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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한국문인협회 로고 전흥웅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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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 오늘도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일거리가 있어 좋다마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 야속한 컨베이어 벨트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과로사가 이해되었다. 일이 없어 스트레스 받아 죽으나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 스 받아 죽으나 죽을 사람은 이래 죽어나 저래 죽어나 죽 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언제 죽음을 생각해 본 일은 없다. 인제는 죽음이 간당간당 손닿을 곳에 벼르고 있었다. 쉬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는 죽음의 기운을 쉴새없이 실어 다 나르며 바투 들이댔다.
처음엔 피곤해 생리를 또 하는가 싶었다.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출처가 달랐다. 선연한 피, 막 터져 나온 피였다. ‘항문에서 피’로 검색어를 넣어 확인해 보았었다. 피곤하면 항문에서 피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대세였다. 치질에 관한 답은 그리 많지 않았다. 피곤하면 피가 나온다는 말이 대세인 것을 보면 요즘 그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묻고 답한 날짜를 봐도 그랬다. 수년 전꺼도 드문드문 있었지만 최근 1년 전부터가 대부분이었다. 처방으로는 물을 자주 마시고 쉬면 증상이 호전된다는 말을 죄다 덧붙여 놓았었다. 의학적 근거는 빠져있었다. 심하면 의사와 상담 받는 게 좋다는 지극히 권태로운 조언 정도. 더 찾아보려 하다 그 만두었었다.
사랑의 아픔은 또 다른 사랑으로 극복한다는 말이 있듯 민망한 일은 1개월 남짓 그새 사라지고 없다. 소장이라 부르는게 인제는 자연스럽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다. 마치 참 다행이다. 그치! 라는 공감대가 관계의 민망함을 밀어낸 듯싶었다. 인간은 그렇게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존재가 맞았다. 인류 시작부터 그래왔으니 새삼 들먹이는게 우습지만, 그동안 깡 모르고 살아왔으니 굳이 새삼스러운 것도 없겠다. 그렇다고 환경에 따라 바뀌는 진화론은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더는 바뀌기 싫어서이다. 지금 상황을 봐도 끔찍하다. 이곳에 적응해 남은 생을 남이 질러놓은 물건만 주무르다 갈 순 없었다. 적응이 아니라 그냥 지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뿐으로 족했다.
“소장님, 넘 무리하는 거 아님? ”
“내일이면 딱 한 달이네.”
“왜요? 그만두시게요? ”
“격주로 나오려고. 이러다 골로 가겠어.”
“나원참. 저여잡니다.”
“어쩌라고. 난 늙고 당신은 젊잖아! ”
“헐….”
하루 몇백이 통장에 꽂히는 날은 언제 올까 싶다. 오후 6시 시작해 새벽 5시까지 하고 기껏해야  9만원 받는다. 그거라도 없으면 굶어 죽는 상황이니 9만원도 감지덕지긴 하다. 그땐 돈 귀한 줄 몰랐다. 책상에 앉아 전화질만 해도 되었다. 다년간 쌓은 업계 경력과 돈은 비례했었다. 다들 흥정이라 하지만 고객과 밀고 당기기는 재미있기도 하고 전율을 느낀다. 돈도 돈이지만 밀당으로 최종 승자가 되는 순간의 그 희열은 버는 돈 이상으로 매력이 있었다. 기회라는게 일평생 세 번 정도 찾아온다는 말이 낭설인지는 모르나 그래도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은 백 번 양보해도 그건 아니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언제일진 당장으로선 막 연하지만, 그때가 되면 진짜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 수전노처럼 돈을 모으고 모아 쌓고 싶다.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엄한데 와서 이런 짓거리만큼은 하지 않을, 돈에 얽매이지 않는 재력가가 되고 싶다. 그러려 면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도 지나 가는 날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공평하기 때문이다. 원해서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곳이 좋아진 것은 더더욱 아닐진대, 고객의 물건이 시시각각 물류 창고를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나도 빠져나가야 맞았다. 잠시 쉬어가는 이곳 정거장은 깜깜한 앞날을 가늠하는 자리이긴 해도 영영 눌러 앉아 있을 순 없는 자리다.

*

“오늘은 안 나가냐? ”
“내일 아침 사무실에 나가봐야 해요.”
