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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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화마가 고향의 산과 들, 집들마저 모조리 집어삼킨 2025년 3월 하순, 38년 교단생활을 마친 남동생과 함께 고향으로 향했다. 매스컴에서 온통 붉은 뉴스로 도배할 때마다 숨이 막혀 왔다. 고향 집에 장애로 살아가는 동생이 있다. 그 불구덩이 속에서 이웃 도움으로 살아남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우리는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 마음이 먼저 몇 백 킬로미터를 내달렸다.
텔레비전은 불행 중, 기쁨을 전하는 소식도 있었다. 고향의 명소 ‘만휴정’의 무사함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고즈넉한 정자가 어울려 빼어난 풍광을 펼쳐 놓은 곳이다. 정자 주변 송암 계곡과 폭포를 아우르는 ‘안동 만휴정 원림’이 명승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뉴스는 화재 속에 누각의 소실과 건재가 번갈아 보도되기도 했다. 방염포에 둘러싸인 만휴정이 소방관의 헌신 덕분에 건재하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기 ‘만휴정’은 조상의 혼이 배어 있는 곳이다. 누각을 바라보는 순간 뜨거운 핏줄 그 무엇이 꿈틀거리며 심장이 펌프질했다. 오늘 살아 있다는 증표다.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동생이 “가는 방향인데 잠시 조상의 흔적을 살펴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 건네는 말과 동시에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만휴정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화재로 다 타버리고 숲의 빈 껍데기만 남은 현장, 무엇이 얼마나 타고 어떻게 변했는지 직접 현장을 목도하자, 반세기가 넘도록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던 만휴정엔 초등학교 시절 소풍 왔던 기억이 희미하게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또렷한 만휴정 정자와 송암폭포, 두 팔을 벌리고 감싸안은 아름드리 소나무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정자로 오르는 들머리에 영화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란 표지판이 있다는 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언제쯤 되어야 송암폭포의 맑은 물이, 타다 남은 나무 그루터기 검은 그을음 헹구어 500년 전 풍광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자연을 이길 장사는 어디에도 없다. ‘만휴정’은 원림으로 수려한 산수와 시리도록 맑은 폭포를 안고 500년을 넘게 버티어 왔다. 붉은 화마의 변괴(變怪)로 검은 눈동자보다 시커멓게 주저앉아 있었다.
만휴정의 주인인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은 조선 성종, 연산군 시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자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인 그가 낙향하여 세운 건물인 만휴정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곳이다. 만휴정, ‘늦게야 비로소 쉬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작은 누각. 한 사람의 무책임한 실수 때문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역사의 숨결이 스민 송암 계곡과 폭포는 생명을 잃어 가고 있다. 누가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이 빚은 풍광을 아마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경상북도 문화유산 자료에 의하면 ‘안동 만휴정 원림’은 문화유산자료 제173호로 지정되어 있다. 잿더미 속에 다행하게 살아남아 그 속에 청백리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듯 보였다.
당시 집주인 김계행은 “집안에 보물은 청백리(淸白吏)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선비의 성정과 자존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다.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여기며 살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얼마 전 강원도 영월군 단종제에 문인으로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사육신의 후손들이 깃발을 들고 제례에 참석한 모습을 보자 가슴 한편이 시려 왔다. 600년 전 역적으로 올가미 씌워진 충심이 충절이란 이름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 후손들은 역적이란 누명에서 벗어나 조상의 삶과 정신을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관리로서는 청백리의 자세, 신하로서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충절이 오늘날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온 나라 안의 붉은 뉴스는 만휴정 앞뜰과 뒤란을 먹물보다 검은 수묵화로 그려 놓았다. 내린 비가 계곡의 상처를 검은 눈물로 씻기고 있다. 울울창창하던 소나무가 만휴정 주위를 가득 채우고, 사시사철 송암폭포가 웅장한 목소리로 창을 하는 명승지로 거듭 태어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