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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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뉴스에서 나올 법한 기사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가족들은 어안이 벙벙해 말문이 막혔다. 몇몇 방송기자들이 취재차 응급실에 들어와 환자 가족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소란을 피웠다. 사생의 순간에 장호가 한마디 하자 기자들은 조용히 물러갔다. 잘못되면 한 마을에 쌍초상 치르게 생겼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덜덜덜 콤프레샤 소음과 이쪽저쪽 석고보드에 타카 치는 소리가 귀를 따갑게 했다. 장호는 다섯 명의 목수와 노래방 방음 칸막이 공사에 분주하게 매달리고 있다. 오늘 중으로 목 작업을 마무리해야만 다음날 페인트공사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톱기계가 요란하게 돌아가고 합판에서 나오는 분진이 시야를 흐린다. 콤프레샤 공기압이 차면서 잠시 기계 소음이 멈추어졌다. 스마트폰은 소음이 사라지기를 기다린 듯이 사납게 울렸다. 광주에 있는 막냇동생의 전화였다. 다짜고짜 말을 이었다.
“형님, 큰일났소!”
숨이 가쁜 급한 목소리였다. 장호는 마스크를 벗어 소매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의아해한다.
“뭔 일인데 그러냐?”
며칠 전에 동생으로부터 안부전화를 받은 그는 차분하게 물어본다. 순간 술 한잔 먹고 사고 친 줄 알았다. 동생의 다혈질인 성격에 전에도 사고 친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관리사업을 하는 동생은 군대에서 포병으로 복무하면서 사고를 당했다. 지금도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한 옥타브 높게 말하는 습성이 있다. 가끔 과음과 목소리가 큰 이유로 지인들과 시비가 붙어 파출소를 들락거렸다. 그때마다 장호는 불편을 마다않고 인맥을 활용해 뒤치다꺼리를 해주곤 했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늘 형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믿음의 대상이었다.
“엄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신당게요!”
“어디가 아파서야?”
그는 노인이 텃밭에 일하다가 다친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아따∼ 그게 아니랑게.”
멈칫거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야 복장 터진다, 언능 씨부러라.”
“형님이 오셔야 쓰것는디라!”
그는 자기를 오라고 하는 말을 듣고 큰 사고임이 짐작이 갔다.
“갈랑게 천천히 말혀 봐라 잉.”
“광수네 엄니랑 전대병원 응급실에 누워 계신디요!”
“교통사고 났나?”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며 다그쳐 묻는다.
“아니랑께.”
억양이 높아 말하는 본새가 신경질적이다.
“이 자식이∼ 오메! 까깝혀.”
본능적으로 말을 뭉개며 전화기를 왼쪽 귀로 고쳐 잡는다.
“농약을 묵어 불었어라∼.”
“뭐라고? 묵을 것이 세불었는데 농약을 묵어야! 오메∼ 사람 환장하겠네, 어쩌사스까잉∼.”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공구 주머니를 풀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심난스런 콤퓨레사가 공기압을 채우기 위해 또다시 열불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소나무가 듬성한 정자산 몬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파란 들판의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석강 줄기와 희미하게 보이는 나주평야가 먼 산 끝자락까지 펼쳐져 있다. 지석강 줄기의 중간에 산포면과 대촌면을 이어지는 넓고 긴 정자보가 큰 댐처럼 물을 가두고 있다. 수문의 조절로 하얀 물살을 이루고, 작은 물고기 떼는 폭포수를 거슬러 올랐다. 흐르는 강 가운데 작은 모래섬에는 버드나무가 자라고 초겨울철엔 이름 모를 새들의 천국이었다. 주말엔 낚시꾼들의 휴식처이자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피신처이기도 했다. 그 넓은 들판의 어귀에 그가 살았던 고향 집이 있었다.
