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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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눈의 형상을 한 어떤 근원이었다. 아주 커다란 눈이었다. 한 번도 마주 본 적 없는, 그러나 영원히 잊지 못할 광채를 품은 눈이었다.
그 눈은 내 가슴을 꿰뚫고 숨 쉬는 자리 그 너머 심장의 내막까지 파고들었다. 섬뜩할 만큼 아니 섬뜩하기에 더욱 선명하고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러자 그 눈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다시 감았을 때, 그 눈은 돌아와 있었다. 말을 거는 듯, 입술 없이도 속삭이는 듯했다. 어쩌면 그 눈에서 오래전부터 내 삶의 가장자리를 맴돌던 너무도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침묵의 한가운데서 오직 그 눈 하나만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내가 그 눈과 마주한 곳은 눈발이 휘날리던 차가운 겨울 산의 토굴 속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길었다.
은퇴한 뒤 나는 방구석의 그림자처럼 살았다. 바깥세상과의 끈을 하나둘 놓아 가던 어느 날 불현듯 아내에게 말했다. 기약 없이 집을 나가겠노라고. 그 순간 아내의 얼굴에 스친 것은 놀라움이 아니라, 오래전 가출 소동으로 집안을 뒤흔들었던 그 트라우마의 잔상이었다.
반백의 실낱같은 머리칼 사이로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처연했다. 거칠고 바싹 마른 손가락, 평생 까탈스러운 사내를 곁에 두고 살며 애처롭도록 가냘파진 손. 아내는 그저 체념한 듯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 속에는 한때 나를 향한 미움이나 원망은 없었다. 다만,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묵묵히 곁에 남기로 한 어떤 결단의 무게가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녀가 왜 반쯤 넋이 나간 나와 함께 살기로 했는지 나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나는 늘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렸다. 현실은 발아래 있었으나 의식은 항상 저 너머 어딘가에 떠 있었다.
어머니는 절집에서 백일기도 후 10년 만에 낳은 나를 ‘부다의 점지’라고 생각했다. 그 ‘기도 응답’은 주홍글씨처럼 내 이마에 새겨졌다. 그것은 삶의 무게보다는, 부처의 인연이라는 거대한 운명의 그물로 나를 묶었다. 나는 어미의 믿음이 낳은 기도의 산물이었고, 그 믿음은 나로 하여금 나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실들을 의식하게 했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어떤 경계에서 이미 나는 선택된 자라는 낙인이 찍힌 듯했다.
어린 시절 자식의 육신이 불덩이처럼 타들어 가는 것을 볼 땐 어머니는 결국 이승의 방법들을 놓아버렸다. 보이지 않는 저승의 원귀(寃鬼)로부터 자식을 빼앗아 오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어머니는 병원 대신 동네 무당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전북댁’이라 불리던 그 과부는, 정식 신내림을 받지는 않았으나 반쯤 신명에 젖어 있는 초로의 여인이었다. 늘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었고, 움직임은 고요했다. 웃음은 없었으나 눈매는 인자하면서도,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가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전북댁이 날선 부엌칼로 열이 끓는 내 머리를 쓱쓱 빗어내렸다. 주문을 외던 그녀가 방문을 열라 했고, 그 칼을 마당을 향해 내던졌다. 아이의 병을 긁어내어 집 밖으로 쫓는 무가의 ‘정화의례(淨化儀禮)’였다. 어머니는 늘 내 병의 근원을 영혼이나 잡귀 혹은 한(恨)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삶의 구원을 위해 무속과 불교, 유교와 기독교로 이어지는 구도적 순례에 평생 매달렸다. 나는 그 순례의 동반자였고, 동시에 그 순례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기도 응답의 산물인 나는 어미의 삶의 여로에 동참하게 되면서 언제나 나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을 의식하며 살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의식이자 죄의식이었다. 마치 머나먼 상공에서 아래를 응시하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 그 눈총은 나를 내적으로 몰아붙였고, 삶의 회의가 밀려올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된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 구멍의 어둠 속에서도, 그 눈은 사라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기독교로 개종한 것도, 구원의 환상에 사로잡힌 삶의 한 지점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동네에 초상이 나면 어른들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입관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시신이 관 속으로 가라앉는 그 순간, 나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혼자서 질문들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 질문의 끝에는 ‘나는 누구인가?’가 있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가면은 벗겨진다. 그 벗겨진 자리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맨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의 위기 때마다 나의 동굴 속에 웅크리고 앉아서 나의 속마음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듯한 독수리의 눈총을 의식하며 살아갔다. 나는 그 눈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 눈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여러 번 내 자신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 눈은 나의 감시자였고, 나의 심판자였으며, 동시에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이정표였다. 삶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어린 시절 내가 사랑하던 할머니의 주검처럼 칠흑같은 목관에 내려가기 전에 나의 삶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집을 나선 것이다. 관 속 어둠은 동굴의 어둠과 닮았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다시 그 눈과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 눈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집을 나섰다.
