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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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관객 수 16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관람했다. 영화 스크린에서는 2년 전 한국문인협회에서 주최한 ‘문학인 한마당 심포지엄’ 행사로 다녀왔었던 청령포와 영월 장릉의 현장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때에는 미처 몰랐던 쓸쓸한 유배지와 슬픈 역사를 영화로 다시 한 번 마주 보니 그 비극적 현장들이 잠자던 내 감성을 두드려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수많은 관람객들이 스크린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보며 그들의 눈물도 나처럼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연민 때문만이 아니라 어린 왕과 그의 마지막을 지킨 엄흥도의 동행이 메말라 가는 사람들의 감성을 흔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00년의 풍상을 견뎌온 관음송, 그리움으로 쌓아 올린 망향탑,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 청령포 어소를 향해 절하는 엄흥도 소나무, 왕의 시신을 지게에 지고 올랐다는 장릉으로 가는 숲속 길은 알 수 없는 마력의 힘처럼 유배지의 슬픈 역사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상대의 가장 비참한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과 두려움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그들의 동행은 긴 여운이 되어 나의 지난날의 삶을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몇 년 전 나는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며 여든아홉의 나이인 금자라고 부르는 어르신을 만났다. 금자 어르신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결혼 후에는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생 남편의 매를 견디며 힘든 삶을 살아오셨다고 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일가친척 하나 없이 정부의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지해 외로운 황혼을 보내고 계셨다. 노환과 치매로 젊은 시절의 기억은 파편 조각처럼 부서져 있었고 가슴속에 맺힌 원망과 자식 없는 서러움은 고독과 뒤섞인 하소연으로 매일같이 터져 나왔다.
부끄럽게도 그때의 나는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가 나흘째인 왕초보여서 생계를 위한 직업인으로만 어르신을 마주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니 이 직업은 단순히 신체의 불편함을 돌보는 일만이 아닌 상처투성이 어르신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려 열어주고 그 속에 고였던 눈물을 씻어내는 성스럽고 힘든 돌봄이었다. 나는 매일 반복되는 어르신의 명령조의 말투, 말 한마디에 터져 나오는 분노와 거친 탄식들을 귀와 가슴으로 묵묵히 받아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주고 맞춰 가면서 맺은 인연은 어느덧 2년이라는 세월로 쌓여 갔다.
물론 그 동행의 길이 늘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기억의 안개가 짙어질 때마다 어르신은 옷 보따리를 쌌다 풀기를 거듭했고 이유 없는 분노와 원망을 쏟아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한 번은 돈 200만 원과 고무줄 바지를 내가 훔쳐 갔다며 요양센터와 이웃에 소문을 내어 감당하기 힘든 억울함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옷궤 구석에서 고무줄 바지로 꽁꽁 묶어 놓은 돈뭉치를 찾아 오해는 풀렸지만 깊게 베인 마음의 상처는 나의 인내심이란 한계를 드러냈고 억울하고 섭섭한 마음에 돌봄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때 돌아서는 나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어르신의 눈물이었다.
“늙은이가 아파서 그저 정신없이 했던 말이니 엄마처럼 생각하고 함께하자.”
애절하게 매달리는 그 간절한 눈길과 가냘픈 몸을 보며 나의 속 좁은 원망은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600년 전 엄흥도가 세상에 버림받은 왕을 차마 두고 떠나지 못했듯이 나도 상처가 많은 이 가냘픈 어르신을 홀로 남겨둘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미소로 화답하며 불안해하는 어르신의 두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것은 나의 선행이 아니라 오히려 어르신을 통해 내 가슴속에 숨어 있었던 이기심을 깨뜨리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피할 수 없이 찾아온 임종의 그날, 어르신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띄엄띄엄 온 힘을 다해 말씀하셨다.
“네가 다듬어 준 머리 모양 그대로 저세상에 가겠다. 엄마처럼 돌봐 줘서 고마웠다. 내겐 딸 같은 자식이었고, 근데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 마음 아프구나.”
그 유언 같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르신의 진심이 확인되며 엄마를 보내는 딸의 마음으로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길목에서 무섭고 두려운 마음으로 책임감 때문에 빈소를 지켰지만 어르신의 진심 어린 고백을 받으니 부족했던 자신이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후회되었다. 허탈했던 마음을 어르신이 주신 따뜻함으로 온기가 채워짐을 느끼며 어르신과 함께해서 부족한 내가 조금 더 성숙되고 성장하는 것 같아 어쩌면 어르신을 만난 것이 내가 받은 귀한 선물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흔히 삶의 길에서 ‘누구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덕분에 행복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곁에 있다면 그 사람은 완성된 삶을 살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며 부러워한다. 나의 부족한 돌봄을 기꺼이 당신의 마지막 동행으로 인정해 주고 임종의 순간에도 고마움을 표현한 어르신의 넓은 마음 덕분에 오히려 내가 축복과 위로를 받으며 어르신 돌봄이란 마지막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좋은 성적으로 숙제를 완성하여 ‘돌봄 수료증’을 받은 것만 같아 나 자신이 스스로도 대견스럽고 뿌듯해졌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떠올리고 죽음과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 생의 마지막 길목에는 누가 나의 동행이 되어 임종을 지켜줄까? 나는 지금 누군가의 삶에 따뜻함을 전해주는 진정한 동행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삶의 끝자락에서 발걸음을 맞추어 갈 누군가의 동행을 소망하며 나 스스로도 누군가의 외로운 길목을 지켜주는 엄흥도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나의 입가에는 최성수 가수가 부른 노래 <동행>이 흘러나온다.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 있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