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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유정(無常有情)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조재흥(三笑)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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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의 세월에 실려 칠순에 닿았다. 그 중반으로 다가간다. 유한의 의미를 채 알지도 못했는데 서산으로 해가 기운다. 설 핏한 석양빛이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심경에 잠기게 한다.
칠순 언덕은 고향의 뒷동산처럼 야트막하다. 언덕을 오르듯 어느덧 쉬 올랐다. 저만치 보이는 팔순 고개가 우뚝 높다. 백세인생이 자주 회자되지만, 다음 구순 고지는 저 멀리 고산준령의 산마루일 것이다.
이 순간, 여기에서 오늘을 딛고 내일을 향한 인생길을 걷는다. 언제 그랬던가 싶게 평탄길이 점점 오름길로 변한다. 지나온 길 같지 않다. 하루24시간, 한달30여일, 한해365여 일, 백세인생 백년은 36,500여 일, 한눈에 들어오는 세월이다. 이렇듯 정량화된 시간은 으레 가늠되지만 금방 스쳐 오가는 마음 시간은 도무지 짐작이 안 된다. 산책하듯 담담하게 동행해야지 작심하지만 쉽지 않다. 마음의 세월은 빨리 흐르고, ‘세월이 쏜살같다’를입에달고오늘에이른것이 아니랴. 그 흐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뜀박질하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앞만 보고 종종걸음으로 오늘 여기에 이르렀는데, 그 관성에 여전히 휘둘리는 자신을 돌아보니 허허하는 웃음이 절로 난다.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는 지난 세월에 도리어 무슨 보상이라 도 받아내고 싶은 억하심정이 든다.
유한의 인생, 어떻게 유수 같은 세월에 배를 띄우고 무상의 물결 위에 서 유유히 노저어 갈 수 있을까. 느림의 미학으로 명상하는 마음으로 비우고 낮추면서 유유자적 인생길을 걸어가야지 마음을 다진다. 후반 내 인생의 바람이며 목전 화두다.
세상에는 무엇에도 항상(恒常)함이 없다. ‘세상만사가 변화무상(變化 無常)하다’는 바로 그 무상(無常)이다. 무상이란 항상 함이 없는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인생이 무상과 만나면 ‘인생무상(人生無常)’이 되고 ‘인생허무(人生虛無)’로 다가선다. 인생이 변화하는 현상으로서, 무상의 언어적 의미에 더 전착하고 싶은 나에게 허무로서의 무상이 나를 아리게 한다. 무상을‘항상(恒常)함이 없다’는 언어 본래적 의미로 받아들여, 인생이란 허무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현상으로 인식함으로써 허무감과 멀찌막이 거리를 두고 싶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실존보다 존재에 더 많이 집중했던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가 언급한‘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의미 를 음미하면, 언어는 존재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만다는 사실이다. 인생이 그 자체로 허무할 때라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으로서 무상의 언어적 의미를 가까이하면 내 인생 종반의 모습이 다소나마 흔들리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단 한 번의 인생, 내 인생 나날이 조금이라도 허무감으로 손상되거나 덧없으므로 내몰리게 허용하고 싶지 않다. 생기(生起)로서 시작된 생(生)이 생존을 위한 수많은 선택과 무상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 결국 소멸에 이르는 것, 그 변화 현상의 모습이 무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어느 날 갑자기 허무감이 다가와 까닭 없이 덧없음에 휩싸이는 경우라도 필연적 변화로서 무상의 의미를 깊이 수용하여 허무의 감정 따 위와 거리를 둘 수 있길 소망해 본다. 변화의 과정과 현상으로 삶을 대하는 자세를 가다듬어 세월 따라 의욕을 잃지 않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 통해 허무감과 무기력에 쉬 빠지지 않는 마음공부가 되길 소망해 본다. 삶의 이런 태도를 사랑하고 견지하면서 후반의 나날을 보내고 싶다.
언제나 뒤돌아 보아지는 ‘과거’, 그 연속 선상에 맞닿은 오직 찰나로서만 존재하는 시각인 ‘현재’, 시시각각 쉽없이 도래하는‘미래’, 그 시 간의 흐름이 영원히 펼쳐질 듯 느끼며 저마다 살아간다. 삶이란 현재 시각으로서 항상 도래되지 않은 내일, 아직은 오지 않는 ‘미래’의 영역, 그 내일을 영원한 것으로 꿈꾸며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간 흐름에 내맡겨져진 인생, 유한의 실존을 직시하고 그 속에 무상을 일종의 변화하는 현상으로 수용함으로써 지금 도래되는 오늘, 이 순간순간을 나는 더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세월 따라 쇠락(衰落)하게 될 수밖에 없는 내 심신에 쇄락(灑落)의 기운을 채우면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무릇 만상에 항상함이 없는데, 유독 내 인생만 항상하길 바란다면, 과도한 욕구이며 어쩌구니 없는 발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인생이 무상하지 않고 항상할 수 있다면, 또 인생이 유한하지 않고 영원할 수 있다면,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변고가 될 수 있으랴? 가열 차 게 심화하는 경쟁, 끝 갈 줄 모르는 갈등 그리고 그 수많은 인간사의 모 순과 충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우리네 삶터엔 그토록 만인이 희구하는 행복이라는 언어가 완전히 종 적을 감출 것이다. 세상만사, 유한의 배경에 무상으로 직조되는 것이 신의 의도라면 신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최고의 축복이며 아름다운 선 물, 섭리일 것이다.
저만치 바라보이는 인생 고갯길과 또 그 이후 도래될 수 있는 내 인 생 고갯마루를 떠올려 본다. 그러면서 채 알지 못한 유한한 인생의 묘미와 무상한 삶의 아름다움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내 삶의 노래, 무상(無常)의 정(情)을 나직이 부르고 싶다. 
 

세월이 앞서 저만치 손짓하는 날/ 쉬어 갈 요량으로 손사래 치리/ 세월 이 뒤따르며 나를 부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어우렁더우렁 함께 가리/ 못다 한 노래는 뜨겁게/ 무상유정은 아름답게/ 노래하리.
 

시간과 일 그리고 상황에 쫓겨 예전에 몰랐거나 잊고 살았지만, 이제 유유자적하며 명상할 수 있는 삶의 모습, 또 다른 진정한 내 활기찬 삶 의 모습이 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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