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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해변에서

한국문인협회 로고 리철훈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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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물을 보고 자신의 단점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놀라운 변화 다. 단점이란 타고난 성격이다. 선천적인 고정관념의 하나다. 분명히 고치면 좋아진다는 걸 알면서도 고치질 못하고 산다. 그만큼 어려운 것 이 성격적 요인이다.
나 자신도 그런 단점이 많다. 대부분 장점보다는 많은 단점을 갖고 살아간다. 문제는 단점을 단점이라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심지어는 그 단점들이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고 있는데도 그것을 모른다. 만약에 그것을 깨닫고 고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쁜 단점을 고친다는 것은 인생관이 바뀔 정도의 큰 변화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소한 계기를 통해 미처 몰랐던 것들도 깨닫고 스스로 변하게 된다. 내공이 쌓이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도 우연찮게 후배랑 등산을 갔다가 그런 계기의 순간이 있었다. 그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고 깊이 깨달은 바가 있다.
지난 5월 후배의 안내로 황금산을 등산했다. 황금하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귀한 보물이다. 무슨 사연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생길포를 지나 한참을 달려서 찾아간 바닷가에 산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230-2에 있는 산이다. 높이가 해발 156미터밖에 되지 않는 야산이다. 겉으로 보 기엔 이렇다 할 특징도 없고 그저 나무가 우거져 있는 평범한 산이다.
주변엔 천일염전도 있고 전국에 하나뿐인 감태바지락칼국수집도 있다. 어부들이 오가던 옛 모습 그대로의 야생 벌판이 인상적이다. 그 산의 비밀은 그 너머 바닷가에 있었다. 두 개의 명물 코끼리바위와 몽돌해변 이다. 정상에 올라보니 잔돌을 쌓아 만든 돌탑도 있고 전망대도 있다. 돌 탑은 어부들이 고사를 지냈던 곳이라 쓰여 있다. 연평도 황금어장으로 가는 길목이라 돌탑을 쌓고 고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황금어장으로 가 는 길목에 고사를 지냈던 산, 그래서 황금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듯싶다.
코끼리바위와 몽돌해변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다. 후배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 데리고 간 황금산의 명물답게 뜻밖의 경치였다. 맑은 공기에 시원한 해변경치가 너무나 정겨웠다. 그런 가운데 몽돌해변을 거닐다보니 나도 모르게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40년 전 남해바다 완도에서 거닐던 정도리 몽돌해변이다.
오석(烏石)의 몽돌로 이루어진 완도의 정도리 몽돌해변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때 30대의 내 젊은 가슴을 정신없이 흔들어 놓았던 곳이다. 아득히 밀려오는 남해바다 물결에 동글동글 다듬어진 드넓은 몽돌해변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싶었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그 이후 두 번째 만난 몽돌해변이다. 아무리 자연의 힘이 위대하다 한들 어떻게 바닷물이 이렇게 부드러운 몽돌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싶다. 그때와 똑같은 심정으로 충격 속에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여섯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하지만 그때 기념으로 주워온 몽돌 하나만은 꼼꼼히 챙겨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늘 친구처럼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황금산 해변의 몽돌은 정도리 몽돌처럼 검은색이 아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회색빛돌이다. 비록 작은 돌에 불과하지만 깊은 의미의 자연을 통해 진지하게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운명적인 만남의 돌이다.
몽돌은 오랜 세월 바다 물결로 다듬어진 부드러운 돌이다. 그 부드러운 힘에 감탄했다. 과연 얼마 만큼의 인내력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부드러운 바다물결, 그 부드러운 함축적 의미를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안고 돌아갔을 것이다.
몽돌은 모가 나지 않고 둥근 돌이다. 모서리가 없다. 어떤 모양이건 각이 진 날카로운 부분이 없다. 아무리 정으로 쪼고 쇠로 갈고 페이퍼 로 문질러도 그렇게 부드러워질 수가 있겠는가 싶다. 특이한 모양도 아 니고 특이한 색깔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색깔의 평범한 돌이다. 그러 나 너무 부드럽기에 따뜻하다. 어느 것 하나 못생긴 것이 없다. 부드러우면 다 예쁘다.
‘몽돌같은사람이되자.’
그 순간 깨달은 것이다. 희비애락의 반복 속에 몽돌 같이 부드러워야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돌 같은 사람이란 참을 줄 알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인내심을 갖고 말없이 노력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사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어디 있는가. 그동안 나 의 단점이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상 앞에 앉아 몽돌 속의 깊은 세계를 상상해 본 다. 자연은 영원한 스승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18세기 프랑스 의 철학자 루소의 말을 떠올려본다. 몽돌은 자연이다. 오늘도 부드러운 몽돌을 바라보며 그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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