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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꾸는 꿈’을 또다시 펼쳐보며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향희(고양)

수필가·경기도 고양문인협회장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1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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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맨 처음 읽은 문학작품을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아버지의 편지글이라 대답할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장롱 속 빨간 나무 상자에 모아 두었던 편지 다발을 발견해 읽기 시작했고, 다 읽었을 즈음엔 방 안이 온통 발그레 물든 듯했다. 아기 둘을 두고 군에 간 군인 아빠 시절 아내에게 보냈던 아버지의 편지를 넋 놓고 다 읽었던 것이다.
두세 살 된 연년생 아기와 집안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다. 서두는 주로 ‘기숙아, 보아라’로 첫 자식인 언니 이름으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사랑하는 그대에게’로 시작되는 못 견디게 그리운 아내에 대한 편지는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로 몽롱하고 아련한 것이 알싸하게 몸을 휘감아 오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사랑이란 말과 그대라는 말의 쓰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부부끼리 쓰는 말이지 함부로 써서도 안 될 말이라고 어린 마음에 새겨 두었었다. 형언할 수 없었던 그때의 감성이 내 문학적 감성의 시작이었다. 이후로 종종 엄마의 빨간 상자를 열어 보기 시작했고, 아홉 살짜리 어린 감성은 한 뼘씩 자라며 그 상자를 엄마의 보석 상자라 불렀다.
병상에서 쓰신 두 달간의 병동 일기 또한 아버지의 문학적 감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우리 네 자매가 모두 시인이거나 수필가로 문단에 몸담고서 배우고 있는 것이 이러한 아버지의 유전자 덕분이 아닌가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백일장 대회를 나갔었다. 연습도 하지 않고, 시가 뭔지도 모른 채 열심히 원고지를 메우고 나왔던 게 시와의 첫 만남이다. 시작은 제법 시라고 흉내를 내다가 중간쯤부턴 산문이 되어버린 것으로 어머니와 관련된 주제였었다. 백일장에선 등외였지만 그 글을 선생님께서 첨삭하신 후 시화를 만들어 교무실 옆 복도에다 걸어 놓으셨다. 그때 시란 저렇게 쓰는 거구나, 나도 도전해도 되는 것이구나 처음 알았었다.
하루에 버스 한 번 있는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에 도서관이 있기는 만무했다. 담임이셨던 구인화 선생님이 문예 담당이셨기에 우리 교실은 도서관이나 마찬가지였고, 세계명작이나 전래동화, 안데르센, 한국 위인전 등의 전집을 갖추고 있어 기본적인 필독서를 읽을 수가 있었던 것이 내 두 번째 문학적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5학년이 되어서는 담임 황진원 선생님께서 백일장 군대회에 나가라며 시조를 가르쳐 주셨고, 1년 더 성장했으니까 시조란 어떤 것인가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줄곧 백일장을 나갈 때마다 상을 받았었다.
진주 삼현여고 시절 교장이셨던 최재호 선생님의 시조에 곡을 붙인 가곡 <석굴암>을 배우면서 시조에 대한 매력을 가졌었고, 그해 외솔회 주최 백일장에 나가 시조를 써서 차상을 받았었다. 문학소녀로 중고등 시절을 보내면서 산문이든 지역대회든 전국대회든 입상권에 들었던 나로서는 대학엔 당연히 국문과를 가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했었다.
대학에서는 학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교지를 만들기도 하면서 시를 실어 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망설여졌다. 국문과라는 게 부담스럽기 시작했던 것이다. 국문과가 이 정도인가 생각하게 만들면 어쩌지? 하는 공연한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과에서 하는 시화전 외엔 참여하지 않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못될 바엔 아예 등단도 하지 말자는 교만한 건방을 떨었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나의 한계를 아는 소심함과 자신 없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졸업 후 그렇게 아마추어로 고향의 문인협회 발족 멤버가 되어 활동하다가 결혼을 하고서 육아를 핑계로 그마저도 뜸할 때 동생의 등단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등단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사람 나이 사십에 이르면 불혹이라 부른다. 이름을 붙인 공자의 속내야 차치하고, 나는 그 의미를 ‘유혹당하여 다시 도전하기’로 붙이고 싶다. 세상의 모든 비례(非禮)에 물시(勿視) 물청(勿聽) 물언(勿言) 물동(勿動)하되 예와 선엔 유혹당하라. 갈등하지 말고 시작하라.
되찾을 수 있는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곧장 길을 떠나라. 그리하여 너무 늦었다는 악마의 모든 유혹에 불혹하라!

