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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뽑는 여자

한국문인협회 로고 서기향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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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그날이다. 6년 전부터 사나흘 주기로 서울 집과 시골 집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두 집을 오가며 지내다 보니 서울 집이 본집인지 시골 집이 본집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아니, 서울 집도 시골 집도 내 집이 아닌 떠돌이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시골 집은 남편이 태어난 고향집이다. 시부모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나도록 방치했었다. 마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지붕꼭대기까지 잡초들이 번져 흉가처럼 보여 개축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과 관련한 특별한 기억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어릴 때 살았던 과수원에 대한 기억이 유독 강하다. 기억에는 종류가 있다고 한다. 같은 공간에 있었어도 어떤 사람은 먹은 음식, 어떤 사람은 풍경, 어떤 사람은 그 장소에 함께 있던 사람들과 나눈 대화, 어떤 사람은 사건에 대한 기억 등으로 각자 다르다고 한다. 그것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능이 세분화되어 있고 사람마다 발달 부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풍경에 관한 기억이 유독 강했다.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가도 수시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잠수함처럼 나의 의식의 바다에는 오랜 세월 동안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하는 강력한 기억 하나가 있다.
어머니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내가 태어났을 무렵 아버지는 고향인 지방 D시에서 양주장을 운영하시던 큰아버지 밑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셨다고 한다. 당시 크고 작은 양주장이 전국적으로 난립하고 있어서 정부에서 정리를 명령했다고 한다. 각 지역에 한 군데만 남겨두고 폐업을 지시했는데 아버지의 고향인 D시에서는 큰아버지의 양주장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리 얼마 지나지 않아 큰아버지의 양주장에 사건이 발생했다. 그 지역은 6·25전쟁 당시 마지막 격전지로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어서 전쟁터에서 상해를 입고 제대한 상이군인이 많았다. 그들은 몰려다니면서 회사나 상가를 찾아가 트집을 맞고 행패를 부리면서 돈을 뜯어내는 짓을 일삼았다고 한다. 큰아버지의 양주장에도 수시로 상이군인들이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려대었는데 하루는 성격이 좀 과격했던 직원 한 명이 상인군인들을 심하게 패버렸다. 상이군인이 뒤로 넘어지면서 뇌를 다치는 바람에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이 사건을 큰아버지 쪽이 유리한 방향으로 처리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했다. 어떡하든 무마해보려고 경찰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다. 세금 납부와 관련해 문제가 없지 않다 보니 양주장은 난관에 처해졌다. 결국 양주장을 다른 사업자에게 넘기고 말았다고 한다. 그 외에 어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그 모두 나의 기억에는 없다시피 한다. 반면에 양주장을 정리하신 큰아버지를 떠난 아버지가 우리 가족은 데리고 갔던 곳--낙동강 줄기가 흐르는 마을에 있는 과수원에서 생활했던 일은 어제 일처럼 기억이 선명하다.
파란 강물, 통통배, 백사장, 땅콩 밭, 커다란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저녁 햇살,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집에서 과수원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침에 아버지가 과수원으로 일을 하러 나가시면 나도 같이 가겠다고 울면서 쫓아갔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덥석 안고 과수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아버지가 일을 하시는 동안 나는 하얀 사과꽃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나무 아래서 새소리를 들으며 혼자 소꿉놀이를 했다. 바람에 하늘하늘 거리다가 떨어진 사과꽃을 주워 밥과 반찬을 만들며 놀다가 시들해지면 과수원 안에서 키우고 있는 거위를 쫓아다녔다.
그곳에서 생활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서울로 올라가 사업을 할 계획이 있던 큰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동업을 권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우리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셨다. 서울에서도 큰아버지는 사장을, 아버지는 공장장을 하셨다. 그때 했던 사업은 한 번 사용한 포대자루를 사들여 실을 뽑아 종이봉투를 만드는 재료로 쓰는 공장에 납품하는 일이었다. 아프리카 어디에서 자라는 식물을 원료로 만들어진 포대를 풀면 노끈이라는 실이 나오는데 그걸 물레에 돌려 타래를 만들어 종이공장에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물레를 돌리러 오는 아주머니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그 사업도 2년이 조금 지나 폐업했다. 비닐봉지가 나오게 되어 종이 봉지를 사용하는 상인들이 줄어버렸기 때문이었다.