장호와 친구들은 진달래가 피어 있는 산길을 돌아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태풍이 몰아치는 여름날에도 자전거를 타고 십 리 들판 길을 가로질러 중학교에 다녔다. 발목까지 물이 넘실대는 하얀 보위를 자전거 타고 오가는 스릴은 위험보다는 놀이처럼 재미있었다. 물론 온 세상이 하얗게 덮어버린 겨울철에는 수문을 열어 물이 넘실대지는 않았다.
대부분 벼농사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옆마을에서는 부업으로 누에를 키우는 잠업이 성행했다. 산어귀 들판에는 잎이 넓고 키 큰 뽕나무가 파도처럼 이루어져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할 정도였다. 뽕나무밭이 있는 근처에서는 금기사항이 있었다. 절대 농약을 살포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가끔은 채소에 농약을 살포하다가 근처 뽕밭에 스며들어 누에가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깨끗한 백색의 애벌레인 누에는 털이 없어 징그럽기보다는 신기하기도 하여 손에 붙여 놀기도 하였다.
광수네 집은 낮은 울타리 사이를 두고 집안 마당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친척집 같은 오래된 이웃이었다. 초등학교 때 냇가에서 천렵하고 해질녘에 들어온 친구를 야단치는 광수 엄마의 큰 목소리가 울타리를 넘었다. 발바닥에 상처를 입고 절룩이며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놀란 것이다. 그들은 냇가에서 알몸으로 물속으로 뛰어들다 농약병 유리 조각에 그만 광수가 발바닥을 베인 것이다. 피가 조금 흘렀으나, 어른들이 늘 하는 대로 진득이 풀을 꺾어 하얀 액체를 상처에 바르고 햇빛이 짱짱한 자갈 위에 누워,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별들이 반짝거릴 때쯤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후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몸에 고무신만은 꼭 신고 물속에서 놀았었다.
옆집도 칠 남매의 자녀들을 두었고 장호네 집도 같은 또래의 칠 남매의 형제들이 있었다. 옆동네에는 십 남매 가족들도 있었다. 농경사회에서는 일손을 돕기 위해 자손이 귀한 집 아니고서는 대부분 자녀를 많이 낳았다. 같은 터울끼리 깨복쟁이 불알친구는 면단위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며 때론 싸우기도 하면서 우정과 경쟁의 대상이었다. 그의 부모는 옆집의 경제적 어려운 상황을 도와주며 제사 때는 한 식구처럼 밥을 먹으며 그런 사이좋은 이웃이었다. 옆집 형제 누나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가 취직하였고 결혼하여 분가하였다. 그 시절에는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 도시의 인구 집중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형 누나들은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방직공장과 중공업 제조공장에 다니면서 촌음을 아껴 꿈을 키웠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야간 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 염원하는 대로 대도시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시간이 지나 명절 때 고향을 찾아온 옆집 큰누나는 장성한 그를 보고 내가 기저귀도 갈아주고 업어 키웠다고 놀리기도 했었다. 잘생긴 그는 귀가 빨개지며 누나들의 진담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사랑에 고마워하며 했다. 옆집 광수는 그와 동갑의 나이이지만 키가 작아서인지 학교를 늦게 입학하여 중학교까지는 한 학년 늦게 졸업했다.
넷째아들인 장호는 운동선수처럼 체격이 좋았으며 얼굴은 훈남처럼 호감 가는 인상이었다. 공부도 잘했고 리더십도 좋아 근방에서는 촉망받는 학생이었다. 기대했던 것처럼 수월하게 지방의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별 탈 없이 여수 화학공단인 대기업에 취직하였다. 취업하고 5년이 지나자 그의 작은어머님은 좋은 색싯감이 있다며 중신을 해왔다. 아직 연애도 못 해본 그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몇 번의 거절에도, 작은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시내 별다방에 앉아 어색한 맞선을 보게 되었다. 아가씨는 단정한 단발머리에 평범한 모습은 그런대로 귀여웠다. 원피스 차림의 적당한 키에 일자로 쭉 뻗은 종아리가 착해 보였다. 평범하게 생긴 그녀는 맞선 장소에서 장호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당돌하게 대시해왔다. 아마도 그의 작은어머니의 입담 좋은 조미료 덕분인 것 같았다. 그는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6개월 연애 끝에 무덤덤하게 결혼하고 말았다.
