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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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_ 안용복|호오끼 태수|남구만|유상운|이인성|유일부|이치로|부친|옥졸|망나니|어부들과 일행은 겸역이 가능하다.
때_ 숙종 재위 22년(1696년)
곳_ 자산도(독도), 돗토리현
무대 구성은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하수는 자산도(독도)가 있고, 상수는 일본 돗토리현이 있다. 무대는 사실적일 필요가 없으며 장소에 맞는 상징이면 충분하다.
어둠 속에서 장중한 음악이 흐른 뒤 무대가 밝아온다. 안용복을 에워싼 무리들 속에 이인성과 유일부가 감정에 복받쳐 어깨를 들먹인다. 이때 망나니가 등장하여 안용복 앞에서 살벌하게 칼춤을 추어댄다.
소리 (큰 소리로) 어명이요∼ 어명! 금부도사가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순간, 모든 시선이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하면서 암전된다.
규칙적인 파도 소리가 들린 후 핀 조명이 무대 한쪽으로 떨어진다. 어둠 속에서 일행의 발자국 소리가 기민하게 들린다. 횃불을 든 이인성과 유일부를 중심으로 무리들이 모이면서 무대 밝아 온다.
이인성 이 사람, 흥해 출신 유일부가 아닌가!
유일부 네, 맞, 맞습니더. 형님!
이인성 누구보다 울릉도 사정이 밝은 자네가, 얼마 전까지 울릉도에 왜 놈들이 얼씬도 않는다고 했잖은가. 그런데 왜 또 그 섬에 왜놈들이 판을 치는 거야?
유일부 지지난번 비장님이 붙잡혀 갔을 때, 일본 왕이 울릉도에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더. 그런데 대마도주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일이 이렇게 된 겁니더.
이인성 내 참…, 자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네! 유일부 하여간에, 오늘 그 일 때문에 여기 모인 것 아닙니꺼.
이인성 아 알았네. (감정을 추스르고) 이제 곧 모임을 시작해야겠네!
이인성이 일어서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잦아진다.
이인성 자, 이쪽으로 주목하십시오. 지금부터 여기 오신 분을 한 사람씩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먼저 저는 평산포 출신 이인성이라고 합니다. (박수로 환호한다) 저기, 송강사 뇌헌스님, (일어나 인사를 하면 환호한다.) 그리고 같이 오신 승담스님, 연습스님, 영률스님, 단책스님. (차례로 일어나 인사한다) 그 옆으로 영해 출신 유봉석 님, 연안 출신 김순립 님, 낙안 출신 김성길 님, 흥해 출신 유일부 님, 마지막으로 이번 계획에 중심이신 안용복 도사공님!
안용복 일어나 여럿을 향해 인사한다. 힘찬 박수와 함께 모두가 환호한다.
이인성 자, 그럼 도사공님을 모셔서 한 말씀 듣겠습니다.
“안용복! 안용복!” 하는 힘찬 연호 속에 안용복이 정중하게 나선다.
안용복 고맙습니다. 여러분! 뜻깊은 오늘, 저는 감히 임진왜란 때 있었던 얘길 하나 하겠습니다. (분위기를 잡고) 흠, 부산성, 동래성이 왜놈에게 함락되자, 위기에 처한 경상좌수사 박홍이 수영성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렇지만 수영성에 있던 수졸과 백성 스물다섯 명이 성문 밖, 선서바위에 모여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일행 …….
안용복 (비장한 목소리로) 싸우면 이겨서 살 것이요! 싸우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있거늘, 어찌 살기 위해 산과 들로 도망칠 것인가! 단 한 번의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자! 라고…. 피로 맹세한 그들은 최후까지 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섬 울릉도, 자산도를 우리 백성의 힘으로 지킵시다.
일행 (모두가 따라 외친다) 지킵시다, 지킵시다! 와∼!
안용복 고맙습니다. 여러분! 그럼, 이번 일에 궁금하거나 덧붙일 말씀이 있으면 얘기해 주십시오.
