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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네 식당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정희(원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1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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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햇살이 칠월보다 약하다고 누군들 장담하랴. 
모자를 쓰지 않고 나온 김 영감의 머리가 달구어진 팬 위의 계란프라이처럼 익기 직전이다. 논둑을 손보다가 잠시 벚나무 아래에 앉아, 김 영감은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풀어 땀을 닦았다. 참으로 날씨가 좋다. 올봄에는 유난히 추운 날이 많아 마늘 농사를 망쳤다. 사월까지 눈이 내리는 바람에 추수한 마늘의 반은 썩어서 버렸다. 그러던 날씨가 바로 이렇게 더워지니 이젠 고추 농사가 또 문제다. 겨울에 눈이 많으면 여름에 비가 많다는데, 고추가 붉을 때쯤 비가 많을까 걱정이다.
고추는 햇빛에 잘 말려야 좋은 값을 받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려는 찰나에 전화벨이 울린다. 일전에 서울에 있는 큰딸이 장만해 준 휴대전화다. 처음엔 신기하다 싶던 것이 지금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화장실에서도 울리고, 한밤중에도 울리고, 뭘 좀 하려고 하면 삐리리 하고 울리는 바람에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 할멈 살아 있을 적엔 잔소리가 성가시더니 이젠 기계가 성가시다. 어쩌다 깜박 잊고 안 갖고 나간 날엔, 행여 중요한 전화가 왔나 싶어 조바심이 난다. 나이 칠십에 무에 그리 중요한 일이 있을까만은, 그래도 요즘은 휴대전화 안 가진 노인들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아버지? 아버지?”
“오냐, 나다.”
“왜 빨리 대답을 안 하세요?”
“무슨 일이냐?”
“아니, 집에 전화했더니 안 받으셔서요.”
“그래, 내 잘 있다. 걱정하지 말고 일 봐라.”
김 영감은 전화를 끊어버린다.
할멈이 가고 나서는 딸이 유난스레 군다. 혼자 있는 아비 걱정에 맏딸이라 그런지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한다. 김 영감은 그런 딸이 고맙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족쇄를 채워 놓은 것처럼 갑갑하다.
적적하다고 집에 와서는 사흘씩 잠만 자다가 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왠지 딸이라도 빨리 갔으면 싶은 것이 지겨운 생각이 슬며시 앞선다. 손님은 뒤통수를 봐야 한다던 돌아가신 어머니 말씀이 꼭 맞다. 전번 달에는 고추 모종한다고 사위와 애들까지 와서는 온 집 안을 어질러 놔 청소하느라 진을 뺐다. 혼자서 요리조리 날짜를 맞추어 보고 밭일을 하는 것이 김 영감은 더 편하다. 모종이 끝난 후에 밭을 돌아보면 제대로 심지 않아 다시 손을 대야 하는 것이 더 많고, 갈 때는 기름값이라도 줘서 보내야 하니 이래저래 손해다.
“자주 오지 마라. 내 괜찮다.”
“아버지 혼자 계시면 적적해서 안 돼요. 알아서 할게요.”
“마실도 가고, 논에 모도 내고, 할 일이 많아서 내 적적하지 않다.” 
김 영감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또 이것저것 먹지도 않는 반찬을 해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올 것이다. 꼭 지 엄마랑 닮았다. 이빨이 시원찮아 씹지도 못하는데 오징어채나, 마른반찬 따위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오는지 모르겠다. 된장에 풋고추 서너 개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어차피 죽을 때가 다 되었는데, 바리바리 챙길 것 없다.”
요새 들어 딸에게 부쩍 퉁명스러워진 김 영감이다.

 

“어이!”
건너편 밭에서 허리를 숙이고 괭이질을 하던 최 영감이 손나팔로 그를 부른다.
“저녁답에 막걸리 한 사발 하러 찔레네로 갈겨. 그리로 와!”
찔레꽃이 집 둘레에 온통 범벅인 삼거리에 있는 송희식당을 마을에선 찔레네라 불렀다. 식당 주인인 송희엄마가 어디서 이 마을로 흘러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딸아이 하나를 혼자 키우며 사는 과수댁인 것만 서로 수군댈 뿐이다.
