동이는 이제 끝난다. 나는 껌이 생각나 집 앞 편의점으로 가려고 지갑을 들었지만 액정에 뜬 최말숙의 이름이 보이자 지갑만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3

번잡한 마음이 들면 집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는 버릇이 있다. 제사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가만히 있지 못했다.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 서며 일부러 껌은 찾지 않았다. 아홉 바퀴를 돌고 풀린 운동화 끈을 묶기 위해 벤치에 걸터앉았다. 이제 막 공원에 들어서서 달리기 위해 몸을 풀고 있는 여자와 강아지를 끌고 온 남자와 유모차를 끌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임산부와 할머니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게 보였다. 공원 은 집에서 한 1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중앙에 분수대가 있고 잔디밭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분수대와 가까운 벤치에서 보면 하늘로 쏟아 오르는 물줄기는 마치 무사의 칼처럼 날카롭고 아름다웠다. 얽힌 가시덤불을 가르는, 그래서 길을 내고 마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용기. 나는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하자 걷기는 쉬웠다. 아니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힘에 좌초되지 않고 함몰되지 않는 것 같았다. 오직 앞을 향해 빨리 걸어가는 것이 좋았다. 처음엔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시작했다. 지금은 생각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 돌 때마다 땀이 났지만 몸은 상쾌했다. 기분은 차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거친 마음은 들지 않았다.
풀린 끈을 다시 묶고 천천히 돌았다. 몇 바퀴의 달리기를 하고 나서 걷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더운 열기는 있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그렇게 한 바퀴 반을 더 돌다 건너편 상가 1층에 있는 토마토 요양원 앞에 앰블런스가 서서히 들어서는 걸 보았다. 차분히 요양원 앞에 선 앰블런스에서는 건장한 중년의 사내가 내렸고, 그 뒤에 금방이라도 길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은 노인이 지팡이에 몸을 지탱하며 내렸다. 하지만 그 노인은 멀리서 봐도 위태로워 보였다. 앰뷸런스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도 없이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다 사라졌다. 노인의 걸음은 무 척 느렸다. 몸에 맞지 않은 헐렁한 카디건을 걸친 몸은 상상이 되었다. 살점이라곤 없는, 핏줄과 껍질로 된 마르고 버석한 몸이. 노인은 신경 질을 부리다 지팡이를 놓쳤고, 사내는 지팡이를 주워주었지만 노인이 휘두른 지팡이에 맞고 있었다. 순간 나는 아득함을 느꼈다. 노인에게 달려가 지팡이를 빼앗아 호통을 치고 싶었다. 도와주는 사람에게 그러 지 말라고. 어딘가로 핸드폰을 하던 건장한 사내 앞에 가운을 입은 남 자 둘이 나타나 노인을 데리고 요양원 안으로 들어갔다. 건장한 사내도 따라 들어갔다. 나는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불쾌한 감정이 드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공원을 등지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다시 요양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아까 보았던 장면이 박제 된 그림처럼 사라지지 않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횡단보도의 초록 신호등이 두 번이나 바뀌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부어오른 것처럼 검은 구름은 한껏 내려앉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사방은 흐릿했다. 