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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움에 대하여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세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1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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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의 일이다. 학기 초에 수강 신청을 하기 위해서 교과 과목과 교수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때였다. 친한 선배가 나에게 다가와 어느 과목, 어떤 교수님 수업을 들어 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사실 그 교수님 수업은 그다지 인기 있는 수업이 아니었다. 학점도 후하게 주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들어 보라고 하는 수업이니까 반신반의하며 수강 신청을 했다.
교수님께서는 첫 시간에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에 대한 평가를 공정하게 하겠다. 중간고사는 없을 것이고, 기말시험에 주관식 문제 3개를 낼 것이다. 그 대신 중간고사 기간에도 수업은 진행될 것이다. 한 문제는 학기 전반에 가르쳐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기 후반에 가르쳐 준 문제를 낼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내가 이 수업에서 너희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의 문제를 낼 것이다. 너희들은 그중 2개만 선택하여 답하면 된다. 3개 답한다고 점수 올려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채점할 때 작성자 이름을 가릴 것이다. 90점 이상은 A, 80점 이상은 B 이런 방식으로 점수를 줄 것이다. 만약 88이나 89점 나온 학생이 있으면, 나는 그 학생의 장점을 최대한 찾으려 할 것이다. 출결 사항, 학습 태도, 과목과 관련된 질문 횟수 등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너스 점수 일이 점을 더 얹어 주어 B+가 아니라 A-를 줄 것이다.”
나는 그 교수님의 너그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그 교수님 수업 결강도 거의 없었고, 학생들 출석 사항도 좋았다. 전반적으로 수업 과정도 순탄하게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A학점 받은 것과 B학점 받은 것 기분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당시는 지금처럼 자기 돈으로 등록금 내고 유학 가는 시절이 아니었다. 장학금을 받고 유학 가기 위해서는 학점 하나하나가 무척 소중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학기가 끝나고 A마이너스 학점을 받았다. 그게 그 교수님의 보너스 점수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점수에 만족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수님의 너그러움 때문에 수업이 잘 진행되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학회 간다고 휴강을 자주 하는 교수님도 계셨고, 또 자기 대학교 때 노트를 들고 와서 수업을 하는 교수님도 보았는데, 그 교수님은 새로운 논문이 나오면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열의가 눈에 보였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일부 학생들은 불편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너그러움은 사실 타인에게 행해졌을 때 필요한 덕목이다. 옛말에 외유내강이란 말이 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속은 단단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말 속에 깊은 철학이 숨어 있다. 그 철학은‘타인에게는 관대히 대하고, 자신은 엄격하게 처신하라’는 뜻이다. 요즈음 이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고위 인사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쓰는 말이‘내로남불의 대명사다’라는 말이다. 어떻게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 매도할 수 있는가? 같은 행동을 놓고 평가하는 잣대가 다르다면 누가 그 평가에 수긍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큰 소리로 꾸짖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자기가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에는‘그럴 수도 있지’ 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그 사람은 자기가 잘못한 사실을 금방 잊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는 오래전에 어느 수필 잡지 발행인의 요청으로 편집에 관여한 바 있다. 발행인께서는 그 잡지에 기고한 몇몇 작품에 대하여 나에게 교열해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직 그럴 수준이 아니라고 사양했지만 재차 부탁하기에 내 나름 열심히 교열을 하여 잡지에 게재시켜 준 바 있다. 어떤 기고자는 나의 교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원문 그대로 실어달라고 했다. 결국 그 작품은 잡지에 게재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잘나지도 못한 내가 타인의 작품에 마구 손을 대었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그 작품에서, 작가의 집필 의도를 조금이라도 살려 교열해 주었으면 게재되지 않았을까 반성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실수했을 때 너그럽게 용서해 주는 것, 이것이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지 않을까? 다만 용서받은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없으면 용서를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타성을 키워주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너그러움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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