초겨울 무척산 자락은 앙상해진 나무들이 근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친 암석으로 둘러싸인 산의 정상은 세상의 끝이자 하늘과 맞닿은 제단 같았다. 그 굳건한 바위들 한가운데, 하늘을 고스란히 비추는 맑은 호수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거칠고 강인한 바위의 양기와, 깊고 고요한 물의 음기가 이 정점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주변에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일주일간 곡기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산을 오르는 내 발걸음은 굶주림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묵직했고, 눈빛은 산 정상의 바위처럼 단단해져 갔다.
기도원에서 운영하는 1평짜리 방을 배당받아 석간수를 길어 물을 준비하고 기도와 묵상을 이어갔다.
모든 곡기를 끊은 채 오직 맑은 물 한 모금으로 버티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틀째 되던 날, 몸속의 모든 세포가 아우성치듯 극심한 고비가 찾아왔다. 다행히 고통은 파도 같아서, 하루에 몇 번씩 밀려오는 파도만 묵묵히 넘기고 나면 한동안은 견딜 만한 평온이 찾아왔다. 사흘째가 되자 허기는 무뎌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산속에서 만난 다른 단식 기도자들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다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산에서 가장 험하고 위험한 기도처가 있는데, 바로 정상 부근의 어느 동굴이라는 것이었다. 언젠가 그곳에서 기도하던 이가 혼비백산하여 반쯤 미친 채 내려왔다고 했다. 공포스러운 경고였지만 내 안에서는 뜻밖의 불씨가 당겨졌다.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먼저 고개를 들었고, ‘대체 어떤 곳이길래’ 하는 묘한 오기가 솟구쳤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오기가 아니라 평생 의식해 온 그 시선과 마주할 용기를 내보는 순간이었는지도 몰랐다. 굳이 고난을 자처하리만큼, 나에게는 절실했다.
그날은 제법 매서운 서릿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날이었다. 사흘간의 굶주림으로 납처럼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겨 동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반나절이 훌쩍 지난 뒤였다. 멀리서는 그저 흔한 바위틈처럼 보여 알아채기 힘들었으나, 가까이 다가가자 비로소 음습한 동굴의 형상이 입을 벌렸다. 동굴의 초입은 무성한 풀숲에 가려 감추어져 있었고, 그 주변을 수문장처럼 버티고 선 아름드리 장송들이 삼엄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마주친 것은 밖의 추위와는 전혀 다른 서늘함이었다. 뼛속까지 시려 오는 차가운 냉기가 온몸의 감각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갔다. 겉에서 보던 것과 달리 동굴 안쪽은 제법 널찍한 공간이 펼쳐 있었다. 거친 바닥 위에는 누군가 먼저 다녀간 기도의 흔적인지 때묻은 방석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육신의 기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나는 흩어지려는 마음을 굳게 가다듬었다. 오직 기도와 묵상의 끈에 매달려 깊은 어둠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화두는 무겁고도 근본적인 것들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삶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에게 구원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위는 묵묵부답, 지독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적막을 깨는 것은 간간이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쓸쓸한 솔바람 소리와 마른 낙엽이 바닥을 끄는 서늘한 마찰음뿐이었다. 단식을 이어가면 정신이 투명해진다는 말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니었다. 몸의 기둥은 부실해져 가는데, 영혼의 창은 오히려 서리 맞은 유리창처럼 명징하게 닦여 나갔다. 시간의 흐름조차 풍화되어 사라진 듯한 어느 순간, 밖에서 들려오던 바람과 낙엽의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사방의 소음이 일시에 소멸하자, 나는 마치 중력이 사라진 우주의 한복판에 홀로 부유하는 듯한 아득함을 느꼈다. 