이인성 도사공님! 선단을 꾸리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데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안용복 그건, 걱정치 마십시오. 이번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인성 그리고 지난번 일본에 갔을 때, 어민이란 신분 때문에 고충이 많았다는데 대비책은 있습니까?
안용복 네, 이번에는 적당하게 형식을 갖추겠습니다. 그리고 신분에 관해서는 조정에 납속책도 있으니까 참고토록 하겠습니다.
이인성 이왕에 납속으로 받을 벼슬이면 통정대부가 좋겠소!
안용복 이 선비님의 생각을 검토하겠습니다.
유일부 도사공님! 그렇다면 언제 어디로 가실 예정입니꺼?
안용복 날짜는 삼월로 정하고, 영해로 이동해서 바람이 좋은 날, 일단 울릉도로 가겠습니다. 그 후로는 현지 사정을 봐가면서 정하겠습니다.
유일부 잘 알았심더. 도사공님!
안용복 그리고 우리가 목적을 달성하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 일은 절대 비밀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일행 네!
일행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요란한 함성과 함께 암전된다.
어둠 속에 노 젓는 소리 들리다가 잦아지면 무대 천천히 밝아 온다. 파도 소리 들리는 자산도 해안가, 여러 명의 일본 어부들이 부산하게 진을 치고 있다. 잠시 후 어두워지면서 노 젓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핀 조명에 안용복과 일행이 주위를 살피면서 고양이 걸음으로 등장한다.
유일부 (긴장된 목소리로) 저기…, 왜놈들이 보입니더.
안용복 틀림없어… 어제 울릉도에서 도망친 바로 그놈들이야!
유일부 네, 맞심더. 족히 열다섯 명이 되는 것으로 보아 틀림이 없심더.
안용복 그렇다면 조금 더 가까이 가자.
안용복이 손짓하자, 일행이 긴박하게 따라붙는다. 무대 전체 조명이 밝아 온다. 일본 어부들은 솥을 걸어놓고 불을 피워 생선, 조개 등을 삶으며 요란을 떤다.
안용복 (손을 들며) 쳐라!
와!” 하는 일행의 함성과 함께 솥뚜껑을 걷어찬다.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안용복 야 이놈들아! 썩 물러가지 못할까!
이치로 흥! 조센징이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야, 행패가!
안용복 뭐, 조센징의 행패라고…? 어제 울릉도에서 말했잖은가! 더 이상 조선 땅에 오지 말라고….
이치로 울릉도는 조선 땅이라고 쳐도, 여기 마츠시마는 틀림없는 우리 일본 땅이다.
안용복 하하하, 지나가는 일본 원숭이가 웃겠다. 뭐? 자산도가 일본 땅이라고…?
이치로 그래! 마츠시마는 우리 일본 땅이다.
안용복 헛소리 집어치워! 여기는 맑은 날, 울릉도에서 볼 수 있는 아들 섬이다.
이치로 뭐 울릉도의 아들 섬이라고…? 으하하, 우리는 여기서 팔십 년이 넘게 강치를 잡아왔다.
안용복 강치고 뭐고, 자산도가 네놈들 땅이라면 어서 앞장서라! 내가 막부를 만나서 따져 물어야겠다.
이치로 요시!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납치할 필요도 없이 본인 스스로 가시겠다?
안용복 잔말 말고 앞장서라!
이치로 좋아, 어디… 한 번 따라와 보라고!
이치로가 손짓하자, 일본 어부들 열다섯 명이 우르르 퇴장한다.
안용복 저기 가는 왜놈들을 쫓아라!
일행 와∼!
안용복과 일행은 함성을 지르면서 일본 어부를 쫓아 퇴장한다. 암전.
무대 천천히 밝아오다가 스모그가 깔린다. 곧이어 정겨운 뱃노래가 점차 또렷하게 들려온다. 일행을 태운 고기잡이 돛단배가 무대로 지나간다.