“새벽에 끝나고 잠시 눈 붙였다. 가면 안 되냐? ”
“…….”
“네 오빠 석션기 바꿔야 한다.”
“알았어요.”
화장실에서 넘어진 뒤 10년을 누워 있는 오빠는 블랙홀이다. 오빠는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밭의 바닥이었다. 깡마른 스펀지였다. 모든 걸 빨아들였다. 돈도 가정도 가족의 유대까지 모조리 빨아 없앴다. 쪽쪽 잘도 빨아 없앴다. 그냥 살아만 있을 뿐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지 세상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힘을 오빠는 가졌다. 그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할 거였다. 그 힘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지만 그냥 피하 고 싶은 무력이었다. 안타깝게도 7명의 가족은 일찍이 그 힘에 포로가 되었었다. 물류 창고에서 기신기신 연명하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나저나 코로나로 난리던데.”
“우리 있는 곳과는 상관없어요.”
“그래도….”
“조심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스크는 꼭 써라.”
“죽겠어요. 마스크 때문에.”
“우리야, 그렇다 쳐도 네 오빠 생각해서라도.”
“알아요.”
올케언니가 참 부럽다. 오빠가 쓰러지고 보험금 받아 챙겨 산 사람이라도 제대로 살아야 한다며 조카랑 단박에 떠난 버린 언니. 그땐 몹쓸 년이라고, 죽일 년이라고, 저런 독한 년은 세상천지에 두 번 다시 없을 거라고, 어디 가서 콱 뒈지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언니는 그 저주 에 서 담담히 떠나갔다. 10년 동안 오빠를 한번도 찾지 않은 언니. 언니는 그때 무엇을 보았을까 싶다. 오빠가 1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오래 누워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일까? 어떻게 6개월 만에 그런 결정을 했는지. 지금에 와서 그런 언니가 참 부럽다. 언니는 오빠의 블랙홀 속에서 기사회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다. 그 문턱에서 멈춰선 것이다. 그 리고 훨훨 날아간 것이다. 그때 떠나가는 언니를 남아 있던 우리는 조롱했었다. 지금은 되레 언니가 남아 있었던,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를 향해 조롱하고 있을 거였다.
모처럼 9만원에서 해방되었다. 하루 일당 9만원의 무게는 통장에 몇백만원이 차곡차곡 쌓였던 그 무게와 확연히 달랐다. 여기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돈에 무게가 있었다. 9만원의 무게는, 거기다 야간 수당이 더해지면 가히 엄청난 무게가 되었다. 오늘은 그 무게에서 잠시 벗어난 거다. 사무실 출근은 김 소장의 말도 있었고 한 번쯤 그래야 했기 때문이었다. 딱히 할 일은 없었다. 문의 전화가 끊어진 지 5개월이 되었고, 연초 예약한 고객건은 이미 처리가 다 된 상황이었다. 굳이 할 일이라면 보름쯤 쌓여 있을 먼지 제거와 같은 소일거리 정도일 거였다. 그 일로 집하장에 나가지 못한 건 육체로 보면 해방이긴 해도 금전적으 로 보면 무한 손해였다. 한번 만나자는 악다구니의 순자라도 만나야 덜 손해였다.
소장은 나를 아꼈다. 이성이 아니라 직장 동료로 아꼈다. 그와 수년을 같이 해서 잘 안다. 나 역시도 그렇지만 소장은 나를 놓지 않으려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을 잘하기 때문이었다. 소장은 일할 수 있게 편하게 해 준다. 그러고 보면 일을 잘하기 때문에 편하게 해 준 것인지, 편하게 해 주어서 일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인지는 새삼 모를 일이다. 분 명한 건 죽이 잘 맞는다고 해야 하나. 그런 관계다.
대학 전공도 일어였고 평소 여행 관련 업체를 선호했다. 그 탓인지 결혼 전부터 줄곧 여행 관련 업체에 몸담아 지금까지 25년 일했었다. 남편은 해외 출장이 많은 아내와 더는 줄다리기 싸움이 싫다며 떠나갔지만, 남은 아이들 셋은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여행 관련 일은 내게 매력, 아니다. 매혹적이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준다고나 할까…. 남편이 ‘가족과 직장 중 어떤 걸 포기할래? ’라고 했을 때, ‘가족은 모르겠고 직장은 절대 떠날 수가 없어요’라고 단박에 답해버릴 정도였으니까. 남편은 ‘남자라도 생겼다고! 그럴싸한 이유라도 대라’며 뺨을 후려갈겼지만 단지 그 이유뿐이 라는 말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게서 훨훨 떠나갔었다.