그는 아내의 내조로 슬하에 아들 둘을 세 살 터울로 두었으며 단란하게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와 어린아이들은 아토피 증상이 심했다. 환경오염물질인 식품 포장재, 세제, 농약 잔류물, 플라스틱 비스페놀 등에 가려움증이 심했고 반찬으로 생선을 구워도 기침을 했다. 피부과 의사들은 한결같이 환경호르몬은 내분비 시스템에 영향을 미지는 화학물질이 원인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가 다니는 화학공단의 중금속 오염과 대기오염이 그의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듯했다. 몇몇 예민한 직장 동료들도 이런 증상들이 있었고 아마도 산업재해라고 이야기했다. 공단 근처의 소나무와 유실수는 오염되어 말라 비틀어 가고 주택에서는 빨래를 밖에 널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 화장품도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될 수 있으면 가공식품도 잘 먹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환경오염으로 인한 자연의 황폐화, 기후위기인 열대화 온난화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어 탄소 제로 봉사활동도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야망이 컸던 그는 10년 만에 대기오염지수가 심한 화학공단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지인 선배의 권유로 여수에서 전망이 좋은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전공을 살려 남다른 감각과 디자인으로 상가, 노래방, 주택신축 등 관급공사로 사업 규모가 커져 나갔다. 잘나가는 사장님이란 소리를 들으며 사회 봉사활동도 참여하여 사회적 인맥도 넓혀 갔다.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하고 다니는 광수네 엄마는 항상 장호 집에 마실을 왔다. 맛있는 음식은 서로 나누어 먹으며 그의 어머니와는 사돈 간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시골의 인심은 예나 지금이나 오지랖이 넓어 이집 저집 다니며 이 소문 저 소문 듣는 재미로 사는 곳이 시골의 정겨운 맛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구네 강아지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는데 종자가 찬양이네 얼룩 수컷을 닮았다며 강아지 새끼 한 마리 찬양이 집에 주어야 한다며 개 사돈이 된 시시콜콜한 얘기, 무값이 폭락하여 트랙터로 무를 갈아엎어 버린 상태네 밭에 무를 가져와 이집 저집 나누어주며 걱정하는 이야기, 양촌댁 딸이 검둥이 양놈과 결혼한다고 인사를 왔는데 절도 안 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뭘뚱하게 서 있다가 갔다며 양촌댁이 머리 싸매고 누웠다는 소문을 전하는 옆집 친구 어머니는 늘 가까운 일가친척처럼 정겨웠다.
그의 집은 한옥 구조로 큰 대문 옆에 행랑채가 있고 넓은 마당을 거치면 본체인 안채와 툇마루가 연결되어 있었다. 뒤뜰에는 풍성한 엉덩이를 닮은 크고 작은 장독대가 수호신처럼 오밀조밀 놓여 있었다. 한여름에 장독대에 그늘을 만들어준 오래된 장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누나들을 따라 땅에 수북이 떨어진 하얀 감꽃을 실로 꿰서 목걸이 반지도 만들며 함께한 추억들이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생감을 따서 된장 항아리에 넣었다. 우린 감은 떫은맛은 없고 아삭거리며 단맛이 생겨 먹을 만했다. 짭짤하게 묻혀서 반찬으로 먹기도 했었다. 한겨울에 홍시를 먹는 달콤한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텃밭에 심어진 채소에 햇빛이 가려지고 해충이 장독대에 득실대는 위생상의 이유로 고목의 감나무는 베어지고 대신 단감나무가 자리를 잡아 추석 때에는 먹감 따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감나무와 모든 유실수는 베어지고 여전히 감나무 밑동은 악몽 같은 추억으로 남아 썩어 가면서 존재했다.