“아, 올텨, 말텨? 사람이 대답이 없어?”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멈이 살았을 적엔 틈만 나면 나가고 싶던 것이 이제는 별 흥미가 없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명이 안 나는 것인가, 그는 피식 웃었다. 지금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새벽이면 마을을 한 바퀴 운동 삼아 걷는다. 당뇨가 있으니 운동 좀 하라던 할멈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던 그다. 생전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던 앞마당에 핀 꽃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딸애 말마따나 할멈 살았을 적에 좀 그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슬며시 된다.
‘흥, 그게 인간인 걸 뭐!’
햇빛이 내리꽂히는 앞산을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설핏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철없기는 새도 마찬가지다. 여름이 아직 멀었는데 뻐꾸기가 운다. 한 해가 다르게 더위가 빨리 오고 있다. 작년 이맘때는 아침저녁으로 추워서 보일러를 올렸는데 올해는 벌써 선풍기를 꺼냈다. 이렇게 빨리 더워질 걸 알고 선선한 봄날에 할멈이 세상을 떠났나 싶기도 하다. 김 영감은 삽을 챙겨 수로에다 흙을 씻었다.
작년 봄에 새로 공사한 수로다. 수로 공사를 하면서 김 영감네 논 쪽으로 세 평은 들어왔다. 마지기가 커서 마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는 속이 쓰렸다.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땅인데, 그가 망해 먹었단 소린 안 듣고 싶은 게다. 그래도 조금 보상을 받았다.
오늘 저녁엔 찔레네서 막걸리나 한 사발 해야겠다. 봄에 마누라가 죽고는 처음이다. 반가워할 찔레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입이 벙싯 벌어졌다. 그는 누가 볼세라, 얼른 물 묻은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쓰윽 쓸어내렸다. 그동안 두어 번, 찔레네가 오라는 전화를 했었다. 이제는 49재도 지냈으니 할멈에 대한 도리는 웬만큼 되었다 싶다. 마누라 죽은 지 얼마 안 된 영감이 과부집에서 술 마시고 있더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할멈 살았을 적에, 어디서 찔레네 소리를 주워들었는지 어쩌다 그가 술 한잔 하러 간다면 눈에 불을 켜고 난리를 쳤다.
“내 죽고 나면 그년한테 가슈. 내 아직 눈 벌겋게 뜨고 살아 있어요.” 
그러다가 약이 오르면 괴고 있던 베개를 냅다 던지던 할멈이다. 풍이 와서 운신이 시원찮아 한편으론 측은했지만, 마지막 몇 달은 정말 힘들어서 요양원에 맡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내 마시고 싶으면 마시는 거지. 지금 이 나이에 누구 눈치 볼 일 있다고.’
삽을 어깨에 메고 구시렁거리며 그는 논두렁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삼거리에서 제천 쪽으로 곧게 뻗은 국도변에 기차역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생긴 철도역이라 위치로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지만, 처음엔 제법 번듯하였다. 주변도 번잡해서 나름 사람도 많이 다녔다. 그러다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었다. 고속도로 입구라도 역 근처에 있으면 좀 덜할 터인데 그 입구까지 영월 가는 방향에다 자리 잡는 바람에 더 한산한 기차역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가 하루에 몇 번씩 서니 해돋이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면,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바다로, 바다로 가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기차보다는 고속도로가 미어지는 시절이 되었다. 월세를 살아도 자동차가 없으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니 참으로 웃기는 세상 아닌가?
남에게 보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젊은 날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좋아할까? 따위에 너무 신경을 썼고, 그러다 보니 있는 척, 잘난 척을 한도 없이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남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었는데 혼자서만 안달복달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오랫동안 기억하지만, 남이 무얼 했는지는 금방 잊어버린다. 남이 나에게 친절을 베푼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남에게 베푼 것은 오랫동안 기억한다.
동네에서도 누구네 잔치라면 아무 말 없다가도 누가 죽었다면 그의 과거까지 샅샅이 발겨낸다. 할멈 수발을 십 년 넘게 했는데도 김 영감이 지나가면 잘 하느니, 못 하느니 말이 많았다. 회관에서 회식이 있다고 불러도 그는 잘 가지 않았다. 할멈 살았을 적에도 안 가고 버티었는데 지금은 더 안 가게 될 수밖에.