순자와 늘 만나는 2층에 자리한 카페는 아담하면서도 밤바다가 보이 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다. 작년 가을쯤인가, 생긴 카페는 아는 사 람들만 찾아오는지 올 때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구석진 테이블에 젊 은 커플 한 쌍, 바다를 등지고 앉은 한 쌍이 전부였다. 카페는 바다의 절경이 일품인데 등지고 앉은 것이 이상했다. 바다를 등진 한 쌍은 나 보다 나이가 있었다. 카페 음악이 입구 계단에서부터 흘러나왔지만 들 릴락 말락 했다. 아마도 컨베이어 벨트 소리 탓일 거였다. 큰소리에 귀 가 먹은 것이지 싶었다. 최근 들어 야! 귀먹었냐! 라는 엄마의 성화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런 줄도 몰랐다. 출퇴근하면서 귀에 꽂은 이어 폰 볼륨을 계속 올렸던 것은 기기 문제가 아니라 청각 문제였던 거다.
한 쌍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카페를 나서자 순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카페로 들어왔다. 창가에 앉은 내게 다가오면서 뭐가 그리 반가운지 연신 손을 흔들었다. 순자는 종갓집에 시집가서 생고생하고 있는 둘도 없는 고등학교 반 친구다. 만날 때마다 제사 때문에 죽겠다 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만 그때뿐이다. 한번은 그런 사람들 헤어 진 사례를 말했다가 순자로부터 한 시간 넘게 며느리에 관해, 종갓집에 관해, 아내와 아이 엄마에 관해 일방적인 주장을 듣느라 혼이 빠진 일 이 있었다. 순자의 결혼관은 확고했다. 시댁이 재력가여서 그런가 할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 헤어진 일을 거론하면서 침이 튈 정도로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순수 그녀만의 신념이라고 해야 옳았다.
“가시네! 뭐가그리바빠?” “모르니? 넌 TV도 안 보고 사니? ” “뭘? 코로나? ”
“아니 말고… 요즘 배송 느리지? ”
“모르겠는데… 안 시켜봐서.”
“맞다. 가시내, 넌 요즘 세대와 다르지….”
“가시내, 만나자마자 세대 타령이야! ”
“뭐 마실래? ”
“커피. 내가 살게.”
“그래야지. 귀부인께서.”
“헐….”
마주 앉은 순자가 새삼 고왔다. 같은 나이지만 순자 얼굴의 잔주름은 내 얼굴의 잔주름과 달랐다. 목주름은 극명했다. 순자의 주름은 도자기 표면의 관입이라면 내 얼굴의 주름은 부딪혀 파인 골과 같았다. 순자나 나나 한 가지 집요하게 붙들고 사는 인생이긴 마찬가진데 신도 참 무심 했다. 아니다. 억울했다. 학창 시절엔 남자들로부터 인기가 더 많았던 내가 인제는 주름 탓에 어디 가도 역전이 될 듯했다. 하기야 좋다는 건 다 바르겠지, 좋은 공기에, 기름진 음식에, 늘 두둑한 지갑과 은행 통장 거기다 일편단심 남편까지. 그러고 보면 일 년에 8번 제사는 감사할 일 이다. 순자야!
“너, 남자 만나볼래? ”
“또! 그 이야기. 그만해라. 먹고 살기 바쁘다.”
“야!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
“다 내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지. 뭐.”
“야! 요즘 팔자 타령하는 사람 어딨냐? 나 보고는 쉰세대니, 뭔 세대 니 하면서.”
“이 나이에… 이따 이 난국이 좀 지나가고 나서….” “두 번 다시 없는 기회야! ”
“자꾸 그러면 앞으로 안 만난다. 너.” “가시내, 지 생각해줬더니….”
“알아. 미안.”
