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학교 가는 길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양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조회수1

좋아요0

길을 나섰다. 중학교 친구 셋이서 젊은 날이 아쉽고 그리워 고향에 가고 있다.
옛날로 돌아간 듯 마음은 하늘을 날아 흘러나오는 익숙한 리듬에 맞추어 몸을 들썩인다. 우리는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을 함께 보낸 소꿉친구다. 호롱불 아래서 공부를 하며 꿈을 키우던 우리들은 목선을 타고 중학교를 다녔다.
우리가 살던 작은 마을에는 중학교가 없어 이웃(엄정면)에 있는 학교에 다녀야 했다. 걸어서 다니기엔 좀 먼 거리였지만, 중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던 시절이었다. 집에서 오리 길(2km)를 걸어가면 목계강이 있다.
목선을 타고 강을 건너 마을을 지나가야 학교가 있다. 매일 아침마다 길에서 만나 함께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과 같이 걸어가면 힘이 나고 그냥 좋았다. 조용하던 신작도에 학생들이 하나, 둘 모이면 웃음소리, 발걸음 소리가 길을 채웠다. 자전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지만 고등학교 오빠들만 자전거로 통학을 하고 다수의 학생들은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등굣길 길섶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이 반짝이는 그 길을 걷다 보면 강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목선은 두 종류였다. 사람을 건네주는 작은 배와 우마차나 자동차를 건네주던 큰 배가 있었다. 지금의 지하철 시간만큼이나 정확한 시각에 사공 아저씨들이 학생들을 기다리셨다. 매일 이렇게 걸어가 목선으로 강을 건너 학교에 다녔지만 지각을 한 기억은 없다.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가지만 학교에 도착하면 교복은 젖어 있고 운동화도 젖어서 질번거렸다. 그래서 비오는 날이면 수건과 양말을 준비해 다녀야 했다. 그나마 장마가 심할 때는 학교에 못 가는 날도 있었다. 폭우에 강물이 불어나면 선착장이 물에 잠겨 목선을 띄울 수가 없었다. 이런 날은 사공 아저씨들이 학교에 연락을 해 주셨다. 2학년 수업 중이었다. “목계강 건너 학생들은 빨리 하교 준비하세요” 하는 교내방송을 들은 우리들은 두려움에 떨리는 손으로 책가방을 쌌다. 하지만 남아 있는 반 친구들은 “너희들은 좋겠다” 하면서 부러워했다. 장마철 폭우가 내리면 수업 중 급하게 하교를 해야 했다. 예측할 수 없었던 장마철이면 우리들의 학교 가는 길은 고생이었다.
어느 날 등굣길에는 이슬비만 내렸다. 그런데 수업 후 집에 오는데 장대비가 무섭게 쏟아졌다. 우리들은 비를 맞으며 선착장에 도착하니 사공 아저씨들이 서둘러 목선에 오르라며 불호령이다. 학생들을 태운 배가 강 중간쯤 지날 때 빗줄기는 더 거세지고 강풍까지 심해져 사공 아저씨들은 앞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배는 힘없이 표류하면서 강 하류로 자꾸만 떠내려갔다. 아저씨들은 사력을 다해 노를 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온몸에 비를 맞은 채 함께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우리에게 “다 왔다, 내려라” 하시던 사공 아저씨들 모습이 그립다. 그 시절 사공 아저씨들의 기술은 놀라웠다. 깊은 강물에 긴 노를 넣어 두 손에 힘을 모아 정착된 배를 물 위로 밀어 넣었다. 노를 저어 뱃머리를 돌릴 때면 추운 겨울에도 수건으로 땀을 닦으셨다.
고향에서의 삶보다는 도시에서의 삶이 더 많지만 사라지고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추억을 소환한다. 아주 오래전 목계강에는 다리가 놓여졌다. 우리는 함께 차를 타고 우리가 걸어 다니던 그 길을 천천히 아주 느리게 길을 지나고 있다. 문명의 발달로 많은 것이 사라지고 변했지만 옛 모습 그대로 흐르고 있는 강물을 보며 한 친구가 말했다. “목선도 우리 친구였는데” 하면 “그래, 맞아” 하며 맞장구를 친다. 잊고 살았던 아주 특별한 친구였던 목선을 그려본다. 저 멀리 모교가 보인다. 길옆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손잡고 그 길을 걷는다.
바람 한 줄기 스치는가 싶더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