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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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바람 끝이 매서운 계절이지만, 남녘으로부터 꽃소식이 들려온다. 봄이 저만큼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덧 얼굴에 와 닿는 햇살의 감촉도 제법 포근해졌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셔 검은 선글라스로 차단해 본다. 강렬한 태양빛이 단지 얇고 검은 유리 조각 하나에 가로막혀 힘을 잃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신기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어떤 색의 안경을 썼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일 것이다. 투명한 눈으로 볼 때 무척이나 아름답던 사물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왠지 세상은 어둡고 칙칙하며 그늘진 풍경으로 변해버린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보고 있는 ‘색’이 세상의 ‘본모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유럽 여행 중, 날씨가 아주 쾌청하여 온종일 햇빛이 눈부셨던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일행 중 한 분은 하루 종일 선글라스를 고수했다. 식사 시간이 되어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데, 그분이 볼멘소리로 불평을 터뜨렸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날씨가 안 좋네. 왜 이렇게 세상이 어둡지?”
나는 어이가 없어 그 분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제발 그 안경 좀 벗어 보세요.”
내 말뜻을 눈치 챘는지 얼른 선글라스를 벗은 그녀의 얼굴에 감탄과 멋쩍음이 섞인 미소가 번졌다. 색안경에 갇혀 있던 그녀의 세상은 온종일 어둠뿐이다가 안경을 벗는 순간, 그녀는 처음 빛을 만난 사람처럼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활짝 웃는 그녀를 모습에서 우리는 스스로 만든 틀에 얼마나 쉽게 갇히는지 깨닫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떤 안경을 쓰고 상대방을 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이 된다. 우리는 대개 겉모습이나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타인을 서둘러 판단하곤 한다. 지적으로 보였던 사람이 실상은 허울뿐일 경우도 있고, 겉보기에 허술해 보이던 이가 알고 보니 내면이 꽉 찬 보석 같은 사람으로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보이는 것’에 머문다면, 어쩜 우리는 소중한 진실을 놓치는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진면목을 보려면 마음의 장착된 색안경부터 벗어 던져야 하지 않을까.
간혹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처럼, 남들의 객관적인 평가와 달리 내 눈에만 특별해 보일 때가 있다. 나의 경우 특히 쇼핑할 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마음을 뺏기면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 채 충동구매로 이어진다. 성급한 결정 뒤에 곧바로 후회할 때도 있지만, 긴 시간이 지나도록 그 안경(콩깍지)이 벗겨지지 않아 만족도가 오래 지속될 때도 있다. 그 대상이 사물일 때는 해프닝으로 지나가지만, ‘제 눈에 안경’이 사람일 경우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의 후폭풍은 거세고도 아프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인생 초년생 시절에는 보이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친절한 웃음 뒤에 숨겨진 얄팍한 술수에 속아 발등을 찍힌 적이 있다. 오밀조밀 주택이 밀집된 동네에서 동갑내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며 이웃의 엄마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이웃들과 어울리며 생활에도 활력이 넘쳐났다. 아이들을 등교시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둘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고, 모닝커피로 시작된 수다는 점심을 잔치국수로 해결하고서야 끝이 나곤 했다.
매일 반복되는 그런 일상이 즐겁기만 했다. 그중 한 친구가 유난히 다정다감하게 다가왔다. 그의 친절을 순수하게만 받아들였던 나에게 돌아온 것은, 다른 친구들로부터의 따돌림이었다. 얄팍하게 계산된 그녀의 마음을 읽지 못한 나는 한순간 외톨이가 되었다. 그녀가 왜 내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는 지금까지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지금도 만나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그 친구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미소를 지으며 대한다. 세월은 그 아팠던 기억을 감출 수 있는 여유를 내게 선물했다.
지나친 친절에 이끌려 진실이 결여된 것을 읽지 못하고 마음을 주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던 경험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흉터로 남아 있다. 그런 실패를 겪다 보니 언젠가부터 타인을 처음 마주할 때, 나도 모르게 ‘의심’이라는 색안경을 먼저 꺼내 쓰게 되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격리한 그 안경 너머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해 외롭고 고립된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흘러가는 세월은 자연스럽게 가장 엄격한 스승이 되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나를 가르쳤다. 이제는 굳이 두꺼운 색안경을 쓰지 않아도, 상대의 본질을 조금은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말과 말 사이의 행간에서, 그리고 사소한 몸짓에서 상대방의 성품이 묻어나고 그 사람의 고유한 결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 움큼의 삶을 살아내고 보니, 비로소 안경 너머의 진짜 세상을 마주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제는 더 이상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색안경도, 누군가를 의심하는 비뚤어진 안경도 필요치 않다. 그저 투명하고 맑은 눈으로 오늘 내게 다가온 따뜻한 봄볕을 오롯이 맞이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이 원래 가지고 있던 그 찬란한 빛깔 그대로를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