공기가 묵직하게 느껴졌고,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자동차의 소음이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평온한 하루의 시작. 거칠 것 없는 안정. 그래 그거였다. 나는 습관처럼 껌을 씹었다. 딱딱한 물체는 입 안에 들어가 흐물흐물해지고 단물은 이내 빠져버렸다. 혀를 놀려가며 질겅질겅 씹어대던 껌은 오래도록 입 안에서 맴돌았다. 나는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서 껌을 샀다. 딸에게 택배를 보내고 대청소를 말끔히 했다. 제사 준비를 위해 해동된 고기와 꼬치를 꺼내 놓고 나물을 씻었다. 주방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준비된 것을 주방 바닥에 놓았다. 여전히 질겅대는 껌은 나에게 활기를 주었다. 우선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썰고 양념을 해놓았다. 전으로 동태를 밀가루에 묻혀 놓고 계란을 풀어 놓았다. 식용유와 불판을 데워 서둘러 표고버섯 전, 애호박 전, 두부 전을 했다. 그러나 일하는 동안 몸이 힘들어 몰랐지만 제사 준비가 다되어가는 오후 시간이 되자 갑자기 초조해졌다. 최말숙이 올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나는 껌을 뱉어내고 새 껌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다섯 통의 껌을 샀다. 은박지를 벗겨 딱딱한 껌을 매만졌다. 껌을 씹으려고 종이를 벗기면 퍼지는 향기가 좋았다. 그 향기와 함께 단물이 퍼지는 껌. 씹을 때마다 기분이 나아지는 껌. 하지만 단물이 빠지고 난 오래 씹은 껌은 바닥에 버려졌다. 버려진 껌은 그렇게 누구 도 보지 않게 되었다. 아무도 보지 않아야 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세 차게 내리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때 멀 리서 최말숙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한쪽 다리를 절며 걸어오는 최말숙을 보고도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마치 최말숙을 보지 않은 것처럼 땅을 보며 빨리 걸었다. 뒤편에서 들리는 소리는 웅얼거리게 들렸다.
집에 들어선 최말숙은 물을 요구했다. 나는 물을 떠주면서 다리를 쳐다보았다. 최말숙의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고, 발등은 푸르스름했다. 나는 묻고 싶었지만 최말숙이 말을 꺼내기 전까지 입을 다물기로 했다. 절룩거리며 제사 음식을 살피던 최말숙은 오히려 아무런 말이 없다. 나 는 제사를 없애기로 하겠다는 말에 발끈하던 것과는 달리 조용하자 의 도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최말숙이 어떤 말을 꺼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조용히 있자 나는 주방에서 이미 마친 설거지를 하려고 상부장에 있는 접시를 모두 꺼내 닦았다.
비는 이제 제법 굵게 내렸다. 찌푸린 구름이 한층 더 내려앉은 게 주 방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이제 겨우 오후 4시인데도 하늘은 깜깜한 밤처럼 어두웠다.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TV를 틀었다. 드라마를 찾아 리모컨을 돌렸다. 몇 개의 채널로 옮겨가자 동이 가 나왔다. 나는 최말숙과 어떤 말도 섞지 않은 채로 있었다. 최말숙은 오랜 침묵을 깨고 나에게 말했다.
“제사 접고 나면 내가 가져갈게.”
“고모가 지낸다고요? ”
“그래. 내가 의무를 다할 거야. 마지막까지. 마음도 없는 올케에게 맡기지 않아.”
나는 웃었다.
“왜 웃어? ”
“마음이라고 하니 이제까지 지낸 제사가 의미 없게 느껴져서요. 고모 는 제사 지내는 게 마음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
최말숙의 표정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그 여유가 어디에서 오는 건지 는 모르지만, 나는 갑자기 불안함을 느꼈다. 그것은 원인 모를 뜬구름 잡는 것 같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최말숙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제사를 지내면서 올케는 우리 부모를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달랐어.”
“똑같아요. 고모도 마음이 없었어요.”
나는 조금은 짜증이 섞인 투로 말했다.