[뱃노래]
어기야 디여차 어이야 디여 어기여차 울릉도 가잔다
어기야 디여차 어이야 디여 어기여차 자산도 가잔다
동해 바다 푸른 파도에 돛을 올리니
들려오는 갈매기 소리 만선을 알린다
어기야 디여차 어이야 디여 어기여차 울릉도 가잔다
어기야 디여차 어이야 디여 어기여차 자산도 가잔다
울릉울릉 울릉도야 기다렸다 울릉도야
가제 가제 자산도야 보고 싶다 가제들아
어기야 디여차 어이야 디여 어기여차 울릉도 가잔다
어기야 디여차 어이야 디여 어기여차 자산도 가잔다
하늬바람 마파람아 맘대로 불어라
키를 잡은 이 사공이 갈 곳이 있단다
무대 하수 쪽으로 일본 돗토리현 관사가 보인다. 무대 뒤, 스크린에 조선의 판옥선이 지나간다. ‘朝鬱兩島 監稅將臣 安同知騎’이란 깃발이 보기 좋게 펄럭인다. 안용복은 남색 철릭에 가죽신과 관을 쓰고, 이인성은 문관, 유일부는 무관 복장이다.
안용복 자, 이제 곧 호오끼 태수가 오십니다. 우리가 당당해야 담판에서 유리합니다. 그리고 저의 호칭을 잊지 마십시오.
이인성 동해 바다에서 세금을 거둔다는 그 감세장 말이지요?
안용복 맞습니다. 감세장! (유일부를 보며)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요.
유일부 네, 헤헤 잘 알겠습니다. 감세장님!
안용복 이인성 문사님! 어쩌면 호오끼 태수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서 필담을 제안해 올지 모릅니다.
이인성 허허, 너무 걱정 마십시오. 감세장님!
소리 (사이) 호오끼 태수님 납십니다.
태수 조선의 감세장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안용복 아, 아닙니다. 태수님! 멀리 인마까지 보내주어서 고맙습니다.
안용복은 호오끼 태수와 같은 상석에 앉는다. 호오끼 태수는 잠시 불편해하며 헛기침을 하고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는다. 이인성과 유일부도 호오끼 태수의 핵심 참모들과 같은 자리에 선다.
태수 흠 흠, 지난번 안 비장의 담대함에 놀랐지만, 그새 조선의 감세장이 되었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안용복 이 모든 게 지난날 호오끼 태수님이 베풀어준 덕이지요 하하하.
태수 (잠시 어색한 분위기) 아∼, 하하하.
안용복 태수님!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태수 잠깐! 조선 관리가 왔으니 환영의 글을 올리고 답서를 받을까 하오. 이것은 우리 호오끼의 오랜 관행입니다. 여봐라! 어서 방명록과 지필묵을 대령하라!
부하가 환영사를 안용복에게 올린다. 안용복이 환영사를 보고는 이인성에게 다시 준다. 이인성은 글을 보고 일필휘지로 써서 호오끼 태수께 바친다.
태수 (놀라며) 과연 명문이오, 명문! 잠시나마, 감세장을 의심해서 미안하게 되었소.
안용복 흠, 일본인들의 마음은 수시로 바뀌니까요.
태수 (난처한 표정으로) 무슨 말씀을….
안용복 문사! 에도 막부에게 올릴 상소문을 호오끼 태수님께 보여주게!
이인성 네, 감세장님!
이인성은 상소문을 꺼내 호오끼 태수에게 바친다.
태수 (매우 놀라며) 아! 아니, 이런 상소문을….
안용복 태수님! 소인이 지난번 에도 막부로부터 울릉도, 자산도가 조선 땅이라는 서계를 받았던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소?
태수 에도 막부가 그렇게 써 주었다고 했소.
안용복 그런데 귀국길에 대마도주가 막부의 서계를 빼앗아 위조했습니다.
