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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 위에 쌓이는 봄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정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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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마저 사조 속으로 침잠하는 출구의 끝

 

땅거미는 지상의 유일한 건반이었던
실루엣을 기어이 지워낸다

 

누군가의 아득한 등부전(背部)마저 삼켜버린 어둠 속에서

 

찬란했던 어제의 봄날은 궂은 한기로 화하여
낮은 저음으로 가라앉는다

 

동결의 온도로 밀어낸 저 꽃잎들의 유배지,
차마 열리지 못한 채 수줍게 붉어진 봉오리 안에서

 

내밀어도, 비장한 그리움도,
심장 깊은 곳의 온혈은
오히려 뜨거운 화인이 되어 타오른다

 

바람의 결을 따라 일렁이는 파문의 잔상들

 

찰나로 명멸하는 하얀 봄의 잔해처럼
정수리 위로 소리 없이 자라나는 시름의 백발

 

그것은 생애 끝내 발송하지 못한 마음들이 
흑백의 건반 위로 소복이 쌓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생의 페달링이다

 

분분한 낙화
우주 어디쯤 환장하도록 뜨겁게 만개했다가 
지독한 독주(獨奏)를 마치고

 

새벽의 여명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지는 
유성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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