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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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집이다. 초봄의 신록이 짙어 가는 나뭇가지에 지어진 새의 둥지다. 작은 나무에 터전을 잡은 아담한 보금자리, 이름 모를 어느 새의 작은 둥지다. 새끼를 기르며 행복함으로 즐거움이 가득하였을 둥지다. 그런데 빈 둥지여서 어딘지 마음에 아쉬움의 상념이 머무른다.
초봄의 신록이 우거지는 날 아내와 산행할 겸 집을 나섰다. 진안군 성수면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봄이면 자주 찾는 곳으로 야트막하면서도 농촌의 풍경을 환히 볼 수 있는 산이다. 이곳은 나의 고향과 닮아서 마음부터 아늑하고 편안하다.
봄을 맞이한 농촌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고 있다. 논에는 모심기를 위한 작업이 농부의 바쁜 일손에 이루어지고 있다. 농촌의 풍경이 옛날과 다르다. 소를 앞세워 논을 가는 풍경을 이제는 볼 수 없다. 농기계로 논을 갈고 모를 심으며 병해충 방제를 하고 있다. 논의 잡초는 제초제를 뿌려서, 사람이 손으로 김을 매는 일은 안 해도 된다. 모두가 농기계와 농약으로 농사를 대신하고 있다. 농부의 소 모는 소리로 이랴 자랴 하면서 들판을 울려 주던 목소리는 아스라이 멀어져 간 옛 추억의 소리가 되어 버렸다.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새소리를 농촌의 숲에서 들으니 마음은 한가해지며 옛날이 생각난다. 노란빛을 자랑하는 꾀꼬리 소리는 어릴 때 많이 들었던 소리인데도 변함없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다. 뜸부기는 봄을 재촉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언제 들어도 정겨운 소리다. 아직은 초봄인데도 그늘은 시원한 느낌으로 청량감을 준다. 눈앞에 펼쳐진 농촌의 모습을 보며 옛날 시골생활이 아련히 머릿속을 지나간다. 들판의 소 모는 소리와 울타리 아래에서 놀던 수탉은 초가지붕 위에서 목청껏 때를 알리는 시보 노릇을 하면, 새참과 점심을 준비하는 아낙의 손길이 절로 바빠지던 그 시절이다.
산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걸었다. 나뭇잎에 가려진 새의 작은 둥지를 발견했다. 나뭇잎과 새의 깃털로 단단하고 깔끔하게 지은 집이다. 조금 더 높은 나무에 의지해 지었다면 더욱 안전한 둥지가 되었을 것을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새들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지만, 공연한 걱정이다. 새는 없어도 알은 있나 조심히 보았더니 아무도 없는 둥지였다. 주인 새는 없어도 꼬마 새끼들이 집을 지키고 있으면 서로 인사하며 어떤 생김새의 새가 사는지 알련마는 아무도 없으니, 어딘지 마음이 휑하고 허전하고 만나지 못함이 아쉬웠다.
작은 둥지에서 있었을 새들의 옛날 일들이 생각으로 떠오른다. 언제부터 빈 둥지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부부와 짝짓기로 새끼를 낳아 기르면서 즐거웠을 날들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작은 둥지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 어미 새는 노란 부리의 새끼를 기르며 깃털이 빠지고 부리가 닳도록 먹이를 찾아다녔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어미 새의 모습은 수척해지고 새끼들의 몸집은 커가서 더 많은 먹이를 달라고 하면서 제 어미의 노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차지하려고 몸싸움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삶과 흡사하다는 생각이다.
어느 날 둥지 안의 새끼가 날갯짓하면서 창공을 나는 연습을 할 것이다. 하루하루 커가는 새끼의 모습에 어미 새는 반가우면서도 행여 땅에 떨어질까 염려스러워 주변을 맴돌며 몸조심하라고 경계하고 또 주의를 주는 어미 새의 심경을 새끼들이 알기나 할까. 하늘 나는 연습에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지니 어미가 걱정되어 사방으로 다니며 불러도 새끼는 대답이 없다. 어미 새도 어릴 적에 지금의 새끼와 같았을 텐데 제 새끼가 저를 닮았다 하여 새끼를 탓하며 무어라 말할까. 어미 새 되어 새끼를 걱정하는 마음을 비로소 제 어미가 걱정하던 뜻을 알리라 여긴다.
가정을 이루며 행복했던 둥지의 어미는 앞으로 살아갈 새끼에 대해 노심초사 걱정이다. 어미는 새끼가 자라면 혼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해 하늘을 나는 연습, 먹이를 찾아 나서는 일들을 가르치고 한다. 자라면 새끼들은 어미의 곁을 떠나려 한다. 혼자 살면 마음대로 창공을 날고 먹이도 제 마음대로 구할 것 같은 자신만만한 마음일 것이나 어미의 생각은 다르다. 밖의 세상은 좋은 일도 있지만, 자신을 노리는 천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어린 새들은 모른다. 이것을 어미는 알고 있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새끼에 대해 걱정이 많다. 사람의 부모가 자식 걱정과 어찌 다르다고 하겠는가.
때가 되면 떠나고 남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 했다. 어미와 어린 새들의 한별(恨別)을 보지는 못했어도 이별은 서러운 일이다. 새는 울어도 눈물을 볼 수 없다고 하나 어찌 없겠는가. 다만 사람이 보지 못했을 뿐이다. 어미와 새끼 사이 단장의 이별에 날개깃이 눈물로 흥건히 젖었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다시 만날 기약 없는 이별이라면 옷소매는 눈물로 젖어 빗방울이 되었으리니 떠나고 남는 자의 정한의 서러움은 만고의 해를 거듭하여도 그대로이려니 싶다.
작은 둥지를 그냥 지나려니 아쉬워 사진으로 남겼다. 둥지를 떠난 새는 제 집이니 다시 찾기가 쉽지만, 나는 다시 찾기 어렵다. 비록 짧은 시간 둥지의 사정을 보면서 작은 둥지가 비어 있는 모습이 못내 아쉽다. 얼른 어미가 돌아와 다시 새끼 기르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살던 곳을 옮기는 일은 사람도 다를 바 없다. 집을 비워 두고 떠나간 이들의 속사정이 무엇인지를 어찌 다 알겠는가. 옛날의 행복과 영광을 찾아 둥지의 주인이 아담한 집을 단장하고 오가는 계절의 손님을 맞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어디에서 살든 행복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다시 찾을 날이 있으면 꼭 들러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