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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은주(용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1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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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다.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날씨를 확인한다. 정오까지 비가 내릴 확률 구십 퍼센트, 두 시 이후 사십 퍼센트. 제주에 보낼 소포는 어쨌든 오늘 안으로 해결해야 한다. 아이를 태운 어린이집 버스가 네 시 십오 분에 도착하면 아이와 함께 우체국에 다녀오면 된다. 어제 보냈으면 좋았을 것이란 의미 없는 후회를 아침에만도 다섯 번은 했다. 날씨만 확인했더라도, 비만 내리지 않았더라도, 제주만 아니어도(육지보다 하루가 더 걸린다) 하면서 온갖 핑계를 끌어모아 짜증을 키웠다.
제주에서 한 달을 지내기로 한 지영에게 내가 프라이팬과 냄비를 보내주기로 했다. 지영과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아이들도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서로 친구가 되었다. 지영이 제주에 사는 지인들을 초대한다는 말을 하면서 간단한 조리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본가에 없는 것도 아니라 새로 사기도 뭣하고 마땅히 빌려 쓸 곳도 없다는 하소연을 했다. 마침 안 쓰는 팬이 있으니 내가 보내주겠다고 했고, 지영이 손님들 초대한 날을 고려하면 오늘은 소포를 보내야 한다.
이십 센티, 이십육 센티 프라이팬과 중간 크기 냄비 하나를 포장해 놓고 보니 무게가 상당했다. 특별히 인정이 많은 것도 아닌데 휴머니즘이 유난히 말랑말랑해지는 때가 있다. 지영에게 전화 받은 날이 하필 그날이었던 모양이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더, 식탁 아래 포장된 박스에 눈길을 한 번 더.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 창가로 간다. 성난 빗줄기가 유리창에 부딪쳐 흘러내린다. 심통 부리는 아이 머리 쓰다듬듯 손바닥을 창에 대고 쓸어내린다.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선생님에게 받아서 안고 들어왔다. 현관에 신발을 벗은 아이가 엉덩이를 만지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장난감 바구니 쪽으로 뛰어간다. 오줌 마려운 게 분명한데 아이는 한사코 화장실이 아닌 장난감 쪽이다. 아이를 달래 화장실에 들여보낸다. 마음이 급해 창을 열어 하늘을 본다. 비가 주춤한 때 어서 아이를 데리고 우체국에 다녀와야 한다. 언제든 다시 쏟아질 태세지만 지금은 내리지 않는다. 잰걸음으로 싱크대 맨 위 찬장에서 킨더 초콜릿을 들고 아들에게 갔다. 아들 이건 어때? 착한 일을 한 후에야 먹을 수 있는 초콜릿으로 아이를 유인한다. 안고 있던 티라노사우르스(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룡 인형이다)를 버리고 아이가 벌떡 일어난다. 초콜릿 먹고 엄마랑 우체국 갔다 올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가 몇 번씩 고개를 끄덕인다. 초콜릿을 뒤로 감추고 초콜릿 값으로 뽀뽀를 요구했다. 아이가 잽싸게 내 볼에 입을 맞춰주고 당당히 손바닥을 내민다. 새끼손가락 마디 끝이 살짝 휜 남편의 손을 그대로 닮은 아이 손바닥을 무심코 마주쳤다. 남편은 이런 식으로 불쑥 출현하곤 한다.
케이블 티브이 뉴스 채널 기자인 남편은 새벽 뉴스 진행자로 내정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격 취소 결정을 통보받고 런던 특파원으로 파견되었다. 남편이 받을 충격이 걱정되어 실망을 내색할 수 없었다. 친정에서도 앵커가 된 사위를 내심 자랑스러워하던 터라 나도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시집에서도 친정에서도 남편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었지만 의외로 남편은 담담했다.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평온을 가장한다고 보기에도 뭔가 석연찮았다. 내가 아는 남편은 그렇게 성숙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긴 내가 남편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남편이 일 년이면 된다고, 일 년을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도 일 년만 참아달라고. 남편의 참아달라는 말인즉슨 나와 아이는 가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일 년 후면 앵커가 된다는 것인지 일 년 후에 돌아온다는 것인지 애매했으나 처자식과 함께 떠나지 않겠다는 의미는 명백했다. 남편도 어쩔 수 없겠지, 같이 갈 형편이 아니겠지, 나와 아이에게 미안할 거야, 나도 스스로를 공들여 위무했다. 어린 아들과 남겨질 나를 아무도 살펴주지 않으니 나라도 다독이는 수밖에.
