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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쓸 궁리

한국문인협회 로고 연공흠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1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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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야 하나. 갈 곳이 없어졌다. 예순 살 정년을 채우고 삼십 년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했다. 정년퇴직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데, 무엇을 시작하지?
어느 친구는 한 대학교에 무슨 교수라는 직함을 얻어 강의를 시작했다. 중국어를 들이파고 중국 관련 일을 도맡아 하면서 박사학위까지 받아놓더니 다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술직이었던 동기들도 감리니 고문이니 하며 그럴듯한 회사에서 한자리를 얻어 지역의료보험료를 안 내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일반행정직이었던 나는 기술도 없고 거창한 학위도 없으니 이른바 인생 이모작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굳이 퇴직 후의 재취업을 준비하지 않았다. 윤리 시간에 배운 대로 자아실현을 위해 일터에 나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직장인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며 회사에 다닌다. 직장에서 일에 보람도 느끼고 성취감에 뿌듯한 적도 있지만, 생계유지가 첫 번째 목적이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퇴직하면, 해야 했던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남은 생을 보내고 싶었다. 글을 쓰고 싶었고 여행을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집의 등기부 등본에 남아 있는 근저당을 아직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 근저당의 원인이 되었던 주택담보 대출금도 남아 있었다. 생활비는 연금으로 어떻게 해보겠지만 대출금과 이자 상환할 돈은 마련해야 했다.
‘무엇’을 찾아 나섰다. 집 근처 전철역 뒤쪽에 작은 광장이 있는데 저녁나절이 되면 한 남자가 작은 포장마차에서 닭고기 꼬치를 구워 팔았다. 삼천 원의 저렴한 가격에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두 종류의 꼬치를 팔았는데 맛도 좋았다. 닭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끔 들러 양념구이도 사 먹고 소금구이도 사 먹었다.
해가 진 후에 그곳에 가서 닭고기 꼬치를 하나 사 들고 먼발치에서 장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몇 푼 안 되는 가격이지만 손님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벌이가 쏠쏠할 것 같았다. 집에 와서 복잡하게 머리를 굴렸다. 닭고기 꼬치 만드는 요령과 비법을 익히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노점상은 불법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공직에 있으면서 노점상 단속을 많이 보았고 그 일에 동원된 적도 있었다. 바로 생각을 접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차창에 붙은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기사모집’ ‘초보자 환영’ ‘교육 무료’. 달콤한 유혹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면허증은 1종 보통. 이럴 줄 알았으면 대형 운전면허를 미리 취득해 둘걸 그랬나. 대형 운전면허가 있어도 버스 운전을 하려면 별도의 교육을 받고 버스 운전 자격증까지 따야 하는데 그런 비용은 지방자치단체나 버스회사에서 지원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마을버스부터 시작하는 모양이다. 버스의 운전대를 잡은 내 모습.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는 차마 말을 못하고 딸에게 넌지시 흘리며 의중을 떠보았다. 갑자기 딸이 엉엉 울었다.
“아빠가 삼십 년 동안 한 직장을 다니면서 열심히 일했으면 아빠 몫은 다한 거야. 왜 또 돈 벌 궁리를 하려고 그래? 이제 돈 쓸 궁리를 하면서 살아.”
돈 벌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돈 쓸 궁리를 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 후 뛰쳐나갔다.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글을 쓰고 싶었지. 여행을 하고 싶었지. 은퇴하면 일에서 해방되어 그런 것들을 하고 싶었는데 다시 꼬치를 굽고 운전대를 잡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영원히 못하는 건가.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혼자 하면 나태해질 것 같아 문화센터 수필 창작반에 등록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강의를 듣고 지도도 받았다. 도서관은 공짜였고 문화센터 수강료도 월 10만 원이 안 되었다. 돈 쓸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돈 벌 궁리를 아니 할 수도 없었다. 우연히 청렴연수원(현 국가청렴권익교육원)의 청렴강사 양성 과정을 알게 되어 그 과정에 지원해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른 끝에 ‘청렴교육전문강사’ 자격을 얻었다. 강의 요청도 심심찮게 들어와 관공서와 학교를 돌며 내가 배운 이론과 그동안 체험한 사례를 바탕으로 강의하며 사례금을 받았다.
등기부등본에 남아 있던 근저당도 간단히 없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딸이 결혼하면서 부부만 남게 되어 빈방이 두 개나 되는 집을 줄여 이사했다. 대출금을 다 갚고도 조금은 저축할 자금까지 생겼다.
퇴직 동기 중 친한 몇 명과 모임을 한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친구는 주식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했고, 한 친구는 느지막하게 서울 교외의 작은 아파트 관리 일을 하면서 용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모두 열심히 살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고 행복한 일이다.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내가 딸아이에게서 들은 말을 전했다.
“우리 딸이 돈 벌 궁리 그만하고 돈 쓸 궁리하며 살라는데.”
처음에는 돈을 벌어야 쓸 것 아니냐며 핏대를 올리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돈 벌 궁리만 했지 돈 쓸 궁리는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흥청망청 낭비할 곳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는 데 돈을 쓰며 살자는 것이다.
연금을 받고 강의라도 하니까 이런 궁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딸의 눈물과 외침이 없었다면 지금도 역 광장을 서성이며 포장마차를 바라보거나 버스의 광고판을 보며 돈 벌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가을에 돈 쓸 궁리도 해뒀다. 날을 잡아 아내와 함께 전남과 경남 해안 쪽으로 여행을 다녀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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