그래 그만해라. 나도 죽겠다. 남자와 자본 지가 5년이 넘었다. 남자 냄새가 어떤 건지도 인제는 모르겠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나도 마음껏 남자랑 살을 맞대 비비고 싶다. 긴긴밤의 끝을 잡고 놓고 싶지 않다. 순자야. 그런데 야! 남자들은 내 곁을 다 떠날걸! 나는 안다. 그때 아이 아빠가 떠날 때 내가 어떤 말을 한 줄 아냐? 가족은 몰라도 직장은 절대 그만둘 수 없다고 했거든. 그런데 지금도 아이 아빠가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그럴 것 같거든. 가족보다 직장에 목매는 여자, 아니 그런 아내를 누가 좋아하겠냐!  나도 숱한 밤을 새워가며 생각해보았지. 진짜 직장을 지키는 게 가정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지를…. 그런 데 나는 이때 껏 다른 일 해본 경험도 없고, 다른 일 해보고 싶지도 않았단 말이야!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순자야! 전생에 이것 하지 못하다 죽었는지 도무지 이 일이 좋고 떠날 수가 없어. 이 일을 그만두는 날 엔 나는 죽을 것 같아. 그러니 죽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낫지 않겠냐! 순자야, 그러면 그런 남자 만나면 되겠다고 말하지 마라. 세상엔 그런 남자, 아니다. 그런 인간은 없어. 상대에게 무한 배려해 주는 그런 유의 인간 말이야. 혹여 그런 인간이 있다 하자. 그러면 그 인간의 행복은? 또 양보하며 사는 것도 행복이라고 하지 마라. 그건 미친 짓이야, 아니 면 미친놈이든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그런 인간이겠지. 욕망도 없는 그런 미천한 놈 말이야. 아이들 아빠처럼 비록 헤어지 는 일이 있어도 인간은 욕망이 있어야 인간다운게 아니겠니. 욕망 말 이야. 그래 내게 욕망이라는게 있냐고? 돈 있는 남자 만나서 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여행이나 다니라고? 흥청망청 마음껏 한번 쓰면 서? 그래 나도 그러고 싶다만 그래도 여행에서 처음으로 돌아오면 여 전히 그 일을 하러 나갈 것 같단다. 순자야. 그러니 미안. 나도 네가 부러워, 나를 떠난 아이 아빠도.

*

문 앞에 아무렇게나 쌓인 우편물이 수북했다. 얼른 봐도 고지서가 태반이었다. 여행 관련 우편은 눈에 띄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맞은편 창으로 들이친 온기의 햇살이 품으로 와락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달라 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질적인 느낌… 사무실 기기들은 늘 있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달라진 것이 없는 편안함. 문을 닫았다. 공기가 텁텁했다. 손으로 책상 위를 쓱 닦았다. 푸석한 느낌… 먼지였다. 먼지가 들어올 수 없는 꽁꽁 닫힌 사무실인데 참 의뭉한 일이었 다. 미세한 틈으로 먼지가 기를 써 비집고 들어온 건가? 뭐, 하러? 먹을 것도 줄 것도 반길 것도 없는 여길.
여행 상품 관련 브로슈어가 책상 한쪽으로 수북이 쌓인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의자에 앉았다. 잘 아는 그런 내용들.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 상품 내용은 아무짝에 쓸모없이 그렇게 숨죽여 있었다. 가만… 눈물이 핑 돌았다. 일순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미동도 없는 공기 속을 헤집고 기어이 귓속을 울렸다. 심한 이명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소장 자리가 새삼 휑했다. 소장은 뻗어 있을 거였다. 나이도 나이지만 무거운 물품을 처리하느라 사달이 나고 말았을 거였다. 그 역시도 여자가 떠나 버린 홀로인 몸. 약이라도… 밥이라도… 따신 물이라도….
가만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여러 개의 스위치가 반들거리며 벽에 나붙어 있었다. 주인을 기다렸다는 듯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원을 올렸다. 주광색 LED 등이 일제히 힘을 얻어 환한 햇빛 틈으로 햇빛이 미치지 못한 곳에 가서 박혔다. 할 일도 없이 켜진 등.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전화 코드는 그대로 꽂혀 있을 것인데…. 이 시간대면 전화통에 불이 날 것인데…. 적막한 공간은 나를 더욱 오그라들게 했다. 일은 없다. 그러나 일은 절대 놓을 수 없다. 이곳 만큼 편한 곳이 어디 있을까? 젊음과 같이했던 이곳. 웃고 울고 희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곳. 언니가 떠나고 오빠를 넉넉히 거뒀던 이곳. 아이 아빠를 떠나보내고 넉넉히 아이들을 거뒀던 이곳. 욕정으로 끓어 넘쳤던 긴긴밤을 거뜬히 이겨내게 했던 이곳. 결국 남자 냄새까지 잊어버리게 했던 이곳. 얼굴과 목 주위로 무참히 골을 파 세월의 무상함을 담았던 이곳.
