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1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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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필봉(文筆峰)에 선다. 집 뒤 나지막이 솟은 문필봉은 북한산 인수봉으로 향하는 칼바위 능선에 자리한다. 이곳에서 문필봉 산기(山氣)를 들이켜다 동북쪽에 솟은 인수봉을 바라본다. 그 봉우리에 머문 구름을 흘깃거리다 인수봉에 오르는 꿈을 품는다. 암벽 등반가 아니면 오르지 못하는 거대한 봉우리이지만, 글의 인수봉을 오를 수는 있지 않을까. 문인으로서 노벨상은 에베레스트. 그것은 언감생심이라면 인수봉 정도 상패는 서재에서 먼지를 쓰게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 문필봉에 올라 인수봉으로 오고 가는 구름을 볼 때마다 모름지기 그런 욕망을 한 번쯤 하늘 저편에 그려 놓는다.
한국 문단에도 수필 분야 문학상이 적지 않다. 산악 국가인 우리나라에 높은 봉우리가 많은 것처럼 여러 수필 전문 잡지사에서 마련한 상, 작고 문인들 이름을 딴 상, 여러 지역에서 유명 인사를 기리는 기념회에서 시상하는 상, 홍보가 목적으로 지자체에서 공모하는 상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 상금도 함께 딸려온다. 다른 분야보다 금액이 적은 경우라 섭섭해도 어찌 되었든 모양은 낸다. 물론 상금이 중요한 것은 아니나 그게 탐이나 응모하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그건 상의 본질은 아닐 터. 나는 맹세코 상금에 마음을 거는 건 아니다.
문학상에 관한 흑심을 고백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초심을 들춰 본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작문 관련 강의를 맡게 되었다. 교양 분야 강의라서 어느 대학이나 다수 학생을 배정하고 강의 방식도 이론 중심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학기 말에 관련 과제물 제출이나 이론 내용을 시험 보고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 강사 시절에도 그런 식으로 여러 대학에서 교양 작문 강의를 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론 실제 작문 능력을 키우기 어렵다. 마침 이론만이 아닌 실제 글을 써보게 하는 방식의 강의를 하는 학계 선배가 낸 책을 만나면서 작심했다. 30명이 넘는 학생을 반으로 나누어 격주로 그들의 글을 함께 읽어 가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런 지도가 더욱 실효성을 얻으려면 교수도 학생처럼 실제 글을 써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신약을 개발하면 임상시험을 하듯 나도 글을 쓰면서 작문 이론을 점검하는 것이 당연한 일. 사제동행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한편으로 학생과 함께 글을 쓰는 지도법이 실효성이 있다는 것을 검증해 보고 싶었다.
이렇게 시작하여 수차 투고 끝에 수필가로 등단했다. 등단한 다음 바로 첫해 수필집을 펴냈다. 자주 있는 사례는 아니다. 그 뒤 여러 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벌써 등단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 같이 등단했던 동기 작가들은 아직 한 권의 수필집도 내지 못한 것으로 안다. 글을 많이 썼다고 글이 우수하다는 근거도 없지만 한편 참작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바른 문장을 쓰려고 했고 문단 조직을 중심으로 수필 형식에 유의하면서 기승전결의 구성 방식을 제재별로 살려 주제 구현에 나름 애를 썼다.
자족성의 글을 썼지만 문단의 인정을 받아 보고 싶었다. 등단 5년 경력 이상의 문학상에 응모한 일이 있었다. 여러 조건을 고려해 보니 무난하게 수상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우연하게도 나중에 들었는데 심사 과정이 무언가 투명하지 못했다. 내 경우만이 아니라 간혹 수상자 선정을 둘러싼 과정이 공정하지 못한 소문을 더러 들었던 바라, 실망이 크던 차에 아예 상을 받아 보겠다는 마음을 구름에 실어 보냈다. 그렇게 투명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상을 받겠다고 응모하는 것이 과연 작가로서 바람직한 길인가 하는 회의마저 들었다. 배고프다고 아무 집이나 대문을 두드리는 걸인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꼭 메달을 목에 걸어야 하는 게 인생이 아니듯 충실하게 나름으로 작품 활동하면 되는 것일 터란 생각이 온 두뇌를 투과했다.
첫 응모 뒤에 세월의 물레바퀴가 쉼 없이 돌아가는 동안 여러 권의 수필집을 상재했다. 10년도 더 지나 새롭게 문학상을 마련한 곳에 응모했으나 수상의 기대는 허공으로 날아간 꼬리연이 되었다. 혹시나 하여 수상작을 읽어 보았지만 왜 그게 선정이 되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분명 수필집이 대상인 줄 알았는데, 내 판단으로는 일반 산문집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일반 산문과 문학 수필도 구별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은 의구심마저 들었다. 수상자는 우리 수필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사람이고, 정상적인 절차로 수필 문단에 등단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는데 수상자라니 정말 의아하기만 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아닌가. 공정한 심사를 하는 곳에서 주는 상을 나는 받고 싶다. 주관하는 곳마다 각각 나름의 심사 기준은 있겠지만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주는 상.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갖춘 상 말이다. 어쩌면 그러한 기준에 맞도록 글을 쓰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이 솔직히 들기도 한다. 글이란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것이라 수필도 역시 그러하다. 이 때문인가. 기왕에 여러 곳에서 수상한 글을 읽다 보면 어떤 아쉬움 같은 게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문학상 수상에 맞는 어떤 틀이 있는가 싶은 생각도 가끔 머리칼을 곤두세운다.
남에게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삶만이 가치 있고 보람 있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떠한 인생을 살더라도 스스로 관점에서 행복하고 멋지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만의 만족한 글을 쓰는 것, 구태여 문학상을 한 번 받아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태도는 아닐까. 이제라도 숲속 바람 소리나 들으며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지 않겠나. 문필봉에 오르면서 헛된 생각을 이제 내려놓고 인수봉이 홀로 우뚝 서 있듯 그저 무연하게 저 높이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다 스르륵 하산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