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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영호(이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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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이틀 동안 너무 많이 잔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하루에 거의 15시간 이상, 이틀 동안 30시간 이상을 잤다. 첫날 저녁에 밥을 조금 먹고 뉴스를 보다 잠들어 새벽에 잠깐 깼다. 다시 잠들어 아침 9시까지 자고, 아침밥 조금 먹고 쇼파에서 11시까지 자고, 점심 먹고 12시 초등학교 하교도우미 알바 세 시간 갔다가, 집에 와서 저녁 먹을 때까지 또 잤다.
자는 도중 화장실을 한 열댓 번 정도 다녀왔다. 밤이고 낮이고 자다 일어나서 화장실 갔다 와서 또 자고, 자다가 배가 고팠지만,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 조금 먹고 자고, 먹으면 화장실 가고를 반복하면서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먹는 즉시 위를 통과해서 창자를 거쳐 바로 물로 배출되었다.
엉덩이에 약간 힘만 줘 방귀를 뀌면 팬티에 노란물이 묻었다. 첫날은 세 장, 둘째 날은 한 장의 팬티에 노란 묽은변이 묻었다. 열과 어지럼증은 없지만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배가 조금씩 계속 아팠다. 잠만 왔고, 커피도 못 마시고 물만 마셨다. 첫째 날 뭘 먹은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둘째 날 아침 계란 후라이를 두 개 먹었는데, 양이 많아 약간 덜 익은 부분이 있어서인가 의심이 되었다.
50대 중반에 급식으로 나온 계란 요리를 먹고 토사가 있었다. 그 이후도 두 번 정도 토사를 하고 나서 계란을 기피했는데, 결국 안 먹을 수는 없어 조심하는 편이다. 바로 조리한 것 외에는 안 먹는 편이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 노른자 주변에 조금 남은 게 있었으나 뒤집기가 제대로 안 됐다. 덜 익은 걸 발견하고 남은 걸 버렸는데, 계란이 오래된 걸까? 병원에 가야 되나 망설였지만, 낫겠지 생각했다. 기운이 없었고 자고만 싶었고, 배도 고팠지만 밥맛이 없었다. 맛있는 것도 없었고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아내는 직장에 다녀오면, 첫날은 아욱죽, 둘째 날은 소고기죽을 끓여서 같이 먹고,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주거나 사다 준다고 했다.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평소에는 혼자 안 가던 아파트 내 편의점에 다녀와서 햄버거가 없다고 땅콩식빵 샌드위치을 사왔다.
평소 아내에게 아버지처럼 오래 살지 않을 거다, 아프면 요양원 보내고 자유롭게 살라고 하며, 언젠가 생길 일에 마음으로 대비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91세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병간호를 2년 정도 하시다가 아버지보다 1년 먼저 88세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한 번 요양원에 보냈었는데 면회만 가면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마음 약한 어머니가 결국 다시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오셔서 보호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걷기 불편한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시다가 병을 얻게 된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가시자 아버지도 요양원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른 병원에 계시기를 아버지 몰래 부탁하셨다.
아버지 면회를 하러 요양원에 갔을 때 큰아들인 우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지만, 나는 냉정하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돈을 벌어야 해서 집에서 모실 수 없다고 했다. 요양에 관한 지식도 없고 아내와 내가 받아야 할, 이미 어머니가 아버지 병간호하다 받았을 여러 가지 문제를 떠안고 싶지 않았다. 그냥 돈을 벌어서 요양원에 보내는 게 훨씬 나았다.
가끔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를 가도 재미가 덜하고 맛있는 것도 없고, 맛있는 건 몸에 안 좋아서 먹으면 안 되고, 이렇게 사느니 아프면 죽는 게 낫다. 당뇨병이 심해져도 신체를 훼손시키지 마라, 수지부모 신체를 보존하겠다며 무슨 일이 생기면 전담 보험설계사에게 전화해라,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아내는 질색을 했다. 그래도 나는 죽음을 회피하지 말라고 느닷없이 죽음을 맞이하지 말라고 가끔씩 말한다.