남편이 강조한 일 년은 결국 농담이 되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일 년 하고도 사 개월째 우리 집에 그는 부재한다. 남편이 떠나고 처음 얼마 동안은 하루 이틀꼴로 전화가 왔다. 점차 이틀이 사흘이 되고 일주일이 되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내가 먼저 아이 핑계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아빠를 보고 싶어 한다고. 남편은 자신도 우리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전화를 걸 때마다 남편과 통화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연결이 안 될 때도 많았고 되더라도 소통이라고 할 수 없는 사전적 의미의 통화를 이어갔다.
남편은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고교 동창 연수의 남자친구가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 술이 원수였다. 만난 지 두 달 만에 남편과 캠핑을 가게 되었고 우리는 경쟁이라도 하듯 소주와 맥주를 섞어 밤새도록 마셨다. 초여름 별빛 아래서 모기에 뜯겨가며 한 몸이 되어 하룻밤을 보냈다. 캠핑에서 돌아오고 남편은 한동안 연락이 뜸했다. 어쩌면 남편은 계속 연락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 사이 내 몸엔 변화가 일어났고 임신한 걸 알게 되었다. 어렵게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임신 사실을 알렸다. 남편은 몇 초쯤 말이 없더니 대뜸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이번엔 내가 입을 닫았다. 남편의 다음 문장은 더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남편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나도 몰랐고 전화를 끊는 것으로 내 기분을 전했다.
오 일(천년 같은 오 일이었다)이 지나고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다시 또 미안하다고 말하자 내가 무엇이 그렇게 미안한지 물었다. 남편이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는 말을 비장하게 했다. 네가 뭔데 날 책임지냐, 무엇을 어떻게 책임질 건지 말해보라고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었으나 난 그러지 못했다. 소설 쓰겠다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둬서 엄마와 사이가 나빴다. 계산이 빠른 엄마가 소설 써서 밥 먹기 어렵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평생 미장원을 해서 나와 동생을 가르친 엄마에게 장차 이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서웠다.
엄마는 사윗감이 티브이 기자라는 사실에 속된 말로 뻑이 가서 내 임신 따위는 문제 삼지 않았다. 문제는커녕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텔레비전 나오는 기자라 안 카나, 하면서 대놓고 자랑을 했다. 엄마는 속전속결이라는 의미를 내 결혼에서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배부르기 전에 식을 올려야 한다는 엄마 성화에 못 이기고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치뤘다.

 

아이가 공룡을 기어이 가지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티라노사우르스를 배낭에 넣어 어깨에 걸쳐주고 아이 손을 끌었다. 아이는 현관에서 한 번 더 심술을 피웠다. 샌들을 신겨주니 장화를 신겠다고 한다. 비가 그쳤고 마음은 급한데 아이가 내 맘을 알 턱이 없다. 이럴 때는 외출할 때 면바지를 꺼내놓으면 청바지를 입겠다고 하고 자켓을 준비하면 카디건을 입겠다는 남편과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장우산을 꺼내느라 신발장을 연 게 화근이다. 공룡이 그려진 장화를 아이가 봐버렸으니. 아이에게 티라노사우르스가 발등에 앉아있는 장화를 신긴다. 한 손에는 아이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프라이팬 박스를 들고나니 남은 손이 없다. 아들 일 층 눌러줄래? 아이가 일 층 버튼을 꾹 누른다. 아이 손끝에 숫자 1을 안다는 의기양양함이 묻어난다.
우체국에 도착해서 급히 번호표를 뽑고 택배 신청서에 지영의 제주 주소를 적는다. 벌써 지겨워진 아이가 언제 집에 갈 건지 묻는다. 아이를 벽 쪽에 있는 긴 의자에 앉히고 번호표와 포장된 박스를 창구 여자에게 가지고 간다. 접수비용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고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몸이 이미 아이 쪽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중이어서 말뿐인 감사이기는 했다.