한쪽으로 내려진 에펠탑 그림의 블라인드를 조심스럽게 올렸다. 블라인드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부산대교가 바다 건너 롯데백화점에 닿아 있었다. 백화점 맞은편에 석션기를 취급하는 의료기 상이 있을 터였다. 시계를 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 영도대교의 오후 도개 시간이 임박했다. 차들이 서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서 있을 거였다. 반대로 바닷길은 큰 배들이 들락거릴 거였다.
“누군가 설 때 누군가는 움직일 수 있다.”
가만, 어디서 들었음직한 명언 같기도 한 말이 입에서 중얼거리며 나왔다. 그러나 그건 내 삶에선 유효하지 않은 명언이었다. 내가 서면 가족 모두 멈춰 굶어 죽을 수 있었다. 가족 모두의 무게가 늘 내 어깨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다. 내가 움직여야 그들 역시 움직일 수 있었다. 자리 보전하고 있는 오빠가 그랬고, 오빠에게 24시간 붙어 있는 부모님이 그랬고, 아직 미성년 아이들이 그랬다. 뭐든 상대적이라는 말은 그래서 틀렸다. 적어도 내게서 만큼은.

*

롯데백화점 맞은편 건물은 참 오래된 건물이다. 재개발한다는 말은 늘 있었지만 되레 맞은편에 롯데백화점만 휘황하게 자리했다. 백화점이 이목을 받으며 호화롭게 올라가도 부끄럽지도 않았는지 여전히 그 모습 그 모양으로 굳어 있는 낡은 건물. 그때그때 보수공사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눅진한 세월의 때가 묻어 있는 건물. 언젠가 영화 촬영 장소로 쓰이기도 했던 건물이다. 이곳은 건물만큼이나 오랜된 점포들이 자리하고 있다. 임대료가 저렴해서인지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요즘 처럼 오늘 생겼다가 내일 사라지는 그런 유의 점포는 없다. 기억으로 굳이 있다면 건강기능식품 취급점인 인삼판매점이 상호를 바꿨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물론 아이들 아빠와 웨딩사진과 옷을 맞춘 웨딩숍도 그대로다.
3층 의료기 판매점 앞엔 상중이라는 묵직한 한자어로 된 인쇄물이 떼 꾼이 나붙어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엄마한테 또 무슨 소릴 들을 거였다. 순수 내 잘못도 아닌데. 엄마도 그렇다, 문이 잠겼으면 다른 곳에 가서 구매해도 될 일이다. 근데 엄마는 굳이 여기가 잘한다고 여기서 사라고 했다. 같은 기기라도 판매처가 다르면 기능도 다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모를 일이다. 오빠는 엄마의 별난 성화에 바꾸지 않은 기기를 적어도 며칠은 계속 사용해야 했다. 다른 곳에서 구매해 갈 수도 있지만, 가끔 소모품 사러 나오시니 그럴 수도 없다.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 무슨 당치도 않은 말인지. 엄마는 늘 그랬다. 아마도 이 상황을 전해 들으면 사장에게 전화 걸어보라고 할 것은 자명했다. 도무지 안 바꾼다. 엄마는. 그러고 보면 나는 엄마의 기질을 타고난 것이 맞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내려왔다. 계단 폭은 넓고 층계와 층계 사이는 높지 않으면서 계단참은 작은 점포라도 하나 해도 될 만큼 크다. 그 계단과 인접한 곳이 웨딩숍이다. 계단을 내려와 돌자 늘 보던 빛바랜 결혼사진이 나를 보고 화사하게 웃고 반겼다. 웨딩드레스가 한가득 푸짐한 사진이다. 그래서인지 사진 전체가 하얀색으로 보였다. 맑고 밝은 사진, 두 사람의 얼굴… 객쩍게 그리웠다. 뒤쪽으로 나이 든 어르신이 마스크를 쓰고 먼지를 털고 있었다. 가끔 보는 어르신이었다.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거슬렸던지 힐긋힐긋 쳐다보았다. 기억으론 그때 사진사 나이는 신랑·신부보다 많으면 서너 살 정도였으니 적어도 가게 안의 어르신은 아니다. 그동안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면 사진사는 어르신의 아들 정도일 거였다.