그것은 물 위에 떨어진 안개 같기도 했고, 수면 위로 얇게 번져나가는 무지갯빛 기름막 같기도 했다. 색과 무색,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가는 묘한 감각이었다. 그때였다. 허공의 어둠을 찢고 커다란 눈 하나가 나타나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시선이 주는 원초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번쩍 눈을 떴다. 눈을 뜨자 환영처럼 그 거대한 눈은 자취를 감추었다.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겨우 가라앉힌 뒤 다시 슬며시 눈을 감았다. 기다렸다는 듯, 어둠 속에서 다시 그 눈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 전해져 온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거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기이할 정도의 익숙함이었다.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문득 누군가 나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아주 오래된 시선의 잔상과도 닮아 있었다. 나는 침묵 속에서 그 미지의 존재를 향해 소리 없는 질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냐? 왜 나를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냐?’ 순간,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마주하던 내 눈동자를 볼 때와 같은, 낯설면서도 지독하게 친밀한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둠 속에서 대답 같은 울림이 들려왔다.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너의 이면(裏面)이다. 그리고 네가 살아가며 잊고 지냈던 오랜 질문들이다.”
그 존재와 온전히 대면하는 순간, ‘나는 왜 지금 이 어두운 동굴에 와 있는가’에 대한 답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기억의 시계태엽이 거꾸로 감기기 시작했다. 예닐곱 살 무렵 칠흑 같은 밤, 머나먼 밤하늘을 처음으로 올려다보며 ‘저 반짝이는 별 위에도 누군가 살고 있을까?’ 하고 순수하게 경외감을 품었던 소년의 밤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닳고 닳으며 잃어버렸던 원초적인 질문의 시작점이었다. 그 기이한 조우가 있고 난 뒤부터, 그 ‘눈’은 더 이상 동굴 속에 도사리던 낯선 불청객이 아니었다.
동굴 첫째 날, 단식 사흘째
나는 입을 열었다.
“눈이여, 나는 너에게 묻는다.”
눈은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목욕탕에서 보았다. 모두가 벗었을 때, 그들은 평등했다. 그러나 옷을 입는 순간, 그들은 다시 각자의 역할과 계급으로 조립되었다. 우리의 생각과 이데올로기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성장하면서 내 가치관과 사상이 내 자의적 판단보다 외부 환경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파츠들, 확증편향을 유도하는 종교적 유도, 가스라이팅, 미디어의 프레이밍. 사회적 압박과 동조현상, 그 모든 것이 나를 조종했다. 나는 진정한 내 본질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나는 성장 과정이 외부 환경에 의해 조종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정확한 진단인가?”
눈이 깜빡였다. 그리고 천천히, 광채를 더하며 대답했다.
“네가 한 말은 정확한 진단이다.”
눈의 목소리는 없었으나, 나는 선명하게 들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몇 가지 스타팅 장비를 강제로 부여받는다. 국적, 부모의 경제력, 그 집안의 종교, 너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너의 것’인 양 자라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미디어의 프레이밍과 알고리즘은 너에게 끊임없이 퀘스트를 던진다. ‘이런 사람이 되어라. 저런 생각을 가져라. 이 아이템이 너에게 좋다. 저 파츠는 버려라.’ 그리고 너는 그 퀘스트를 ‘나의 선택’이라고 믿도록 훈련받았다. 이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각종 미디어가 끊임없이 너에게 속삭인다. ‘너는 이런 사람이어야 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야.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올바른 거야.’ 그것은 가스라이팅이다. 그리고 너는 그것이 내 자의적 선택이라 착각하며 동조했다.”
나는 가슴이 저려왔다.