하기 싫은 숙제를 해치운 듯 개운해져서 아이를 번쩍 안아올렸다. 우체국 문을 나서며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뭐 먹고 싶어? 엄마가 뭐 해 줄까? 저녁 메뉴는 카레라이스로 정했는데 아들이 원한다면 기꺼이 돈까스로 바꿔줄 용의가 있다. 돈까스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냉장고에는 늘 손질해둔 돈까스용 돼지고기가 냉동되어 있다. 제 아빠 식성을 닮아 아이도 돈까스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에게 감자와 양파, 버섯을 듬뿍 넣은 카레라이스를 먹이고 싶다. 슬쩍 떠보듯 묻는 말에 아이가 대답이 없다. 아들? 아들? 아이 머리가 내 어깨에서 미끄러진다. 그새 잠이 들었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아파트 입구인데 팔이 아파서 자꾸 멈춰 아이를 고쳐 안았다. 아파트 일 층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는다.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9층에 있던 엘리베이터 숫자가 하나씩 바뀌는 것을 바라본다. 8, 7, 6, 5, 오늘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뚫어져라 보다가 크게 숨을 몰아쉬는 것으로 무엇인가를 원망한다. 엘리베이터? 지영? 남편? 대상이 불분명한 화가 치밀어 거친 숨을 내쉬는 순간 아차, 우리 집 우산 중 가장 크고 튼튼한 우산이 없어진 걸 알았다. 생긴 건 새까만 박쥐 같아도 아이와 같이 쓸 때 유용해서 아끼는 우산을 우체국에 놓고 왔다.
어느 해 여름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부산에 갔다. 바닷가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아이와 나는 잠깐 비를 피하고, 남편이 달려가 우산 하나를 사왔다. 새카만 우산 속에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기를 이마에서 뚝뚝 떨구고 남편이 뛰어왔다. 나와 아이가 있는 곳으로. 남편은 혹, 지금 어디선가 우산을 구하는 중일까. 우리 셋이 써도 충분할 크고 튼튼한 우산 말이다. 남편이 산 우산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애써 마음을 꾹꾹 누른다. 잘 썼던 물건이 하나 없어져 아쉬운 것뿐이라고. 아이는 잠들었고 설사 깨어 있다고 하더라도 돌아온 길을 다시 갈 생각이라고는 전혀(지난한 여정?이었다) 없다. 차라리 비가 왔더라면 우산을 까먹지 않았을 텐데. 원망의 대상이 이제야 분명해졌다. 비와 또 다른 비.

 

조금 전 비 한 방울이 내 얼굴에 떨어진 것 같다. 곧 쏟아질 기세다. 어쩌자고 우산을 놓고 왔는지(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꼭 마감일에 원고를 접수해야 하는지(어제와 달라진 문장이 하나도 없다). 자문을 하자면 스무 개쯤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응모할 원고가 젖지 않게 뛰어야 한다. 냅다 우체국을 향해 돌진했다. 다행히 창구는 한산했고 내가 숨을 헐떡이며 등장한 탓에 창구 여자 한 사람이 무슨 일인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본다. 다 큰 여자가 쫓기듯(얼마나 빨랐는지 제대로 멈추지도 못해 미끄러질 뻔했다) 뛰어와 거친 숨을 몰아쉬니 놀랐을 것이다.
원고가 든 서류봉투를 들고 창구 여자에게 가서 등기로 보내 달라고 얘기한다. 익일특급으로 하시겠어요? 창구 여자가 묻는 말에 네,라고 했다가 급히 아니오,로 대답을 고쳐 말한다. 익일특급이라면 특별히 다음날 보내주겠다는 건가 본데 조금 빨리 도착한다고 해서 내 소설이 특별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사실은 여러 번(결혼 전 습작기 초반에) 특급으로 응모원고를 보내봤지만 내게 특별한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편 비용을 지불하고 우체국을 나가려는데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진다. 이 비야말로 특급이다. 우산 없이 이 빗속을 가기는 어렵겠다. 아, 갑자기 소변이 급하다. 곤란한 일은 왜 동시다발로 일어날까. 비가 조금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 봐야겠다. 지난번 지영에게 택배를 보내면서 아이를 앉혔던 긴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세찬 비다. 지나가는 비가 아닌 모양이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에코백을 머리에 이고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오십 미터도 못 가 갑자기 비가 멎었다. 아니 머리 위에 우산이 있다. 키 큰 남자가 우산을 받고 서 있다. 어디까지 가세요? 씌워 드릴게요, 라고 남자가 큰 소리로 말한다. 빗소리가 커서 크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괜찮다고 해도 한사코 가는 곳까지 씌워주겠다고 한다. “저도 우체국에서 나오는 길이에요, 비가 너무 많이 와요.” 남자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말했다.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다. 뭐, 이상해도 할 수 없다. 이미 내 머리 위에 우산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 “여기 됐어요.” 알전구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카페 앞에 멈췄다. 고맙다고 인사하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했다. 카페 안으로 얼른 들어가 남자가 지나가는 것을 멀리 지켜봤다.
