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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과 자연사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이병훈(강남)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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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96세에 집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80세에 큰아들 집에 오셔서 계시다가 4일 후 아침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90세에 아파트 에서 혼자 사시다가 가정부가 한 3일간 식사를 잘 못하시더니 의식이 잃은 것 같다고 전화가 왔다. 급히 가서 대학병원에 입원시키고 오후가 되니 깨어나셨다. 그리고 원장을 부르라고 하여서 원장이 왔다.
“이제 깨어났으니 퇴원시켜 주시오.”
“일주일만 치료받으시면 완전히 회복되실 건데요.”
“나는 괜찮으니 퇴원시켜 주시오.”
그래서 그다음 날 아침 퇴원시켜서 집에 도착하였다. 집에 오시니 얼마 나 좋아하시는지…. 2주일 후 집에서 돌아가셨다.
내 나이가 85세가 다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건강하다. 내가 만일 중풍 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던지 아니면 계단에서 넘어져 팔다리가 부러진 다면 급히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 아마 두 달을 입원하면 서 입원비가 2천만 원은 넘을 것이다. 그러면 부인이 80세가 넘어서 매 일 간병은 어려울 것이고 아들 딸이 있으나 직장에 나가고 자기 살림들 을 하기 때문에 매일 간병은 힘들 것이다.
국내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간병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 만 일선 현장에서는 간병 인력이 부족해 아우성이다. 간병인을 구하여 간병을 하게 되면 하루에 15만 원, 한 달이면 450만 원이 넘고 일 년이 면 5천만 원이 넘을 것이니 장기적으로 간병비가 어렵게 될 것이다.
앓는 사람이나 다친 사람의 곁에서 돌보고 시중을 드는 것을 간병이 라고 한다. 간병인은 요양보호사와 일정한 교육을 이수한 자가 수행하 고 있는데 노령화가 지속될수록 간병인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 간병비 부담이 커서 환자가 있는 가족들의 부담은 날로 늘어나고 정부의 대책 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간병인 구하기도 힘들고 외국인 간병인을 쓸 수밖에없는경우가많다.
<아무르> 영화를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영화는 노인의 질병과 간병,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반신불수 치매가 걸린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 보던 남편이 힘이 들어 서서히 지쳐만 간다. 결국 아내를 베개로 눌러 질 식 사망하게 한다. 선량한 사람들도 오랜 간병을 하다보면 살인에 이르 게 된다는 비극적인 사정에 숙연해지며 사랑의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여기 우리 사회도 자주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치매 등 중증 환자의 돌봄을 가족이 떠 안으면서 가족의 일상이 무너지고 오랜기간 간병한 보호자가 우울증 환자가 돼 극단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에서 치매를 앓던 80대 아버지를 홀로 돌봐온 아들이 살 해한 뒤 동반 자살을 해 충격을 주었다. 일본에선 오랜 간병에 지쳐 가 족의 목숨을 빼앗는 간병 살인이 매주 한 번꼴로 발생한다고 한다.
누군가가 중증환자가 있을 때에는, 집안에 돌아봐야 할 환자가 있으 면 가족끼리 알아서 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도가 없고 누가 돌볼 것인 지 간병비는 어떻게 분담해야 할지를 놓고 형제끼리 갈등은 다반사일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에 매달리는‘간병 퇴직, 혼자 떠맡는‘독박 간병’이 흔하고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노노 간병’도 있다. 개인이 부담 하는 간병비 총액이 10조 원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가 족간병’에갇혀있다.
누구나 다 늙고 병들게 되어 있다. 닥쳐올‘간병 문제’를 고려하면 재 원 조달뿐만 아니라 요양병원 입원 증가 등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해 결 문제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93세 네덜란드 전 총리 파나흐트는 2019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제대 로 회복을 하지 못했고 그 이후 5년여간 부인인 외헤니 여사가 여러 병 으로 고통 받는 중에도 그와 함께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두 부부는 집에서 의사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락사가 시행된 것 이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안 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로 전체 사망의 약 5%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나 고통스럽더라도 지속적인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 며 안락사와 조력자살이 악용될 가능성을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이들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존엄사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다. 스위스 땅 까지 찾아가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가족들의 축복과 인사를 받으며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히려 살아갈 힘을 줄 수도 있다.
요즘 들어 웰다잉이나 존엄사, 조력사 등이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추세이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인간의 죽음과 내세에 대한 올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회복이 힘들고 고통이 심할 때는 장 기적으로 연명 치료가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자연사할 수 있도록 억압 된 제도에서 해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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