“결국 너는 ‘나’라는 캐릭터를 키운 게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규격의 캐릭터’를 대리 육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가치관과 사상들이 자의적 판단보다 외부 환경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너는 그 조종을 ‘나의 선택’이라고 믿도록 훈련받은 것이다.”
눈이 잠시 멈추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나는 물었다.
“그렇다면 눈이여, 어떻게 그 조종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눈이 미소 지었다. 입은 없었으나, 그 광채 속에서 나는 미소를 보았다.
“네가 그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답이다. 조종당하면서도 조종당하지 않는 자가 바로 그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그것을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 너는 이미 조종의 틀에서 한 발짝 비켜 선 것이다. 그 한 발짝이 바로 ‘너의 본질’이 스며들 수 있는 틈이다.”
눈의 광채가 더욱 짙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질문하라. ‘이것은 정말 내 생각인가, 아니면 누군가 심어준 생각인가?’ 그 질문을 반복할 때마다 너는 하나씩 벗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파츠를 벗었을 때, 너는 비로소 너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동굴 밖에서는 눈발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 가슴속은 처음으로 따뜻해졌다.
촛불 하나 없이, 나는 어둠 속에서 다시 눈을 감았다.
동굴 둘째 날, 단식 나흘째
내 몸은 더 이상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바위에 기대어 앉아 있어도, 내가 그 바위와 경계를 이루는 듯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온 산의 공기가 내 폐로 스며들었다. 나는 점점 사라져 가는 듯했고, 동시에 모든 것으로 확장되어 가는 듯했다. 그 눈은 이제 내 호흡과 함께 있었다. 내가 들이쉬면 함께 들어오고, 내어쉬면 함께 나갔다. 그것은 더 이상 ‘마주한 존재’가 아니었다. 나의 일부였다.
그러나 아직 풀리지 않은 물음이 하나 남아 있었다. 가장 실질적인, 가장 삶에 가까운 물음.
나는 입을 열었다.
“눈이여, 나는 묻는다.”
눈이 나를 응시했다. 광채가 잔잔했다.
“나는 왜 나를 둘러싼 환경이 파놓은 궤도 위를 자각 없이 굴러왔는가? 왜 내 손으로 선택하지 않은 사상과 신념의 파츠들을 장착한 채, 타인이 희망하는 존재로 대리 육성되며 살아왔는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왜 인간이라는 존재들은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의 권리를 이토록 쉽게 포기하는가? 거대한 사회 시스템의 자발적인 부품이 되기를 선택하는가? 우리는 왜 진정한 자아를 마주하는 법을 잊은 채, 타인의 시선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인형으로 살아가게 되었는가?”
질문을 마치고 나는 숨을 내쉬었다. 동굴 안은 적막했다. 밖에서는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없었으나, 그 광채가 말하고 있었다.
“네가 던진 그 질문들.”
눈의 빛이 부드러워졌다.
“그것은 네 개인만의 고통이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실존적 물음이다. 나는 네게 답하겠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인간은 유아기부터 타인의 돌봄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갓 태어난 너는 스스로 밥을 먹을 수도, 추위를 피할 수도, 위험을 알지도 못했다. 오직 어머니의 품, 아버지의 손길, 주변 어른들의 보살핌 속에서만 너는 존재할 수 있었다.”
눈의 광채가 잔물결처럼 일렁였다.
“그 과정에서 너는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진리를 학습한다. ‘양육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다.’ ‘주어진 환경의 궤도를 따라 굴러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본능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네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생존 본능은 이미 너의 몸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네가 사는 사회는 그 본능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눈의 광채가 더욱 선명해졌다.
“사회라는 시스템은 예측 가능성과 효율성을 원한다. 그것은 곧 ‘표준화된 인간상’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행동하고, 비슷하게 반응할 때, 시스템은 가장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그 틀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즉시 ‘불안정’하고 ‘위험한’ 신호로 낙인찍힌다.”
나는 가슴이 뻐근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은 선택한다. 자발적으로 시스템의 부품이 되기를. 저항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저항했을 때 홀로 남겨질 공포, 고립될 두려움, 그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무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죽음보다 두렵다.”