진열장에 크로와상과 스콘들을 보니 배고프다. 카페 여자에게 커피는 차갑게, 크로와상은 따뜻하게 데워달라고 의미가 정반대인 부사를 사용해 구체적으로 주문한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창쪽에 앉아 진동벨이 울리기를 기다리는데 휴대전화가 운다. 에코백에서 전화기를 꺼내자 이번엔 진동벨이 울린다. 전화기를 탁자에 두고 아메리카노와 크로와상에게 간다. 엄마는 대체로 후순위다. 엄마 성격으로 보아 한 번은 더 전화를 할 게 분명하니(안 받는다고 바로 포기할 엄마가 아니다) 고민은 낭비다. 성질이 급하기로 치면 크로와상도 엄마 못지않다. 얼마나 빨리 식어버리는지 모른다. 한 번 데운 크로와상은 식으면 촉촉함이 사라져 바삭해진다.
맛있게 드세요오, 끝을 올려 길게 발음하는 카페 여자를 뒤로하고 커피와 크로와상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창밖엔 우산을 접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비가 멎었고, 따뜻한 크로와상 먹기도 성공했으며 커피 맛도 나쁘지 않다. 비에 젖은 바짓자락은(남자의 우산이 아니었다면 비 맞은 생쥐가 됐을 것이다) 곧 마를 것이다. 다만 엄마의 두 번째 전화가 없는 건 평범하지 않다.
결혼 전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 “머선 소설? 소설이 니 밥 믹이주나 니 맘때로 해라.” 소설 써서 밥 먹기도 힘들 것이라는 뜻을 내포한 악담에 가까운 예언(?)이었다. 다음 날 내가 정말로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난 뒤에는 본격적인 비난과 분노를 퍼부었다. “니 미칫나 니 진짜로 회사 안 갔네, 니가 미친기가, 내가 몬산다.” 내 변명 같은 건 들을 생각도 없이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어떤 날은 전화를 해서 다짜고자 “니 고마 내려온나 그래 처박히가 있지 말고 고마 내려온나.” 뚝. 내가 니 그래 살라고 대학 시킷나, 니는 양심이라고는 약으로 쓸라캐도 읍다, 가시나 몬댔대이.” 뚝. 그 후로도 여러 날 아니 여러 달 더 그런 전화를 걸어 내게 화풀이를 했다. 소설이란 뜻을 모르는 누군가 이런 통화를 엿들었다면 소설이라는 게 대체 얼마나 못된 짓이기에 엄마를 저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으리라.
소도시 변두리에서 미장원을 하는 엄마는 우리에게 너희들은 공부해서 좋은 데 취직해야 한다고 했다. 꼭 서울에서 살라고도 했다. 미장원에 딸린 방에서 책을 보는 나를 엄마는 흐뭇해했다. 엄마가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엄마 나 책 보는 중이야, 하고 소리치면 그만이었다. 오야 그래 공부해라, 엄마 목소리에는 싫은 기색이 없었다. 다행히 서울 소재 대학에(일류대학이 아닌 그야말로 서울에 있는) 합격해 간신히 엄마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그 못된 소설을 다시 시작했다고 하면 엄마는 뭐라고 할까, 이번엔 밥 못 벌어먹을 걱정은 안 할 테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사위를 떠올리고 안심할지도. 엄마가 그토록 믿는 사위는 정작 런던으로 떠난 후 전화 한 통 장모에게 하지 않았다.
진동 모드로 전환한 전화기가 커피잔 옆에서 부르르 떤다. 참다못한 엄마가 머리를 쥐어뜯는 것처럼 부르릉거린다.
-머한다꼬 전나 안 받노.
