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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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릴 비껴서도 마지막 안식을 챙겨줄 보금자린 어차피 숲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천둥이 요란해도 일체의 연기(演技)는 조물주의 각본대로 보장되겠지만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은 공간,
비어 있지만 너그럽고 풍요로운 듯 바람조차 강물처럼 여유로웠다.
휴식이 엄습해도 기다렸다는 듯 사계(四季)가 객처럼 번갈아 기웃거리고 불개미 몇 마리 부패된 곤충의 부서진 날개를 물고 삶을 더듬는 일 외엔 시간조차 번거로운 풍경이다
꼭두새벽이 장막을 젖히면
늦잠을 즐기던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어우러져 크고 작은 벌레들의 조화로운 환성은 한 편의 익숙한 동화였다.
굴참나무, 밤나무, 도토리, 상수리 온갖 잡목들 재기(才氣)를뽐내는 오솔길, 음색은 다르지만 골짝을 흔드는 환호는 메아리조차 음정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일과가 시작 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운 방랑객, 단 한 번의 거부권도 포기한 채 뭇 짐승들의 포로가 되어 비탈을 지킬밖에 없다
숲은 만상(萬象) 앞에 겸손했다
시위를 하는 것인지 서열을 가리자는 속셈인지 때로는 바람이 심술부리지만 모든 순리는 원칙을 고집했다.
가시에 찔린 새벽달이 눈물 몇 방울 풀잎위에 뿌려놓고 떠난 뒤 천천히 다음 장면 연출해도 늦지 않았다.
숨을 고른 숲이 온갖 푸념을 털어버리면 서둘지 않아도 질서가 무너지지 않아 억겁의 세월도 부담없이 반짝였다.
속살이 드러나도 부끄럼을 모르는 시간.
나뭇가지에 저녁 햇살 너덜거려도 헛된 추억 한 다발 남발하지 않는 숲.
비우면 지체없이 채운다는 건 후회를 위한 변병일 뿐, 절기가 바뀌어도 누구하나 허물을 탓하지 않았다.
꿈과 이상은 엄격하게 구분됐다.
숲의 주체는 언제나 호화로운 패션, 나는 그저 엉성한 관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