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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전세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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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이 햇살에 눈부시게 쏟아진다. 푸른 하늘이 머리 위 에 내려앉고 있다. 낮에는 온몸이 살랑살랑 봄바람이 내 몸을 덮 어준다.
별들과 소곤소곤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즐거움이다.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바람과 훨훨 춤추며 세상구경 하는 소쩍새가 부럽다. 매일 엄마의 손에 붙들려 있다.
“너는 바람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있어도 엄마가 먹이 를 날라다 주니 얼마나 좋니? ”
소쩍새는 내가 부러운 모양이다. 나는 소쩍새보다 훨씬 편하 지만, 하늘을 마음껏 날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다.
앞산 중턱에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깨끗한 사찰이 보인다. 여 승만 사는 절이라 아침저녁 여스님의 불경 소리만 들린다.
햇살도 못 받고 있는 힘을 다해 가면서 우리들을 먹여 살리느 라 계속 땅속으로 파고들어, 먹이를 위로 위로 보내주고 있는 그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 본다. 비록 아빠의 얼굴은 못 보 았지만, 우리 형제들은 아빠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엄마를 통 해 보내고 있다.
우리들은 즐겁기만 했어요. 태풍이 물러간 하늘은 뭉게구름이 머리 위에서 쉬다 가고, 매미들의 합창이 다시 산을 찌릉찌릉 울려 퍼지기 시작했어요.
가을이 왔어요. 산골짜기에는 옛날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절에는 울 긋불긋 등산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마을로 나들이 갔다가 돌아 온 소쩍새는 내 곁에 앉아서 노래를 불렀어요.
“솥 적다 솥 적다! ”
“얘야, 그렇게 풍년이 들었니? ”
“응, 대풍년이야! 그래서 농부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그래서 네가 솥이 작다고 자꾸 노래를 부르는구나! 밥을 많이 하려 면 솥이 커야 하는데… 더구나 금년에는 풍년이니.”
“응, 그래. 풍년이 들어 떡을 해 먹으려면 솥이 작아.”
소쩍새는 다시 노래를 불렀어요.
나와 우리 형제들은 앞산의 다른 친구들과 붉게 또는 누렇게 옷을 바 꿔입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어느새 누런 옷으로 바꿔입고 있었어요.
“야! 너 옷이 매우 곱다! ”
“아니야, 네 옷이 더 고와! ”
우리들은 서로 새로 입은 옷들을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었어요.
초록색보다 울긋불긋한 옷이 더욱 곱고 아름다웠으나 나는 어쩐지 마음이 슬퍼졌어요. 내가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곧 엄마와 모든 형제들 과의 이별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다른 형제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 고 그저 당장 곱고 아름다움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어요. 나는 어느 날 엄마의 손을 놓아버렸어요.
어느 날이었어요. “어마? ”
혼자 힘없이 산길을 올라오던 예쁜 소녀가 나를 집어 든 순간 토끼처 럼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놀래는 표정을 지었어요.
“아, 이 사람이다! ”
나도 몰래 소리를 와락 질렀어요. 그 소녀는 듣지 못했어요. 소녀는 금세 눈물을 흘리며 나를 자기 가슴에 포근히 안아주었어요.
“오빠가 여기까지.”
소녀는 피곤한 듯 길옆 바위에 걸터앉았어요.
“오빠, 난 오빠를 만나면 안 돼. 그럼 오빠는 더 나보다 괴로워할 텐 데… 나, 절에 가서 몇 달 수양하다가 오빠 곁으로 갈게. 집으로 돌아 가요.”
소녀는 나를 가슴에 안은 채 흑흑 느끼며 굵은 눈물방울을 흘러내렸 어요.
‘옳지 되었다. 자꾸자꾸 오르면 오빠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손뼉을 치면서 소녀가 자꾸자꾸 산으로 올라가기를 바랐어요. 그 청년이 나를 날려 보낸 곳이 바로 산 위였어요. 그러나 그 사람이 아 직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나는 생각도 못했어요.
소녀는 더 산을 오르지 않고 처음 그 청년을 만난 사찰로 들어갔어 요. 어쩜 그 소녀가 가여워진다는 생각이 가슴에 차올랐어요. 어디가 아픈지 몰라도 하루속히 완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속에 가득 찼 어요. 소녀는 불상 앞에 삼배를 올리고 다시 나를 들고 법당 뒤쪽 바위 로 올라가 앉아 나를 어루만지며 다시 눈물을 흘렸어요. 나도 왈컥 울 음이 터질 것만 같아 겨우 참았어요.
“오빠, 이 나뭇잎. 내가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오빠를 집에서 만나는 날 오빠에게 보여줄게.”
소녀는 손에 들고 있던 조그마한 가방을 열고 책을 폈어요. 놀랍게도 책 페이지 여기저기에 같은 형제는 아니지만 열 가지 나뭇잎들이 배시시 웃으면서 반겨 주었어요. 소녀는 살며시 책갈피 속에 나를 넣어버렸다. ‘아, 이제 어쩌나! 엄마 곁에 다시 태어날 수 없게 되었네! ’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나는 땅속에 묻혀 내 몸이 썩어야 다시 엄 마 곁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어요. 책갈피 속에서는 내몸이썩을수없어요.
‘그러나 어쩔 수 없어.’
그 청년의 글을 이 소녀에게 전해 주겠다는 사실이 나는 더 자랑스러 웠어요.
‘엄마가 말하는 착한 일이 이런 것일런지도 몰라. 이제 긴 잠이나 푹 자면서 이들 오누이가 다시 만나 나를 꺼내보며 웃을 날을 기다려 야 했다.’
나는 엄마 곁에 다시 나타날 수 없는 것이 슬펐으나 착한 일을 했다 는 즐거움 때문에 어둠 속에서 잠잘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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