1년 후 다시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화재가 나도 불에 타지 않는 니스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런데 그 공장은 가동 첫날 보일러 기술자의 실수로 보일러가 폭발해 불이 나고 말았다. 수십 대의 소방차에 헬리콥터까지 왔지만 폭발력이 강해 불길을 잡기 힘들었다. 공장 안에는 사택이 있었는데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불길은 사택을 반쯤 태운 후에야 진화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 사택에서 계속 살았다. 연기에 그을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택에서 우리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방은 하나뿐이었다. 언니와 두 남동생을 포함해 6식구가 그 방 하나에서 살아야 했다.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나는 매일 아버지를 붙잡고 여기서 살지 말고 과수원에 가서 살자고 울면서 졸랐다. 아버지는 고향 사람들이 서울 가서 큰사업 한다고 큰소리치고 떠다니더니 망해서 돌아왔다고 놀리므로 다시 돈을 많이 벌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드셨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정상적인 활동이 힘들어진 아버지는 끝내 과수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돈을 벌지 못하셨다. 불탄 공장을 처분한 돈을 큰아버지와 나눈 다음 그 돈을 야금야금 축내면서 살았다. 세월이 갈수록 사는 형편이 어려워졌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한숨소리와 원망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울함에 젖은 나는 방 안에 쭈그리고 앉아 과수원을 떠올리며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곤 했다. 그 때문인지 성인이 된 후에도 내 안에는 늘 꽃과 새소리를 그리워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시골집을 개축한 후 나는 잠수함처럼 내 의식의 밑바닥에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 하는 과수원을 다시 되찾은 것만 같아서 정말 좋았다. 파란 강물이 넓게 흐르는 낙동강, 하늘을 가리는 하얀 사과꽃, 거위가 뒤뚱대며 걸어가는 그때 그 과수원은 아니지만 나의 손으로 만든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낙원에 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꽃이 만발한 여름에 정원 파고라에 있는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다가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면 눈이 내리는 듯 바람에 휘날리던 하얀 사과꽃이 눈앞을 스치곤 했다. 생각에 빠져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과 만발한 꽃들을 보고 있으면 그대로 아주 눌러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체와 아들의 직장이 서울에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서울 집에 지내는 아들과 남편의 식사 준비와 집안 정리를 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사나흘을 주기로 서울 본집과 시골 집을 오가며 지내야 했다.
그런 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6년째,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이 전원생활도 그랬다. 시골집은 어린 시절에 잠시 살았던 과수원을 대신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잠시만 관리가 소홀하면 잡초가 무섭게 번식했다. 특히 정원에 꽃이 피기 전인 3월과 4월에는 손에서 호미를 놓을 틈이 없었다. 친지와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기는커녕 사방팔방에 널려 있는 잡초만 뽑다가 올라가는 날이 허다했다.
아침 일찍 짐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또 시골에 가요?”
아들이 물었다.
“응.”
“지난주에 모종 심기 모두 다 마쳤다고 했잖아요?”
“모종에 물도 주어야 하고 꽃 피기 전에는 잡초가 정원을 무섭게 잠식해버려 더 지저분해지기 전에 뽑아야 하니까 가야지.”
아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좋아서 재미로 하는 일이라고 해도 막노동이나 다를 바 없이 몸을 쓰는 일이잖아요. 텃밭농사 해볼 만큼 해봤으니까 이젠 마트에서 사다 먹고 작물 재배는 그만하세요.”
“그러면 텃밭은 바로 잡초밭이 되어 버리는데 그건 아니지.”
“그냥 전부 다 꽃밭 만들어 버리고 내려가서 글이나 쓰면서 힐링이나 하다가 올라오면 되잖아요.”
텃밭 일이 정원 일보다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원 관리가 마냥 수월한 것은 아니다.
“잡초가 텃밭에만 있는 줄 아니? 아니야. 잡초는 꽃밭에도 많아. 꽃밭도 관리가 제대로 되어야 힐링이 가능한 거 아니니? 잡초 바라보면서 힐링이 돼?”
“관리에 목메다 관절 상한다니까요. 아무튼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내가 텃밭과 정원에 무성한 잡초 뽑을 때 경찰인 아들은 사기, 절도, 폭력 등등의 우리 사회에 무성한 인간 잡초를 뽑느라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보니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들이 다녀오라는 말을 하고 집을 나갔다.