혼자서 저녁을 먹을 때면 어스름해지는 마당을 내다보며 천천히 밥을 씹어 먹었다. 개구리 소리라도 들리면 그 소리를 친구 삼았다. 아무리 심심해도 텔레비전은 잘 켜지 않았다. 할멈이 있을 때면 늘 텔레비전을 켜 놓아 아주 성가시었다. 적적해서 그러려니 하지만, 어떤 때는 소리를 최고로 높여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거, 텔레비 소리 좀 줄여. 신문 좀 보게.”
그러면 할멈은 눈은 화면을 향한 채로,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영감은 생전 우스개도 할 줄 모르는데 나는 텔레비에 아그들 나와서 지껄이는 게 안 심심하구 좋아요.”
이놈의 할망구는 참, 말도 안 들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야지. 언제나 건성이다. 건성으로 듣고는 곧 생판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저녁을 먹고 그는 기차역 쪽으로 슬슬 걸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벼도 한창 녹색으로 물이 올랐다. 벼가 자라는 냄새가 구수하다. 요맘때쯤이면 논에 약을 치는데 그 농약 냄새가 싫지만은 않다. 지나가다가 문득 그 냄새를 맡으면 어릴 적 생각이 나서 기분이 아련해졌다.
논둑에 서 있으면 어머니가 등에 농약을 지고 뙤약볕을 받으며 음울하게 약을 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농약 치는 날이면 일부러 읍내에 나갔다가 저녁에야 들어오셨다. 그래도 어머니는 약은 자신이 치겠노라 하시며 아버지께는 아무 말씀 안 하셨다. 그러고 보니, 다른 집엔 으레 집 안 어디든지 보이던 농약이 그의 집에는 무슨 보물처럼 깊숙이 감추어져 있었다. 약 먹고 죽은 형 때문인 줄 그도 짐작은 했다. 
‘조 영감네 벼가 올해는 잘 되겠군. 조 영감이 그렇게 궁색하게 살더니 도로가 나는 바람에 한몫 쥐게 되어 다행이야.’
물려받은 재산 없이 자식 키우고 밥 먹고 살기가 녹록지만은 않은 세상이다. 자식들은 저 혼자 잘 큰 줄 알고, 그저 뭐라도 뜯어 갈 게 없나 수시로 엿본다. 조 영감도 뼈 빠지게 살았다. 작년에 산 밑으로 도로가 나는 바람에 맹지로 있던 조그만 땅이 보상을 받게 되어 살림이 조금 나아졌다.
‘아니, 이장네 논에 느티나무 묘목을 심었네? 아들놈 사업자금 댄다고 결국은 논을 팔았군. 쯔쯔쯔! 땅 팔아서 성공한 사업 내 못 봤네.’
도시 사람들은 시골에 논을 사면 흙을 돋우고 나무를 심었다. 농사를 안 지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라지만, 다른 논들 중간에 나무를 심어 놓으니 옆에 있는 논 주인들은 불만이 많았다.
펼쳐진 평야 끝으로, 고속도로가 산허리를 뚝 자른 모습으로 가로질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마을도 이젠 예전의 그 마을이 아니야. 김 영감은 갑자기 낯선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빨리 세상이 바뀌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마을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 속에서 따라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 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기적 소리가 울린다. 화물 기차가 지나간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국도변과 고속도로를 휙휙 달린다. 걸어서 가던 짧은 거리도 이젠 자동차를 탄다. 김 영감도 자동차 면허증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지고 있던 차는 둘째놈에게 줘 버리고 대신 작은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장날에는 하루에 세 번 오는 버스를 타고 나가면 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도시에서는 돈 주고도 운동한다는데 이렇게 좋은 곳에서 차를 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때로 놀러 온 도시 사람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김 영감의 집 앞을 뒤뚱거리면서 걸어가면, 그는 이 골짜기에 자리 잡은 것이 내심 흐뭇하였다.
첫째 녀석은 산 팔아 대학원까지 시켜 박사가 되었다지만, 둘째는 옳게 공부를 못 시켰다. 지가 도통 공부를 해야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자동차 정비를 배우더니 작년에 시내에다 조그만 정비소를 차렸다. 장가도 아직 못 보냈다. 여자에게 흥미도 없고, 결혼에 뜻도 없는 것 같다. 김 영감 자신이 결혼에 만족한 세월이 아니어서 그런지 뭐 그렇게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대학원까지 하고 박사가 된 첫째는 지 엄마가 아플 때도 공부해야 한다느니, 연수해야 하느니 하면서 일 년에 두 번쯤 겨우 명절에나 볼까 말까였다. 하지만 둘째놈은 오히려 용돈도 자주 주고, 집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왔었다. 그걸 보면 학력과 효도는 별개다. 큰놈과는 그도 왠지 서먹한 편이다.