동네 만호 아재는 불편한 몸에 분무기 통을 짊어지고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뒤뚱거리며 울타리 가에 심어진 키 큰 단감나무에 살충제를 분무하고 있었다. 전쟁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해어진 군복을 입은 만호 아재는 6·25전쟁 때 백마고지 탈환을 위해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 중에 다리에 총상을 입어 절름발이 상이군인이 된 전쟁영웅이었다. 전쟁 중에 동료의 시체를 넘고 백마고지를 뺏고 뺏기는 실전의 생사를 잊지 못했다. 아직도 수많은 주검의 영혼이 자신의 곁에 맴돌아 힘들어했다. 평생 전쟁의 후유증과 악몽에 시달리면서 목숨을 건 대가가 남북분단의 국가가 되어 있는 현실에 비관했다. 남북의 위정자들이 38선 대치국면의 국가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주변의 강대국인 미국과 일본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았다는 현실에도 개탄했다. 남북분단의 38선 경계선은 6·25전쟁의 결과물이 아니고 일본이 2차대전 패망 후 미국과 소련 중국 강대국의 농간으로 신탁통치를 하기 위함을 장호는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대소사에 동원된 아재의 생생한 전쟁 이야기를 들어왔던 장호는 전쟁영웅인 만호 아재를 동경과 연민으로 항상 존경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감나무는 해충제를 분무하지 않으면 빨갛게 익지도 못하고 떨어져 늦가을에 먹는 홍시는 기대할 수가 없다. 해충들은 농약에 내성이 생겨 진화했다. 열매가 맺기 전인 꽃 속에 해충 알을 주입시켜 자연스럽게 열매 속에서 애벌레로 번식된다. 꽃이 피면 해충제를 분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키가 큰 감나무에 살충제를 잘못 분무하면 농약에 중독되는 일이 있어 농약 치는 번거로움이 보통 힘든 일이란 것을 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그는 어렸을 때 먹감을 따 먹기 위해 동무들과 남의 집 감나무를 타고 올라 쌔기(해충)에 쏘여 해충의 독이 온몸에 퍼져 여기저기 가렵고 붓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그의 할머니의 민간요법인 구린내 난 된장을 붙여 싸매고 다닌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의 아버지는 비탈c 음료수를 한 병을 들고 살충제를 얻기 위해 동생처럼 지내는 만호 아재를 찾아갔다. 만호 아재는 음료수를 다 마신 뒤에 비탈c 빈 병에 살충제를 기꺼이 담아 드렸다. 공동체 마을에서는 양잿물도 함께 나누어 쓰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장호 아버지는 농약이 든 비탈c 음료수병을 툇마루에 한쪽 구석진 곳에 놓아두었다. 장호 아버지는 평생을 공직생활을 하다 퇴직했으며 농사는 잘 알지도 못했다. 특히 농약의 독극물 위험성에 대해서 대충만 알고 있었으나 사용이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지를 못했다.
농약은 대부분 물과 희석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다 해도 깨끗이 씻어버리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농작물이 있는 곳이면 밭두렁이나 논두렁 길가에 뒹구는 것이 살충제병, 제초제병, 막걸리병, 비닐, 비료포대 등을 흔히 볼 수가 있었다. 대부분 농부는 농약의 위해성보다는 늘상 보아온 친밀감 같은 것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벼농사에 살충제를 분무하다가 노즐이 막히면 입으로 빨고 불며 수리하다 독성이 강한 파라티온에 중독되어 농부들이 죽어 가는 뉴스를 접하곤 했다. 사용상 부주의로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땡볕에 고온과 땀으로 노출되고 희석하는 농약의 정량 비율을 지키지도 아니했다. 온종일 독한 살충제를 분무하면서 피부나 코로 흡입하며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가끔 생겨났다.
