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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친해지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서혜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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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병원 진료 의자에 앉아 있다. 의사가 다가와 아, 하세요 할 때를 기다리는 그 잠깐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요사이 드나드는 병원이 부쩍 다양해 졌다. 살면서 몸에 칼 대는 일 없기를 바랐지만, 운명은 소원을 늘 비껴 가고 싶어한다.
이동 침대에 누워, 수술실 문밖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곧바로 올려다보이는 천장에 수술 환자의 불안을 덜어주고 투병에 용기를 주는 문구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기억해두고 싶어 머릿속에 입력을 시도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퇴원 후에는 한 글자도 기억나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불안과 두려움에 위축되어 있는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켜 주는 좋은 문구였었다고만 기억 하고 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입원실을 찾은 의사는 내 손을 꼭 잡고 수술이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수술 전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낯선 의사에게 감동하는 순 간, 나도 냉담을 풀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품어 보았지만, 감동은 그때뿐이었다.
엉덩이(엉치) 아픈 증세도 나이 든 노년에 찾아오는 질병 중의 하나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의자에 오래 앉아 생기는 일시적 증세로 자세가 불량했던 탓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는데, 그와 같은 생각이 자신에게 얼마나 무책임했었는지 이제 후회가 된다. 수술 후 연이어 정신을 잃었다. 그때 그 느낌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불쾌하다. 내 마지막 순간을 미리 보고 온 것 같아서다. 잦은 혼절은 장기를 잃어버린 육신이 피드백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의사는 그런 후 유증에 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운동만을 강조했다.
난 의사의 말을 믿고 열심히 탁구장을 찾았다. 빈 탁구장 안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서비스 연습뿐이다. 눈높이 위로 띄운 공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별안간 머릿속이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쓰러질 낌새가 느껴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웅크리고 앉으라는 주위의 충고는 정말 현실성이 없었다. 이웃의 충고대로 실천에 옮겨보려고 하는 순간, 이미 정신줄은 저만치 달아나버린 후였다. 앉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무게중심을 엉덩이와 꼬리뼈로 가게 한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 하니 엉덩이와 꼬리뼈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후부터 걸음을 옮기기가 불편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꼬리뼈와 허리 디스크, 고관절에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하였다. 엉치가 아픈 것은 이상근이 굳어져 나타나는 좌골 신경통인 것 같다고 한다. 다리로 내려 가는 혈관을 굳은 근육이 누르고 있어 혈액순환이 자유롭지 못해 나타나는 통증인데, 허리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과 간혹 헷갈리는 의사가 있다는 것을 TV의 의학 프로그램에서 본 적 있었다.
내가 가는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는 찾아내기 힘들다는 그 부위를 용케 잘 집어냈다. 신뢰가 간다. 믿고 치료를 받고 있지만, 효능은 여전히 미약하다. 걸으려면 엉치(엉덩이) 부분에 통증이 오는 것과 동시에 발목이 화끈거린다. 마치 발목 쪽에 누군가가 불쏘시개로 불을 지피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정맥 수술을 받으면 괜찮으려나 하고 흉부외과에 가 하지정맥 수술을 받아보았다. 그러나 하지정맥은 좌골 신경통과는 무관한 모양이었다. 심하게 아플 땐 정형외과에 가서 아픈 부위 깊숙이에 주사를 맞는다. 그리고 진통제를 먹는다.
내과, 치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안과… 나날이 방문해야 할 병원의 종류가 늘어나고 있다. 주위의 성화로 대학병원에 가 종합진 단을 받아보려 소견서를 받아 놓았지만, 아직 결정을 못한 채 미적거리 고 있다. 병원 대란은 핑계고, 큰 병원에 안가고 나을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치과는 당장 시급하다. 먹어야 하니까. 이럴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은 얼마나 허무한 생각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어떤 치료를 할 것인가. 2주 만에 찾아낸 충치를 발치하면서 심한 치통은 멈췄지만, 신경치료가 길어지고 있다. 그동안 마취주사 없이 신경치료를 해주어서 고통이 덜했었는데, 오늘도 주사 없이 치료를 해 줄 것인지 내심 두근두근 궁금하다. 이렇듯 남들처럼 곱게 나이 들어가지 못하고 이곳저곳, 야금야금 상해가는 내 꼴이 정말 한심하다.
아무래도 사방 군데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호소하는 노인의 여정이 시작된 것 같다. 서글프다. 새치기로 예약 시간을 잡아줬다고 생색을 내 던 간호사의 말이 괜한 공치사는 아니었었다. 의사는 이 환자 저 환자를 돌아다니며 치료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창밖의 거리를 하릴없이 바라보며 내 차례를 기다린다.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는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예민해진다. 그렇지만 환자는 육신의 고통을 종식시켜 줄 의사를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의사는 신의 영역에 있다. 예전에는 의사의 존재를 무겁게 느끼지 않았었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그 존재가 점점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내 고통에 귀기울여 주고,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성심성의껏 치료해줄 의사와 친해져야 할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의대생 증원을 반대하며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들의 단체 행동이 세간을 잠시 시끄럽게 하고 있지만, 난 의사의 인류애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전 세계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의료의 손길을 나누는 대한민국의 의료봉사팀과 팬데믹을 무사히 극복하게 해준 의사들의 헌신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 세상을 떠난 문학 동호인 중의 시인 한 분은 의사가 들려주는 죽음의 선고를 녹음해와 동호인들에게 들려주었다. 6개월을 살기 힘들다는, 사형선고 같은 의사의 진단 결과를 우리는 투병 중인 당사자 앞에서 들으며 안타까움에 몸둘 바를 몰라했었다. 하물며 이와 같은 진단 결과를 직접 들어야 했던 시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느 날 내게도 내려지지 말라는 법 없다. 그럴 때 의사는 하느님일까?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사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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