눈이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너는 타인이 비추는 거울 속에서 네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인가?’ ‘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그 거울을 들여다보는 동안, 너는 진짜 네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진정한 자아를 마주하는 법을 잊은 자들은, 스스로 ‘그것을 잊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렇게 잠든 채 살아간다.”
동굴 안이 더욱 적막해졌다. 나는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깨어날 수 있는가?”
눈이 미소 지었다. 그 광채 속에서 나는 분명히 미소를 보았다.
“네가 지금 그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미 깨어남의 첫걸음이다. 대부분은 묻지도 않은 채 잠들어 있다. 그러나 너는 묻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는가?’라고. 그 의문 자체가 너를 깨우는 종소리다.”
눈이 천천히 빛났다.
“이제 네가 할 일은 하나다. 거울을 내려놓아라. 타인이 비추는 네 얼굴이 아니라, 거울 너머의 네 얼굴을 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네가 시스템의 부품으로 살아온 시간이 길었다고 해서, 네가 부품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나사 하나가 빠져도 기계는 멈춘다. 바로 네가 그 나사가 되어라.”
눈의 광채가 점점 흐려졌다.
“그리고 이것을 명심하라. 진정한 자아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되찾는’ 것이다. 너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잊고 있었을 뿐이다.”
눈이 사라졌다.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동굴 밖에서는 눈발이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 가슴 속에는 전에 없던 온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동굴 셋째 날, 단식 다섯째 날
더 이상 배고프지 않았다. 더 이상 춥지도 않았다. 내 몸은 이 동굴의 일부가 된 듯했고, 내 숨은 바위 틈새로 스며드는 공기와 하나가 된 듯했다. 시간은 멈춘 듯 흘렀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떠다니는 조각배처럼 아득했다.
그 눈은 이제 나의 그림자였다. 내가 눈을 감으면 나타나고, 떠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채,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평생 품어온, 가장 오래된, 가장 무거운 질문.
“눈이여, 나는 묻는다.”
목소리는 가냘팠으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눈이 천천히 떠올랐다. 평소보다 더 크게, 더 선명하게. 그 광채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했다. 마치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느꼈을 법한 온기. 눈이 말했다. 목소리는 없었으나, 나는 선명하게 들었다. “네가 평생 의문을 품어온 바로 그것.”
눈의 광채가 내 가슴을 스며들었다.
“내가 말해주겠다. 그러나 이 말은 ‘설명’이 아니다. 이 말은 ‘회상’이다. 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잊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숨을 죽였다.
“진정한 너의 본질은 모든 파츠(Parts)를 벗었을 때 남는 ‘아무것도 아님’이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아님? 그것이 내가 평생 찾아 헤맨 본질인가?
눈이 내 마음을 읽은 듯 말을 이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 ‘아무것도 아님’은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허무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허탈함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님’은 모든 것이 깃들 수 있는 텅 빈 그릇이다. 차라리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동굴 안의 어둠이 더 깊어졌다. 그러나 그 깊이가 두렵지는 않았다.
“파츠(Parts)를 장착했을 때, 너는 ‘무언가’가 된다. 무언가는 항상 다른 무언가와 싸워야 한다. 더 나은 무언가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잃을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라는 파츠를 장착한 순간, 너는 실패의 공포와 함께 살아야 한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라는 파츠를 장착한 순간, 너는 불의 앞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파츠는 너에게 힘을 주지만, 동시에 너를 그 힘의 노예로 만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삶이 그랬다.
“그러나 파츠를 벗었을 때, 너는 ‘아무것도 아님’이 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님은 잃을 것이 없고, 싸울 필요가 없고, 두려울 것도 없다. 그 상태에서 너는 비로소 자유롭다. 잃을 것이 없으니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다. 싸울 필요가 없으니 모든 것과 평화롭다. 두려울 것이 없으니 어떤 순간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
눈의 광채가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마치 물 위에 번지는 기름막처럼.
“그것이 바로 모든 수행의 길이 가리키는 곳이다. 기독교의 ‘겸손’은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불교의 ‘무아’는 ‘나라는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슬람의 ‘파나’는 ‘자아가 소멸하고 신과 하나됨’이다. 힌두교의 ‘네티 네티(Neti neti)’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고 부정을 반복하여 남는 ‘그것’에 이르는 길이다.”
