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1
0
투명한 잔 속
천천히 흔들리는 어둠
그 속에서
붉음은
오래된 상처의 빛처럼 깊고
창문 닫힌 겨울방처럼 조용하다
포도알들이 견딘
긴 계절의 기억
햇살과 바람이 지나간
어둠 속에서 익어 간다
고요는 시간을 천천히 익혀
오래 접힌 편지의 온기와
늦게 도착한 말들이 숨쉰다
분노와 사랑
후회까지도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입 안에 번지는 향은
먼 약속처럼 돌아와
지나온 날들을 흔든다
격렬하게 으깨지고
오래 기다리며 익어
마침내 한 모금
누군가의 입술에서
조용히 이해되는
긴 시간의 향
투명한 잔 속 남은 것은
향이 아니라
기다린 시간의 무게였다