초보 농사꾼인 그의 아버지는 한낮 땡볕에 농약 치는 것보다 시원해진 늦은 오후에 감나무에 농약을 살포할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툇마루 외진 곳에 비탈c 병을 놓아두고 잠깐 마을 회관에 마실 갔다. 잠깐의 부주의가 생사의 갈림길에 설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었을까? 마실 갔다 돌아온 장호 어머니는 툇마루 한편에 놓여 있는 비탈c 음료수를 보았다.
‘이 양반이 또 마시지도 않고 놔두었네! 전번에도 그러더구먼.’
그의 어머니는 이가 시려 찬 것을 싫어하는 그의 아버지를 나무라며 중얼거렸다. 내용물이 들어 있어서 마셔 볼까 하다가 미지근한 것 같아 먹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무심코 음료수병을 아무 의심 없이 주방의 냉장고에 비탈c 음료수병이 있는 곳에 나란히 넣어 모셔 놓았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음이 생겨 후각을 상실했다. 가끔은 요리할 때도 음식이 탄 냄새를 잘 맡지 못해 냄비를 태우는 곤욕을 치르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의 어머니는 한 편의 비운의 드라마 주인공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며칠을 노부모님은 농약병을 새까맣게 잊은 채 지냈다.
마을 주민들은 단위농협 주선으로 룰루랄라 남원골 춘향이가 있는 광한루로 효도관광을 떠나게 되었다. 동네 이장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술, 떡, 과일, 음료수 등 먹을 것을 정성껏 준비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냥 따라가면 되는데 나누어주기 좋아하는 성품에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 비탈c 몇 병을 가지고 가셨다. 그의 어머니는 오랜 불교신자였다가끔 사찰 행사에 다니며 주지스님의 설법을 듣고 자녀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머리 깎은 스님들이 마을에 시주하러 오면 어김없이 곡식을 시주했다. 그의 어머니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배려와 나눔을 항상 실천하는 분이었다. 나눔의 배려가 생각지도 못하게 일생일대 치유할 수 없는 사달이 벌어졌다.
오랜만에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는 노인들은 들떠 있었다. 술 좋아하는 노인들은 의례 막걸리나 맥주부터 한 잔하는 것이 순서여서 돌려가면서 한 잔씩 주거니받거니 하였다. 갈증을 느낀 그의 어머니는 집에서 가져온 음료수를 수고하신 이장님도 주고 동네 분들에게도 몇 병을 나누어 주었다. 마을 이장님은 음료수를 마시며 칭찬과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남은 한 병은 옆에 앉은 광수네 엄마와 함께 사이좋게 한 모금씩 나누어 마셔 버렸다. 두 노인은 천당 가는 약인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먹으면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지만, 나누어진 떡으로 입가심을 한 터라 행락의 즐거움에 들뜬 팔십이 넘은 노인은 술기운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술을 먹지 못한, 뒷좌석 아주머니는 나누어준 기정떡을 먹으면서 어디서 농약 냄새가 난다고 이장님께 말했다. 동네 이장은 이윽고 냄새를 찾아 드링크 병에 들어 있던 것이 살충제 농약인 것을 알게 되었다. 동네 이장은 펄쩍펄쩍 뛰며 가던 버스를 숨 가쁘게 급히 돌렸다. 가까운 남원병원 응급실에 모셔다 놓고 좋은 날 무슨 불상사인지 모르겠다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동네 일행과 관광을 떠나셨다. 이장님은 농약 기운이 돌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두 분은 멀쩡하게 보였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와 광수 엄마는 의료시설이 열악한 남원병원에서 응급처치만 하고 구급차를 타고 광주 전대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옮겨왔다.
장호는 여수에서 부랴부랴 일처리를 반장에게 지시하고 차량의 속도를 높여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가는 동안에도 혹시 잘못되어 어머님 임종도 못 보고 돌아가실까 노심초사 여러 가지 생각이 앞섰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이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가속페달을 밟아 앞차를 추월하여 허둥지둥 전대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병원 현관에 도착하니 그의 동생 얼굴이 사색이 되어 인사를 건넨다.
