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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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뚱 기우뚱하면서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의 몸짓 언어를 부모는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반가워한다.
‘아이구, 이제 홀로 설 줄 아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아기는 이리 뒹굴 저리뒹굴,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엎드려서 머리 꼬누기 를 수십 수천 번을 하고 무언가 붙잡고 일어서기를 하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동물의 왕국>에 보면 얼룩말이건 사슴이건 사자건 새끼가 태어나면 네 발로 비틀거리다가 일어서는 모습을 본다.
‘인간(人間)이란 사람 사이’다. 홀로 서기를 평생 배워도 그 끝을 모르는게 우리의 삶이 아니었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인간이란 존재는 200만 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간까지 어떻게 진화 발전되어 왔는가. 언어와 도구의 사용으로 다른 동물계와는 다르게 발전 진화해 온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삶은 지능과 과학의 발달로 더 영악해지고 더 똑똑해져서 인 간이 아닌 독립된 존재로 변질된 현재의 모습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오늘날의 이 세상에 인간이기를 내던진 사람들보다 참 인간다운 삶 을 살아가는 수많은 참인간의 모습을 보는 감동이 있어서 그래도 현재 를 살아갈 희망이 있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손잡고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한 번 산책길에 나선다. 낯 모르는 이들이 우리 곁을 지나다가 우리 내외를 보며‘아름답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면 조금은 쑥스러워지기도 한다.
저 지난 날, 나는 미스 김의 손을 마음 놓고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연애를 했다. 내 나름대로 미스 김의 손을 잡고 걷거나 껴안거나(?) 하 는 그 황홀한 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건 결혼을 약속한‘절대적 책임’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세월 속에서 정월에 약혼식을 하고 섣달에서야 결혼식을 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한여름 약혼여행(?) 이랍시고 명명하고서야 미스 김의 손을 잡고 마곡사 계곡을 걸어볼 수 있었다.
“여보, 오늘 넥타이는 뭐로 맬까? ”
아침 출근시간에 아내에게 많지도 않은 넥타이 중에서 골라주기를 바라면서 와이셔츠를 입는다.
“오늘은 이걸로 매셔요.”
이런 일상의 세월을 30∼40년을 살아왔는데, 현직을 떠난 지도 한참, 이제는 넥타이를 뭐로 하던 문제가 없는데도, 오랜만에 정장을 하고 나 설라치면 아내는 역시 넥타이를 고른다.
어른들이 모여 나랏일을 하는 국회에서 넥타이를 점잖게 맨 분들이 떼거지로 나와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삼류 조폭들의 말과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분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은 물론이고, 그 꼬락서니도 말씀이 아니다.
깡보리밥만 먹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먹거리에서,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자랑스러운데, ‘바르게 가르치고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政治’는 없어지고 참 남부끄러운 모습이 보기에 안타깝다.
패거리 정치를 자랑 삼아서 아직도 제 뜻을 가지고 제 주장을 펴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 뜻은 없고 높은 독재자 한 사람만 있을뿐.
엄마 손을 꼭 잡고 너덧 살의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가는 모습을 보 기도 어려워진다. 낳으면 키우기가 힘들고, 천문학적 교육비와 의료비, 주거비 등등을 어떻게 부담하며 골머리를 썩느냐는 것이다. 그저 두 내 외만 잘 살면 그만이란다.
산에는 나무들이 어우러져서 햇살을 받으며 숲을 이루고,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살아가는데, 주체할 수 없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지구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인간만이 자연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현실이 된 지도 이미 오래다.
어깨동무를 하고 인간과 지구상의 생물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은 꿈일까. 하기야 앞에 있는 사람에게 증오를 사랑으로 착각하고, 큰소리 치는 것이 잘하는 줄 아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현실이 슬픈 일이다. 서로 다정하게 껴안으면 행복할 수도 있는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떵떵거려도 결국은 빈손으로 홀로 떠나는 것이 인생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