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1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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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기르려 합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긴 머리를 가지고자 합니다. 이제 더 이상 긴 머리를 못 해 볼까 봐, 남은 세월 동안 다시는 긴 머리를 가져 보지 못할까 봐 내 생애 마지막으로 머리를 기르려 한다는 선포부터 하고 머리를 기르려 합니다.
우스운가요? 그깟 머리를 자르고 기르고자 하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로운 선택이냐고 말씀하시렵니까? 그러나 그런 하찮은 선택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기도 하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성격 탓이긴 하겠지만 결혼 전에 딱 한 번 긴 머리를 해 본 적이 있고 항상 귀밑 2센티미터 단발머리이거나 커트머리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세월을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허리까지 오는 갈래머리를 곱게 땋아 기르고 다녔지만, 중학교 입학 무렵 더 이상 어머님의 손길만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간편하고 혼자서도 쉽게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짧은 머리를 해야 했습니다. 여고 시절은 두발 자율화가 되어 갈래머리를 잠깐 해 보기는 했지만, 긴 머리카락을 바람결에 낭창낭창 날리면서 도도히 걸어 보았던 젊은 날의 추억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스물두어 살 시절, 요절한 가수 김정호 님의 <긴 머리 소녀>가 한창 유행할 때에도 유행 따라서 머리를 기르고 싶었는데 근무하던 직장의 규칙으로 인해 귀밑 2센티미터 이상의 머리는 허용되지 않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경범죄라는 것도 있고 이런저런 규제가 많아서 남자들의 장발이나 여자들의 스커트 길이를 경찰관이 줄자를 가지고 쫓아다니며 단속을 했습니다.
내가 취직을 한 회사는 백화점 근무와 신제품을 교육하는 화장품회사의 추진 판촉부이었는데 항상 단정한 이미지의 짧은 머리와 회사의 상품을 대신하는 완전한 이미지 메이크업을 강조하였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초등학생도 립스틱을 바르고 온갖 요상한 무늬에 총천연색 매니큐어로 손톱에 그림을 그리고 칠을 해서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지만 내 나이 스물두어 살. 그때는 긴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이 청순함과 순진함을 대표하는 처녀의 최상의 무기며 자랑이었습니다.
약속이 있어 친구를 만나야 하는 날은 퇴근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가 눈 화장을 휴지로 닦아내고 입술을 지우고 손톱을 지우느라 야단이었습니다. 또래의 친구들은 아직 대학생의 신분인데 집안 형편상 취업을 서둘렀던 어린 나이에 완전 화장을 하고 성숙한 여인처럼 보여지는 것이, 아니, 시대를 앞서가는 신여성처럼 보여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이유인 것입니다.
급여도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보다 많고, 공개채용으로 입사하기도 힘들었던 직장을 쉽게 접었던 것은 어느 날 완전 메이크업을 하고 백화점 고객들께 신제품 품평회를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첫사랑이기도 하였던 남자 친구가 고개를 떨구고 “너는 내가 아는 명례가 아닌 ○○○이라는 회사의 이미지만 준다”라는 충격적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신여성이고 싶지도 않았고, 회사를 대변하는 메이퀸이 되기도 싫었습니다.
사람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겉으로 보여지는 외모 때문에 상상 이외의 부풀림으로 과대평가 되거나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머리 모양이 수반된 외모의 완성은 재미있는 통계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교도관 근무를 하는 여고 동창 이야기에 따르면 죄를 짓고 들어오는 여성 중 머리가 긴 여자는 하나같이 간통죄이고 짧은 커트머리의 여자들은 금전에 관련된 사기범들이라 합니다.
긴 머리카락을 육감적으로 섹시함과 결부시키는 해석은 그다지 무리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짧은 머리의 여성이 아무리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육감적 표정을 짓는다 해도 이성으로 하여금 섹시하다는 극단의 동물적 감정을 끌어내지 못함은 바로 머리가 길고 짧음에서 생겨진 차이점일 것입니다.
그러면 육십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저는 섹시해 보고 싶어 머리를 기르려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완전 메이크업이 결점을 커버해 더욱 성숙한 여인으로 남의 시선을 모을 수 있었던 그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나는 나를 원하는 단 한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 되면 그만입니다. 이제 머리카락 새치가 많아서 한 달에 두어 번은 염색을 해야 하고, 탄력도 없고 윤기도 없어,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것이 무리인 나이임을 알고 있습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울리는 머리스타일은 손질하기 편한 짧은 커트 머리나 흔히 말하는 아줌마 파마머리인 것도 알지만 새삼스럽게 머리를 기르려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구십을 바라보는 시어머니께서 결혼 전 첫 대면에서 보았던 저의 긴 머리를 떠올리시며 아직도 내 나이가 청춘인 줄 아시는지 제게 그 시절의 긴 머리를 다시 해 보라고 권유(?)하셨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요즘 들어서 더욱 입맛을 잃어 잡수시는 것도 없고 문밖출입도 하지 않으십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는데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결혼해서 단 한 가지, 시어머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얻었다 자부합니다. 그것은 서로 주고받을 것이 없는 가난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사랑입니다.
여자의 일생이 어머니와 닮고 어머니의 일생이 나와 다르지 않음에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내 자신에 대한 에고입니다. 타고난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고 젊은 날에도 길러 보지 못했던 머리를 기르겠다는 지금의 생각들이 어쩜 내일은 “긴 머리에 묻혀 얼굴이 더 거칠어 보이고 어쩌구∼ 부질없는 짓”으로 변해 머리를 자르려 할 것 같아 다시 한 번 단도리하듯 부르짖습니다.
“머리를 기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