숱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촬영하고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리라. 모두 다 각자의 삶에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을 거지만. 그 모두 다에서 나는 빠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낡고 낡은 변함없는 가게. 유행, 철 지난 가게 안의 소품들은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 같은데 우리는, 아니다 나는 참 많이도 변한 것 같았다. 그런 나는 모두에게서 빠지는 것이 쇠락해 가는 이곳에 새삼 죄송하지 않을 듯싶었다.
“뭘 찾소? ”
어르신이 문을 열고 나와 마스크를 내리려다 돋보기 너머로 쳐다보았다. 단번에 어르신의 의뭉한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아닙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요.”
“…….”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고개만 끄덕하고 다시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뒤돌아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사진이라도 찍었는지 물을 수도 있었건만 어르신은 귀찮은 듯 문을 닫고 여전히 먼지떨이를 들고 가게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삶의 무게는 어르신에게도 있었다. 마치 먼지 터는 모습이 자신에게 지워진 무게를 털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떠날 수도 있었던 긴긴 시간… 그 시간은 그렇게 유구히 흐르기만 했던 모양이었다. 나보다 서너 살 많았던 사람이 저렇게 늙어버렸나? 그때 사진사 나이가 다시 떠오르다 아슴아슴 황망히 사라졌다. 모두는 떠나고 또 모두는 그렇게 정지된 곳에서 살아왔다. 그렇다면 굳이 내 삶도 모두 다에서 뺄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저러나 의미 없는 삶은 없으니 말이다.
1층은 공사 중인 곳이 많았다. 1층은 다른 층보다 유동인구가 많은 모양이었다. 건물의 쇠락함과 달리 생뚱맞은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스크 도소매 가게는 이 장소가 제격이었다. 건물을 나왔다. 답답해 맞은편 백화점을 올려보았다. 아, 마스크!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언제 까지 해야 하는지 일순 신경질이 났다. 이것만이라도 벗고 살았으면…. 아까 어르신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내가 이상했던 것인가? 하기야 이상하기도 했겠다. 죄다 희고 검은 마스크를 하고 다니니 그게 일상이 된 마당에 그걸 벗고 가게 안을 기웃거렸으니…. 다행인 줄도 모르겠다. 미친년 취급당하지 않은 게 말이다. 마스크를 벗는 게 정상일진대 비정상이 정상이 된 지금, 기가 막히지만 나 역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인제 불편했다. 와글와글 비정상이 정상이 된 백화점 인파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석션기로 달달 볶이지 않으려면 엄마 속옷이라고 하나 사야 했다.

*

“미루다 지랄이여! ”
“아이한테 제발 그러지 좀 마! ”
본래 아빠의 모습이었다. 목에 핏대를 세웠다. 뭔 일이 또 있었나…. “그러면 당신이 벌어서 하던지! ”
“여보! ”
나이가 들면 기가 입으로 간다고 했다지, 날이 갈수록 엄마, 아니 대 장의 목소리는 앙칼지고 차갑다. 상황이 그럴진대 대장은 억지를 부렸다. 뭔 불만이 있었는지 그걸 꼬투리로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무마용으로 스판덱스 바지도 소용없었다. 나는 두 남자를 통해 부성애를 보았다. 두 남자는 아이들 아빠와 친정아버지다. 사람들 태반이 모성애를 말한다. 왜 그럴까, 그 근거를 생명을 열 달 동안 뱃속에 둬 낳아 기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부성애보다 모성애를 우위에 둔단다. 그러나 적어도 나만큼은 거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나 역시 여자다. 아이 를셋이나 뱃속에 두었다가 낳아 길렀다. 그날 아이들 아빠가 물었던 그 물음의 답은 모성애보다 부성애가 우위에 있음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아이들 아빠는 한없이 흐느꼈다. 절망하는 듯했다. 결국, 모든 것을 끝내려 했다. 아이들 아빠는 흉기를 들었다. 나는 그 심정을 안다.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안다. 흉기는 앞으로 벌어질 일가족의 불행을 끊어내려 한 것이라고. 나는 저항했고 아이들 아빠는 미수에 그쳐 혼자 그렇게 떠났다. 내게서 멀리멀리… 그렇게 벗어나려 멀리 떠나갔다.