“영감은 결혼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유. 왜 나랑 결혼했어요?”
할멈이 심통이 나면 늘 하던 말이다.
“그때야 뭐, 하자면 하고, 말자면 말던 때였나? 해야 한다기에 했지. 우리 아버지께 결혼 안 한다고 했다가 몽둥이찜질 한두 번 당했게?”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아버지가 화를 내며 호통을 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등에 땀이 날 정도다.
“그래, 결혼에 뜻도 없으면서 애는 왜 넷이나 낳았어요?”
할멈이 그렇게 따지고 들면 또 할 말이 없는 김 영감이다.

 

찔레네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아는 치들이 손을 들었다. 오늘은 동네 영감이란 영감들은 다 모였다. 찔레네는 부엌에 있는지 안 보인다. 그는 최 영감 옆자리로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최 영감은 벌써 거나하게 취한 것 같다.
“글씨! 농협에 있는 송 계장 말이여. 전번 날에 집으로 전화가 와서는 대출을 하라는 것이여.”
“나도 전화가 왔던데.”
조 영감이 반가움에 악수를 하다가 대꾸했다.
“자네도?”
“암만, 그래서 내가 나는 올해 대출 필요 없네, 했지.”
“자네야, 올해 한몫 단단히 쥐었지. 보상 많이 받았지?”
“뭐, 조금.”
“에이, 또 앓는 소리 헌다. 자네는 그게 탈이여. 있다고 하면 누가 달라 하남?”
“달라 해도 줄 게 있어야지. 아들놈, 딸년, 다 왔다 갔다네. 코빼기도 안 보이던 것들이 보상 소식은 어디서 들었는지, 참말로. 자식이 뭔지, 애물단지야.”
“그러게 그걸로 얼른 땅을 사 버리야 되는디.”
조 영감 얼굴에 잠시 쓸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을라고.”
“왜? 요즘은 꽉 쥐고 안 내놓는 치들도 꽤 되냐벼. 윗마을의 정 씨네 봐. 그 할머니가 올해 연세가 한 백 살은 되었을 겨.”
“백 살은 무슨, 구십여덟일세.”
“이 사람은…, 아 구십여덟이나 백 살이나, 그게 그거지. 꼭 따지고 들어.”
“구십여덟이면 구십여덟이지, 우째 백이여?”
조 영감과 최 영감은 맨날 숫자로 옥신각신이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숫자로 시작해서 말이 오가다가 주먹다짐한 적도 있다. 나중에는 무슨 이야기 끝에 그렇게 주먹질을 하게 된 건지도 잊어버리고 또 헤헤거린다.

 

정 씨네 할머님이 대단하기는 하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그 많은 재산을 다 지켜낸 것 보면 말이다. 도시로 나간 자식들도 제삿날이 되면 어김없이 모여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도 꽤 될 터인데 아직은 밥도 잘 드시고 등만 약간 굽으셨다. 소문에는 유언장이 있기는 한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 할머니의 고집 센 얼굴을 보면 아버지와 왠지 닮았다. 자식을 손에 쥐고 흔들던 아버지. 김 영감은 풀썩 웃으며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도 참말 대단한 분이셨다. 장손을 앞세우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신 걸 보면 말이다. 아래로 하나 있는 누이는 아버지 제삿날만 되면 펑펑 울었다. 환갑이 지나도 제삿날이면 친정에 와서 시누이 행세를 하더니 할멈이 죽고 난 후에는 소식이 뜸하다. 시누이 짓도 할 곳이 있어야 하지, 지지고 볶던 올케가 가고는 부쩍 기운이 없어진 누이다.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지. 그 여린 성품에 어찌 견디었는지 그래도 아버지보다 오래 사신 걸 보면, 어머니가 강단이 있으셨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염천에 고추 따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할멈 살았을 적 고생은 좀 했다. 어른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대쪽 같으시니.
“아버지는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하면 엄마에게 잘하셔야 해요. 요즘 그런 부인이 어디 있어요? 다 도망갔지.”