결혼하기 전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결혼 4년 차에 장인도 돌아가셨다. 장례에 대해 완전 초짜인 나는 사위가 하나였기에 장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행렬 맨 앞에 서서 오리 길을 걸어 선산에 도착했다. 처남도 결혼 전에 한 명, 결혼 후에 대략 10년 간격으로 세 명이나 돌아가셨다. 처남은 모두 6명이었다.
장인 한 번, 처남 3번, 모두 4번의 장례를 아내와 함께했다. 아내에게 죽음은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부모 2번과 오빠 4번, 시골의 동창 친구들도 죽었고, 남편마저 건강하지 못해 마음이 편할 날이 없는데, 잘 먹지도 않으니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거다. 이런 아내를 위해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데 아마도….
나도 먹고 싶은 게 없는 건 아니다. 붕어빵도, 아이스크림, 팥빙수, 국수, 라면, 짜장면, 빵, 믹스커피, 잔치국수, 떡만둣국, 떡볶이, 망고, 수박 이런 것들을 하나씩 포기해야만 했다. 전혀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어떤 건 1달에 한두 번, 어떤 건 두세 달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심한 것은 1년에 한 번 정도 먹는다. 그것도 조금씩, 수박은 거의 사 먹지 않고 얻어 먹는 정도다. 팥빙수는 몇 년간 먹은 기억이 없다.
둘째 남동생이 특전사에 다녀와서 25살 무렵 죽었다. 집안에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야 할 나이에 나라를 위해 좋은 일만 하다가 죽었다. 병원에서 죽은 것이 아니기에 병명을 알지 못하지만, 당시 한창 유행하던 구연산 살 돈이 없어서 식초를 대신 먹다가 죽었다. 아버지도 70세 이후 늦게 당뇨였다고 한다. 셋째 남동생이 인슐린 주사 맞는 당뇨병이다. 나는 주사는 안 맞지만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60이 넘어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투석까지 해야 하는 건가, 다리 절단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니겠지, 아침에 채혈을 하면 180 나올 때가 있었다. 작년에 당화혈색소 7.3이었다. 게다가 2년 연속 백내장 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작년에는 괜찮더니 올해는 약을 줬다.
건강염려증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만둘 수가 없다. 올해 2월 연속혈당측정기를 차고 식사와 운동을 조절하면서 당화혈색소가 5.9 나왔다. 의사가 놀랐다. 밥을 조금(반 공기)만 먹는다고 하자, 그렇게 안 해도 된다고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사 입장에서는 나는 환자 중에 한 명이고 때가 돼서 다음 단계로 간다고 한들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사제를 두 알씩 다섯 번이나 먹고 나서 좀 살 만해졌다. 잠도 많이 안 오고 쇼파에 누워 있지 않고 집안 청소도 할 수 있다.
오래 살아야 할 텐데 상황비교라는 말이 있다. 비교하기 전에는 행복하지만 비교한 후에는 절대 행복하지 않다. 내가 그렇다. 지방이지만 신축 아파트도 있고 소득도 있어 하루 3시간만 일해도 되는데, 인터넷과 유튜브, 티비를 보고 비교하면서 행복하지 않다. 굳이 오래 살고 싶다는 욕구도 없고, 건강도 안 된다. 아마도 경제적인 여유 없이 가족에게 불편함을 주며 91세까지 사신 아버지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흘째 점심 방귀가 나왔다. 소변이 나왔다. 형태가 있는 변이 나왔고, 배가 덜 아픈 것 같다. 방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리가 맑다.
나흘째 아침 햇볕이 좋다. 오늘 하루 시작이다. 배가 아프지 않다. 커피 한잔 하고 아내를 위해 건강하게 사는 데까지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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