여보세요 따위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앞뒤 자르고 소리부터 지르는 엄마에게 나도 같은 강도로 응수한다.
-바쁘다.
-바쁘다꼬? 니가 머한다꼬 바쁜데.
-뭐 한다고 얘기하면 엄마가 아나?
-가시나 말 꼬라지 봐라.
-왜 엄마 닮아서 안 그렇나.
-열무하고 정구지 쪼매 보냈다 받아가 바로 냉장고에 느라, 머해가 밥묵노, 아는 잘 크제?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반기지 않는 전화를 해대고 기가 막힌 촉으로 내 냉장고가 비어 있는 시기에 맞춰 김치를 담근다.
-엄마, 비 안 오나?
-가시나 비는 무슨 비, 더버가 머리 벗기지긋다, 비나 팍 쏟아졌뿌라다. 김치 낼 갈끼다 드가라.
뚝. 엄마는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끊었다. 김치 잘 먹을게 고마워 엄마,라고 인사할 걸 그랬다. 엄마는 내 인사를 부끄러워했다. 나도 엄마에게만은 다정이 부끄러웠다.
엄마와 통화하는 사이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얼음이 녹아 밍밍해졌고 크로와상은 수분이 빠져 바삭하다 못해 쿠키가 되어 버렸다. 커피와 크로와상으로는 부족했던 허기를 무엇이 메꾼 것 같다. 엄마의 시계는 귀신같이 내가 아사 직전에 종을 친다. 비는 완전히 그쳤고 아이가 돌아올 시간도 가까워졌다. 전화기를 에코백 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일은 라면에 정구지를 말아서 먹어봐야겠다.

 

거실 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우산들이 지나간다. 올해는 장마가 길다. 우산에 가려 얼굴 없는 사람들이 걸어간다. 신발이나 걸음걸이로 여자이거나 남자인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문득 사람들이란 게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긴 것은 다르고 보폭이나 발을 딛는 모양새는 같다면 얼마나 웃길까 싶어 정말로 웃음이 터진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지 뭐야, 혼잣말을 하다 하이힐 신은 여자들과 운동화 신은 남자들이 똑같은 모양으로 걷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번엔 아주 낄낄 웃고 만다. 필립의 항공모함 같은 운동화 말이다.
필립 PT(personal training) 센터에 가게 된 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연수(고교 동창이자 채무자이고 남편을 소개해준 장본인)의 일방적 결정이었다. 두 해 전에 삼 년 만난 남자와 헤어진 연수가 밤낮으로 나를 괴롭힌 일은 지금 생각해도 머리 아프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죽고 싶다고 협박(신기할 정도로 바쁜 시간만 골라서 전화했다)하질 않나,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면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사람이냐(난 때때로 사람이 아닌 무엇이 되곤 했다) 난데없는 비난이 돌아왔다. 늦은 밤에 연수의 하염도 없는 술주정을 들어주느라 잠을 설쳤다. 내 인내가 한계에 이를 때쯤 특단의 대책으로 여행이나 다녀오라고 수차례 권유(사실상 꼬드김)했다. 여행 갈 돈이 어딨냐, 내가 넌 줄 아냐, 골질하는 꼴이 가관이었지만 여행비 빌려줄 테니 제발 가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연수를 보내야 잠도 자고 아이도 키우고 살림도 할 것 같았다. 큰맘 먹고 연수 계좌에 삼백만 원을 이체하고 연수가 떠나자마자 후회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엄마가 장염으로 입원했다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도 직장에 가야 해서 엄마를 종일 돌볼 수가 없으니 간병인을 써야 한다고. 엄마에게 가야 할 삼백만 원이 연수에게 가버린 셈이다. 효녀가 되기는 어려운 운명이다. 아무러하든 연수는 발리에서 돌아와 진정이 되어가는 듯했으나 몇 달 못 가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지난달 이국의 섬에서 연락을 해 온 연수가 필립 헬스장 주소를 주면서 PT를 받으라고, 이미 내 이름으로 등록했으니 당장 가서 받으면 된다고 했다. 엉뚱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애지만 그야말로 느닷없었다. 내용인즉슨 여행을 떠나기 전에(정확히는 남자와 헤어지기 전) PT 14회권을 구매해 두 번 사용하고 12회가 남아 있는 걸 나에게 양도한다는 의미였다. 더 어이없는 건 백만 원 변제했으니 남은 빚이 이백만 원이라고, 그 돈 언제 갚을지 모른다고 으름장 놓듯 얘기하며 호탕하게 웃는 것이다. 같이 웃어주었다. 그래 실컷 웃어라, 죽는다는 협박보다야 백 번 낫다고 나도 뻔뻔하다 못해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필립이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사장 이름이 필립인가? 설마 트레이너가 외국 사람? 연수 기집애 엉뚱한 건 알아줘야 한다. 별난 애를 친구로 두면 반드시 별난 일을 만나게 된다는 교훈을 방금 얻었다. 집에서 내 걸음으로 십오 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런닝머신이 수십 개씩 창쪽에 도열한 대형 짐을 예상했다가 너무 소박해서 의외였고 그래서 좋았다. 헬스장치고는 좁은 편이지만 공간을 요령있게 쓰고 있었다. 런닝머신이며 싸이클, 바벨 등 이름 모를 헬스기구들이(무슨 고문 기구같이 생긴) 구역별로 나뉘어 있었다.
