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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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쓸까 한다. 지금은 다 고인(故人)이지만, 실명(實名)을 드러내기는 뭣해 남(男)은 ‘Y’로, 여(女)는 ‘K’로 하겠다. 먼저 ‘백 년 전’ 순애보를 쓰게 된 동기부터 소개하자.
스무몇 해 전 일이다. 우연히 K가 쓴 단문(短文)을 읽다 끄트머리에 “너는 언제까지나 바늘과만 싸우려느냐?” 하고, 떨어지는 첫눈을 보며 자신을 탓한 이 ‘한 줄’이 궁금증으로 남았다. 문장은 상큼한데, 낯선 작가고 글도 처음이라 이내 K를 잊어버렸다.
그러다 엊그제, Y가 ‘문학소녀 K’라는 주제로 쓴 연서(戀書)를 읽다가, ‘아, 그녀였구나!’ 하는 탄성이 입에서 절로 터졌다. 한학에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낸 양인(兩人)의 순애보는 처음부터 점입가경이었는데, 돌연 참담한 단명국으로 끝났다. 시대가 낳은 천재들의 문학적 교감과 엇갈린 운명에 갑자기 흥미가 솟구쳤다.
Y의 글에 K는 대단한 재원(才媛)이었다. 18세밖에 안 된 소녀가 『자본론』과 『맹자』를 책방에서 사와 이미 당대 최고의 석학이고 한학 천재로 명성을 날리던 Y에게 가르쳐달라 채근할 만큼 엄청난 지식욕, 탐구욕을 가졌었나 보다. 더구나 첫 만남에서, 영국 시인 P.B. Shelley의 「Good-Night」을 가르치고 주고받다가, 그의 시구(詩句) “Let us remain together still”처럼, 밤을 넘기고 아침 햇살이 돋을 때야 헤어졌다 하니 이건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멋진 순애보가 아닌가!
그런데, 그 ‘불같은’ 연정이 반년 만에 깨진 것이다. 당시 K는 19세요, Y는 22세였다. Y는 그때의 결별 아픔을 ‘연재(戀災)’라 썼으나, 단연코 K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K는 평양 S여고 3학년 때 Y와 처음 만나, 이듬해 경성까지 따라와서는 동덕여학교 4학년에 어렵사리 편입해 학업에 몰두했는데 그마저 포기하고 돌연 귀향했으니 생의 꿈을 다 접은 듯해서다.
그 귀책사유는 분명 Y에게 있었다. 이미 그때 Y는 유부남이었다. 애초 축복받기 힘든 ‘불륜’의 범주였는데, 이를 정리할 결단력이 그에겐 없었다. 가정적 책임감이 Y에겐 현실의 벽이었겠지만, 순수한 열애를 원했던 K에게는 그 ‘책임감’이 천하에 설 곳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양인이 경성에서 기거할 때 K의 첫 시, 「책 한 권」이 당시 Y가 주관했던 『금성(金星)』 3호 (1924. 5. 24.)에 실렸다. 결별 석 달 전이다. 생애 첫 글이 실린 시집을 들고 설렜을 K를 상상하며 원본을 요즘 말로 정리한 약문(約文)이다.
나는 가난합니다/ 그리고 또 외롭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중략)/ 그 책은 비록 해어졌으나/ 해어지면 해어질수록/ 더욱더욱 귀여워합니다// 나는 가난하고 또 외롭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하는/ 이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오 나는 (이 책으로) 행복해집니다(「책 한 권」)
도대체 어떤 ‘책 한 권’이었길래 “가장 사랑하고”, “해어져도 귀엽고”, 그렇게 “행복”하게 했을까? 분명 Y의 숨결이 수없이 닿았던 고서 (古書)였을 것이다. 그가 건넸을 ‘다 해진’ 그 책 속엔 갓 피어난 꽃잎 하나가 책갈피처럼 끼워져 있고, 거기에 스승이요, 연인인 Y의 손끝에 배인 온기가 ‘외롭고 가난한’ 어린 천재 소녀의 작은 가슴에 전해져 존경과 연정의 꽃불로 피어올랐을 것이다.
Y는 이 시를 두고 ‘연서’에 이렇게 썼다.
“알량한 스승 겸 애인인 나를 주제로 한 것이다.”
참, 그답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문학적 권위로 천재 소녀를 발탁했다는 자부심과 그녀의 삶에 깊숙이 들어섰던 연인으로서의 소유욕이 동시에 느껴져서다.
문득, 그들이 왜 헤어졌나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알 수 없었다. K는 ‘목숨 같은 사랑’이 무너진 참담한 상처를 내보이기 싫었을 것이고, Y는 자신의 ‘세속적 한계’로 천재 작가의 삶을 망쳤다는 큰 부채감에 감히 변명키 어려웠을 것이다. 때로는 밝힌 이유보다 ‘밝힐 수 없었던 침묵’이 그 사랑의 깊이를 더 아프게 증명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였다.
‘결별’의 운명은 K에게 더 가혹했다. K는 Y와 헤어져 다시는 경성 땅을 밟지 않았다. 후에 고향에서 만난 J와 ‘전우애’ 같은 결혼으로 간도 (間島)로 떠나 그곳에서 극도의 빈곤, 가중된 병고, 또 영아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불후의 역작, 소설 「인간 문제」 등을 남기고 조선 문단에 ‘리얼리즘’의 작가로서 독보적 위치를 굳혔으나 38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런 양인의 사연을 알고 K의 저 「꽃송이 같은 첫눈」(1932. 12.)을 다시 읽어보았다. 문장은 여전히 ‘상큼한’데, 이번엔 그녀의 낭만성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너는 언제까지나 바늘과만 싸우려느냐?” 하는 대목에선 일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천재 소녀가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했을 Y를 떠나 고향에 와서 한낱 바느질로 허송하는 ‘자신을 탓한’ 그 비장(秘藏)한 슬픔이 코끝에 시려져서다. 1932년 한겨울, 만주의 칼바람 속에서 발표된 이 수필은 실로 그녀가 고향 집 눈밭에서 치열하게 번민하던 기록이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꽃눈 속에 멈춘 그녀의 시선’은 Y와의 낭만적 허상을 접고, 자신을 기다리는 저 차가운 만주의 벌판을 이미 응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어이 ‘바늘’을 던지고 ‘펜’을 들어 만주의 척박한 땅으로 자신을 유배시켜 조선의 ‘사실주의 문학’의 새장도(壯途)로 발을 내딛는 출사표가 아니었을까!
Y는 훗날 ‘비겁했던 젊은 날’이라 참회하고, K를 ‘조선이 낳은 강인한 문학의 넋’이라는 헌사를 남겼다 한다. 그런데도 필자는 왠지 이 ‘아픈 연애사’에 머뭇거린다. 그건 한 천재를 불행의 나락으로 내몬 Y의 ‘미필적 유감’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닌 원죄와 닮은 것 같아서다. 이 글 끝자락에 서니, 절망을 딛고 선 K의 ‘문학적 기개’가 참 돋보인다. 이 봄밤, 노경(老境)에 저무는 내 붓끝에 마치 새롭게 날선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