딸이 집에 오면 늘 하던 말이다.
“도망가면 되지. 안간건니엄마야. 난말린적없다.”
“아버지!”
눈을 흘기는 딸과 할멈을 놀리며 김 영감은 망태를 지고는 산으로 올라갔다.
송이가 한창인 철에는 눈여겨보아 둔 소나무 근처를 찾아가 딱 두 개만 땄다. 송이가 많이 있어도 김 영감은 딱 두 개면 된다고 할멈에게 말했다. 한때는 송이로 돈을 벌어 보고자 산마다 헤집어 난리도 부려 보았지만, 여기저기 나누어 주다 보면 돈을 받기도 무색하다. 
송이는 두 개만 해도 서너 식구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무와 파를 큼직하게 썰고, 양파도 넣고 송이를 죽죽 찢어 국을 한 냄비 끓여 놓으면 둘이서 몇 끼는 먹었다. 할망구가 송잇국 하나는 일품으로 끓였지. 자신도 모르게 김 영감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때 부엌에서 부추전을 맛깔나게 부쳐 나오던 찔레네가 김 영감을 보고는 반색을 했다.
“어머, 아저씨가 오셨네. 왜 그렇게 안 오셨어요? 아주머니도 안 계셔서 적적하실 텐데.”
“음, 일이 많아서.”
김 영감은 찔레네 눈을 보고는 고만 마음이 휘청한다. 찔레네는 웃으면 눈이 반달이 된다. 최 영감이 부추전을 찢다가 둘을 요리조리 보더니 찔레네를 놀렸다.
“찔레네가 말이시, 자네를 못 봐 눈이 짓물렀네. 저 봐, 눈이 퉁퉁 부었지.”
“아이고, 아니에요. 제가 어제 딸년 때문에 속이 상해서 좀 울었어요.” 
찔레네가 손사래를 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송희는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내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딸년이 어제 웬 놈을 데리고 와서는 글쎄 결혼을 한다지 뭐예요. 기가 차서, 아니 공부하라고 방을 구해 보내 놓았더니 연애질만 하고 다니니, 속이 상해서 원.”
송희는 어릴 때부터 얼굴이 예뻤다. 가끔 식당에 나와서 찔레네를 거들 때, 짓궂은 영감들이 우리 며느리 삼자, 하고 놀리면 척척 받아넘기는 본새가 여간 아니었다. 김 영감도 둘째놈 생각이 났지만, 나이 차가 많이 나서 그런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농담이라도 했다가 어린애한테 애먼소리 들을까 싶어서다.
“아, 시집보내 버려. 요즘에는 결혼한다고 하면 얼른 보내야 혀. 안 그러면 늙어 비틀어져도 결혼하기가 엄청 힘든 세상인 겨. 연애질이 효도여, 효도!”
하기야 예전에는 여고만 졸업해도 중매를 서서 시집을 보냈지만, 요즘은 서른이 넘은 노처녀가 수두룩한 세상이다.
“뭐 하는 놈이여?”
여기저기서 영감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아직 학생이에요. 학생인 주제에 무슨 결혼을 하겠다고, 어미 고생시키려고 작정을 했지.”
“요즘은 자식이 사십이 넘어도 부모가 용돈을 줘야 하는 세상이야. 결혼만 한다고 장땡인가? 먹고살 일이 막막한데, 잘 타일러 보지?”
김 영감의 말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을 안 들어요. 언제 아저씨께 보낼 테니 한 말씀 해 주세요. 송희가 아저씨 말씀은 들으니까요.”
그는 멀뚱히 찔레네를 쳐다보았다.
“내 말이라고 들을까?”
그러다가 김 영감은 오래전에 처음 찔레네가 식당을 열었을 때가 생각났다. 삼거리에 과부댁이 왔다고 성화를 대던 최 영감과 우연히 막걸리 한잔 하러 식당에 들렀다가, 어린 송희가 아버지! 하고 불러서 무척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찔레네가 질색하고는 얘가 아저씨들만 보면 그런다고 미안합니다, 하면서 연신 사과를 했지만, 그 뒤부터는 왠지 그도 송희만 보면 죽은 막내딸 생각이 났다. 지금 살아 있다면 꼭 송희 나이다. 할멈이 막내를 앞세우고는 심장이 많이 약해졌다.