헬스장에 들어서니 키 큰 남자가 다가와 내 이름을 확인하는데, 어쩐지 낯이 익다. 아, 저.. 그.. 우리는 서로에게 손가락을 겨누며 기억을 되살렸다. 맞죠? 지난번 제가 우산 씌워 드렸던? 우리는 서로 손뼉을 치며 무슨 이런 일이 있나, 하면서 과장되게 웃는 것으로 어색함을 덮으려 애썼다.
필립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말이 사무실이지 칸막이로 분리된 공간에 책상과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운동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앓고 있는 질병이 있는지 물으면서 필립이 미소를 놓지 않았다. 입꼬리를 올려서 말하는 게 습관인 듯해도 억지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좀 지쳐 보였다. 평소에 다른 통증 부위가 있어요? 어깨나 허리가 아프다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필립이 친절이 몸에 밴 사람의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질문 내용으로만 보자면 흡사 의사가 문진하는 것 같아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필립이 꼭 필요한 질문이라고, 통증을 풀어주는 마사지도 같이 진행한다고 말해 주었다. 필립은 꼼꼼하게 질문하고 기록했다. 가까이 보니 필립은 조각 같은 얼굴이었다. 벌크업을 통해 만들어진 필립의 근육이 티셔츠 위로도 여실히 드러나서 괜히 부끄러웠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시라는 말을 참도 부드럽게 했다. 근육질 남자의 목소리라고(그런 몸에서는 황소같이 우람한 소리가 나오는 거 아닌가?) 믿기 어렵게 다정해서 쑥스러웠다. 필립이 누구냐고 내가 묻기 전에는 직업적이기는 하나 억지스럽지 않은 남자의 친절과 그 친절함을 조금은 부끄럽게 누리는 고객 사이의 대화였다. 필립이세요? 궁금증을 못 참고 기어이 내가 다시 물었다. 네? 외국인처럼 움푹 팬 큰 눈을 길게 늘이며 필립이 하하하하. 직업 미소가 아니고 진짜 웃음이었다. 이어서 가운뎃손가락으로 필립이 자신의 왼쪽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必立’이라고 셔츠 위에 조그맣게(누가 알까 싶게 흐리고 조그만 글자였다) 인쇄된 글자가 보였다. 반드시 서라고? 영어가 아니고 한자였어? 엉뚱한 애를 친구로 둔 엉뚱한 여자. 그 나물에 그 밥. 필립은 필립인데 필립이 아니었고, 그래도 내게는 필립인 걸로.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가는 필립과 약속한 시각에 늦을 것 같다. 하필 비가 내릴 게 뭐람, 투덜거리면서 민소매 원피스를 만지작거린다. 발목까지 오는 롱원피스라 우산을 써도 젖을 것 같다. 헬스장에 원피스라, 아무래도 작위적이야. 스포츠 팬츠로 갈아입을까, 고민이 길어진다. 헬스장에 도착하면 어차피 레깅스와 셔츠로 갈아입기는 해야 할 테지만 스트라이프 원피스의 산뜻함을 필립이 보았으면 좋겠다. 갈아입을 옷과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비는 얌전해져서 바람도 없이 조곤조곤 내린다.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몰아서 잡고 다른 손으로 우산을 받는다. 안경 가게와 내가 자주 가는 베이커리와 분식집을 지나간다.