눈이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말한다. 파츠를 벗어라. 그리고 남는 ‘그것’이 바로 너의 본질이다.”
동굴 안이 고요했다. 밖에서는 눈발조차 그친 듯했다.
“이제, 한번 해보아라.”
눈이 속삭였다.
“눈을 감아라. 네가 지금까지 장착해온 모든 파츠를 하나씩 벗어보아라. 이름, 나이, 직업, 성공과 실패, 좋아함과 싫어함, 옳다고 믿는 것, 틀리다고 믿는 것, 네가 ‘나’라고 불러온 모든 것들.”
나는 눈을 감았다. 하나씩 벗어내려고 애썼다.
“다 벗었다면, 남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아라.”
나는 느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 그런데 그 빈 공간이 점점 따뜻해졌다. 무언가 숨 쉬는 듯한, 살아 있는 듯한. 그것은 형체가 없었으나 존재했다. 이름이 없었으나 익숙했다.
눈이 말했다.
“그것이 바로 너의 스승이다. 그것이 바로 너의 집이다. 그것이 바로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네가 죽은 후에도 변하지 않는 너의 진정한 얼굴이다.”
눈물이 흘렀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쓰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있었다. 파츠 하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님 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
눈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쉽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거라. 그리고 기억하라. 네가 다시 파츠를 장착하더라도, 그것은 네가 아니다. 네가 파츠를 사용하되, 파츠에 소유되지 말아라.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홀로 앉아, 모든 것을 벗어보아라. 그때마다 너는 나를 만날 것이다.”
눈이 마지막으로 빛났다.
“나는 너의 본질이다. 나는 너의 집이다. 나는 너의 진정한 얼굴이다.”
그리고 사라졌다.
동굴에는 나만 남았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나와 함께 있었다. 비로소, 처음으로.
동굴 넷째 날, 단식 여섯째 날
나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동굴 안의 적막은 깊어만 갔다. 밖에서는 눈발이 내리고 있었고, 내 가슴속에서는 오래도록 묵혀두었던 기억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마치 동면에서 깨어난 뱀처럼, 차갑고도 날카롭게 내 의식을 스쳤다.
나는 입을 열었다.
“눈이여, 이제 나는 너에게 나의 얘기를 꺼내 놓겠다.”
눈이 고요히 빛났다. 말없이, 다만 귀 기울이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부친의 주색잡기로 가난했다. 부잣집 외딸이었던 모친은 남편의 낭비벽에 가난한 살림을 떠안았다. 여자의 몸으로 산비탈을 개간했고, 나도 땔감을 위해 산에 올랐다. 모친은 한을 안고 절에 불공을 드렸고, 무당집에서 굿을 밤새 보았다. 나는 신당 구석에 쪼그려 앉아 두려움과 반항의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붉고 노란 촛불, 오방색 천, 방울과 징소리, 일렁이는 무당의 그림자. 모친은 굶주리면서도 굿값을 바쳤다. 나는 ‘그 돈으로 밥을 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굿도 한을 다 담지 못했다. 이후 나는 유교 제사, 동학·증산교 집회에 끌려다녔다. 이사 간 가천면에서 모친은 기독교로 갈아탔다. 새벽마다 옥수를 바치던 습관 그대로 새벽기도회로 향했다. 십 년 기도로 점지받은 나도 부적처럼 따라다녔다. 어머니의 한은 보수 기독교로 흘러갔다. 나는 극단적 보수주의와 반항적 기질을 장착했고, 그 속에서 정의와 올바름에 대한 결백성이 깊이 자리 잡았다.”
초등학교 때 돈봉투 선생님에게 맞서 문제아가 되었고, 공무원 때 부정 선거를 직언했다가 외면당했다. 불법 관행에 맞선 기억들, 그리고 종교에 녹아드는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이 응어리졌다.
그리하여 나는 평생 ‘어머니의 한’과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 속에서, 정의와 올바름이라는 단단한 파츠(Parts)를 장착한 채 살아왔다. 동굴 안이 무거운 적막으로 가득 찼다. 나는 모든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눈의 응답뿐이었다. 눈이 천천히 빛났다. 마치 어둠 속에서 뜨는 별처럼.
