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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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농촌생활을 꿈꾸지만, 쉽게 정착하기에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러 환경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작은 땅조차 가질 수도 없고 경작도 할 수 없게 됐다. 한때 그 많은 귀촌 귀농인이 하나둘 짐을 싸서 돌아가고 농촌에는 그들이 떠난 덩그레한 새집들이 잡초에 둘러싸여 또 하나의 폐가가 되고 있다.
농업경영체 등록을 못하면 땅을 살 수도 없고, 남의 땅을 대여하자니 여러 가지 복잡한 서류가 많고 쉽사리 정착하기엔 자신감이 부족해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그만두기 일쑤다.
사람들이 살다 보면 지극히 어려운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머리에 든 생각을 남의 머리에 심는 일, 다른 하나는 남의 호주머니에 든 돈을 내 호주머니에 옮기는 일’이라 한다. 전자의 일은 교직 생활 40여 년으로 충분히 해 봤지만, 후자는 사장님의 역할이라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나는 교직생활 중 항상 학생들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닌 뒤에서 밀어주었다. 즉, 자율성과 전문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후자인 사업을 생각해 보면 농사짓는 일 또한 소득이라는 점에서 농사일도 사업이다. 그 또한 경영이라 설계가 필요하고 투자하고 전략이 있어야 한다. 농사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와 노력이다. 즉 느긋한 기다림이다.
오늘도 엄청 햇볕이 뜨겁지만, 우리 부부는 밭에 나가 잡초와 해충에 시달리는 들깨밭에 매달렸다. 들깻잎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밭이랑 사이로 살살 흘러들어오는 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춤까지 추고 있다.
예부터 ‘땅은 거짓말은 안 한다’고 한다. 즉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다. 씨를 뿌릴 때도 계획과 준비를 충분히 하고 꾸준히 관리하고 기다려야 한다.
퇴직 후 귀촌하여 작은 텃밭을 일구어 온 지 11년째다. 무, 배추, 파, 고추, 마늘 같은 채소와 토마토, 가지, 고추 등을 직접 기르며 감, 대추, 배, 사과 등을 수확하며 한나절을 보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가 창문을 두드리고 한적한 산길을 산책하던 고라니, 오소리, 너구리가 채소밭을 들쑤시고 가더라도 또 씨를 뿌리고 다음의 결실을 기다리는 농촌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씩 닮아가고 있다. 이런 평안하고 아늑함이 농촌에 살다 보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수확이다.
더운 여름이다. 극심한 가뭄, 그리고 된더위란다. 그런가 하면 폭우가 쏟아지고 또 겨울에는 대규모 폭설 한파, 이상 고온으로 인한 산불, 지진이 일어나고…. 온 세상이 난리다. 문제는 이런 재해들의 예측 불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천체나 운동은 과학 법칙으로 알아낼 수 있지만 생명 현상이나 날씨의 변화는 예측 불가능으로 카오스(chaos; 혼돈)의 세계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농촌의 어른들은 이런 어려운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극복하고 이겨낸다. 바로 순박함과 끈기로 말이다. 농사일에는 대강이 없다. 대충하면 망한다. 경험과 부지런함 그리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농촌 사람들은 바로 순박함과 끈기로 그리고 사랑으로 농사를 짓는다.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한 어느 나라보다 살기 좋은 나라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봄은 오는가 싶으면 지나가고 어느새 기나긴 여름이 와 시달리다가 가을이라고 밤 몇 톨 줍고 홍시 따면 겨울이다. 그런데 우리 농촌은 또 하나의 계절이 있다. 바로 노년의 계절이다.
우리 마을 총인구는 130여 명으로 꽤 큰 마을이다, 그중 65세 이상(경로회원)이 87명으로 80세 미만은 경로당에 얼굴을 내밀지도 못한다. 커피믹스에 설탕 3스푼 넣어 잡수시며 “우리한테 당뇨니, 혈압 같은 거 덤벼들지도 못해”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는 90세 어르신을 보며 경로회장(심부름꾼)인 나는 “예 아주머니, 아무쪼록 건강하세요!” 하며 같이 웃어주는 그런 계절의 에피소드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소득을 얻는다. 바로 여유다.
농촌에 귀향 귀촌하여 얻는 것들이 많은데 그 중 으뜸이 인심이다. 이웃의 좋은 일, 안 좋은 일을 다 함께하는 바로 이웃사촌 같은 끈끈한 인심이다. 도시에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죽은 줄도 모르는 각박한 인심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농촌에서는 모든 일들이 동고동락한다. 쌀 한 톨도 나눠 먹는 훈훈한 인심이 골목마다 굴러다닌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의 글을 읽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곱고 심성이 아름다운 분들이라 느껴진다. 그들 모두가 다들 작은 행복에도 만족하며 행복해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얘기하듯 농촌에서는 모든 이웃이 서로 사랑한다. 이런 일들은 농사를 지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이다. 봄에 텃밭에 상추 씨앗을 심을 때도 가족들의 입맛과 오순도순 나누어 먹을 꿈을 꾸며 밤, 대추, 감을 따서 조상들의 차례상에 올릴 섬기는 마음과 직접 키운 과일을 따서 먹으며 정원에 앉아서 풀벌레 소리에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행복한 노년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고 생각해 본다.
“얼굴 좀 까매지고 손발이 두꺼워지고 거칠어지면 어때! 나만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면 그만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