응급실에는 피가 낭자한 교통사고 환자가 식염수 병이 달린 침대를 밀치며 급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카트에 팔이 축 늘어진 환자를 목격한 그는 두려움으로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의 어머니는 응급실 한편에 광수네 어머니와 함께 위세척을 마치고 링거 주사를 맞고 있었다. 두 분은 아직 요단강의 나루터에서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했다. 그의 가족 친척들은 병실 복도 의자에 초췌하게 앉아 이구동성하며 두 분의 의식이 빨리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다. 그의 아버님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고 했다. 원인 제공은 그의 아버지 때문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렇게나 농약병을 잘못 놓아둔 것과 사후관리를 망각해버린 노인의 실수를 조사했을 것이다.
‘이게 무슨 청천 하늘에 날벼락인가? 어째 이런 일이?’
그는 응급실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보며 자식들이 잘 보살피지 못함을 눈물로 자책해야 했다. 형제들 누군가와 함께 살았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그의 큰누나가 얼마나 급했으면 화장도 못한 민얼굴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도대체 우리 집안에 무슨 변고냐? 멀쩡한 가정에 이런 우환이 생기다니 얼마 전에 남평 선산에 할아버지 묘를 잘못 이장한 것 아니냐? 오메∼ 뭔 일이다냐?”
별일이 없는 집안에 갑자기 변고가 생기니 조상의 탓으로 돌리는 누나의 걱정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과거를 보면 현재가 보이고 미래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과거의 그릇된 상황이 현재의 나쁜 상황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조상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한 번씩 뒤돌아보아 성찰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큰누나,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겠소? 어머니는 별문제 없을 것인게 크게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려봅시다.”
그는 별일 아닌 것처럼 큰누나를 안심시켰다. 일전에 문중의 어른들이 선산의 묘지 문제로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선산이 장자인 장호 큰형님 명의로 등기가 되어 있어 다소 시끄러웠지만 큰형님의 배려로 잘 해결되었다. 가족이 건강하고 변고 없이 잘 지낸 것은 조상님의 보살핌이라고 그의 부모는 항상 조상의 제례에도 정성을 다했다.
타지에서 출발한 옆집 형제들이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후줄근한 평상복 차림으로 병원에 모여들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누나 형들의 모습은 모두 세월의 나이테를 비껴가진 못한 것 같았다. 옆집 형과 누나는 걱정과 원망 분노가 겹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했지만, 모친들 두 분이 아직 혼수상태여서 여타 기본적인 눈인사만 나누고 서로들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장호는 옆집 큰누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소한 눈빛이었다. 병실 복도의 분위기가 침통하고 썰렁하여 대면하기가 어려웠다. 옆집 형제들을 뒤로 하고 주차장 넓은 광장으로 나왔다. 뒤따라온 동생이 한숨을 쉬며 담배 한 개비를 건넨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동생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아무리 바빠도 노인들이 계시는 시골집에 자주 가보고 챙기며 보살펴야지, 에이∼.”
그는 동생을 나무라지만, 타지에서 사는 자신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할 말은 아니었다.
농촌의 현실이 옛날처럼 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 시대로 도래했다. 자녀들이 직장 따라 도시로 이주하면서 농촌의 노인 문제는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시골 젊은이들의 상주 인구는 20%도 되지 않으며 갈수록 적어지는 인구로 지역 소멸도시를 예고하고 있다.
“글쎄요,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셨는데 노인들이 건망증이 이렇게 만들어 버렸네요! 이러다가 치매가 올까 걱정입니다, 형님!”
“무슨 소리야? 아직은 정정하시고 기억력도 좋으신데, 며칠 전에도 30분이나 통화했는데 걱정 없어야! 나이가 들면 당연히 건망증은 다 오는 거고.”