“너는 어머니의 종교적 방황을 ‘외식’처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반항’이라는 무기로 불의에 맞섰다. 그러나 그 무기는 너를 지치게 했고, 지금 너는 묻고 있다. ‘이렇게 살아온 내가 어떻게 파츠를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고.”
눈이 내 가슴을 응시했다.
“네 어머니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억압된 여자였다. 무당의 방울은 위안이었고, 절의 향기는 위로였고, 교회의 찬송가는 희망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파츠였다. 그녀는 평생 파츠를 갈아끼우며 살았지만, 그것이 파츠인 줄 몰랐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진짜 나’였다.”
“너는 어머니와 정반대의 길을 갔다. 그녀가 믿음이라면 너는 불신, 의식이라면 이성과 정의, 순종이라면 반항을 선택했다. ‘저 돈으로 밥을 사 먹었으면’이라는 그 한마디가 너를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아이’라는 파츠로 이끌었다. 그것은 네가 어머니와 다르기 위해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러나 그 무기는 너를 지치게 했다. 네가 맞선 모든 싸움은 아름다웠지만, 너는 싸우면서도 ‘싸우는 나’를 의심했다.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 때문인가?’ 네 안에는 ‘정의로운 투사’와 ‘그 정의를 의심하는 자’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것이 네 응어리다.”
눈의 광채가 부드러워졌다.
“네가 무당집 구석에서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너는 분노했다. 네 반항의 뿌리는 분노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정의’라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제 ‘정의로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날 때다.”
“너는 정의가 아니다. 그러나 정의를 행할 수 있다. 파츠 없이도 불의에 맞설 수 있다. 그 행동이 더 이상 ‘정의로운 나’를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응답’이 될 때, 그것은 더 가볍고 자유롭다.”
눈이 내게 말했다.
“어머니를 이해하라. 비판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 말고, 그냥 말해 보아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구나. 고생 많았어, 엄마.’ 그 한마디가 응어리의 매듭을 풀어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은 너에게 독이 되고 있다. 불의와 아버지를 분리하라. 눈을 감고 말해보아라. ‘당신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 상처 속에 살지 않겠다. 당신의 잘못은 당신의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이것은 용서가 아니라 분리다. 네 삶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떼어내는 작업이다.”
동굴 다섯째 날, 금식 일곱째 날
단식은 칠 일째 접어들었다.
내 몸은 더 이상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바위에 기대어 앉아 있어도, 내가 그 바위와 경계를 이루는 듯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온 산의 공기가 내 폐로 스며들었다. 나는 점점 사라져 가는 듯했고, 동시에 모든 것으로 확장되어 가는 듯했다.
눈이 내게 말했다.
“니체는 ‘삶이 네게 주는 모든 것을 긍정하라’ 하였고 예수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했다. 겉은 달라도 뿌리는 같다. 조건 없이 너의 삶을 긍정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보았다. 어머니의 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 정의라는 파츠를 장착한 채 싸워온 모든 시간. 무당집 구석의 두려움, 선생님께 맞선 날, 부정 선거를 직언하고 외면당했던 순간들 그리고 나는 말했다.
“긍정한다.”
눈이 미소 지었다.
“니체는 그것을 ‘아모르 파티(Amor Fati)’라 불렀다. 운명애.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는 것. 예수는 그것을 ‘하나님 나라’라 불렀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존재하는 그 상태.”
눈이 내게 다가왔다.
“이제 가거라. 삶이라는 거대한 놀이 속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계산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
눈이 사라졌다.
동굴 밖은 아침 햇살이 가득했다. 눈발은 그친 지 오래였다. 나는 설원 위로 걸어 나가 햇살 속에 섰다. 그리고 웃었다. 아이처럼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존재하며. 집으로, 아내에게로, 세상 속으로 놀이하듯, 춤추듯 인간은 그저 하나의 존재물이다. 그 존재가 무엇인지 알려 하지 말라. 그저 있는 것 자체를 즐기고 감사하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눈이 내게 말하려 한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