태수 그럴 리가….
안용복 태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
태수 그게 사실이라면 죄… 죄송하게 되었소. 감세장!
안용복 또 지난번 우린 울릉도에서 납치를 당했소. 그런데 대마도주는 우리가 무단으로 월경했다는 위조문서를 보내, 고문을 받게 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소.
태수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감세장! 대체 이 일을 어떡하면 좋겠소?
안용복 먼저, 막부에게 상소하여 대마도주의 죄상을 낱낱이 고해바치겠소.
태수 제, 제발! 그 상소만은 올리지 마시오. 내 처지가 난처하게 되오.
안용복 태수님! 그동안 호의는 고맙지만, 그렇다고 대마도주를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소이다.
태수 아, 마침 여기 대마도주 부친이 와 있습니다.
안용복 (어리둥절해하며) …….
태수 여봐라! 대마도주 부친을 들게 하라!
부하가 대마도주 부친을 데리고 들어온다.
안용복 대마도주 아버님…! 지난날 대마도주가 행한 잘못을 알고 있소이까?
부친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안용복 대마도주는 에도 막부의 서계를 중간에서 빼앗아 위조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대마도주는 조선 임금이 막부에게 보내는 물품의 도량을 속였습니다. 조선의 쌀 열다섯 두를 한 섬으로 한 것을, 일곱 두를 한 섬으로 했소. 또 베 한 필을 서른 자로 한 것을, 스무 자로 했소. 그것도 모자라 종이 한 묶음을 세 묶음으로 나눠 착복한 사실이 있소! 이를 어찌 작은 죄라 할 수 있겠소?
부친은 안용복에게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호소한다.
부친 가, 감세장님! 이 늙은이를 죽여주시오. 만약 그 상소가 올라가면 내 아들은 중죄를 받아 죽을 것이 확실하니, 차라리 먼저 이 아비를 죽여주시오!
안용복 어험…!
부친 (매달리며) 아들을 살려주세요, 감세장님!
안용복 (외면한다) …….
부친 태수님! 제가 할복해서 가문과 아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소.
부친은 할복하려고 품에서 칼을 꺼낸다.
태수 멈추시오! (사이) 만약 그 상소가 에도 막부에게 올라간다면 수백 년 이어온 대마도주의 가문은 멸문할 것이요. 그리고 그때, 감세장에게 못된 짓을 한 종이륜 대마도주는 이미 병사를 했고, 지금은 동생이 대마도주가 되었소. 또한, 그 상소가 올라가면 내게도 영향이 있소. 그러니까 제발 그 상소만은 올리지 마시오. 부탁하오!
안용복 태수님의 뜻이 정히 그러하다면 제안을 하겠소. 먼저, 조선 땅 자산도를 침범한 어부 열다섯 명을 즉시 처벌해주시오. 이는 당신네 나라의 최고 실력자인 에도 막부의 명을 어긴 죄요.
태수 알았소, 여봐라! 지금 당장 어부 열다섯 명을 하옥하고 내일 감세장이 보는 앞에서 처벌토록 하라!
부하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안용복 울릉도, 자산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사실은 이미 삼 년 전에 에도 막부가 이 안용복에게 써준 사실이 있다는 것도 확인해 주시오.
태수 그야 지금 당장, 내가 확인해 주겠소. (눈치를 보며) 이제 되었소?
안용복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소. 호오끼 태수가 앞으로 일본 어부는 물론, 대마도주일지라도 울릉도, 자산도에 침범할 시, 무겁게 처벌할 것을 약속해 주시오.
태수 그렇게 하겠소, 감세장!
안용복 대마도주 아버님! 태수님 덕에 대마도주가 살았으니 그렇게 아시오.
부친 저, 정말 고맙습니다. 감세장님!
태수 여봐라! 여기 감세장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식량과 은자를 넉넉하게 준비하여 조선으로 돌아갈 때 먼 바다까지 호송토록 하라!
