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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바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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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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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장난이 지나치구나. 친구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도 모른 다면 호하우 행성에서 살 자격이 없다. 가장 낮은 것이 되어 너 를 돌아보아라! ”
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티바는 공 모양의 투명한 우주선에 갇 혀버렸어요.
우주선은 둥실 떠올라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고 광활한 우주 속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어요.
호하우 행성은 우주에서 가장 진보된 문명을 가지고 있고, 가 장 평화로운 행성 중 하나예요. 누구나 초능력이 있는 행성이지 요. 그러나 아무도 누구를 힘들게 하는 일에 초능력을 쓰지는 않 아요. 그런데 티바는 그렇지 않았어요. 친구들에게 장난으로 초 능력을 쓰며 함부로 말을 하고 함부로 행동했어요.
호하우 행성의 왕은 아들 티바 때문에 늘 고민이었어요. 마음 에 상처받은 아이는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테고 그 마음이 세상 에 퍼진다면 호하우 행성은 더 이상 평화롭지 못하게 되겠지요.
티바가 스스로 느끼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왕은 큰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우주를 날고 있는 투명한 우주선 안에서 티바는 두려웠어요. ‘내가 여기서 못 빠져나갈 것 같아? ’
티바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어요. 누구보다 뛰어난 초능력을 가 졌기에 금방 호하우 행성으로 돌아갈 자신이 있었어요. 그러나 여전히 둥근 투명한 우주선 안이었어요.
벽면에는 티바의 심한 장난들이 동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어요. “친군데 저 정도면 받아줄 수 있는 거 아냐? ”
티바는 화면을 띄워 친구들을 불렀어요. 아무도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친구들은 내게 한 번도 싫다고 하지 않았어.”
티바를 감싼 투명한 우주선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갔어요. 초록 행성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곧‘지구’행성에 도착한다
는 안내 음성과 함께 호하우 행성과 닮았지만 다른 여러 정보가 빠르게 소개되고 있었어요.
티바는 실망했어요.
‘이런 미개한 곳에 보내다니.’
이제 겨우 우주를 탐사하기 시작한 그야말로 걸음마 행성이었어요. 대기권에 들어선다는 안내와 함께 화면이 모두 꺼졌어요. 순식간에
구름 밑으로 내려갔고 곧이어 건물이 보였어요.
지면이 가까워지자 티바가 탄 우주선이 안개처럼 작은 알갱이로 흩 어지기 시작했어요. 티바는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무언가 소용돌 이치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어요.
살랑살랑 간지럽히는 느낌에 티바는 눈을 떴어요.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고,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떠 있었어요. 건물들이 사방으로 보이고 건물 주변엔 키 큰 나무들이 있었어요.
호하우 행성의 사람들과 닮은 티바 또래의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티바를 밟고 지나갔어요.
“악! 눈은 뒀다 뭣에 쓰는 거야? ”
아이들이 깜짝 놀라 멈추었어요.
“여기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지구인 아이 하나가 종이로 변한 티바를 꾹 밟았어요.
“이것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 가만두지 않을 거야.”
티바는 아이들이 저 멀리 나가떨어지는 상상을 하며 정신을 집중했 어요. 그러나 티바의 초능력은 지구에서는 통하지 않았어요. 티바는 온 몸이 짓눌리는 고통을 느꼈어요.
“종이에서 찌글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재밌다! ”
지구인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티바를 쿵쿵 밟아댔어요. “찢어볼까? 뭐가 들어서 이런 소리가 나지? ”
“약속 시간 늦겠다. 희철이 전화하기 전에 그만 가자.”
아이 하나가 티바를 휙 걷어찼어요. 티바는 공중으로 휘리릭 날아올 라 다시 땅으로 떨어졌어요.
‘나보고 종이라고? ’
화를 꾹 참으며 티바는 눈동자로 공중에 사각 화면을 그렸어요. “내 모습 좀 보여줘.”
두툼한 갈색 종이에 신발 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모습이 보였어 요. 티바는 기분이 몹시 상했어요. 호하우 행성에서는 제법 잘생겨서 여자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던 터라 지금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 었어요.
“이건 아니잖아! ”
티바는 화면을 띄워 호하우 행성과 연결하려 했지만, 차단되었다는 문구만 표시되었어요.
멍멍! 사납게 보이고 입이 큰 개가 티바에게 다가왔어요. 티바는 두려워서 숨도 쉬지 못했어요.
“왜 그래, 진돌아. 더러운 종이잖아.”
개는 목줄을 쥐고 있는 여자에게 끙끙거렸어요.
“어서 가자! ”
개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뒷발을 들어 오줌을 갈겼어요.
“가만두지 않을 거야.”
티바는 화가 나서 소리쳤어요.
따르릉, 따르릉. 자전거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티바를 밟고 지나 갔어요.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버렸어요.
걸어오던 청년이 티바를 전봇대로 힘차게 걷어차며 외쳤어요. “골인! ”
전봇대를 박고 땅으로 떨어진 티바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부르르 떨었어요.
고양이가 다가와 꼬리를 말고 쉬었다 가도, 귀여운 아가가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도 티바는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았어요.
밤이 되었어요. 지구인들이 사는 건물 창에서 밝고 따스한 빛이 새어 나왔어요.
할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가다 걸음을 멈추었어요. 손수레에는 납작 하게 접은 종이상자들이 가득 들어 있었어요. 할머니는 두툼한 갈색 종 이를 주웠어요. 어지러이 자국이 찍히고 긁혀서 깊게 팬 종이를 보고 혀를 찼어요.
“귀한 종이가, 세상에나! ”
할머니는 종이를 품에 안아 토닥토닥 두드렸어요.
“아팠지? 이 할미는 알아. 네가 얼마나 귀한지 다 알아. 나도 얼마 뒤 엔 죽어 흙이 되겠지. 그런 흙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처럼 너도 누군가의 생명을 먹고 자라서 종이가 되었으니 얼마나 귀하냐구. 이 세상엔 저 혼자 무엇이 되고, 저 혼자 잘난 것은 없어. 넌 분명 누군가에게 소 중한 종이였을 거야.”
혼자 나직이 중얼거리던 할머니는 종이를 투박한 손으로 쓰다듬었어 요. 순간, 티바의 가슴에 무언가가 뜨겁게 번져왔어요. 험한 일들을 겪 으며 미움이 커졌던 티바는 처음으로 친구들의 마음을 생각해보았 어요.
여자친구가 건네던 예쁜 꽃을 시든 꽃으로 변하게 했을 때, 맛있는 음 식을 벌레처럼 보이게 했을 때, 우주선 함장이 되겠다던 친구에게 못생 겨서 될 수 없다고 했을 때, 어색하게 웃거나 슬픈 표정을 짓던 친구들 이 떠올랐어요.
“엉엉! ”
티바는 갑자기 눈물이 터졌어요.
“내가너무못됐어.”
할머니의 걸음처럼 뒤뚱이며 흔들리는 수레에서, 더럽고 할퀴어 패 인 갈색 종이가 비도 오지 않는데 축축이 젖어 들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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