나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아들 때문에 마지못해 붙어사는 엄마·아빠라는 것을. 오빠의 블랙홀은 그렇게 가족 모두를 빨아들여 푸석푸석 말렸던 거다. 그런데도 아빠는 늘 딸자식을 챙긴다. 부성애가 작동한 것이지. 부성애는 말라빠진 더미에서도 그렇게 빛을 발했다. 그 빛의 힘은 당신이 하지 못한 자괴감 탓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달랐다. 너는 오빠의 동생이니, 그리고 너의 오빠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규정했다. 내가 아는 엄마는 처음부터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 매우 합리적인 분이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엄마는 하루아침에 생각이 달라 졌고 태도가 달라졌다. 오빠의 블랙홀은 그렇게 희한한 괴물들을 만들 어 내기까지 한 것이다. 백번 양보해 모성애가 더 강력하다고 해도 엄마는 아들에 관한 모성애지 자식에 관한 모성애는 아닐 거였다.
엄마·아빠는 24시간 오빠에게 매달렸다. 가래가 끓으면 당장이라도 빼주지 않으면 안되기에 교대로 붙어 있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 다. 그래서 언니는 사람답게 살려고 갔지만. 부모는 달랐는지 무려 10년의 세월을 넘기고도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아들을 지키고 있다. 그런 당신들에게 희소식이란 잊을 만하면 근거 없이 떠도는 10년 만에 깨어 났다는 황당무계한 말이었다. 그러나 엄마·아빠는 그것을 집요하게 묵묵히 붙들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묵묵하지만은 않았다. 아들을 두고 싸웠다. 누가 들으면 철부지 아이들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나 당신들은 심각했다.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 모습이 된 지 오래다. 제시간에 교대해 주지 않은 일은 두 분의 관계를 그렇게 만들었고 또 늘 싸움거리가 되곤 했다. 그 탓에 불똥은 아들로 번지곤 했다. 한번은 엄마가 오빠를 향해‘팍 죽어버려! ’했었다. 당신 내면의 또 다른 진솔함이었다. 그러나 그 진솔함은 그때 뿐이었다. 자신 곁을 영영 떠나서 보지 못하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보는 게 좋을 거였다. 그러기 10년을 넘기고 있었다. 아들이 어느 날 ‘팍’ 죽으면 엄마·아빠는 갈라서겠지 만 당신들의 내심은 10년이고 100년이고 그러지 않길 바라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러니까, 아들의 블랙홀에서 절대 빠져나오지 않으려 하고 있는 거다. 모든 것을 무너뜨린 블랙홀은 시간이 흐르면서 되레 안정된 자유를 누리는 그런 장소가 돼 버린 것이지. 그 속의 엄마는 죽겠다는 악다구니지만 나오려 하지 않고 되레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엄마를 중심에 두고 오빠의 블랙홀은 웃기게도 간당간당한 가족 의 관계를 붙들고 있는 격이라 하겠다. 엄마·아빠는 당신들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는 거다. 당신들이 원수가 된 마당에서도 그것 하나만큼은 그랬다.

*

“저 지랄을 하니 코로나가 계속 판을 치지.”
“그래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할 때가 있고 안할 때가 있지. 지금 그런 말 할땐교?”
점심 후 TV 앞에 앉은 두 분의 푸석푸석한 대화다. 나는 아버지 쪽이다. 할 말은 해야 했다. 그게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엄마의 말도 맞다. 지금은 저렇게 모여 난리 칠 때가 아니기도 했다. CCTV 이용해 주동자를 잡을 거라 했다. 엄마는 당연히 엄하게 벌 해야 한다고 했고, 아빠는 원인 제공자를 따지며 부당함을 늘 피력했다. 엄마의 말도 맞고 아빠의 말도 맞았다. 지금의 시국에선 너도 맞고 나도 맞고 너도 틀리고 나도 틀리는 그런 형국이었다.
