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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맛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태희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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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는다. 과일이나 곡식이 제대로 여물어갈 때 쓰는 말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과일은 익을수록 맛이 더해진다. 초록빛이 도는 토마토를 따서 며칠 두면 빨간빛으로 익는다. 딱딱한 감도 오래 두면 말랑말랑한 홍시가 된다. 이렇듯 수확한 후에 숙성이 되는 과일이 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맛이 높아진다. 바나나, 귤, 자두, 사과 등이 후숙 과일이다.
모든 과일이 후숙되는 것은 아니다. 무화과와 포도, 수박 등은 후숙되지 않는다. 녹색의 무화과는 며칠이 지나도 단맛이 생기지 않는다. 더구나 보관 기간이 짧아 덜 익은 상태로 시들어 부패하기 쉽다. 파인애플 경우도 다르지 않다. 지금껏 파인애플을 살 때 과육이 단단하고 녹색 잎이 싱싱해 보이는 것을 골랐다. 신선한 것을 사서 집에 두고 익혀 먹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숙성되거나 단맛이 오르지 않았다. 수확하는 순간 이후에는 더 이상 익지 않기 때문이다.
익음은 육체적 정신적 성숙이다. 옛말에 밖에 내놓으면 익어 가는 놈이 있고 썩을 놈이 있다고 했다. 육체적 성숙은 이뤘을지언정 정신적 성숙이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안정된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주변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가깝고 친한 사람일수록 더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함에도 이를 간과한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할 때가 있다. 소중한 인연을 함부로 대하는 나쁜 버릇이, 나이 들어도 고쳐지지 않아 남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살가운 말은 쑥스러워서 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특히 아내에게는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아서 잘 안다고 생각하여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가족인데 뭘 사랑한다고 말해. 수시로 사랑을 확인시켜 주고 격려해야 하는데, 살면서 왜 그리 마음 씀에 인색했는지. 나이가 듦에도 아내를 대하는 마음이 땡감만큼이나 떫기만 하다. 마음이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지만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다고 했다. 끊임없이 스스로 갈고닦으며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했는데, 여전히 옹졸한 나는 잘되지 않는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의 일이다. 혼잡한 시간대는 아니었지만, 빈 좌석이 없는 칸에 나이 지긋한 어른이 탔다. 서 있는 어른이 안쓰러웠지만 선뜻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앉은 맞은편이기도 했거니와, 가야 할 역이 아직 많아, 서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힐끔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즘 젊은것들은 양보란 걸 몰라. 이 나이에 내가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작은 양심이 갈등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학생인 듯한 청년이 일어났다. 
“여기 앉으세요.”
그런데 어른의 반응이 의외였다.
“아니야. 나 아직 서서 갈 만해. 피곤할 텐데 앉아서 가.”
나이가 벼슬인 양 생각하고, 나잇값 못해도 나이 대접을 바라며 젊은 사람에게 무조건 양보를 강요하는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과는 사뭇 달랐다. 돈 내고 탄 젊은이라도 공짜로 탄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공경의 어설픈 논리가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단맛 나는 숙성된 어른을 만났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았다. 머뭇거린 내가 부끄러웠다.
인생살이 그럭저럭 살다 보니 흰머리 나고 주름살만 늘었다. 아직은 아저씨여서 할아버지라고 불리기는 이르다고 생각하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한 아이 엄마가 ‘할아버지께 인사해야지’ 하는 소리에 헛웃음이 난다. 세월 앞에 장사 있나. 닿을 수 없기에 더 애틋한 젊은 시절, 뒤돌아보며 미련 둬봐야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남에게 폐 되지 않게 삼시세끼 먹고 살았으면 됐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자식 잘된 친구, 돈 많이 번 친구, 잘생겨서 여자들한테 인기 있던 친구, 부럽던 그들이 이제야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걸 알 것 같다. 세 끼 먹고 제집에서 잠자는 그들, 세 끼 먹고 내 집에서 잠자는 나. 사는 게 별 거던가.
육십대를 기년(耆年)이라 부른다. ‘노(老)’자에 ‘달 감(甘)’자를 붙여 만든 글자가 ‘늙은이 기(耆)’자다. 무르익어 단맛이 나는 나이란 뜻이다. 이제 남은 삶은 떫었던 마음 후숙에 기대어 달콤하게 익어 갔으면 한다. 세월이 남긴 얼굴의 주름이야 어쩔 수 없으니, 마음 주름이나마 생기지 않도록 게으름 피우지 말아야 할 텐데. 맛 들기는 베풀고 자신을 낮추는 데서 온다.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성숙한 나이 맛이 아닐까. 나이만 먹은 성인이기보다 나이답게 행동하는 후숙된 어른이 모여 살아가는 단맛 나는 세상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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