지난번 해질 무렵 식빵과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쿠키를 사서 집으로 가는 길에 베이커리 앞에서 필립을 우연히 마주쳤다. 졸립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가방을 메고 빵봉투를 들고 가는 중이었다. 필립이 알은체를 하더니 아이를 뺏어가 자연스레 안아주었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언젠가 우산을 씌워주듯 이미 필립에게 안겨서 잠든 아이를 보게 되었다. 집까지 가는 동안 필립이 아픈 아버지와 둘이 지낸다는 것과 직업이 세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뇨가 심한 아버지를 위해 당뇨병 환자 식단으로 식사를 한다고, 덕분에 필립 자신이 오히려 건강해진 것 같다고 웃었다. 평일엔 오전 오후 PT 트레이너, 야간엔 대리기사, 주말엔 어린이 생활체육 강사로 일한다고 했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큰 필립이 내 보폭을 맞추느라 천천히 걷는 걸 보았다.
PT 시간에 맞추려면 뛰어야 한다. 그럴 거면 왜 십 분 빨리 나오지 않았는지 늘 하는 후회를 오늘도 한다. 물방울을 튕기며 뛰어간다. 샌들을 신은 내 발이 빗방울처럼 경쾌하다.
필립 헬스장 입구에 멈춰서 숨도 고르고 머리도 매만진다. 우산을 바닥에 내려놓고 머리고무줄을 꺼내 뒷목이 훤히 드러나도록 높이 머리를 묶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필립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필립에게 트레이닝을 받는 마지막 날이다. 횟수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 일주일에 두 번 하던 운동을 한 번씩 미루면서 아껴 써왔다. 잔고가 바닥인 통장을 펼친 기분이랄까. 가슴이 턱 내려앉는 느낌이 무언지 잘 모르겠다. 헬스장 안쪽에서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고 한 남자가 나왔다. 안쪽에 있던 필립이 나를 보았다. 어서 오세요, 들어오지 않고 왜 거기 계세요? 필립이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다. 아아‥ 음음‥ 들어가려던 참이에요. 통화 좀 하느라‥ 더듬거리며 내가 둘러대는 사이 필립이 다시 또 눈치 없는 질문을 한다. 어디 다녀오세요(누가 봐도 헬스장 옷차림은 아니다)? 아아‥ 네에‥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답을 했다.
레깅스와 셔츠로 갈아입은 내게 필립이 매트에 누우라고 말한다. 필립은 매트에 엎드린 내 팔을 반대쪽으로 꺾어 목과 어깨 스트레칭을 유도했다. 필립이 팔을 잡기만 해도 아프면서 간지럼 타듯 자꾸 웃음이 나와서 아아아… 으흐흐… 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아프세요? 아프면 말씀하세요, 음악 소리 사이로 악기 같은 필립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반대쪽 팔을 스트레칭했다. 아아아… 왜 자꾸 웃음이 나는 걸까. 웃음을 못 참는 나를 필립은 아파서 내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후렴처럼 필립이 아프면 말씀하세요,라고 한다. 돌아누우세요, 내가 필립의 소리를 놓쳤다. 내 어깨를 톡 건드리며 필립이 돌아누우세요,라고 말한다. 다시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고 갑자기 내가 너무 시끄럽다는 말을 너무 크게 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말을 뱉고 벌떡 일어났다. 필립이 어딘가로 뛰어갔다 오더니 볼륨을 줄였으니 괜찮을 거라고 한다. 돌아누운 내게 다가와 뭉친 근육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압박하고 자극해서 풀어준다. 아아 필립 너무 시원해요,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건 너무 노골적이라 부끄럽다. 네 명의 트레이너가 시간을 나눠서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소박한 필립 헬스장은 이번 달에 문을 닫는다. 이달 안에 PT 사용권을 모두 써야 한다는 소식을 받은 연수가 어쩔 수 없이 내게 양도한 것이다. 연수는 필립을 모른다고 했다. 연수가 헬스장을 찾았을 때는 조각 같은 남자도 악기처럼 말하는 남자도 없었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다. 필립은 분명 5년 넘게 이곳에서 PT 강사였다고 했다.