 

2
시골 집에는 정오 무렵에 도착했다. 들고 온 짐을 집 안으로 옮겨 놓자마자 곧장 밖으로 나가 텃밭부터 살폈다. 상주가 아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여차하면 파종 시기를 놓칠 수가 있었다. 3월 말경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뒤뜰 텃밭에 감자와 찰옥수수를 파종했다. 다행히 한파의 피해 없이 무사히 싹을 틔워 땅 위로 줄기를 밀어올리고 있었다. 집 좌측에 있는 텃밭에 파종한 상추, 쑥갓, 마디호박, 치커리, 비트, 아욱, 케일, 양상추, 근대, 시금치도 싹이 돋아 엄지손가락만큼 자라 있었고, 지난주에 모종을 사다 심은 고구마, 고추, 방울토마토, 고추, 가지도 줄기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수확을 위해 관리만 잘하면 된다. 그 관리란 건 딴것 없다. 텃밭 작물은 물 주기, 비료 주기, 솎아주기와 순치기를 해주면 되고, 정원은 부지런히 잡초를 깔끔하게 뽑아 화초들이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주면 된다.
내려오면 길어봤자 나흘을 머물다가 가다 보니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하루라도 정원에서 하는 일 없이 한가하게 꽃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다가 가려면 텃밭과 정원에 무성히 자란 잡초부터 뽑아야 한다. 정원에는 목력, 단풍나무, 사철나무, 회양목, 측백나무, 편백나무, 등나무, 목수국, 철쭉, 라일락이 있다. 초기에는 꽃밭에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과꽃, 백일홍, 봉선화, 코스모스, 해바라기 같은 꽃들을 심었었다. 그런데 해마다 꽃씨를 파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뿌리로 겨울난 후 다시 잎을 올리는 숙근형 여러해살이 화초들로 바꾸었다. 3년 만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화초들은 작약, 백합,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샤스타데이지, 소국, 아이리스, 천인국, 에키네시아, 옥잠화, 패랭이들이다. 그 외에도 한해살이로 초기에 심었던 화초들의 씨앗이 땅에 떨어졌다가 스스로 발아해 싹을 틔우고 있는 것들도 있다.
4월 말경인 지금은 화초는 보이지 않고 잡초들만 가득하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무지막지하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잡초들은 꽃마리, 새포아풀, 뚝새풀, 명아주, 개여꾸, 망초, 별꽃, 주름잎, 벼룩이자리, 벼룩나물, 광대나물, 괭이밥, 냉이, 토끼풀, 민들레, 제비꽃, 소리쟁이, 차풀 외에 이름을 모르는 잡초까지 쫙 깔려 있었다. 제초제를 뿌리면 힘 안 들이고 수월하게 제거할 수 있지만 토질에 문제가 생기고, 예초기를 사용하면 이파리만 잘려나가고 뿌리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내 다시 새 잎이 돋아나버렸다. 잡초 뽑는 횟수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힘이 들더라도 보이는 족족 손으로 직접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어느 유명 시인은 잡초를 민중으로 표현했지만 나에게는 실제 그대로 나를 힘들게 하는 밉상일 뿐이다. 잡초는 텃밭과 정원에만 무성한 게 아니었다. 잔디밭에도 띠, 피, 새포아풀, 바랭이, 망초, 같은 잡초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뉴스를 보다가 부정부패로 나를 어지럽히는 정치가들이나, 모임에서 사익을 위한 행위로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들을 보면 저런 인간 잡초들은 당당 뽑아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곧잘 한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사라지지 않는 부정부패처럼 뽑고 돌아서면 다시 돋아나는 잡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이길 수는 없지만, 나의 낙원을 탈취당하지 않으려면 뽑고 또 뽑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오늘도 뽑아내야 하는 잡초의 양이 만만치 않다. 해가 지기 전에 마치려면 서둘러야 한다. 창고로 들어가 장비를 챙겨 가지고 나왔다. 챙이 있는 모자, 앞치마, 작업용 팔토시, 작업용 목장갑, 무릎까지 오는 고무장화는 작업할 때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들이다. 연장통에서 호미도 찾아 가지고 나왔다. 작업 차림을 한 후 어디부터 할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여러해살이 화초들이 새싹을 밀어 올리고 있는 꽃밭은 평수는 넓지만 비교적 뽑기 쉬운 별꽃 나물과 벼룩이자리, 망초들이 퍼져 있었다. 일단 그곳부터 먼저 작업하기로 했다.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지표면은 푸석하니 말라 있어도 땅속은 이틀 전 내린 비에 젖어 있어서 쭉쭉 잘 뽑혔다.