그는 부정하고 싶은 생각으로 부모님이 건강하길 바라며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싸늘한 밤하늘 수많은 별을 쳐다본다. 평상시에 그의 할머니는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장호는 수많은 별 중 하나를 바라보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했다. 관념적이긴 하지만 별 하나하나가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별 하나가 추가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병원 주차장에서 보는 보름달은 구름에 가리기를 반복하며 그의 동생의 침울한 얼굴을 비추었다.
새벽녘에 그의 어머니는 간신히 의식이 돌아왔고 광수네 엄마는 한나절이 지나도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그의 가족들에게 씻지 못할 억울함만 남기고 돌아오지 못할 편도행 황천길을 건너가 버렸다. 광수네 가족들은 황당한 사망 소식에 어머니를 외치며 울고불며 병원 복도가 장례식장이 되어버렸다. 광열이 큰형은 병실 복도의 벽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울분을 삭히고 있었다.
정말 황당하고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친구의 어머니는 장례식장으로 옮겨 갔다. 그의 형제들은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옆집 형제들을 대면할 수가 없었다. 잘못을 인정한 그의 형제는 도의적인 모든 책임을 다하기로 상주 노릇이라도 해야만 했다. 친구네 집 사위들이 술기운에 장모 살려내라고 포악을 부려 한때 소란스러웠지만, 친밀한 형제들의 체면 때문에 이내 조용해졌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생사가 이런 삶인 줄 알지만 이건 너무한가 싶어 그는 하느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광수네 큰형하고 그의 큰형이 오랜 친구 사이로 우정이 두터웠다. 서로 할 말을 못하고 이상한 눈치를 알아차렸지만,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동네 이장의 주선으로 장례식 모든 경비를 장호네 가족이 보상하기로 도의적인 합의를 보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그간 형제처럼 지낸 이웃 사이가 깨질까 두려웠다. 사망하신 광수네 어머니는 시골 마을에서 상여를 띄우기로 동네 분들과 장례 절차를 밟았다. 영정사진을 앞세운 화려한 꽃상여는 마을회관 앞에 머물러 노제를 올렸다. 술과 음식을 나누며 동네 분들은 돌아가신 광수네 엄마를 추모했다. 노환으로 별세했다면 좀 덜 억울했을 텐데, 누구의 잘못으로 멀쩡한 생사람이 송장으로 나가는 꼴이라니, 차라리 두 분이 함께 돌아가셨으면 이런 억울함이 없었을 텐데 구경 나온 동네 사람과 옆동네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호상이 아닌 장례식 분위기는 침울한 분위기로 서로들 말을 아꼈다. 운구를 맨 상여꾼의 구슬픈 상엿소리는 인생의 허무를 노래했다. 통곡하며 오열하는 광수네 누나들은 실신하다시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가까이서 옆집 형제자매들의 처참한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마을회관 옆에 오래된 벚꽃나무는 화양연화를 말하듯 환장하게 피어 있었다.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지만 자연은 인간을 조롱하듯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광열이 어머니를 태운 꽃상여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둑 근처 밭 어귀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그의 부모님은 한 달 동안 내내 식음을 못하고 죄스럽고 상심한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정든 마을을 떠나 이사 가자고 하였다.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되어 동네 사람들 얼굴 보기가 힘들어 선택하신 것 같다. 그의 형제들이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읍내로 이사하기로 하였다. 이사 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옆동네 아랫동네 지인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한 동네 사시는 지인과 친척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입방아를 찧었다. 고의도 아니고 노인의 망각으로 인한 부주의를 이야기하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동네 어르신을 이사 가게 만드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평소 부모님 인품과 덕성이 마을 사람들을 동화시켜 이번의 큰 실수 사건을 쉽게 희석하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장호는 부모님의 삶을 따라가기에는 아직은 구우일모(九牛一毛)쯤으로 생각되며 너무나 존경스럽고 한편으론 부끄러워졌다.
