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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비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강태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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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한 잎도 없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과 땅속에 얼어붙은 풀싹들은 죽은 듯이 가만히 옹크려 그 지독하고 매서 운 추위를 이기고 견디며 봄이 오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때때로‘윙윙’소리치며 불어 닥친 눈보라는 하늘을 찌를 듯 한 키다리 나무나, 꼬마 난쟁이 나무나 가리지 않고 마구 때리며 지나갑니다. 이럴 때면 나무 껍질이 얼어서 터지고 갈라지는 아 픔을 치릅니다. 그렇지만 꽃눈만은 다치지 않으려고 두꺼운 껍 질로 겹겹이 싸고 또 싸서 이를 악물고 보호합니다.
키가 큰 상수리나무, 전나무, 밤나무들은 그 매서운 추위를 잘 참고 견디지만 키가 작은 진달래꽃 나무, 개나리꽃 나무들은 고 추보다 더 매운 추위를 이기기 힘겨운 불평이 이만 저만이 아닙 니다.
“이 지긋지긋한 혹독한 추위가 언제나 다 지나가지? 어서 따 뜻한 봄이 와야 예쁜 분홍 진달래꽃, 노랑 개나리꽃을 얼른 피울 텐데….”
키다리 벚꽃나무를 쳐다보고 애원하듯 하소연하였습니다.
“그래, 나도 키만 크고 뚱뚱하지 춥기는 마찬가지야. 꽃눈을 잘 보호해야 멋지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잖니?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봄 은그리멀지않을거야. 안그래?”
이렇게 진달래꽃나무, 개나리꽃나무는 벚꽃나무와 서로서로 위로의 말을 주고 받으며 봄은 멀지 않았다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바위가 부서지는 혹독한 겨울이 머물다 간 산골짜기에 는 어느새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춤추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키다리 전나무가 맨 먼저 보고서 저도 모르게 기지개를 쫙 펴고 앙상 한 가지를 흔들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 아지랑이가 춤추는 것이 보인다. 봄이 오고 있나 봐. 남쪽에서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일 거야. 틀림없이 봄을 싣고 오는 봄바람일 거야.”
옆에 있던 떡갈나무, 밤나무도 기뻐서 덩달아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 며 소리쳤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봄이 온다는 소리는 온 산에 메아 리 쳐 모든 풀싹과 나무들은 기뻐서 야단들입니다.
난쟁이 진달래꽃나무는 죽은 듯이 가만히 옹크리고 봄이 오는 꿈을 꾸다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까치발을 떠서 먼 산을 바라보았습니 다. 정말로 아지랑이가 춤추듯이 하늘이 아른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산 새들도 봄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새 봄 노래를 불렀습니다. 살 랑살랑 바람도 봄을 싣고 오는지 신이 나서 산골짜기를 한 바퀴 휙 돌 아나갔습니다.
땅 속에서 얼어붙은 풀싹들도 봄이 온 것을 알았는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무들도 기쁨에 들떠서 몸단장을 서둘렀습니다 가지마다 쌓였던 겨 울 먼지를 깨끗이 털어버리고 꽃과 잎을 피울 준비를 하느라 분주를 떨 었습니다.
“애들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봄이 오는 거야. 봄을 맞으려면 얼른 서둘러야 해.”
“그래그래, 우리 꽃나무들은 예쁜 꽃을 피워 꽃잔치를 벌일 거야. 벌 과 나비들의 귀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니? 사람들도 우 리들의 아름답고 예쁜 꽃을 보려고 구름같이 모여들 거야. 지난 해에도 사람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괴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난 봄이 좋단 말야. 안그래?”
풀싹과 나무들은 봄이 온다는 소식에 꿈에 부풀어 가지마다 잎과 꽃 을 남보다 먼저 피우려고 눈을 돋우웠습니다.
들에 나무나 산에 나무들 모두 봄을 맞을 준비에 한창 바빴습니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같은 사철 나무들도 새봄 따라 새 옷으로 갈아 입으려 바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봄은 정말 멋지게 올 것 같았습니다. 따뜻한 남쪽에서 봄이 오고 있 음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살짝 몰래 올 것 만은 틀림없었습니다.
‘봄은 훈훈한 바람을 타고 올까? 구름을 타고 다니다 비로 내려올까? 아니면 찬란한 햇빛을 타고 올 것인가? ’
풀싹과 나무들은 모두들 가슴을 죄며 애를 태웠습니다 그런데 기다 리고 기다리던 봄바람은 어디로 가고 난데없는 찬 바람이 별안간 불어 닥쳤습니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아마 샘이 났던지 아니면 아직도 겨울바람 이 산골짜기에 몰래 숨었다가 몸부림을 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일 입니다.
봄이 오는 추위는 한겨울 추위보다도 더 추운 것 같았습니다. 하얀 눈까지 날렸습니다. 꽃샘추위라고는 해마다 있지만 너무 심한 추위인 것 같았습니다.
새로 오는 봄을 맞으려 활짝 열어 놓았던 꽃눈과 잎눈이 너무 놀라서 다시 오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깜짝 놀란 풀싹과 나무들은 다시 죽은 듯이 몸을 옹크리고 납작하게 엎드렸습니다. 봄이 왔다고 너무 성급하 게 서둔 것을 후회하며 말입니다.
봄이 오면 남보다 먼저 더 예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 쏘옥 내밀었 던 꽃눈과 잎눈을 다시 오므렸지만 너무 매서운 추위에는 견디지 못하 고 가엾게도 얼어 죽은 것도 더러는 있었습니다.
“아이 추워, 한겨울에도 이처럼 춥지는 않았는데 아직도 겨울보다 더 추운 찬 바람이 숨어 있었나 봐. 꽃눈이 얼었으면 어떡하나! 큰일이야.”
풀싹과 나뭇가지들은 서로들 껴안은 채 얼어 죽지 않으려고 눈을 꼭 감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봄을 기다리던 풀싹과 나무들은 갑작스러운 추위에 지쳐서 그만 녹초가 되어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콜콜 곤하게 잠든 나무들 몰래 하늘에선 봄바람을 실은 보슬비가 보 슬보슬 봄 노래를 부르며 가만가만 내렸습니다.