 

애를 혼자 놀게 놔두고 동네 아낙들과 시시덕거리다니, 이 여편네가 미쳤나? 하는 말이 목젖 끝까지 올라왔다. 개울 옆 느티나무 아래에서 십 원짜리 화투를 치던 마누라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손찌검은 절대로 하지 말라던 어머니의 당부가 있어 꾹 눌러 참았다. 개울은 깊은 데가 있어 위험하다고 그만큼 애 데리고 가지 말라 했는데, 이 망할 놈의 여편네야, 하면서 멱살을 거머쥐고 싶어도, 눈앞에서 애가 죽는 걸 본 사람은 오죽하겠나 싶어서다.
“깊은 곳에서 놀지 말라 했는데, 내 앞에만 있으라 했는데, 아이고, 아이고!”
마누라가 길길이 뛰며 외쳐대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가고, 파출소에서도 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음 날, 아랫마을 여울목에서 애를 건져내었다.
아이를 보내고 그는 때때로 혼자서 산에 올라가 펑펑 울었다. 그 어린 것이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지금도 가끔 자다가 벌떡 일어나곤 한다. 그때, 김 영감은 우시장에 나가 있었다.
송아지를 팔아 막걸리 한잔 걸치고, 막내가 사달라던 금발을 한 날씬한 인형을 사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기르던 암소가 해마다 새끼를 낳아서 살림에 톡톡히 보탬이 되었다. 동네 어귀를 들어서면서 불안하고 석연치 않은 침묵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던 날이기도 했다. 막내가 죽고 얼마 안 되어 김 영감은 암소도 팔아버렸다. 그날을 생각하면 송아지를 판 게 아니라 꼭 딸을 팔아먹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 뒤로 김 영감은 다시는 소를 기르지 않았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있을 때는 귀한 줄 모르고 무심했던 것들이 없어지면 눈물이 팍 쏟아지게 그리울 때가 있다. 늦게 본 자식이라 더 가슴에 사무치는 것일까? 몰캉몰캉한 팔의 감촉이며, 명주실 같던 머리카락이며, 웃으면 불룩해지는 볼따구가 너무 그리워, 김 영감은 막내의 사진을 내놓고 어루만져 보기도 했다. 그러나 곧 사진첩을 탁 닫아버린다. 죽는다는 것은 이래서 싫다. 도대체 만질 수가 없으니 말이다. 떠난 사람은 모른다 해도 남은 사람은 너무 고통스럽다.
달빛이 봉창으로 드는 가을밤이면, 할멈은 숨죽여 울었다. 그도 일어나 담배를 물고는 마당으로 나가 한참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는 그래도 젊기나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나이도 젊은 축에 속했다. 스무 살 즈음엔 오십이면 인생 다 살았다고 생각하고, 칠십이면 벌써 황천길 갔을 거라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지금 칠십이 되고 보니 옛날 사람들 말이 꼭 맞다. 마음이 하나도 안 늙었다. 나이 따라 마음이 늙어야 몸이 편한데, 몸은 천근인데 마음은 청춘이니, 신간이 편치 않다. 
“송희가 오면 내게 한번 보내보지.”
김 영감은 남아 있는 막걸리 한잔을 죽 들이키곤, 찔레네를 나섰다. 만류하는 치들을 뿌리치고 휘적거리고 밖으로 나오니 찔레꽃 향기가 알싸하게 풍겨왔다. 이곳은 시내보다 기온이 낮은 산골이라 찔레가 지금에야 핀다. 시내에는 벌써 장미가 만발이라는데 마을에는 이제 찔레꽃이 시작이다. 찔레순을 따서 껍질을 벗기고 먹어본다. 쌉싸래한 맛이 입 안에 감돈다. 어릴 때 어머니가 가끔 꺾어주셨다. 젊은 어머니! 찔레꽃 향기를 맡으면서 싱긋 웃던 표정이 떠오른다. 아득하다.
내일은 산목련꽃을 좀 따야겠다. 산목련 봉오리를 말려서 차로 마시면 기침에 좋다. 대부분 산목련 나무는 키가 커서 사다리를 놓지 않고서는 따기가 힘들다. 요즘은 뭐든지 좋다고 조금만 떠들면 버글거리고 달겨든다. 그는 조용히 혀를 끌끌하고 찼다.