손으로 잡초를 뽑을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쓰고 있는 작품 내용 중에 삭제해야 할 문장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 거기, 거기, 거기, 그 문장은 삭제하고, 그 문장은 다른 말로 바꾸고… 잡초를 뽑으면서 쓰고 있는 작품을 떠올리면 묘하게 수정할 부분이 잘 떠오르는 것은 오래전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그런 사이 손으로 뽑은 잡초들이 외발수레에 가득 찼다. 외발 수레를 끌고 잡초 수거통에 쏟아부었다. 다음은 옆뜰에 있는 텃밭으로 갔다. 그곳에는 광대나물, 꽃마리, 쇠비름, 바랭이, 망초, 새포아풀 외에 이름 모를 잡초들이 빽빽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손으로, 어떤 것은 호미를 사용해야 뽑혔다. 외발 수레를 가득 채운 잡초를 수거통에 갖다 쏟고 금계국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바깥뜰로 갔다. 그곳에도 잡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금계국의 세력에 밀려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키 큰 잡초들만 뽑은 다음 텃밭 뒤쪽 폭이 좁은 수로가 있는 곳으로 갔다. 띠와 피 같은 잡초와 소리쟁이가 잔뜩 자라고 있었다. 키도 크지만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어서 뽑기가 정말 힘들었다. 끙끙대며 호미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언제 온 거여? 오자마자 또 풀데기부터 뽑고 있구먼. 하여간 열심히여. 돌아가신 시어무니가 저 하늘에서 꽤나 좋아하시겠어. 당신 살던 집을 며느리가 이렇게 이쁘게 가꾸어 주니까 말여.”
지나가던 뒷집 아주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수로에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근데 이 잡초는 뽑기가 정말 힘드네요.”
“뭔데?”
“소리쟁이요.”
“그거 뜯어다 나물 해서 묵어도 좋고 된장찌개에 넣고 끓여도 좋은 디….”
“이 잡초를 먹는다고요?”
“너무 흔하다 보니 다들 잡초로만 생각혀는디 아녀, 들나물이여. 이파리는 나물로 무치면 시금치 맛이 나고, 된장국 끓이면 아욱처럼 매끌매끌하니 식감이 좋다니께. 뿌리도 이런저런 약효가 많아서 약재로 쓰이는 것이여. 그렇긴 혀도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께 먹는 건 알아서 히여.”
그 말을 끝으로 뒷집 아주머니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
정원과 텃밭에 나는 잡초 중에 식용 가능한 들나물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쟁이가 잡초 아닌 식용 가능한 들나물인 동시에 약재로 쓰는 약초라는 건 처음 알았다. 아주머니 말 대로 뜯어다 나물을 해 먹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포기했다. 성분이 아무리 좋다 해도 손질을 잘못하면 약초 아닌 독초가 될 수도 있으므로 미련을 버리고 모두 캐버리기로 했다. 이파리를 손으로 뜯고, 뿌리는 호미나 삽으로 떠내는 방식으로 뽑아낸 소리쟁이들을 모두 외발수레 안으로 던져 버렸다. 곧바로 잔디밭에 있는 잡초도 뽑기 시작했다. 새포아풀, 쑥, 씀바귀, 서양민들레, 개망초 등등 이곳에서도 뽑혀 나온 잡초들도 외발 수레로 가득 찼다. 소리쟁이를 포함해 뽑은 잡초들을 수거통에 쏟아붓는 것으로 잡초 뽑기는 끝이 났다.
그런 사이 해가 기울어 주변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장시간 노동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아이고,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며 걸음이 비틀거려졌다. 통증을 참으며 연장을 정리해 창고에 넣고, 모자와 앞치마, 장갑, 고무장화도 벗어 창고 박스에 챙겨 넣었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몸을 씻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주방으로 갔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 준비해 온 반찬으로 밥을 차려 먹었다. 이젠 남은 일은 글 쓰는 일뿐이다.