보슬보슬 보슬비 봄이 봄이 오는 비
나뭇가지 흔들어 잠을 깨우고
남쪽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며는
파란싹이 움트는 잎눈 든다네

가랑가랑 가랑비 봄이 봄이 오는 비
땅속 깊이 잠자던 싹을 깨우고
하늘에서 봄볕이 내리쬐이면
예쁜 꽃을 피우려 꽃눈 뜬다네

풀싹과 나무들은 봄바람을 실은 봄 노래를 꿈속에서 들으며 단꿈을 꾸고 있습니다. 모든 풀싹과 나무들은 꿈속에서 봄을 맞았습니다. 온 세상이 봄기운 속에 잠겼습니다. 봄을 실은 보슬비는 풀싹과 나뭇가지 마다 보슬보슬 내려앉았습니다.
풀싹과 나무들은 깊은 잠 속에서 햇솜 이불을 덮은 듯 포근히 잠이 들었습니다. 보슬보슬 보슬비를 맞으며 풀싹과 나무들은 콜콜 더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보슬보슬 내리던 봄비가 어느새 그치고 찬란한 햇빛 이 풀싹과 나뭇가지 위에 내려 쬐었습니다.
너무 따뜻하여 깜짝 놀란 풀싹과 나뭇가지들은 눈을 번쩍 뜨고 사방 을 살펴보니 어느새 따뜻한 햇빛 속에서 봄은 찾아와 있었습니다. 모든 풀싹과 나무들은 생기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야, 이젠 정말 봄이 왔구나! 꿈속에서 보았던 봄이로구나! 이제부터 마음껏 꽃을 피우고 잎을 피워야겠다.”
벌써 하늘에선 종달새가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 부르고 먼 산에선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곤하게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난 풀싹과 나무들은 기지개를 마음껏 펴고 허리를 한 뼘씩 늘렸습니다.
얼어붙었던 풀싹과 나무들은 꽃눈과 잎눈을 활짝 열고 땅속에서 몸 안으로 물을 빨아올리고 양분과 거름을 날랐습니다.
키다리 나무, 난장이 나무 가릴 것 없이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습 니다. 진달래꽃나무는 예쁜 분홍꽃망울을 터트리고 개나리꽃나무는 노랑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옆에 있던 키다리 벚나무도 지지 않으려 더 멋진 꽃을 피우려고 온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풀싹과 나무들이 겨우내 꿈꾸었던 찬란한 봄이 무르익기 시작하였습 니다. 벌과 나비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벌써부터 꽃잔치에 초대되어 한창 바쁩니다. 많은 사람들도 봄을 맞으려 진달래꽃, 개나리꽃, 벚꽃 속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풍겨지는 꽃향기는 겨울 동안 얼어붙었던 온 땅을 촉촉이 녹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공원이나 산으로 구름같이 모여들었습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꽃을 보고 즐거워하며 추운 겨울 동안 쌓였던 근심 과 걱정을 먼지처럼 툭툭 털어버렸습니다. 또한 향기롭게 풍겨지는 꽃 내음이 어둡던 마음을 더 밝게하고 무겁던 머리를 더 맑게 식혀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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