민들레도 텔레비전에 한 번 나오더니 씨가 말랐다. 그렇게 지천이던 민들레가 보기 귀한 꽃이 되니 마을에서는 이젠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면 경계부터 하게 되었다. 마구잡이 파헤쳐 뿌리까지 깡그리 캐어 가니 감당이 불감당이다. 왜 뿌리까지 캐 가는지 모르겠다고 면사무소 우 계장이 푸념하던 것이 생각난다. 치악산이 국립공원 된 것이 어제, 오늘도 아닌데 봄철이 되면, 무슨 단체에서 떼를 지어 와서는 왕왕거리며 나물을 뿌리까지 캐어 간다. 집에다 한두 뿌리 심겠다고 가져간다는데 산에 사는 것들은 집에 심으면 죽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 욕심을 이길 수가 없다.

 

“사내가 한낱 여자에게 미쳐 날뛰는 꼬락서니하고는, 나가 뒈져라.”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 형은 잠자코 꿇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결국 광에 둔 농약을 먹었다. 그렇게 좋으면 정 씨네 딸과 도망이라도 가든지 그는 지금도 형을 이해할 수가 없다. 형이 살아 있다면 지금 칠십하고도 넷이다.
형의 굵고도 힘찬 팔뚝이 생각난다. 장작을 팰 때면, 김이 풀풀 올라오는 등판은 매끈하게 넓고, 이마는 훤한 것이 참 잘생겼었지. 온 동네에서 잘생겼다고 소문이 자자했었다. 나중에 그 누님도 형이 죽고 시름시름 몇 달을 앓다가 죽었다. 그 둘의 영혼결혼식을 한다고 무당을 불렀을 때, 아버지는 그런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고 길길이 뛰었고, 결국 절에서 사진을 놓고 제사를 올려주었다.
어머니는 해마다 형과 누님을 위하여 제를 지냈다. 가끔 그도 따라가서 햇살이 비치는 대청마루에 앉아 큰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곤 했었다. 그로부터 몇 해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게 떠나실 것을 결혼 승낙이라도 했으면 손자라도 안아보셨을 텐데. 아버지 제삿날만 되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셨다. 형의 나이 그때, 딱 스무 살이었다.
윗마을 정 씨네도 누님이 죽고 도시로 나갔다가 세월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무남독녀 외딸이 그렇게 죽었으니 상심이 얼마나 컸을까만은, 그래도 정 씨네 할머니는 그를 보면 반가이 맞아주었다. 가끔 두 손을 잡고 울기도 했다. 아버지와 정 씨네 사이에 무슨 사정이 있어 두 젊은이를 그렇게 죽게 했냐고, 정신이 아직 깨끗하실 때 물어보고 싶지만, 이제 정 씨 할머니 연세가 백 살이 다 되셨으니 그때의 일을 기억이나 하실지 모르겠다.

 

삶에 욕심을 내지 않았던 형님은 죽어서 행복하실까?
새벽에 잠이 깨어 희뿌연 봉창을 올려다볼 때, 불알친구 장례식에 가서 막걸리 한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김 영감은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할멈이 아침에 기척이 없어 건드렸더니 손이 툭 떨어지던 그날 이후, 김 영감은 자신도 그렇게 가는 날이 곧 올 거라는 생각에,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질러 보곤 했다. 그러면 왠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심이 되곤 하였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걷자니 이렇게 아무 근심도 없이 편안했던 날이 언제 또 있었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요즘처럼 아무 근심이 없이 하루를 지낸 날이 참으로 드물다. 할멈이 살아 있을 때는 이런저런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걱정을 사서 하는 할멈은, 옆에 있는 사람도 불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딸이 전화를 안 하면 무슨 일이 있다고 방정을 떨고, 동네 누가 안 보여도 어디 아픈가 보다, 둘째놈 장가 안 가서 걱정, 큰며느리가 일하러 나가면 손주들 걱정. 이런 걱정, 저런 걱정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다고 뭐 하나 자기가 해결하지도 못했다. 조금만 설쳐도 숨소리가 쉭쉭! 소리가 나는 주제에, 그저 나만 들들 볶더니 차라리 편히 간 것이 낫다 싶다.