매트 운동을 마치고 스쿼트를 할 때 허벅지에 불이 날 것 같았지만 스무 번씩 세 세트를 끝까지 마치도록 필립이 도와주었다. 흩어진 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파이팅을 외쳐주고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기도 했다. 숨을 고르는 사이 필립이 생수를 가지고 온다. 필립이 뚜껑을 따준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기구 운동을 시작했다. 랫풀다운, 위에서 아래로 기구를 당기며 등을 자극하는 운동이다. 필립이 책을 많이 보는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운동이라고 했다. 실제로 두 달 사이에 앞으로 말려 있던 내 등이 곧게 펴졌다. 한 날은 필립이 내 키가 커졌다고 했다(필립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다리 근육을 강화하는 레그 익스텐션으로 기구 운동을 마치고, 필립을 따라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운동을 끝냈다. 내 머리가 땀으로 젖은 걸 보고 필립이 타월을 가져다주었다. 다음 달부터 어디로 옮기게 되는지 묻고 싶지만 나는 입을 떼지 않았다. 딱 두 번(아니 세 번 혹은 네 번?) 필립의 손을 타는 얼굴도 모르는 그의 고객들을 질투했다.
얼마 동안이라도 필립이 좀 쉬었으면 좋겠다. 밤늦게까지 대리기사를 하느라 그런지 낮 수업인데도 늘 피곤한 필립을 봐야 했다. 그렇다고 필립이 트레이닝을 소홀히 했다는 뜻은 전혀 전혀 아니다. 내가 도착한 시간에 필립의 눈은 더 크고 더 그윽하다. 입꼬리를 올리고 나를 맞이하고 파이팅도 넘쳤다. 이렇게 이 시간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고마워요 필립).
자꾸만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면 글을 썼다. 무언가 쓰고 있노라면 내가 확실히 존재하는 게 느껴져 안심이 되었다. 필립을 만나면 내 몸이 존재한다는 안도감이 든다. 내가 이 시간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저어‥ 선생님 저 가볼게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라커에서 옷가방을 꺼내오며 필립을 불렀다. “네 안녕히 가세요, 운동 꾸준히 하시고요.” 필립은 끝까지 친절하면서도 난 당신의 운동 선생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돌아서려다 말고 내가 끝났으면 같이 나가지 않겠냐고 용기를 장착해 물었다. 삼 초쯤 침묵하다 필립이 기대도 안 한 얘기를 한다.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거리로 나오니 빗줄기는 소심해져 우산을 써도 그만 말아도 그만인 날씨로 변했고, 습도는 더 높아져 대형 사우나 안을 걷는 기분이다. 이 정도 비에는 우산 필요 없다는 필립을 한사코 우산 속으로 끌어들인다.
-옷 젖어요, 우산 써요
-괜찮아요, 집에 가서 샤워하면 돼요
필립의 괜찮아요는 나와 함께 우산을 안 쓰겠다는 건지 옷이 젖어도 상관없다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는 내가 버럭(그야말로 버럭이었다) 안 돼요 하고 소리쳤다. 나의 안 돼요는 나와 함께 우산을 써야 한다는 뜻이 확실하다. 살면서 고민 없이 명징한 과제가 몇 개나 있었을까. 필립에게 굳이 우산 손잡이를 잡게 하고 함께 우산 속을 걷는다. 필립의 팔과 내 팔이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한사코 필립이 우산을 내 쪽으로 기울이는 바람에 필립의 한쪽 팔이 조금 젖었다. 우산대를 잡아 내가 살짝이 필립 쪽으로 밀어 균형을 맞춰보지만 몇 걸음 못 가 우산은 다시 내 쪽으로 형편없이 기운다. 때론 삐딱한 것이 평형이 되기도 한다. 필립과 나는 평형을 맞추며 목적한 곳에 다다른다.
-필립 이제 되었어요
-네(제가 필립이라고요? 라고 묻는 얼굴이다)? 아, 여기가 집이에요? 끝내 필립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이 우산 가지고 가세요
필립에게 우산 손잡이를 꼭 쥐어주며 내가 말한다. 멈칫거리다 필립도 우산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안녕히 계시라는 퍽 필립답지 않은(평소 악기 같았던 멋진 음색이 아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잘 가요 필립,이라는 말은 내 입속에만 머문다. 조금 전 처음으로 그를 필립이라고 불러보았으나 그는 필립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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