방으로 들어갔다. 잡초 뽑기를 모두 마쳐 기분은 상쾌했으나 체력이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이게 뭔가? 꽃 속에 빠져 글이나 쓰는 낙원생활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인즉 잡초 뽑는 잡부로 전락하고 있으니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원인인즉 이 집에 대한 애착이 유별난 나에게 있다 보니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3
다시 서울 집으로 올라왔다.
“왔어?”
저녁 늦게 귀가한 남편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한마디 했다. 남편도 혼자 지내는 것을 즐기고 있는 건지 지금껏 내가 서울 집은 비워두고 시골 집에 드나드는 일에 크게 불만을 비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인사 뒤에 의당 따라붙어야 하는 고생했어, 수고했어, 같은 말은 늘 생략했다. 오늘도 그 말을 끝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 남편이 다시 거실로 나온 것은 조금 후였다.
“정원이나 텃밭에 소리쟁이 있지?”
“그 잡초 다 뽑아 버리느라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요.”
“다 뽑아버렸다고? 그거 잡초 아니야. 들나물이고 약초라고, 어린 이파리는 나물로 먹을 수 있고, 뿌리는 약재로 쓰이는데, 뒀다가 가을에 뿌리 캐서 탈모예방제와 두피 지루성 염증 치료제로 쓰려고 했는데 다 뽑아버렸다고?”
“그 소리쟁이 씨앗이 어마무시하게 달리는 잡초라서 그냥 두면 내년에 텃밭과 정원 전체가 잡초밭이 되어 버릴 텐데 어떻게 그냥 둬요. 아무튼 나는 그 잡초가 약초이든 말든 정원에 있는 꼴 못 보니까 정이 필요하면 들판에 가서 직접 캐다 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요.”
“그거 몇 포기 남겨둔다고 어디 덧나야? 세상살이도 잘난 놈 못난 놈 어울려 살듯이 화초도 잡초와 어울려 자라는 거지. 그리고 그 땅 내 거야. 내가 우리 엄마에게 물려받은 거라고, 내가 잡초 아니라 독초라도 키우고 싶으면 키우는 거지. 네가 왜 이래라 저래라 해? 그 정원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소리쟁이 몇 포기 그냥 둔다고 벼락이라도 떨어지냐? 정원 욕심은 더럽게 많아 가지고… 으, 꼴 보기 싫어!”
전에 없이 짜증을 내며 나를 비웃기까지 한 남편은 꽝 소리가 나도록 방문을 세게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느닷없는 공격에 나는 잠시 멍해 있다가 정신은 차리고 생각해봤다. 지난 6년 동안 당연한 듯 관리를 나에게 맡겨 놓고 풀 한 포기 뽑아준 적 없던 사람이, 잡초나 다름없는 소리쟁이 뽑아냈다고 내 땅 네 땅 따지고, 욕심 운운하며 비난할 일인가. 날이면 날마다 잡초 뽑느라고 고생만 하고 올라온 일이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고 그냥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씩씩거리면서 안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래, 그 땅 당신 거 맞아.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잡초밭을 만들든 독초밭을 만들든 당신이 알아서 해!”
내 말에 남편이 입을 삐죽거리고 피식 웃었다.
“내가 잡초밭 만들겠다고 했냐? 너는 허구헌날 거기서 희희낙락하면서 나한테 해주는 게 뭐 있냐? 밥도 내가 차려 먹고 빨래도 내가 해야 하고. 그 꼴 보기 싫어서 내가 그 집을 팔아치워 버리고 말겠어.”
소리쟁이를 뽑아버린 일에 화가 나 그러는 건지, 내가 시골집을 드나드는 일에 불만이 컸던 건지 포인트가 불분명한 말로 불만을 토했다.
“해놓은 밥과 반찬, 직접 차려 먹는 게 그렇게 억울해 할 일이야? 빨래는 세탁 바구니에 넣어두면 올라와서 내가 할 건데 누가 하랬다고 생색이냐고! 내 인생의 잡초는 모든 걸 자기중심으로만 속좁게 생각하면서 배려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당신 같은 인간이라고, 성질 같으면 지금 당장 소리쟁이 뽑듯 내 인생에서 뽑아버리고 싶지만 내가 참는다 참아!”