“오늘은 가냐? ”
“예.”
갑니다. 가요. 제발 닦달하지 좀 마요. 나도 미치겠으니. 딸도 죽겠는 데 자꾸 닦달하고 난리야! 그만 좀 하라고요! 콱 뒈질까보다 그냥! 아 빠는 또 왜 그래? 오늘 따라 한 마디도 않는 거야? 딸이 지리멸렬 죽겠는데…! 지친 거야? 이제는 우군도 사라지는 거야! 결국….
“이 판국에 일할 수 있는 게 어디냐.”
“예. 잘 알았다구요.”
“내 잘 묵자고 그러냐? 너 새끼들 봐라.”
“어미한테 왜 지랄이고! ”
“엄마! ”
“왜? ”
아빠는 슬그머니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우군으로의 지원을 자의적으로 포기한 것인지, 적군에게 두 손 들고 타의적으로 포기한 것인지 참 의뭉한 느낌으로 아빠는 자리를 떴다.
통근버스는 늘 선잠을 자게 했다. 그 탓에 늘 힘들었다. 버스는 서산 으로 붉게 기우는 태양을 측면으로 해서 차를 세웠다. 반쯤 몽롱한 의 식으로 붉게 기우는 태양을 물끄러미 창문 너머로 바라다보았다. 삶의 말미도 저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김해 물류센터는 광대했다. 나도는 수많은 인력을 넉넉히 감당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또 하나의 블랙홀이었다. 통근버스에서 내리자 제 법 싸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일순 더럭 겁이 났다. 모든 게 당연시 되고 있었다. 물류센터의 광활함도, 일할 시간에 맞춰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도, 그 태양을 보며 터벅터벅 컨베이어 벨트가 쉬지 않고 돌고 도 는 물류 창고로 향하는 발걸음도, 김 소장이 아니라 민망함을 넘어 공사판 너와 나 동급의 잡부로 주저앉은 상황도, 물 먹은 습자지처럼 축 늘어진 몸을 기신기신 퇴근 버스에 올려 망연함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일도, 씻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곧장 침대 위로 널브러지는 다람쥐 쳇바퀴의 삶이 또 하나의 블랙홀 속에서 생동감 있게 돌고 돌았다.
“사무실은? ”
“고지서만 수북이 쌓였던 걸요.”
“정리할까나? 앞도 안 보이는데.”
“소장님! ”
저도 그런 생각은 했었지만 소장님까지 그러시면 어떡해요?  제발! 코로나도 끝나고 언젠가 풀리겠죠. 지금껏 메르스도 사스도 잡았어요. 소장님까지… 실망! 실망!
“접었다 다시 시작하지 뭐.”
“…….”
소장은 눈을 회피했다. 뒤돌아설 때, 다크서클 위로 눈시울이 붉었던 것을 보았다. 하얀 마스크는 그의 붉은 눈을 도드라지게 해주었다. 아 이 셋에 노모까지 어련하실까! 울어도 벌써 울었어야 했다. 하도 강한 척을 하니… 모른다. 그동안 울고 다녔는지도. 하기야 대출금 이자에 또 이자가 쌓여 가니 제정신이겠는가! 그랬다. 나는 또 한 남자를 붙들고 있었다. 미친년이 아닌가! 남자만 쳐 잡아먹는 물귀신도 아니고! 도 대체 넌 뭐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연말까지는 버텨 보죠.”
“그럴까, 그럼. 기왕지사 망한 거.”
다시 돌아서며 말을 받았다. 그새 눈시울은 식어 있었다. 소장은 연 말까지를 못 박았다. 그동안 망했다는 소리, 접자는 소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연말까지라는 내 말에 그 소릴 단박 붙잡았다. 못을 박는 게 맞았다. 망했으니 너 말대로 연말에 정리하자! 라는 단언이었다.
“망했다는 소리 하지 않기.”
“미안해. 소양 씨.”
대답이 가벼웠다. 미안했다. 마스크 안에 미소가 피어났으면 좋겠다. 각자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같은 길을 달려온 동지는 또 다른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기꺼이 같이 가고 있었다. 그는 체력 안배를 했다. 무리하지 않았다. 체질화시키고 있었다. 장기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특별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둘은 또 다른 시작에서 끈끈한 동지로 손잡을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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