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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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순
아침부터 검은 옷을 챙겨 입고는
서쪽 성환으로 길을 떠난다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죽은 자들이 산 자를 무작위로 부르는 날
서늘해야 할 풍경은 간데없이
산 중턱까지 꽃들이 만발이다
오랜만에 성지에 와서
묵언으로 인사하면 묵답으로 듣고
묵상하듯 바다 쪽 하늘을 쳐다보며
갈 자리 올 자리를 생각해 본다
1894년 7월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대창 하나 꼬나들고 숨 가쁘게 오르내리던
너른 성환 들판에서 무수히 먼저 간 임들이
붉은 꽃잎처럼 뜨겁게 피고 지던 날의 잔상들
어느 몸부림이
어느 낙화가
어느 석양의 빛이
이처럼 붉고 뜨거웠던가
캄캄한 억압의 시대에
수많은 죽산의 구국 봉기로만
오로지, 백산의 붉은 핏물로만
사슬이 풀리리라 믿었다
백산이 하얗게 붐비던 그날
임들의 휘두른 깃발 의미는
지금도 결단코 옳았구나
단지
제도를 개혁하라는 것
외세는 속히 물러가라는 것
그리고 오리 부패를 척결하라는 것
피 끓는 성환에 와서
호국영령들을 생각하며 뒤돌아보니
아직도
넓은 들은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