자녀들에게 그의 아버지 텃밭에 있는 감나무와 여러 유실수를 모조리 베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그의 동생은 엔진톱을 가져와 밑동이 굵은 단감나무와 울타리 가의 한겨울에 꽃을 피워낸 고목의 매화나무까지도 가차 없이 분풀이하듯 산산조각을 내 베어버렸다. 그의 아버지는 내가 죽는 날까지는 단감이나 홍시를 먹지도 말고 감나무는 심지도 말라고 장성한 자녀들에게 당부하였다. 아마도 그의 부모의 실수가 와신상담하는 가족과 함께 참회의 눈물이 옆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으리라.
그의 부모가 두문불출한 지 달포가 지났다. 충격과 상처가 너무나 커서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졌다. 그는 피골이 맞닿은 어머니를 일단 읍내 동생 집으로 모셔왔다.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건강은 되돌아와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광수네 엄마와는 눈만 뜨면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니셨다. 사찰의 행사에도 함께 다니고 텃밭도 가꾸고 참기름 짜러 장날도 함께 다니는 평생동지였다. 도시에 사는 자녀 집을 다녀올 때는 개밥도 챙겨주고 비가 오면 빨래와 멍석에 말려진 고추를 걷어주어 자기 일처럼 거들었다.
자신의 착각 때문에 먼저 저승길을 간 것을 생각하면 그의 어머님 심정이 어떠했을지 당사자가 아닌 자녀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텅 빈 옆집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는 그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졸지에 어머니를 잃어버린 광수네 형제는 얼마나 원통하고 분할까? 분풀이도 할 수 없는 이 멍든 가슴을 훔켜쥐고 운명처럼 받아들여져야 하는 현실에 누구의 장난 같은 인생사가 참 얄밉고 짓궂다. 늙어 가는 것도 서러운데 망각증세로 이어지는 실수가 본인이 아닌 남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항상 죄스러운 맘으로 지내는 그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는 자식 된 도리로 노부모님을 잘못 모신 불효한 자식이었다. 그는 광수네 형제들께는 죄인처럼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장호는 가끔 시골집에 들러 주말 농사를 짓고 있는 광수를 만났지만, 예전처럼 농담도 못하고 조금은 섭섭해하는 기색이었다. 지난 일이라고 털어버리자고 말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장호가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위로를 받고 있으니 죽마고우의 우정과 이웃이 변함은 없었다.
그는 어버이날을 맞아 시골에 계신 노부모님을 찾아뵈려고 카네이션 세 송이와 선물을 준비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드렸다.
“엄니! 별일 없지라이?”
“응, 장호냐?”
텐션이 죽은 저압의 목소리로 마치 기다린 것처럼 반가운 목소리를 듣고 금방 알아차린다.
“아이들은 잘 있고?”
아들 안부를 먼저 묻는 게 아니라 손주들을 먼저 찾아 가끔은 섭섭할 때가 있다.
“어제저녁에 네 동생이 왔다가 갔어야.”
“그래요? 엄니! 저도 이따 점심때나 도착할게요.”
“바쁜디 한가할 때 오지 그러냐! 멀기도 헌디.”
“아니요! 오늘은 한가합니다. 애들 엄마랑 같이 갈게요.”
그의 어머니는 보고 싶기는 하지만, 멀리 왔다 가야 하는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고향 마을 주차장에 도착한 장호의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둑 밑 양지바른 곳에 광수네 어머니의 묘지가 보였다. 묘지의 푸른 잔디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니 편히 계신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오래전에 다녀간 흔적인 퇴색된 일회용 종이컵과 소주병이 묘지 바깥쪽에 뒹굴고 있었다. 카네이션 한 송이를 묘지 앞에 놓으며 장호는 참회의 고개를 숙였다. 어릴 적 지난날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광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태양은 작열했고 묘지 옆 청보리 이랑이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장호의 코끝을 스친 향긋한 보리 내음은 시원하고 개운했다. 보리밭 이랑에서 종달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올라 그의 정수리 위에 맴돌며 한참이나 울어댔다. 장호는 지저귀는 종달새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눈부신 햇살의 실루엣 사이로 종달새는 빈 하늘의 구름 속으로 점점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