안용복 아, 은자는 필요치 않소. 태수님이 약속한 것만 잘 지켜줬으면 좋겠소.
태수 그렇게 하겠소. 감세장! 아마 조선으로 돌아가면 큰 상을 받게 될 것이오.
안용복 모든 게 호오끼 태수님의 덕입니다. 하하하.
태수 아, 아니지요. 모두 감세장이 한 일이지요. 하하하.
안용복과 일행은 호오끼 태수 참모들과 담소를 하며 암전된다.
잠시 후 장엄한 궁중음악이 무대 전면에 흐른다. 무대 중앙으로 핀 조명이 떨어지고 눈부시게 용상이 나타난다. 숙종의 울림소리와 함께 용상을 중심으로, 영상과 영부사가 치열하게 어전회의를 한다.
소리 안용복은 바름과 그름을 함께한 자, 어찌하면 좋겠소?
남구만 신 영중추부사 남구만이 아룁니다. 근자에 나라 사정이 극히 어려워 팔도에 도둑이 들끓고, 굶주린 백성의 주검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소리 그만! (사이) 과인은 지금 안용복을 말하고 있느니!
남구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상감마마! 어민 안용복은 국법을 어겼다고 하나, 그동안 권리 위에서 잠자고 있던 조선 땅, 울릉도와 자산도에서 조선 어부들이 자유롭게 어렵을 할 수 있게 한 공이 크오니, 크게 칭찬하고 상을 내려야 할 것이옵니다.
유상운 마마!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안용복이 공을 세웠다고는 하나, 아직 막부가 보낸 서계도 없을 뿐 아니라, 호오끼 태수의 서약서가 거짓일 수도 있는데, 국법을 어긴 죄인에게 상을 내린다니 가당치 않은 일이옵니다.
남구만 소신이 비변사에서 안용복을 심문한 결과, 자신이 주장한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마땅히 상을 주어 방면하심이 옳은 줄 아뢰오.
유상운 마마! 그건 아니 되옵니다. 만일 안용복이 일본에서 한 일이 잘못되어 나라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면,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하겠사옵니까. 하오니 안용복과 같은 백성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극형으로 다스려야 할 것이옵니다.
남구만 (흥분하며) 영상! 상감마마를 미혹하려 하지 마시오.
유상운 상감마마! (거침없이) 안용복은 일찍이 단종 복위를 주도한 금성 대군과 운명을 같이한 순흥 안가로 정축지변에 멸문이 되었나이다. 그래서 근본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왜관을 출입하는 한양 상인 오중추의 노비로 있다가, 동래부 능노군에 장기 복무하고 면천하여 전역했사옵니다.
남구만 영상! 확실치도 않은 정축지변을, 안용복에게 연좌로 묶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유상운 어허, 영부사! 그렇다고 안용복이 서계를 받은 것도 아니고 서약서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설사, 안용복이 서계를 받았다고 해도 일본국 막부가 조선의 일개 어민이 두려워서 그랬겠습니까? 엄연히 우리 조선의 조정을 의식해서일 것입니다. (화를 내며) 무엇보다 제멋대로 감세장으로 사칭을 하고 혼란케 한 점은 도저히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남구만 영상! 조선에는 엄연히 납속제도가 있고 안용복은 능노군에서 전역할 시 모아둔 전 재산을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을 위해 다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비장이란 벼슬도 받지 않았습니까. 단지 일본국에서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고육지책으로 조선에는 있지도 않은 감세장이라 칭한 사실을 지나치게 해석하는 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소리 영상! 그것은 영부사의 생각이 옳소이다.
유상운 네, 신 영의정 유상운! 더 이상 안용복의 사칭 건은 거론치 않겠사옵니다. 하지만 조선에는 엄연히 국법이 있사온데 어찌 작은 공이 있다 해서 안용복을 방면하겠습니까. 만약 이번 일을 선례로 남긴다면 모든 백성이 마음대로 국경을 이탈하고 혼란할 것이 자명하니, 일벌백계하여 극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남구만 (간곡하게) 상감마마! 신 영부사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올리옵니다. 지금 안용복은 호오끼 태수의 서약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조금만 더 형을 지체하고 일본의 반응을 기다렸으면 좋을 듯하옵니다.