목청을 있는 대로 높이고 대들자 침대에 누워 있던 남편이 몸을 벌떡 일으키고 내려왔다.
“그럼 너는 타인 중심으로만 사는 속 넓은 관대한 인간이냐? 그런 인간이 소리쟁이 몇 포기도 못 봐주냐? 매일 꽃향기에 취해 산다는 여자가 악다구니는….”
나를 밀어내고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아버리고는 잠잠했다.
소파에 앉아 남편이 화를 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봤다. 희희낙락이라는 그 표현은 무슨 오해가 있었던지 아니면 참고 있던 불만의 표출인지 모를 일이지만 탈진 직전에 이르도록 잡초 뽑는 일에 힘을 쏟다가 돌아왔을 뿐이었다. 시골생활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흙이 있는 곳에는 잡초가 있게 마련인 걸 뻔히 아는 남편이 내가 시골집에 가면 희희낙락만 하다가 오는 걸로 알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치솟는 울분을 애써 달래고 있던 중 문득 소리쟁이 효능이 뭐길래 남편이 저러는지 궁금했다. 휴대전화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효능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 소리쟁이의 효능은 피부질환, 소화기계질환, 원인모를 고질적인 가려움증, 염증성질환, 탈모, 출혈, 숙변 배출, 중금속 흡착과 배출, 장을 깨끗이 하여 피부가 고와지는 효능이 탁월하다고 되어 있었다. 최근 두피 지루성 피부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니 효능에 혹할 만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할 말 안할 말을 마구 쏟아낸 언행까지 없던 일로 치고 싶지는 않았다.

 

4
원래대로라면 시골 집에 내려가 있어야 할 때이지만 당분간 그냥 서울 집에 있기로 했다. 내가 텃밭과 정원 관리를 하느라 끙끙대는 동안 혼자 밥 차려 먹는 일을 두고 불만을 터트렸던 남편의 입을 막느라고 직접 밥은 차려주면서도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지냈다. 그렇게 지내면서 목이 말라 있을 작물들이 걱정되었다. 주간 날씨 예보를 검색해보았다. 비라도 내려 주면 좋을 텐데 이번 주에는 단 하루도 비 소식이 없었다. 고생해서 심어 놓은 모종들이 몽땅 말라 죽으면 어떡하지? 마음이 초조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버텼다. 그렇게 보내기를 열흘째였다.
서울 집에 있는 날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자 남편도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시골에 왜 안 가? 텃밭에 물 안 줘도 돼?”
남편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안 가냐고? 그 땅 당신 거라면서? 거기서 나 희희낙락하는 꼴 보기 싫어서 그 집 팔아 버린다면서? 내가 왜 남의 땅에 가서 죽자고 일하고 그딴 소리 들어야 해. 이젠 당신이 알아서 해. 난 손 뗄 테니까.”
“네 생각만 옳다고 박박 우기면서 내 말은 우습게 들으니까 화가 나서 그냥 해본 소리지. 엄마 아버지 살던 집인데 진짜로 한 말이겠냐?”
“아니, 나는 진짜로 알아들었으니까, 팔아서 그 집 짓는 데 들어간 내 돈 내놔. 치사해서 그 집에 가고 싶지 않으니까. 그 돈으로 시골 집보다 훨씬 잘 지었는데 팔리지 않아서 싸게 경매로 나온 전원주택 낙찰받으면 되니까.”
나의 말에 남편이 피식하고 웃었다.
“경매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아무튼 나 신경 쓰지 말고 다녀와.”
“가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상관 마. 글 써야 하니까 문 닫아.”
“알았어, 알았어. 근데 이거….”
남편이 책상 위에 선크림과 핸드크림 튜브를 놓고 얼른 문을 닫았다.
“흥, 사람 마음 갖고 장난치는 거야, 뭐야?”
시골 집을 판다는 남편의 말에 자극받아 발끈했던 마음이 미처 풀리기도 전이다 보니 남편이 두고 간 선크림과 핸드크림조차도 달갑지가 않았다. 그런 한편으로는 목말라 할 작물들에 대한 걱정으로 애가 타던 중이다 보니 남편의 화해 제스처가 아주 싫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남편은 나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그때그때 말을 하고 푸는 것이 아니라 꽁하고 마음속에 끌어안고 있다가 느닷없이 공격해 나를 당황스럽게 할 때가 잦았다. 그렇게 실컷 약을 올려놓고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유야무야 덮어버리는 것으로 마무리짓곤 했다. 결국 이번 일도 그렇게 되어버렸다.

