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글쓰기의 피곤함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찬경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조회수1

좋아요0

글을 쓰는 건 꽤 힘든 일이다.
내가 아는 작가들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엔 깊은 열정을 품은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글쓰기가 쉽고 편하다는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글쓰기는 힘들다고 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게 만만치 않다 말한다. 문장 하나를 얻기 위해 들이는 노고가 적지 않다고들 한다. 그래서 퇴고할 때 애써 써놓은 글을 줄이거나 지워야 할 때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아깝다고도 한다.
글쓰기는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것 같다. 앉아서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쓰니 육체적 에너지는 많이 들 것 같지 않은데 분명히 많은 체력을 요한다. 글을 쓸수록 느낀다. 운동을 하거나 노동을 하는 에너지와는 뭔가 다른 몸의 에너지를 앗아간다.
글을 어느 정도 쓰다 보면 분명히 지치거나 피곤해진다. 그것이 바로 그 증거다. 문자를 이용한 창조, 예술적 행위가 글쓰기 혹은 문학이다. 거기에 드는 에너지의 양은 결코 적지 않은 것 같다.
나탈리 골드버그도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글쓰기는 육체적인 노동이다”라고 했다.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등의 지각 능력과 관계가 있다는 것, 손을 계속 움직여 써 내려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기에 그렇다고 한다. 또 “끊임없이 글쓰기를 방해하는 생각들을 육체적으로 물리쳐야 한다”고도 한다. 마음과 육체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글을 쓰고 있는 육체적 행위가 마음의 장벽을 부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최근에 한강 작가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 인터뷰 중에서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중노동이 창작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최근에 글을 쓰며 심한 피로감으로 힘이 들었다. 평소에 비해 조금만 글을 써도 금방 지치고 피곤해졌다. 그 이유는 약물에 의한 간 손상 때문이었다. 나 같은 의료인은 의무적으로 결핵 검사를 해야 한다. 결핵균 특이항원 자극 인터페론 감마 검사라는 혈액검사다. 여기서 얼마 전 양성이 나왔다. 증상이 없고 흉부영상 등의 검사에서도 문제가 없는 잠복결핵으로 진단받았다. 그래서 약을 먹는 걸 권유받아 먹었는데 그 약이 간에 독성을 유발했던 것이다.
몸이 쉽게 피곤해지고 뱃속이 불편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를 보내야 할 곳이 있어서 글을 다듬고 정리하는데 몹시 피로하고 지쳤다. 평소 같으면 여러 번 읽고 고치고 해도 피곤함을 못 느꼈는데 이번엔 달랐다.
간의 상태를 체크하는 혈액검사를 투약 중 정기적으로 했다. 수치가 심각하게 상승했다. 약을 끊었다. 지금 잠복결핵 치료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입원을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병원 일도 며칠 쉬어야 했다. 얼마 전 느꼈던 글을 쓸 때의 심한 피곤함은 약으로 인한 간독성 때문이었음이 확실해졌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원고를 둘러보는데 한참을 해도 별로 지치지 않았다. 감사했다. 건강이 이렇게 소중한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금도 멀쩡한 상태로 자판을 누르며 이 글을 쓸 수 있음이 새삼 감격스럽고 행복하다. ‘아! 내가 글을 쓰고 싶을 때 맘껏 쓰는 것도 언제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글을 내 맘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항상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루지 말아야겠다’ 다짐도 해본다. ‘다음에 하지 뭐’, ‘나중에 한가할 때 하지 뭐’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정작 쓰고자 할 때, 써야만 할 때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란 느낌과 생각을 진실하고 정연하게 서술해 독자와 교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생생하고 울림 있는 글이 되려면 가급적 그 느낌이, 그 영감이 신선도를 잃기 전에 써야 하지 않을까. 음식도 냉동실에 얼렸다가 다시 녹여 먹으면 얼리기 전의 싱싱한 맛보다 훨씬 못한 것처럼 말이다.
피천득 선생은 수필을 ‘서른여섯 살 중년의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라 했다. 내 나이를 생각하니 그때를 꽤 지나왔다. 나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젊은 감각의 글을 쓸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다. 글의 영감이 왔을 때 미루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쓴 글이라야 좀 더 싱싱하고 신선한 감각의 글이 되지 않을까. 오래 건강하게 살아 원숙하고 노년의 깊이가 배어 있는 글도 쓰고 싶다. 하지만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이 순간에만 쓸 수 있는 그 글 또한 놓치고 싶지 않다.
글쓰기가 쉽지 않은 일임을 익히 느끼며 지냈다. 이번에 건강의 어려움을 겪으며 더욱 절실히 느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안 그래도 쓰기 힘든 글을 더더욱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것임을. 그래서 건강의 소중함은 물론 건강해서 맘껏 글을 쓸 수 있음의 소중함도 잊지 않으리라 맘먹는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