소리 경들의 뜻을 잘 알았으니 그렇게 하시오.
일동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상감마마!
무대가 암전되자, 주위에 왁자지껄한 소리가 잦아들고 천천히 무대 밝아온다. 안용복을 에워싼 무리들 속에 유일부와 이인성이 감정에 북받쳐서 어깨를 들먹인다. 이때 안용복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먼 하늘을 쳐다본 후 입을 뗀다.
안용복 자네들! 그동안 날 돕느라고 애썼네. (사이) 어차피 우리가 한 일이 지체 높으신 사대부나 양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장 배가 고파 죽어가는 우리 백성을 위한 일이 아니던가. 대대로 바다를 통해 먹고 살아야 할 백성 말이야, 백성! 당연히 우리가 우리 일을 하다가 죽는데 무엇이 억울한가.
이인성·유일부 …….
안용복 혹여, 섬이 육지에서 떨어져 있다고 방심하면 곧 왜놈 수중에 떨어질 것이네. 어차피 섬과 바다는 바다 밑을 아는 우리 백성의 것이니까 늘 관심을 놓지 말게. 만약 우리 섬을 빼앗기면 금방 나라도 뺏길 걸세!
이인성·유일부 (어깨를 들먹이며 목이 멘다) …….
옥졸이 급하게 다가오면서 말한다.
옥졸 어서 비키게, 망나니가 도착했네!
유일부 그, 그렇다면…?
옥졸 (고개를 끄덕인다) …….
이때, 망나니가 등장하여 한바탕 칼춤을 추어댄다. 주위에 구경꾼들이 몰려오고 누군가가 외친다. 곧이어 많은 사람들이 큰소리로 따라 외친다.
구경꾼들 안… 용… 복…. 안용… 복! 안용복! 안용복!
망나니가 더 살벌하게 칼춤을 추다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고 겁을 준다. 이때, 옥졸이 달려와 크게 고함친다.
옥졸 어명이요∼ 어명! 금부도사가 어명을 갖고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순간 무대 암전되고 핀 조명이 무대로 떨어진다. 잘 갖춘 용상을 향해서 영부사 남구만이 단독으로 알현한다.
남구만 상감마마, 대마도주가 보내온 서계를 보셨사옵니까?
소리 허허허, 보았지요! 영부사!
남구만 그동안 대마도주가 수없이 울릉도, 자산도를 일본 땅에 복속시키려고 했지만, 이제 욕심을 접고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을 했사옵니다.
소리 대마도주가 스스로 잘못을 알아서 그리했겠소? (사이) 안용복이라는 어부가 일본국을 낚았구먼. 하하하.
남구만 그러하옵나이다. 전하! 이 모든 일은 안용복이란 어민이 한 일이옵니다. 비록 안용복이 국법을 어기고 월경한 죄가 작지 않다 할지라도, 조선 영토를 수호하기 위한 가상함이 엿보입니다. 또 백성이 날마다 관아를 찾아와서 안용복을 방면해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사오니, 다시 한 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리 아오! 허나, 영상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그리 생각들 하지 않잖소?
남구만 그렇지만 지금은 대마도주의 서계도 도착했고, 무엇보다 어려운 시기에 백성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 번 고려하심이 좋을 듯하옵니다.
소리 허면…, 영부사의 생각은 무엇이오?
남구만 그가 한 일이 가상해 목숨을 부지케 하되, 국법을 어긴 죄는 묻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되어 궁지로 유배를 보내심이 좋을 듯하옵나이다.
소리 유배! 유배라…. (사이) 그리하도록 하시오.
남구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상감마마!
무대에서 핀 조명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들린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