“올케가 나의 마음을 알아? ”
“알아야 돼요? 내가 아는 고모는 자신의 이익 외에는 관심이 없어요.” 최말숙은 나의 말에 아무 말 하지 않고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최말숙의 말투가 달라져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껌을 찾았다. 최말숙은 커피를 요구했다. 나는 껌을 질 겅질겅 씹으며 커피가 내리는 동안 생각에 빠졌다. 대단히 화가 나 있어 크게 소리를 지를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빨에 낀 이물질처럼 마음 안의 찌꺼기가 빠져 나가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껌은 단물이 빠져버렸고, 오후의 느린 시간은 지루하고 공기 속의 텁텁함은 여전했다. 나는 베란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비는 어느새 그쳤지만 한층 더 내려앉은 먹구름은 오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바퀴가 빠진 마차 같기도 얼어붙은 토끼 같기도 했다. 거기다 물빛에 가까운 회색인 것도 있지만 탁하고 불순물이 없는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도 있었다. 이쪽도 저쪽도 분명하지 않은 중간 톤의 색은 교묘해 보였다. 나는 하늘을 보다 아무도 가지 않은 놀이터를 보았다. 커다란 놀이기
구가 한가운데 있고, 두 개의 그네가 옹기종기 있는 모습은 오히려 친밀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놀았을 미끄럼틀과 그네는 물기로 젖 어 있고, 시소는 흔들리지 않았다. 고정되어 있고, 찾지 않은 놀이터. 나는 문뜩 섬뜩함을 느꼈다. 아이들이 찾지 않은 놀이터는 그저 폐허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제 아이들이 뛰어놀았나 생각해 보니 딱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나는 허물어지고 사라질 놀이터에 화단이 들어서는 상상을 했다. 사계절 동안 화사한 꽃으로 장식이 된 그 공간을 나는 나만의 그림으로 그려나갔다.

4

11시가 넘었다. 제사상 위에는 하나 둘씩 제사 음식이 올라갔다. 나 는 정갈한 음식이 마음에 들었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제사에 평온했다. 내가 제사 음식을 올리는 동안 최말숙은 TV에서 제사상으로 눈을 돌렸다. 빠뜨린 것은 없는지 확인했고, 그러다 주방에서 끓이는 생선국 냄새 때문에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먹을 것을 찾는지 엉덩이를 떼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이 한쪽으로 휩쓸렸다. 겨우 일어나 주방 한 켠에 놓인 떡 상자에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최말숙이 일어나려고 뒤뚱거리는 모습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뭐 필요하세요? ”
“됐어.”
최말숙은 떡을 집어 입 속으로 넣으며 나에게 말했다. 떡은 말랑말랑 했다. 최말숙은 한 개 더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물을 먹기 위해 냉장고로 가려다 주방 식탁 위에 있는 멸치볶음을 보았다. 멸치볶음은 유리그릇에 담겨 있었는데 최말숙은 몇 주일 전 자신이 가져다 준 멸치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 멸치볶음 내 꺼지? ”
“아, 그건 아니에요. 그 멸치 다른 사람에게 줬어요. 조금 커서 먹기가….”
나는 순간 말을 더듬었다. 최말숙은 들고 있던 유리그릇을 내려놓고는 난감해 하는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이래서 올케를 의뭉하다고 하는 거야.”
나는 그깟 멸치 하나에 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멸치 하나에 의뭉스럽기까지…. 고모, 그리고 제사는 안했으며 좋겠어요.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해야 해요. 저도 더는 힘들어요.” “그 일은 이제 올케의 손을 떠났고, 나의 일이니 상관 마.”
나는 최말숙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사를 다시 하겠다는 최말숙의 의지가 자신을 얽어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식탁 위에 놓인 멸치볶음이 담긴 유리그릇을 최말숙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표정을 보았다. 최말숙은 미소를 지었지만 다정함이나 유쾌한 기분은 묻어 있지 않았다. 다소 경직되고 경멸도 함께 담긴 설명하기 어려운 웃음은 나에게 이성적인 생각을 갖지 않게 했다. 말싸움에서 당당했다고 여기지만 제사 문제를 놓고 최말숙의 분명한 의지가 보여 주춤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없다는 말도 분명히 맞았다. 나에게 있어 제사는 험난한 길을 걷는 것보다 그런 길을 바라보며 앞으로 가지도 뒤돌아서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니 두려움보다 거추장스럽고 혹은 외면이 가장 가까운 감정이 들게 했다.
