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1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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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새벽에 인천공항에서 구름과 친구 된 지 두어 시간 지나 도쿄 나리타공항이다. 추울까 봐 조끼를 껴입었다. 그뿐인가, 초행길에 앓기라도 하면 안 될 것 같아 몇 년 전부터 실시했던 독감과 코로나 예방접종도 마쳤다. 금천문화원에서 해외탐방이 있다는 소식에 가까운 이웃인지라 관심이 많아 재빨리 신청했다.
점심식사부터 해결하고 신쇼지 사찰을 지나 숙소로 이동한다. ‘일본은 8백만 개의 신이 존재했다가 지금은 33만 개로 줄었다’는데 아직도 참 많은 것 같다.
전용차량으로 세 시간을 넘게 달리다 보니 야마나시의 저녁이다. 도로가 깔끔했으나 좁은 데다 러시아워로 밀렸을 텐데 창밖 구경에 바빠서인지 그런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다. 저녁식사 후 마신 사케 한 잔과 온천물을 바꾼 셈으로 나는 어지러워 숙소 욕실에서 씻었다. 덕분에 밤이 깊도록 룸메이트가 된 마을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잘 잤다.
아침 일찍 하코네로 이동한다. 꼬부라진 길을 도는 동안 후지산과 숨바꼭질한다. 산봉우리가 뾰족한 줄 알았는데 깎여 닳아진 것 같은 모습이다. 후지산 상단은 하얀 눈이 쌓였고 마치 구름은 제집인 양 산에서 논다. 그런데 가까이 와서 보니 놀던 구름은 떠났고 텅 빈 하늘이 새파랗다. 아침차를 마신 후 길게 누웠을 법한 산자락이 휴화산이라 말한다.
하코네 국립공원에 있는 별궁공원에 들른다. 서양식과 일본식 문화가 혼재되었다는 황실의 별장은 신사와 달리 공간마다 테마가 다르고 깔끔하여 머릿속에 상쾌하게 저장된다. ‘안팎 풍경이 달라 밖에서는 이 황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니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가상의 선경(仙境) 무릉도원이 떠오른다.
삼나무 길을 걸어 사색의 문 광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우리가 소나무를 사랑하듯 이들은 삼나무를 아끼나 보다. 나무들이 많고 커서 그런지 꽤 압도적이다.
아타미 전망대에 올라 10개의 옛 지역을 보았다. 탁 트인 푸른 바다가 시원스러운 고지대엔 아담한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오전에 다녀온 후지산이 멀리 보이고, 신우대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북쪽 산등성이는 잔디가 폭신하게 깔린 느낌이다.
저녁은 일본의 전통적인 식사 방식과 다다미식 방을 택한 호텔이다. 대욕장이라는 옥색 탕에서 조용조용히 온천욕을 했다. 다다미방의 TV 옆 서랍에 찻잔부터 메모지, 휴지가 칸마다 잘 정돈되어 있다. 붙박이장도 있었는데 겨우 옷 한 벌 걸을 만큼 얇고 좁아 사용하진 않았다. 바닥에 요를 깔며 불편하리라 생각했지만 어린 시절 온돌방에서 생활했던 기억을 되살려 개운하게 잤다.
다음 날 아침 에도시대와 전국시대의 오다와라 성, 두 번의 대지진으로 쓰러졌다가 복원되었다는 영주의 옛집에 갔다. 역사 자료들이 진열되었고 그 시대의 살림 도구는 보이지 않았다. 돌탑 포함하여 5층 정도 높이로 지어진 천수각 전망대에서 바깥 구경을 하고 넓은 마당에 내려오니, 박물관 개념의 넓은 터에 커다란 나무들이 서먹한 나를 반긴다.
파리의 에펠탑을 본받아 만들었다는 도쿄타워에 오르니 도쿄 부근인 까닭일까, 돌아보았던 지역에 비해 높은 건물이 많다. 신주쿠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할인 잡화점에 들렀다. 손님이 많아서인지, 낮은 천장의 전등 열기 탓인지 밖에 나오니 미세한 바람이 봄처럼 살갑다. 오후엔 찻집에서 마을 친구들과 쉼을 즐겼다. 시내를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어둠이 내리자 신주쿠의 센트럴 로드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옛 동경만인 오다이바에 갔다. 유니콘 건담과 미국 프랑스에 이어 일본에도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후지 TV 건물은 중층부터 두어 라인의 넓은 공간에 기둥만 세웠고 위층엔 지구본 같은 큰 원이 있었는데, 비움의 공간으로 보여 시원했다.
아메요코 시장에 들렀는데 먹거리와 운동화, 온갖 치렁치렁한 의류들이 즐비하고 사람은 발에 걸릴 듯 많았다. 면세점에서는 여행 중 선물 구입을 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자제했다. 식사 때마다 꼬리지느러미를 들고 있는 생선튀김과 이런저런 요리들이 작은 그릇에 담겨 귀여웠으나 며칠째 되니 식상했다.
날이 새면 세상이 유난히 밝아 마치 내 시력이 좋아진 것처럼 환했던 기억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만에 내 집이 그리웠다.
나리타공항에서 마주한 직원들과 전용차량 기사님 외엔 현지인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으나, 걷고 또 걸으면서 소소한 여행을 했다. ‘군맹무상(群盲撫象)’이란 말처럼 내게 장님의 경우와 다를 바 없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웃나라에 대한 기억들이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