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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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때, 지금 손자 승호 또래였다.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열 살 인생이 있는 것이다. 60여 년 전 국민학교 3학년 때 강원도 정선군 예미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다. 넓은 들도 없고 번화한 곳도 없는 그냥 그런 산골마을이다.
학년초이니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았던 이른 봄이었다. 낮으막한 학교 건물 앞과 뒤로 높은 산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고, 산 밑으로 하얀 신작로를 따라 한없이 길이 이어졌다. 신작로 길 건너 산 밑으로는 도랑물이 졸졸 소리 내어 흘러가고 하늘은 높고 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도랑물 소리는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귓가에서 냇물이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중소도시에서 전학 온 나는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구구셈을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에 비해 이미 구구셈 정도는 2학년 때 다 떼고 3학년이 된 것이었다.
내 자리는 제일 뒤편 안석표 옆자리였다. 항상 멍하게 약간 입을 벌리고 있고 누런 코가 매달린 석표는 앞섶에 손수건을 달고 있었다. 전학생이 처음 갖는 기죽어 보내는 시간이 없이 담임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활기찬 전학생 초기 시간을 보냈다. 봄이 지나 여름으로 흘러가는 때 산에는 산딸기 보리수 찔레순 꿀꽃 등 먹을거리 천지였다.
어느 날 방학이 다가오는 때 짝인 석표가 방과 후 자기 집에 놀러 갈 것을 제안했다. 호기심에 그러마 약속하고 따라나섰는데 신작로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개울을 건너 산길로 들어섰다. 경사진 산길을 나는 숨을 헉헉대며 따라갔다. 뻐꾸기 등등 여러 산새들이 반겨주었다.
산을 거의 다 올라가니 절이 나타났는데 석표는 그 절집 아들이었던 것이다. 허리가 굽은 늙으신 보살님을 엄마라, 스님들을 모두 형이라 불렀다. 석표 친구가 왔다고 스님들과 석표 어머님 모두 반가워하셨다. 난생 처음 절 구경도 하고 절마루에 엎드려 둘이 숙제도 하였다.
석표 어머니는 석표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당부하시면서 막 찐 옥수수를 가져오셨다. 장작을 때서 가마솥에 찐 것이었다. 석표가 학교만 갔다 오면 영희 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석표 집에 다녀온 후 먼 곳에서 통학하는 석표에게 관심을 갖고 산수 문제도 같이 풀어주고 코 닦으라고 휴지도 건네주고 마치 동생처럼 잘 돌보아주었다.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 글짓기 담당으로 재미나게 가르쳐 주셨는데 내가 쓴 글을 칭찬하고 게시판에 게시하시는 등 학교생활을 즐겁게 해주셨다. 주번 등으로 좀 늦게 집에 갈 땐 자전거에 태워주시고 특별히 나에게 잘해주셨다. 방과 후 시간에는 선생님과 잔디밭에 엎드려 사진도 찍는 등 재미난 추억도 많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선생님이 교대 졸업 후 처음 부임 받아 오신 첫 학교 첫 제자였다.
석표는 내 등만 바라보고 나는 선생님 등만 바라보는 이상한 구도였다. 나중에는 내 동생들의 담임도 맡으셨고 도 교육감에도 몇 번 당선되셨다. 내가 다 클 때까지 제발 장가가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빌었건만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을 하고 시골집에 왔더니 어느새 결혼하셨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너져 다리 난간에 서서 흘러가는 개울물을 한없이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요즘 새로 난 옥수수를 갓 쪄서 한입 베어 물 때 달큼한 냄새와 촉촉한 옥수수 알갱이의 질감이 입 안에 들어오면 그때 산사에서 베어 물던 옥수수 생각이 난다. 그때가 처음 먹어 본 옥수수는 결코 아니지만 우리들 추억은 가슴에 남는 것인지 혀끝에 남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그날이 내 인생의 한 픽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