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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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실은 세상을 잊어도 좋은 곳이었다. 자연부락 이름은 망 실(望實)이지만 망실(忘失)로 읽고 싶었다. 마을 앞으로 시냇 물이 흘렀다. 시냇물 따라 신작로가 나고, 신작로는 사이사 이에 고샅길을 품었다. 대문도 없는 나직한 집들이 스무 채 남짓한 오지 마을이지만 초입에 서당이 건재하다. 시냇가 오두막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자주 드나들었다. 초기엔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아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마을 가운데 시냇가 도로 옆에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아 름드리 고목은 아니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마을 사람들을 불 러모으는 정자나무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늘이 제법 넉넉 해서 나무 아래 벤치도 마련했다. 목소리 큰 어르신이 지나 가는 장꾼들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왁자한 웃음 소리가 담을 넘어왔다. 나그네도 쉬어가고, 고향 찾은 사람 들은 감회에 젖어 가던 길을 멈추었다. 마을에 운치를 더하 는 그 나무가 수호신처럼 듬직했다.
몇 년 전이었다. 어둠살이 내린 후 망실 느티나무 곁을 지나갈 때였다. 왠지 휑하고 낯선 기분이 들었다. 손전등을 비추어 보니 그곳에 서 있던 나무는 간 곳 없고 밑동만 남아 속살을 드러내었다. 순 간 바위 하나가 덜커덩 가슴을 짓눌렀다. 마을 사람들과 동고동락한 나 무는 이런 대접을 받게 될 줄 상상이라도 했을까. 오래된 나무를 가차 없이 베어버린 저의가 짐작은 된다. 나무뿌리가 집까지 뻗칠까 봐 걱정 하던 이웃 할머니가 떠오른다. 당신 집에서 10여 미터 떨어져 있건만 당사자가 위협을 느낀다니 아쉽기 그지없다.
내 오두막에는 감나무가 지붕 뒤로 우뚝 솟았다. 방에서 바라보면 한 지 들창에 감나무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마른 가지를 뚫고 여린 새잎이 나올 때면 신비 그 자체였다. 이따금 갈 때마다 조금씩 잎을 넓히다가 이내 진초록 그늘을 드리웠다. 감꽃이 피고 지고, 여름에는 양철 물받 이에 풋감 떨어지는 소리가 적막을 가르곤 했다. 늦가을이면 익은 감이 알전구를 켠 듯 환했다. 겨울에는 높다란 가지에 남은 까치밥 덕분에 까치들이 진을 쳤다. 어릴 적부터 친숙했던 감나무와 다시 사계를 보낼 수 있어 흐뭇했다.
옆집과는 허물어진 나직한 돌담을 사이에 두었다. 돌담 너머로 무던 한 할머니와 안부를 주고받았다. 한때는 옆집에서 호박을 심어 호박 넝 쿨이 담을 넘어와 마당까지 침범해도 그러려니 했다. 홀로 계시던 할머 니가 연로해지자 객지에 나갔던 아들 내외가 귀향했다.
오랜만에 오두막에 들렀다. 습관처럼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뒤뜰에 서 있던 감나무가 토막이 난 채 바닥에 나뒹구는 게 아닌가. 낭패감에 연유를 알아보았다. 옆집에서 집을 짓기 위해 측량을 했고, 감나무가 경계에 딱 걸린다면서 베어버린 뒤였다. 감나무 그늘 때문에 텃밭 농사 에 지장을 준다는 게 이유라니. 몇 달이 지나자 돌담마저 사라지고 경 계에 걸친 새집이 들어섰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경계라면 이쪽저쪽 다 해당하는데 왜 그 나무를 베어야만 하는지. 나무를 키우려면 긴 호흡이 필요한데 그렇게 쉽게 나무를 없애 버리다니. 빈집 지킴이 처지라 속앓이만 할 뿐 속수 무책이었다.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씩 사라질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나 무 크기의 구멍이 나면서 헛헛해졌다.
장마철이 되었다. 비만 오면 오두막 벽에 물기가 번졌다. 태풍이 지 나간 뒤 허술해진 지붕 틈새로 비가 샌 모양이다. 집주인이 위험하다며 집을 비우라 종용했다. 어쩔 수 없이 십여 년 정든 그곳을 떠나야만 했 다. 오두막 입구에 내가 심은 청매는 남겨 두었다. 청매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달려가서 볼 수 있으니까.
이듬해 봄, 여기저기서 매화가 벙그니 망실 생각이 났다. 그윽한 청 매 향기를 기대하며 익숙한 그곳을 다시 찾았다.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느티나무가 사라진 곳까지 걸어갔다. 저만치 옛 주인을 반겨줄 청매가 보이지 않았다. 황당해진 마음을 누르고 혹시나 하며 다가갔지 만 허사였다. 길가에 서 있는 나무가 걸리적거리면 가지를 짧게 자르면 될 것을, 일부러 심어놓은 나무를 매몰차게 없애야 했는지.
나무를 함부로 베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씁쓸하다. 역지사지로 생 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처음으 로 안온한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토록 좋아했건만, 망실과 인연은 거기까지일까. 아끼던 나무 세 그루의 망실(亡失)로 차츰 소원해지고 말 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