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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의 변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정자(광주)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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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오신다는 소식이 온 마을에 날아다닌다. 자기 집으로 모시려는 마르다가 매우 분주하다. 먼저 사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스스로 닫히지 않도록 묵직한 돌멩이로 괸다. 사방에 널려 있는 농기구들을 정리한 후, 마당을 대빗자루로 쓱쓱 쓸었다. 마루에는 말라비틀어진 걸레와 바삐 벗어던진 양말짝들, 더하여 밭에서 돌아와 머리에서 벗겨진 수건 나부랭이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닌다. 우선 그것들을 소쿠리에 담아 마루 밑에 두고 마루를 정갈하게 두 번이나 물걸레질했다.

 

안방 아랫목에 헌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떠는 청국장 바구니를 열었다. 바구니 속 콩들은 옹알옹알 속닥속닥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들이 아랫목을 떠나면 감기들어서 맛이 변할지도 모른다고 저마다 입술을 쫑긋거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뒷방으로 옮기려는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나. ‘저 착한 것들이 지네들 걱정이 아니라 내 입맛 걱정을 다 하네.’ 고마운 마음이다. 그 곁에서 더부살이하던 식혜 오가리는 지금이 적기라고 설레발친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하얀 밥알 몇 개가 동동 떠다녀서 맛을 고정하려고 부엌으로 데려갔다. 무찔러 뒷방은 솔가지로 불을 때서 아랫목이 따끈따끈하도록 덥히고 청국장이 감기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옮겼다. 안방에 걸린 <최후의 만찬> 그림 액자에 내려앉은 먼지를 간지럽히듯 살살 털어내고 비스듬히 걸린 달력도 바로잡았다. 방 안을 깨끗이 정리한 후 영혼이 자유로운 청국장 향을 위해 앞뒤 방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동구밖에 그분이 오셨다. 마르다는 재빨리 나가 그분 일행을 집으로 영접하고 손님맞이 음식 준비에 바쁘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쳐 불을 때고 미처 마치지 못한 잡채 만들기와 싱싱한 겉절이를 담그기까지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동생 마리아가 도와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안방을 들여다본다. 마리아는 그분의 발치에 앉아 두 눈을 샛별처럼 반짝이며 말씀 듣기에 열중이다.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하고 때론 사람들과 함께 고개를 조아리며 까르르 추임새까지 넣는다. 그 모습이 마르다 눈에는 한 폭의 성화로 보였다. 그녀는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순간 분주한 마음이 용기를 내어 부탁했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녀에게 명하시어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가 정중한 부탁을 드린다는 것이 어쩜 왜 상황을 깨닫지 못하느냐는 핀잔으로 동생에게 명하라는 명령 어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자기의 말투가 마음에 걸린다. 평소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처신에 더욱 예의가 있어야 할진대. 마르다가 떡을 접시에 담으며 둥글게 담을까 아니면 가지런히 담을까? 사과 껍질을 완전히 깎을까 아니면 조각 끝에 예쁜 리본 모양으로 붙여둘까? 열심을 내어 일하면서도 속마음은 곁길로 샌다.

 

지금까지처럼 혼자 끝까지 감당할 수는 없었을까? 왜 마리아에게 직접 귓속말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그분께서 나의 열심 알아주기를 원해서였을까? 마르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말이 불쑥 튀어나가버린 것이 부끄럽다. 어쩜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일임에도 그녀의 속내가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불쑥 내뱉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동생의 손길을 바라는 마르다가 마음 졸인다.
주께서 이르시되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신다. 주님은 오히려 마르다를 걱정하고 요청을 거절한다. 그녀는 서운하다는 마음 대신 최선을 다해 자기 일에 열중한다. 석양이 부엌으로 걸어들어올 때 그녀는 일을 모두 마무리했다. 그녀는 손을 깨끗이 씻은 후 행주치마 앞자락에 손을 쓱쓱 닦으며 마음은 이미 안방으로 향한다. 오늘 일은 여기까지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기쁨이 가득한 눈동자가 담소를 즐기려 안방에 앉았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마르다, 마르다. 아직 네 일이 끝나지 않았어 하는 음성이 들린다. 털썩 주저앉아 생떼를 쓰는 아이처럼 울고 싶다.

 

나의 삶이 석양의 끝자락에 걸쳐 있다. 지난 시간 되돌아보니 허드레 일로 다 허비했다. 내가 하는 일의 경중이나 완급, 시기도 헤아릴 겨를 없이 외나무다리 건너다 물에 빠진 사람 허우적거리듯 내 삶이 그랬다. 앙꼬 없는 붕어빵이 무슨 맛이랴! 특히, 어린 자식들이 울 때에 눈물 닦아주고 차분하게 품고 웃어주는 일이 엄마의 첫째가 되는 소명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시간을 뒤로 돌려 어린 자녀들과 같이하고 싶다. 지금은 오히려 어미 눈길 손길이 간섭이 되고 올무가 되겠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의 때를 놓쳐버린 아쉬움이 약도 없는 병이 되어 석양의 하늘을 어지럽힌다.
이제 남은 시간 내 속에 있는 나를 차분하게 들여다보며 사랑으로 익어가리라. 기회가 될 때마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남은 삶의 우선 순위로 하련다. 나의 할머니처럼 주머니에 넣어둔 밤과 곶감을 나누면서 헐겁게 허허거리고 싶다.
나는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응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신실한 아버지께 상세히 말씀드리리라. 싫어요, 싫어요. 아버지 진짜 싫어요. 내 삶에서 일은 이미 설거지까지 끝났어요.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거절하는 마음이 돌처럼 단단하다.
너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그분의 한마디에 맥이 풀린다. 처녀 마리아에게 아들을 잉태하라시던 그분, 사내를 알지 못한 처녀로부터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응답하게 하신 그분이다. 더욱 십자가상에서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날 버리시나이까?’ 울부짖는 아들의 음성도 모른 체하던 그분이시다.
‘주의 뜻대로 내게 이루어질지어다’ 한마디로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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