 

5
다음날 내가 없는 동안 남편이 먹을 밥을 해놓고 또 시골 집으로 갔다.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2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좀 늦은 점심식사를 한 후 작업 도중 갈증이 날 때 마실 물을 물통에 담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창고로 들어가 모자, 앞치마 등등 작업할 때 필요한 장비들과 호미를 챙겨 들고 나왔다. 정원부터 살펴보았다. 열흘만이라 잡초들이 꽤나 무성할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많지는 않았다. 지난번 보이는 족족 뿌리까지 뽑아버린 때문인지 키 큰 풀들은 거의 없고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잡초들만 정원을 점령해 가고 있었다. 그 풀들은 괭이로 득득 긁어버린 후 집 뒤에 있는 텃밭으로 갔다.
찰옥수수도 감자도 잘 자라고 있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시들시들했던 고구마도 그 사이 뿌리가 잘 내려졌는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텃밭을 둘러보고 가려고 했을 때였다. 뒤 텃밭은 아스팔트로 되어 동네 골목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도로 양쪽에 있는 흙길에 이파리가 팔뚝만큼 기다랗게 자란 소리쟁이가 눈에 띄었다. 소리쟁이를 뽑아버렸다고 화를 내던 남편 생각이 났다. 맛이 어떤가. 일단 이파리를 한 줌 뜯어 가지고 가서 나물로 무쳐 먹어보기로 했다. 소리쟁이 이파리 몇 개를 뚝뚝 뜯어가지고 집으로 갔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인덕션 위에 물을 담은 냄비를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렸다. 물방울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것을 보고 소리쟁이 이파리들을 꾸겨 넣었다. 대충 삶아졌다고 여겨질 때 이파리들을 건져내어 찬물에 헹궈내었다. 들나물 중에는 독성이 있는 것들도 있다. 이 소리쟁이는 바로 무쳐 먹어도 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검색 결과 예상대로 그냥 먹으면 신맛이 강하고 독성도 있어서 찬물에 최소한 8시간은 담가두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볼에 찬물을 붓고 소리쟁이 이파리들을 담가두고 밖으로 나갔다.
텃밭으로 갔다. 10평 남짓 되는 면적에는 다양한 채소들이 있다. 먼저 꽃상추와 치마상추부터 솎아내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추들의 간격을 넓혀주느라 일일이 솎아내고 나니 허리가 뻐근해졌다. 이어 아욱, 근대, 비트, 시금치, 치커리, 쑥갓도 차례로 솎아내었다. 텃밭에 있는 채소보다 솎아낸 양이 더 많았다. 버릴까 하다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듬기로 했다. 아들의 말대로 마트에 가서 사 먹으면 될 일을 굳이 찾아서 일거리를 만드는 건지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굳이 채소를 재배하는 건 생기를 먹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눔의 재미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왕 심는 거 넉넉하게 심자는 생각으로 파종을 하다 보니 양이 많아 혼자 다 먹을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눔을 하게 되었다. 멀리 살아도 마음에 있는 친구에게는 가끔 택배로 부쳐주고 가까이 사는 지인들은 서울 집으로 올라온 후 나누어 주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듬은 채소들은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상추는 좀 많이 넣고, 시금치, 아욱, 근대, 쑥갓, 치커리는 한 줌씩 넣어 다섯 봉지를 만들었다. 이것만 해도 끌고 온 캐리어에 가득 찰 듯했다. 마침내 오늘 작업이 끝이 났다.