설거지는 왜 안 하냐? 논에 물은 대었냐? 고추밭에 약 쳤냐? 잔소리 안 해도 다 알아서 하는데 어찌나 유난을 떠는지 누가 오기라도 하면 더 심했다. 자상하지 못한 남편 만나 마음고생했단 생각이 들다가도 종일 이마를 찌푸리고 잔소리를 해대면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잔소리가 심하던 할망구가 죽고 나니 어쩐지 온 집 안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기도 하다. 예전엔 웬만큼 어두워져도 전기 낭비하지 말라고 빽빽거렸지만, 지금은 저녁에 나오는 날은 일부러 불 하나는 켜 놓고 나간다. 혹시 밤이 되어 집에 들어가면 깜깜한 것이 싫기 때문이다.
마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지만 늙을수록 더 편협해지는 것이, 예전에는 지나가는 말에는 신경도 안 썼는데 요즘은 자기에게 한 말이 아닌데도 꼭 내 말을 한 것처럼 신경이 쓰인다. 늙으면 그저 잠자코 있어야 하는데 참으로 잘 안 된다. 자식들 일에도 그렇고, 회관에 가서도 젊은 이장이 뭐라고 하면 영 못마땅하다. 이래서야 사람들이 늙으면 싫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저 뒤쪽에 앉아 고개나 끄덕거리고 있으면 될 것을 공연히 이것저것 물어보고 끼어들지 못해 안달이다. 아버지가 그랬을 때, 그렇게 싫었으면서 그 짓을 꼭 그대로 한다. 알면서 못하니 그게 늙은 게지.
멀리 집이 보인다.
안방에 불이 환하다. 아무도 없는 걸 알지만 불이 켜진 집을 보니 마음이 푸근하다. 그저 이렇게 지내는 거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월은 흘러가고 떠나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이제 돌이켜 후회할 일이 있어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 그냥 사는 거지, 뭐. 큰스님 말씀처럼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거야. 죽음이란 것이 꼭 그렇게 고통스러울까. 죽으면 모르는데 뭐. 초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이 설렁설렁 불고 있었다.

 

김 영감은 잠시 툇마루에 앉았다.
마당 한구석에 자리한 목단을 보니 왈칵 눈물이 솟는다. 오래전 이 집으로 살림을 날 때, 아버지가 손수 전지해서 심어주신 나무다. 유월이 되면 한지와도 같이 얇고 투명한 자주색 꽃잎을 겹겹으로 펼치고 꽃이 참말로 환하게 피었다. 저녁이 되면 오므라들었다가 아침 햇살이 비치면 사르르 펼쳐지는 것이 참으로 신비스러운 꽃이다. 하지만 겨우 며칠을 피었다가 져 버린다. 꽃이 피는 건 순식간이고 꽃을 피우기까지 수많은 날이 걸린다. 저 목단꽃이 꼭 우리네 인생 같구나. 김 영감은 공연히 마음이 쓸쓸하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나무는 살려야 하는데, 다들 아파트에 사니 줄 곳도 마땅찮고. 그러다가 김 영감은 갑자기 찔레네 식당이 생각났다.
‘그래. 그 집 마당에다 심어줘야겠다. 그래도 찔레네는 쉽게 이 마을을 떠나진 않을 테지. 그리고 유월 어느 날, 오늘처럼 이렇게 무더운 날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저 꽃을 내가 주었거니 조금은 기억해 줄 테지.’
찔레네가 배시시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김 영감은 아랫도리가 슬며시 뻐근해졌다. 주먹을 불끈 쥐고는 알통을 실실 만져본다. 그러고는 들보에 달린 쪽거울에다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아직 칠십으로는 안 보인다.
‘내일이 장날이니, 일찌감치 장에 가서 모자를 하나 사야겠다. 머리 때문에 십 년은 더 늙어 보여. 찔레네는 이쁜 머리핀이나 하나 사다 줄까?’
김 영감은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흥흥거리고 나왔다. 이런 정도면 조금은 더 살아도 좋을 것 같은 욕심이 슬그머니 명치 끝에서 솟구쳤다.
‘사내들은 문지방 넘어갈 힘만 있으면 지랄한다더니, 으이구! 이 영감탱이야! 주책 부리지 말고 정신 좀 차려요!’
김 영감은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흠칫 소스라치며 마루 끝자락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시멘트로 된 봉당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달빛이 비쳐드는 안방문 위에 걸린 사진 속의 할멈이 눈꼬리를 치켜뜬 채, 김 영감을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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