솔직히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세월과 함께 희석되었다. 남편이 죽고 딸이 멀리 가게 되면서 나이가 들어 불편이 끼어들자 제사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다. 언젠가는 하지 못할 거라면 지금이 적당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 최말숙의 시선을 놓치는 순간 핸드폰의 알람이 12시를 알렸다. 그리고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마무리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고요한 정적을 시기라도 하듯 최말숙이 던진 멸치볶음이 담긴 유리그릇이 그대로 제사상 앞에서 붉은 유리가루를 뿜어내는 것을 보았다. 최말숙은 다시 평온하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깟 멸치볶음.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지? 내가 얼마 전 여길 왔다가 이 집이 팔렸다는 말을 들었어. 너는 어디론가 사라지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말을 했어야 했어. 도망가려는 거니? 아니면 나를 버리려는 거야? 너는 내가 가족이 아니었어. 처음 결혼할 때부터. 너도 왜 우리에게 다정하지 않았니? 나보다 많은 것을 가져가고도 왜 불안해했어? ”
나는 최말숙의 말을 듣기만 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지만 원점에 선 기분이 들었다. 굴레에 빠지지 않고 싶었지만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는 느낌은 나에게 더는 설명하지 못하는 불편이 들게 했다. 나는 깨진 유리그릇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고, 그 중 가장 큰 유리조각을 들며 말했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의뭉하다는 말을. 욕도 그렇다고 칭찬도 아닌 말을 뱉어내며 많이 가졌다고 의심하고. 처음부터 나를 기름으로 만든 건 고모였죠. 마음이 없는 건 고모도 마찬가지니 덜 아쉬워하세요. 그리고 제사를 다시 하겠다는 사람이 제사상 앞에서 난폭하게 그릇을 던져요? 고모에게 있어 부모의 제사라는 것은 이유가 되지 못해요. 그리고 깨진 유리 치워야 하니 비키세요. 오늘 이 제사는 마무리할 겁니다.”
나는 최말숙이 화를 내든 말든 손에 든 유리조각을 들어 돼지고기 산적 위로 꽂아 버렸다. 형광등 아래의 나의 얼굴이 교묘했는지, 차분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이사하는 날, 운무가 끼고 있었다. 나는 딸에게 이사할 주소를 알려 주었고, 겨울이 되면 한번 다녀가라는 말을 했다. 운무를 사라지게 할 바람이 불어주길 바라며 베란다에서 마지막으로 내려가는 짐을 쳐다보았다. 잔뜩 낀 운무는 사라질 듯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깊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사하면 맨 먼저 펌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소를 마치고 현관문을 닫았다. 이삿짐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직원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출발하려는 그때 사이드미러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뒤뚱대는 걸음걸이, 무표정하지만 불룩 튀어 오른 광대뼈. 그 모습은 마치 나에게 더덕더덕 불운을 가져올 것처럼 보였다.
“어서 출발하세요.”
소리를 지른 나를 한 번 훑어본 이삿짐 직원은 시동을 걸었다. 드르렁하며 시동이 걸렸지만 나는 조바심을 느꼈다. 멀리서도 그 걸음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야생의 거침처럼 집요했고, 무엇보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는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금세 쓰러질 것 같은 그 걸음걸이는 위험해 보였지만 멈추지 않고 당당했다. 거기다 이삿짐 차를 향해 소리까지 질러댔다. 이삿짐 직원이 사이드미러를 응시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아시는 분 아니에요? ”
“아니요. 어서 가라고요! ”
소리를 질렀지만 직원은 사이드미러에 눈길을 주느라 엑셀을 밟지 않았다. 거칠고 탁한 소리는 온 하늘에 공명이 되어 울렸고, 그 울림은 꺼지지 않았다. 나는 잡힌 먹잇감이 된 것처럼 움츠렸고, 들고 있는가 방을꽉쥔채꺼져가는나의 행운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늘에는 깊고 짙은 회색의 구름이 무겁게 내려와 있고, 가방을 뒤져도 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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