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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조시 고찰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운중

민조시인·한국문인협회 민조시분과회장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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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조시 천부경 81글자의 수리를 근거하며 3·4·5·6 조의 정형 리듬과 율조에 의한 18자의 시가 곧 동이민족(백의민족)의 민조시 기원이다.

기원 최초의 민조시「도실가」
기원 1만 2천년 전 마고성에서 백지소라는 이가 소(巢)의 난간에 열린 넝쿨에 포도를 먹고 깨우침을 얻어 노래를 지었다. 「도실가(萄實歌)」는 인류가 처음으로 지혜를 얻었지만 자재율을 잃어버려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고 점점 죄악이 커져 신을 노하게 만들었다.

浩蕩兮天地
我氣兮凌駕
是何道兮
萄實之力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한다

어찌 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다.
——「도실가」〔출처: 『부도지』(박제상), 원문 번역: 김은수〕

신라시대에 활동하던 문인은 대표적으로 최치원 선인을 들 수 있지만 『부도지』를 쓴 박제상은 역사적 사실을「도실가」라는 짧은 시 한 수를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누가 번역해도 이 시는 민조시로 번역될 수밖에 없다.
『부도지』의 스토리를 몰라도 어려운 것은 없다. 하지만 당신은 이 시의 뜻을 알고 나면 『부도지』를 알게 된다.
민조시란 민초의 의식이고 민초의 힘이고 민초의 역량이다. 포도가, 아니면 지혜의 나무가, 태초에 우리에게 던진 화두가 있다.

도실(萄實)…
포도의 노래
비록 지금은 포도의 힘이 사라졌을 지라도
누군가는 낙원에서 추방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포도의 힘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것이 민초의 힘이기 때문이다.

위 인용문의 예와 같이 그 기원이 된 민조시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음미함에 있어 근간이 될 것이다. 음악에도 고대부터 이어온 ‘정악(正樂)’이 있었던 것처럼 맥이 끊겨버린 한자로 된 민조시도 민족의 흥망성쇠와 더불어 고유의 시가였던 것이다.

한국 문단에서 현재 활발히 재현되고 있는 민조시는 아산 신세훈(我 山 申世薰) 선생이 수십 년간의 연구 끝에 그 새로운 태동을 보게 되었 고, 한국문인협회의 10개 분과(시, 시조, 민조시, 소설, 희곡, 평론, 수필, 청소년문학, 아동문학, 외국문학) 중 한 분과로써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 하여 우리말과 한글을 정형 3·4·5·6 조 운율로 그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기존의 한시와 낡은 시어에서 벗어나 순수한 우리말과 글을 살려 우리 정서의 시를 정형으로 만들어 보자고 하는 것이다. 현대의 민조시인들은 선구자의 입장에서‘올바르게 공부하고 좋은 작품을 많이 창작하여 그 기틀을 세워줘야 하겠다’는 부활 1세대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공부하여야 한다.
민조시의 작성법은 그간 발표된 여러 글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나름대로 여러 분야로 응용이 가능하다. 짧은 1편 속의 적은 글자 수에 문학, 철학, 사회, 자연, 지리, 역사를 녹여 정형 3·4·5·6 조로 엮어 내는 것이란 결코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단수 1편 혹은 전후 편, 초중종 편, 기승전결 편 등으로 각 연의 겹치기는 허용하면서, 사설시·기행시로도 그 응용이 가능하며, 간결한 어조를 유지하여 작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편의 시에서 중복되는 단어가 없는 것이 원칙이며 제목까지도 시의 일부분이다.
요즘 유행하는 긴 시와, 노래 가사에나 자주 쓰이는 후렴을 겹쳐 이미지와 뜻을 보완한다며, 낡은 시어를 지루하게 등장시켜 쓰는 것은 민조시의 방법이 아니다.
도치법, 연역법 귀납법 등 모든 기교는 시의 운율과 이미지를 극대 시키는 것에 동원될 수 있고 리듬이나 호흡을 살려 쓰는 행 구분 또한 유용하다.
한 예로 아리랑의 율조를 보면 ‘아리랑(3) 아라리요(4) 아리 아리랑(5), 아라리가 났네(6), 아리랑 고개로(6) 내가 넘어 간다(6)’ 등등 다양하게 각 지역별로 전해져 불리며 내려오는 그 노랫가락이 바로 우리 민족의 율조이며 민중의 노랫가락으로써 상류층의 한시와는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혹자는 가사도 있고 시조가 있는데 무슨 민조시냐 고 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들린다. 그것은 하나의 기우이며 엄연히 형식과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민조시의 특징은 자연히 단수가 원칙이고 파생되는 분야로 응용하는 것이다.
요즘 발표하는 작품들 중에는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특징이 사라지고 애매한 단어만 가득 늘어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공부는 하지 않고 흥미 위주로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아지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아지랑이의 의미를 담아 내는 것은 특히 민조시인의 뼈를 깎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3·4·5·6  글 자 의 배열로만 그 수를 맞춘다고 민조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항간에는 등단을 하였다는 민조시인도 별도의 교습 없이 민조시라고 내놓거나 임의로 해석하여 그 참뜻을 훼손하고 왜곡시키는 사례가 빈번하다. 뜻있는 시인들은 각자 좀 더 공부하여 그 본래의 율조와 의미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신인들의 발굴로 저변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 다시 정립해 가는 1세대로서의 긍지를 갖고 애쓰는 자세여야 할 것이다. 일반 시를 공부한 많은 시인들이 다시 배우고자 하는 것을 볼 때‘민조시에는 새로운 끌림이 있다’고 자부한다.
한편 민조시가 고대 일본으로 건너가 발전하여 문학의 여러 장르 중 힘있는 분야가 된 하이쿠(徘句)는 율조 17글자의 짧은 시가 ‘하이쿠 한편 모르면 문학을 한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앞으로 더욱더 연구 발전시켜 민족을 대표하는 시로 자리매김할 것을 민조시인과 문우님께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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