집 안으로 들어간 나는 샤워를 하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곧바로 저녁식사를 하고 글을 쓰는 작업실이자 침실로 쓰는 방으로 들었다. 쓰고 있는 작품도 재고, 삼고를 하면서 정원 잡초 뽑듯 오타, 비문, 오문들을 찾아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몸이 너무 피곤해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휴식을 취한 다음에 하려고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편안한 자세로 누워 휴대전화에서 음악 앱을 열었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은 주로 제목에 새가 들어가 있는 연주곡이다. 최애 애청곡인 제임스 라스트의 <파라다이스 보겔>이 포함되어 있는 연주 목록 앱을 찾아 시청을 눌렀다. 경쾌하면서 애절하게 들리는 팬 플롯 소리가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이어서 ‘콘웰의 아침’이라는 곡이 흘러나왔다. 제목과 달리 지금은 해가 진 저녁이지만 아련한 느낌을 주는 음률 때문인지 시간과 상관없이 언제 들어도 좋았다. 영국의 관광지로 유명한 콘웰이라는 지역을 모티브로 한 곡이라는데 나는 가본 적이 없다. 음률이 의식을 자극하면서 나는 하얀 사과꽃이 하늘을 가리고, 거위를 쫓아다니던 과수원에 가 있었다. 그 연주가 미처 끝나기도 전인데 자꾸 눈이 감기더니 이내 잠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눈을 떴다. 날은 샜으나 아직은 담묵 같은 어둠이 남아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5시 40분, 해 뜨기 전이다. 일어나 방을 나갔다. 냉장고에 부착된 정수기에서 냉수를 한 컵 뽑아 마시던 중 싱크대 위에 어제 저녁 데쳐 놓은 소리쟁이가 눈에 들어왔다. 하룻밤 꼬박 물에 담가두었으니 독성은 충분히 빠졌으리라 여기고 나물로 무쳐 맛을 보기로 했다. 이파리를 건져 물을 꽉 짜낸 다음 양념을 넣고 무친 이파리 하나를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맛이 별로였다. 다시 나물 하나를 입에 넣고 맛을 보았다. 그 맛이 처음 시식하는 것이 아닌 기억에 있는 맛이었다. 불쑥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결혼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어버이날에 시모를 찾아 이 집에 왔던 날이었다. 시모가 저녁 밥상에 나는 처음 보는 나물을 올려놓았다.
“현수는 피부가 약해 농사일도 전혀 안 시키고 염증 치료를 위해 예전부터 내가 자주 해 먹이던 나물이여.”
시모의 말에 나도 그 나물을 집어 먹어보았다. 하지만 내 입에는 맞지 않아 더는 먹지 않았다. 나와 달리 남편은 그 맛에 익숙한지 말없이 나물 한 접시를 다 비웠던 적이 있었다.
‘이 소리쟁이가 바로 그 나물이었구나.’
문득 남편은 소리쟁이의 약효에 앞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 나물로 대신 달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친 나물을 서울에 가지고 올라가 남편에게 주려고 반찬통에 담았다. 그런데 양이 너무 적었다. 이왕 가져가는 거 조금 더 만들어 가려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왔다.
과도와 바구니를 들고 잡초가 무성히 우거져 있는 동네 빈터로 갔다. 소리쟁이가 널려 있었다. 연한 잎만 골라 한 바구니 가득 딴 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정원으로 돌아와 보니 능선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주 드나들고 있으면서도 정원에서 직접 보는 일출은 오랜만이었다. 소리쟁이 이파리가 담긴 바구니를 무릎에 올려놓고 파고라 의자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긍께 부부생활이란 게 말이여. 보기 좋은 예쁜 꽃 같질 않고 들풀 같어. 내가 어쩌다 죽자고 나를 고생시키는 저런 잡초 같은 인간을 만나 이러고 사나. 원망을 하다가도 말여, 가만 생각혀 보면 그 잡초가 때로는 나물이 되고 때로는 약초가 되어 주더라고, 꽃은 볼 때는 예쁘니께 좋긴 한데 나물도 약초도 안되는디 말이여.”
언제였나. 시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만큼 다른 무엇보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에 더 가치를 두는 노모의 의견으로 치부하고 말았었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어느덧 그때의 시모 나이가 된 지금 그 말을 떠올려 보니 격하게 공감되었다. 남편과 살아본 결과 소리쟁이처럼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 들나물이면서도, 시골 집을 통해 과수원을 잃은 상실감을 치유해준 약초가 되어 주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무릎에 올려두었던 바구니를 들고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소리쟁이 이파리를 삶기 위해 냄비에 물을 붓고 인덕션에 올려놓았다. 전원을 눌렀다. 잠시 후 냄비의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 시골집을 팔아버리겠다는 말에 꽁꽁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슬그머니 녹아내리더니 새삼스럽게 밥은 잘 챙겨 먹고 지내는지 남편에 대한 걱정도 물 끓듯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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