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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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인 1950년대 초, 고향에는 개구리며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가 지천이었고 산에는 꿩이며 산토끼며 다람쥐, 산새 등이 날고, 기며 뛰어다녔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다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산과 들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쏘다니며 구김살 없이 자랐다. 들에는 들쥐도 흔해서 쥐를 잡아먹고 사는 뱀이며 족제비가 집 근처까지 드나들고 가끔 먼동이 트는 새벽녘, 들에 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여우나 족제비를 목격하기도 했으니 참으로 오래전 이야기다.
곡식이 여물 때면 쥐나 참새의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어느 해는 쥐가 콩꼬투리를 따다가 콩 알맹이만 굴 안으로 물어 들였다. 쥐가 하도 많이 드나들어 쥐 굴 입구가 반질반질 닳았다. 농작물은 참새의 피해도 매우 컸다. 참새 떼가 수백, 수천 마리씩 몰려다니며 울타리나 덤불에 내려앉는 소리가 획획 바람이 일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참새는 특히 올벼나 수수 이삭, 조밭에 많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땀 흘려가며 애써서 농사 지은 곡식을 쥐나 참새가 먼저 시식을 했다. 오죽했으면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쥐꼬리를 몇 개씩 가져오도록 과제를 내주기도 하고, 쥐 잡는 날이 연례행사로 정해 있었다.
논에는 허수아비가 밀짚모자를 쓰고 논두렁마다 서 있는 모습이 당시의 농촌 들녘이었다. 농촌 그림에는 허수아비가 단골로 등장했다. 조밭이나 올벼 논 옆에는 새막을 짓고 아이들은 하교 후에 새막을 지키며 새 보는 일이 어른들 농사일을 돕는 일이었다.
참새가 이렇듯 많다 보니 겨울이면 읍내 사람이 공기총으로 참새를 잡기도 했다. 아이들은 구경하는 재미로 졸졸 따라다녔다. 자동차를 따라가며 휘발유 냄새를 맡기도 했으니 당시 아이들은 그저 모든 게 신기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겨울이면 몰지각한 몇 사람이 산이나 들에 ‘싸이나’라고 하는 독약이 든 콩알을 눈 위에 뿌려 놓기도 했다. 꿩은 그 콩을 주워 먹고 멀리 날아가 다른 곳에서 죽기도 해서 엉뚱한 사람이 횡재를 하기도 했다. 죽 쒀서 뭐 준다고 하는 옛말이 그래서 생겼나 싶다.
만만한 게 흔한 참새여서 아이들도 심심하면 초가지붕 추녀를 들쑤셔 참새 알을 꺼내거나 새끼를 꺼내 가지고 놀았다. 참새 새끼는 사람 손에 길들지 않으니 아까운 어린 생명을 죽이기 일쑤였다. 참새 알은 대파 속에 넣어 아궁이 불이나 화롯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겨울에 눈이 하얗게 내리면 마당을 쓸고 왕겨를 깔아 참새를 유인했다. 둥구미, 삼태기를 세워 부지깽이로 받치고 새끼줄로 연결해서 방문 틈으로 들여 놓고 참새가 들어가기를 내다보며 기다린다. 간혹 재수 없는 참새가 한두 마리 잡혔다. 아이들은 고무줄 새총도 만들어 참새잡이에 나서기도 했다.
청년들은 겨울밤 집집을 돌며 초가집 추녀 끝을 뒤져 직접 잠자는 참새를 잡았다. 대부분 시골집은 지게만 뜰 위에 세워 놓고 올라서도 추녀 끝에 손이 닿았다. 참새와 무슨 철천지원수라고 이처럼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다 써가며 참새잡이에 열을 올렸는지 모를 일이다. 참새고기는 예부터 맛있기로 소문이 파다했다. 참새가 쇠뿔에 앉아 ‘네 고기 열 점이 내 고기 한 점만 하냐’고 자랑할 정도로 참새고기는 맛이 있다는 이야기다. 포장마차에서 참새고기가 술안주로 인기를 누리던 시절도 있었으니 맛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어느 여름날 나는 참새 새끼를 꺼내려다 아주 혼쭐 난 일이 있다. 부모님은 집을 비우고 들일로 바쁠 때인데 혼자 무척이나 심심했던가 보다. 뒤란으로 돌아가 사다리를 추녀 끝에 세우고 참새굴에 팔뚝을 깊이 넣었다. 팔뚝이 다 들어가도록 굴은 깊었고, 참새 새끼는 잡히지 않았다. 더듬더듬 참새굴 막장까지 손끝의 감각으로 살피는데 별안간 손가락 끝이 바늘에 찔린 듯이 따끔했다. 그 시절에는 집 안에 뱀도 심심찮게 들어오던 때였다. 특히 큰 뱀은 업구렁이라고 해서 잡아 죽이지도 않았다. 작대기로 겨우 울 너머 멀리 던져 버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더러 안방의 윗목 장롱 위에서 뱀이 발견되어 기겁하고 놀란 경우도 있었다. 어른들 말로는 집 안에 쥐들이 많아 참새 새끼나 쥐를 잡아먹으러 뱀이 들어온다고 했다.
황급히 손을 빼고 살펴보니 손가락 끝이 빨갛게 무엇에 찔린 것인지 뱀에 물린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나이는 어려도 들은 이야기는 있어서 뱀독이 전신에 퍼지는 것을 방지한다고 손가락 끝을 실로 묶으니 금방 손가락 끝이 새까맣게 죽는다. 겁도 나고 어찌할 바 모르다가 개울 건너 밭으로 어머니를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하니 “거봐라, 이놈아, 맨날 참새굴이나 쑤시고 다니니 벌을 받는 거야” 그러시면서 눈길도 안 주신다.
역성을 듣고 좋은 치료 처방이나 방책을 들을까 했던 마음이 그만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독 없는 뱀인지 아니면 뱀이 아니라 나무 끄트럭 같은 뾰족한 것에 찔린 것인지 그 일로 해서 손가락에 어떤 문제는 없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참새는 비록 잡아먹기는 했지만, 사람과는 한 지붕 밑에 같이 살며 이처럼 사연과 애환도 많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그런 시절은 다시 올 수 없는 추억이기에 더 그리운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