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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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였던 지인이 있습니다. 내가 힘들 때 위로하여 주고 따뜻한 햇볕처럼 감싸주던 마음이 항상 고맙지요. 서로 글 쓰는 것 좋아하고 건강을 물어주는 애틋한 마음이 고마워 만나면 웃음 한 조각에 시름을 잊고 안 보이면 문자를 합니다. 언제부터 그분 얼굴이 안 보여서 일이 바쁜가 하던 차에 나중에는 어디 몸이 아픈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어느 날 들려온 소식은 청주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 아들이랑 병문안을 갔지요. 일전에도 오랫동안 입원했다 퇴원하고서 얼굴을 보았는데 요즘 또 안 보여 걱정스럽던 중 다행히 연락이 되어 점심 약속을 하였지요.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준비하고 11시 모임인데 오전 9시 40분에 길을 나섰지요. 보은 시내라고 하여도 집에서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요즘 나무 심는 철이라 시장을 지나는 길에 단감나무 한 그루 사다 심으려고 더 서둘러 나갔습니다. 내 가슴에 늘 서운했던 문제부터 해결하려 합니다. 집 앞 미니정원에 단감나무가 있던 자리를 볼 적마다 몇 년 전 죽은 나무가 애달퍼 다시 사다 심으려는 생각입니다.
저희 집 단감나무에 아픈 이야기 한 자락이 숨어 있답니다. 유난히 단감을 좋아했던 남편, 우리가 이사하는 곳마다 단감나무를 꼭 심었어요. 전에 과수원 농사할 때도 집 옆에는 단감나무가 있었지요. 올망졸망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푸른 열매는 우리들 자랄 때 형제자매 함께 기대고 살았던 모습같이 예뻤답니다. 가을이면 등불이 켜진 듯 붉게 익어 바라보면 행복하지요. 나무에서 따면 바로 먹을 수 있고 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아요.
이곳으로 이사하고 작은 정원에 대추나무 한 그루, 둥시 단감, 소나무를 심고 남편이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가을이면 겨울을 나며 얼어 죽을까 걱정되어 나무 둥치를 볏짚으로 싸매어 주고 자식같이 돌보니 잘 자랐지요.
그러다 어느 날,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사람이나 동물만 사고가 나는 게 아니라 가만히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나무에게도 아픔이 올 줄 몰랐지요. 무더위가 끝나고 가을바람이 불 때쯤,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뒷집에 볼일 보러 온 탑차가 우리 집 주차장에 후진하다 미니정원으로 잘못 들어 10년 동안 키운 대추나무가 뽑히고 단감나무는 밑동이 잘려 나갔습니다. 나무 두 그루가 죽어 가슴은 아프지만 사람이 더 중요하지 싶어 넘겼습니다. 감나무 사다 심어 드릴게요, 기사가 건넸던 말은 그저 말뿐,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단감나무 한 그루 구입하여 지인께 맡기고는 식당으로 일찍 갈 수 없어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시장을 구경했지요. 그때 눈앞에 폐지를 모아 쌓고 계신 할머니가 보입니다. 삶의 무게로 허리는 굽어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요.
갑자기 할머니가 “참 좋겠네, 똑바로 걸어서” 하며 툭 건네는 말씀. 깜짝 놀라서 “할머니는 고단하게 일을 많이 하셔서 그렇지요” 했어요.
그때 한 육십 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치마를 날리며 예쁜 모자를 쓰고 시장 안을 걸어오더니 울상이던 할머니 앞에 노래를 부르며 팔을 나비처럼 나폴대며 엉덩이를 흔들고 춤을 춥니다.
아주머니가 “언니, 올해 몇 살이 되셨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칠십이 넘었습니다.”
“할머니 칠십 대면 아직 청춘인데 뭘 걱정하나요?”
할머니 사연을 듣자 하니 사고로 허리를 다쳤는데 못 고쳐서 그리 되었답니다.
“염려 마시고 서울 큰 병원 가서 치료하시면 됩니다. 저도 한참 과수원 농사를 지을 적에 고된 농사일에 일꾼들 밥도 매 끼니 챙기다 보니 허리가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습니다. 추석이 대목이라 바로 치료를 못 하고 아픈 허리로 버티다 보니 점점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지요. 중년에 못 걷는다 하니 기가 막히고 어찌나 막연하던지요. 지방 병원에서 한참을 입원해 있다 주변 지인에게 소개를 받아 서울 병원으로 구급차를 타고 내달렸습니다. 서울 병원에서 검사하고 그날 수술을 했지요. 수술을 하는데 무서워 눈을 꼭 감고 참았던 눈물 쏟았습니다. 무너진 허리 수술 후 병원 치료하고 지금은 조심하며 살아갑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의술이 더 좋아졌으니 더 잘 고칠 거예요. 염려하지 말고 큰 병원 가보셔요.”
“남편 있을 때는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어 쓰게 하셨는데 그때는 그것이 호강인 줄 몰랐습니다. 이제 혼자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아들은 남편보다 어렵다는 것을 자식한테 돈 이야기 할 수 없지요. 그래도 보약도 해주고 먹을 것도 챙기고 잘 합니다.”
“할머니, 효자 아드님 두셨습니다.”
“젊을 때 남편과 함께 장사하였는데 남편 떠나가셨고 시장 안에 폐지 모으며 아들 일도 거들어 줍니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내 성격이 급해 이렇게 나옵니다.”
이야기를 듣다 ‘나처럼 성격 급하신 분인가 보네’ 했답니다.
길어진 이야기에 차 한잔 마시자는 분을 뿌리치고 약속에 늦을까 식당에 갔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야윈 지인의 모습이 반갑고도 안쓰럽습니다. 같은 교회 권사님과 셋이 함께 식사하고 헤어지며 자작시 한 편을 액자에 담아 권사님께 선물로 드리고 퇴원하신 분께는 직접 그린 예수님 성화 그림을 드리며 이제는 건강하시라 마음도 전했습니다.
그분은 답례로 달달한 벌꿀 선물을 보내주셨지요. 오고가는 덕담 속에 행복한 날이 흘러갑니다. 내 고단했던 삶의 이야기가 할머니께 희망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