 

등단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썼던 수필 「다시 꾸는 꿈」의 일부이다. 선한 유혹은 불혹의 나이여도 당해야 한다는 의미로 재해석하며 썼던 수필이다. 뜻밖의 동생의 등단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웠던 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참에 마침 대학교수로 퇴직 후 일산으로 오셔서 수필 강의를 하고 계시던 故 정주환 교수님을 만나 수필로 등단하며 문단에 정식으로 발을 들인 것이다.
수필의 스승이 정주환 교수님이라면 이때 만난 김종 교수님은 나를 시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분이시다. 신인상 시상식에서 처음 만난 교수님은 내게 언젠가는 시로도 도전을 하라는 말씀을 하셨었고, 나는 수필집을 내고 나서의 문제라고 내심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었다. 수필집 『꿈을 다리다』의 서평을 써 주시면서 “이 교수의 글이 좋아 서평을 쓰는 동안 참 행복하고 고마웠어요, 수고했어요” 하시던 말씀을 이날까지 큰 칭찬으로 가슴에 안고 있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는 밤
가을이 내 가슴을 헤집고
별똥별처럼 내려앉았다

 

빨갛게 목젖이 달아
업보인 양
마른침을 삼키는 나의 노래는
그래도 불러야 할
사단조의 못갖춘마디

 

여울로 내려서서 춤추는 그대
산다는 것이 손금 들여다보듯
그리 빠안하지만은 않을 텐데
살을 꼬집어가면서도
끝까지 불러야 할
마지막 내 사랑의 노래는
지금도 시지푸스의 산을 오르고
그보다 더 무거운 바위를 안고
천 리 또 만 리
메아리로 날아오른다

 

갖춘마디의 퍼즐을 찾아
달빛을 타고 신화를 건너는
그대와 나 발뒤꿈치엔
가을이 시를 지으며 따라가고 있다

 

김종 교수님의 심사평을 받은 등단 시 중 하나인 「못갖춘마디」의 전문이다. 이로써 난 시인이 된 셈이지만 두 가지를 한다는 것이 아직도 조심스럽다. 중국 문인 구양수의 말처럼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하며 수필가로서, 시인으로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다상량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얼핏 ‘다想량’이겠거니 했었다. ‘다商량’이다. 단순히 상상하고 대상을 생각하는 想이 아니라 장사를 할 때 자기의 이익만을 따지지 않고 물건의 쓰임과 서로의 입장과 세상에 미치는 영향까지 여러 가지를 헤아려야 한다는 뜻의 商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나의 商이란 내가 쓰는 작품이 훗날 우리말과 글을 보존하는 국문학사적 사료(史料)의 하나가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며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사람은 유덕자(有德者)여야 한다는 정주환 교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있다.

 

호수의 연꽃밭은 오일장처럼 퍼덕거린다. 후르르, 무게를 털어내는 연하(蓮荷)에서 곡예를 타던 물방울이 쏟아진다. 조약돌만 한 물방울만 연하에 남아 하얗게 반짝인다. 내리는 웃비에 채워지면 쏟고 결국 연하는 자기 힘에 맞는 양만큼만 옴팡지게 안고 있지 않은가. 계영배처럼!
미니멀 라이프가 대세인 시대, 연하처럼 비우고 또 비워 여백을 만들 일이다.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생각도 비울 일이다. 집착이든 물욕이든 탐심이든 버릴 줄 알고 비울 줄 알 때 여백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수필 「여백」의 일부이다. 비록 실천이 어렵다 할지라도 자신을 들여다보며 맑은 삶의 결을 만들어 가는 작가로서 문단의 숲속에서 작으나마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싶다. 독자들에게 스스로 정한 작가로서의 사명으로 힐링과 행복을 전하며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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